제 1018화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선물상자를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이런 짓을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데이비 님.”
엄청난 폭발인 만큼 당연히 다수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었고,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달려온 륀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당한 에너지 파장을 감지. 이것의 화력이 굉장히 위험성이 있다고 분석해. 데이비 님. 신변의 안전 확인을 촉구해.”
녀석은 내가 깨운 이후로 사실상 맹목적으로 나를 따라와 주었다.
나는 이 녀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넬타리드가 만든 처단부대 백익 세피로스?
1만 년도 더 된 문명의 흔적?
그런 가시적인 것을 떠나 보이지 않는 것.
그녀가 정말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륀느.”
“테러 가능성이 충분하다 판단. 륀느가 데이비 님에 대한 습격을 낮게 평가. 응징명령을 요청.”
륀느의 말에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나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녀석을 보며 말했다.
“약 팔지 말고 빨리 고쳐.”
“읏?!”
내 말에 녀석이 크게 움찔거렸다.
몸을 툭툭 털고 나서 클린 마법으로 흔적들을 지워낸 나는 륀느를 바라보았다.
“내가 평소에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랑 벌써 몇 년을 지냈는데 모를까.”
너 지금 벽 고치다가 아주 기회 잡았다고 냉큼 달려온 거잖아.
애초에 에너지 감지가 가능한 그녀는 이 정도 폭발이 내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찾아와서 요란을 피우는 건 내게 받은 벌을 다른 일을 핑계로 빠져나가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내 말 맞지?”
“……데이비 님의 눈치를 륀느가 낮게 평가.”
“다시는 홍단이 청단이에게 그런 거 가르치지 마.”
“륀느, 매우 효율적인 선물 공수법을…….”
“애들은 그걸 믿고 그대로 자라니까 문제지.”
내 말에 륀느는 눈에 띄게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돌아섰다.
“아참. 륀느. 이거 받아라.”
나는 아공간 속에서 보따리를 꺼내 그 안에서 륀느의 머리색과 같은 상자를 꺼내 던져주었다.
동시에 륀느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마광석이야. 너 그거 좋아하잖아.”
륀느의 심장인 기계 장치의 신은 스스로 진화하는 심장이다. 그리고, 특수한 힘을 공명시켜 흡수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큰 효능이야 있겠느냐마는 있어서 손해 볼 건 없지?”
마광석은 마정석과 흡사한 형태의 광석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그 힘의 저장 방식이 조금 다른 식으로 보통의 마정석보다 더 륀느에게 잘 맞는 에너지 공급원이기도 했다.
“아…… 아아…… 륀느가 마광석을 높게 평가!”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반짝거렸다.
“마음에 드니 다행이네.”
상자를 뜯어 그 안에 든 마광석을 높게 들어 보인 녀석이 다시 한 번 높게 소리쳤다.
“높게! 평가!”
“벽 마저 고쳐놔. 사고 쳤으면 뒷수습은 해야지.”
“륀느의 구현 기술을 총동원할 시 작업 소요시간 약 30분! 명령 인수!”
순식간에 쪼르르 날아오르더니 녀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움직였다.
* * *
본래의 계획과는 관계없이 사고를 친 오딘은 신의 영역에 돌아와 눈을 꿈틀거렸다.
“푸훕…… 푸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몰골을 본 검신 하레스와 천마 독고준이 대놓고 대소를 터뜨리며 낄낄 웃기 시작하자 그녀의 표정이 팍 찡그려졌다.
“웃지 마.”
“아하하하하하하!!!”
물론 말을 들을 두 양반이 아니었기에 오딘은 한 손에 검은 화염을 끌어모아 저들에게 던져버릴까 고민했지만 이내 침묵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 자신의 거처로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런데 데이비에게 그 와중에 폭탄을 선물하네.”
“대박일세.”
웬일로 취기가 전혀 없는 독고준의 말에 오딘이 멈칫했다.
“몰라. 그 자식 보면 그냥 화병이 나. 아직 선물 받을 녀석들이 남았으니까. 데이비 그 자식 여기와도 못 봤다고 해.”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그녀를 보며 하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이 찢어진다.
“오딘 이 양반 어디 갔어.”
대뜸 분노한 데이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씨구?”
“아주 죽이 척척 맞는구나.”
“오딘 어디 갔습니까?”
“왜. 어쩌게.”
“어쩌긴 당장 복수해야지.”
데이비가 눈을 부릅뜨며 스산하게 웃자 천마 독고준이 혀를 쯧쯧 찼다.
“아서라 멍청한 놈아. 당장 가서 복수한다고 나대다가 또 통구이 되지 말고.”
“아니 이미 통구이 한번 됐다가 왔다니까?”
“쯧.”
독고준은 못난 놈이라며 혀를 끌끌 차고는 결국 호리병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독한 술 냄새가 퍼지며 그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 자존심 강한 양반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되는 막내에게 도움을 받아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쪽팔리고 고마웠겠냐. 그래서 자존심 다 꺾고 그런 짓까지 했는데 네게 들켰으니 속이 탈만도 하지.”
그가 손사래를 쳤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돌아가. 훠이훠이.”
독고준의 말에 오딘을 당장 만나 따지려던 데이비는 잠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쯧…….”
데이비 본인도 모르진 않았던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쯤 되니 데이비의 화살이 대뜸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장인어른.”
“이름으로 불러라 오글거려 죽겠으니…….”
하품을 쩍 하며 바닥에 추욱 늘어지는 그를 향해 데이비가 입을 뻐끔거린다.
잠시 망설이는 듯한 모습에 하레스는 독고준에게서 받은 호리병을 입에 물고 술을 입에 머금었다.
“페르. 한번 만나볼래요?”
“푸웁!!!”
그 자리에서 머금고 있던 술을 데이비에게 뿜어버린 그였다.
“아…… 나, 나는 잠시 급한 일이 생겨서…….”
페르세르크도, 그도 결국은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딸도 보고. 손자나 손녀도 보셔야지.”
“뭐? 페르세르크가 임신을 했어?!”
벌떡 일어난 그가 놀란 듯 소리쳤다.
이에 데이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하는 말이지.”
“……에라이 새끼야!”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표주박을 데이비에게 던져버리는 그였지만 데이비는 그가 던진 박을 가볍게 받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되물었다.
“그래서, 만날래요. 말래요.”
그 말에 하레스는 한참을 고민했다.
“페르는 고민하는 거 같더라고요. 나름대로 응어리가 있겠지.”
“나는…….”
“만나고 싶다고 하면 잠깐이라도 틈을 만들어드릴게.”
그 말에 하레스는 조용히 침묵하다 대답했다.
“만나지 않겠다.”
그 아빠나 그 딸이나.
“어휴…… 진짜 보는 사람 속 터지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부모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건 그 스승이나 그 제자나.
* * *
“…….”
비 연에게 받은 생기의 구슬이 일렁거리며 손에서 요동친다.
겉보기엔 정말 무슨 쓸모가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물건이지만 나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비. 그걸로 대체 뭘 만들려고?”
“어……어?”
“생기의 힘이라니. 뭐. 륀느처럼 정말 살아있는 골렘이라도 만들려는 게야?”
“있어. 될지 안 될지는 일단 좀 비벼봐야 할 거 같은데.”
“또 뭔 괴이한 걸 만들려고…….”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그녀가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하려고.”
“별거 아니라니까.”
“본녀와 관련된 일이구나.”
그 한마디에 내 몸이 우뚝 굳었다.
“그대 말이야. 본녀와 관련된 것을 숨길 때 버릇이 있는데.”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벙찐 표정으로 내가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헛소리하지 마. 난 지구에 애들 데리러 가야 하니까. 슬슬 연구진척도 끝냈을 테니 데려와야지.”
“……흐음. 아무리 봐도 거짓말인데.”
“거짓말은 무슨.”
“또 손끝을 비비는구나.”
“…….”
“뭐 됐었음이야. 사고나 치지 말고 다녀와.”
그녀가 옅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런데 맨입으론 힘든데.”
그녀의 미소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죽어도 손해 보는 성격은 아니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 * *
“으…… 으으으…….”
커다란 침대에 홀로 누워 뒤척이고 있던 에오니샤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국에서 지원해준 그녀의 숙소에서 머무르고 있는 그녀의 일과는 간단했다.
한국 최고의 관련 연구진들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마침 어떤 망할 놈들의 수작질로 인해 수많은 국가에서 한국의 원전 폐기물 중화와 재활용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녀와 접촉하려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 때문에 연구에만 해도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방해를 받고 있는 시점이다.
당연히 이 일을 데이비에게 호소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경악스러웠다.
[니가 나중에 제대로 유명한 연구자가 됐을 때 주변에서 널 가만히 놔둘 거 같으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니까 겪어보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너무 환하게 웃으며 말하던 망할 오라비를 떠올리며 에오니샤는 환한 금발을 마구잡이로 흐트러트렸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은 얼어 죽을…… 일부러 나 놀리는 거면서…….”
데이비의 말에 틀린 게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얄미운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후우…….”
잔뜩 피곤한 표정으로 동물 잠옷 하나 입은 채 일어난 그녀는 식탁 위에 놓여진 난장판이 된 서류와 그 옆에 아주 탑처럼 쌓인 에너지 드링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본 뒤 냉장고를 벌컥 열었다.
“냉장 물품 보관은 확실히 티오니스보다 지구가 좀 더 효율적이긴 하네.”
마나를 기본으로 두는 티오니스의 냉장 시스템도 꽤 보급이 많이 되어있지만 역시 전기라는 건 굉장히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냉장고에 발뒤꿈치를 들어 물건을 쏙 쏙 꺼내든 그녀는 마치 자취 생활만 십수 년 해온 베테랑처럼 느긋하게 반찬들을 꺼내 식탁에 놓인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 넣고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툭툭 치우고 정리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잡힌다.
“응? 이건 뭐지?”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식탁 아래에 붙은 붉고 큰 양말이었다.
사람이 신는 용도라고 하기엔 조금 독특한 형태였다.
“이건 뭐야. 상자? 웬 양말에 선물이래? 누가 가져다 놨나?”
그녀는 상자를 꺼내고 그 안에 있던 선물상자를 심드렁하게 뜯었다.
그러자 작은 반지 하나와 편지가 보였다.
“반지?”
의아한 듯 그것을 본 그녀는 이내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맞췄다.
“와…… 소름 돋아. 딱 맞네…….”
몸을 부르르 떤 그녀가 이번엔 편치를 펼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누군가의 메시지로 보이는 그것을 보며 에오니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산타.”
그녀도 그 존재를 들어서 알고는 있다. 지구 문명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일리나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여기저기 잘 놀러 다니는 티아라에게 들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잔뜩 졸린 눈으로 근처에 있는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조작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검색했고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12월에 착한 일을 한 애들 선물 주는 할아버지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반지를 이리저리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변태도 아니고 남의 손가락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대. 아니 애초에 여긴 언제 들어온 거야. 오라버니에게 말해서 무단침입 못 하게 막든지 해야지…….”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의 에오니샤라면 산타의 존재에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눈을 반짝였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났고, 계속되는 철야 연구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진 그녀는…….
“귀찮게 요즘 시대에 무슨 산타는 산타야…… 그런 거 이론상으로 절대 존재할 수도 없는데 애들은 잘도 믿네.”
동심이 완전히 박살 나버린 지 오래였다.
“연구 결과 피드백하는 것도 바빠죽겠는데…….”
헝클어진 머리를 이리저리 정리하며 전투적으로 밥을 씹어먹는 그녀였다.
텅텅텅!!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숙소 문을 두드렸고 이내 에오니샤는 자신의 잠옷 몰골 그대로 휘적휘적 일어나 걸어 나갔다.
“누구세요?”
“나다.”
데이비의 목소리.
이에 에오니샤가 눈을 부릅뜨더니 순식간에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허둥지둥거리다가 동물 잠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나잇대에 맞는 평범한 복장으로 순식간에 갈아입은 뒤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었다.
“오…… 오라버니. 무슨 일로?”
“동생 보러오는 게 뭐 잘못됐나? 바리스와 윈리, 타냐도 보고 왔으니 이제 너도 보러 온 거지.”
“저…… 연구가 아직 안 끝났는데…… 말미를 조금만 더 주시면…….”
“누가 연구 때문에 그런다던?”
데이비가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잘못했다. 이제 좀 쉬자.”
에오니샤는 저 가차 없는 오라버니의 입에서 들린 목소리를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의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