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9화
에오니샤 올 라운. 그녀는 현재 마치 얼음이 된 것처럼 바짝 얼어붙었다.
그녀의 동공은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 차 파르르 떨린다.
에오니샤는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 이상의 천재인 만큼 나는 녀석의 성장에 가혹한 채찍을 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데 저렇게 동심이 박살 난 것을 보니 그녀는 나와 많이 다르다는 걸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 오라버니?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어?”
“용서해주세요! 좀 더 열심히 할게요!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다면!”
“아니 됐다니까? 연구는 적당히 마무리해.”
“그럴 수가!”
그녀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대로 무너졌다.
보아하니 더 이상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내가 판단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게 아닌데?
의도했던 바와 너무 다르게 흘러가니 오히려 이쪽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게 아니다. 에오니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 물음에 그녀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안 쫓아내시는 거죠?”
“그렇다니까. 푹 쉬어.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설마. 연구자의 이름을 오라버니의 이름으로…….”
“네가 보기에 내가 그런 추잡한 짓을 할 거 같냐?”
“…….”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에오니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은 거라…… 그래. 참치가 먹고 싶어요.”
“참치?”
“네. 갓 잡은 참치. 전에 티아라 양과 함께 본 적이 있어요. 재주 좋은 주방장이 이만큼 거대한 참치를 그 자리에서 손질해서…….”
“오케이. 여기서 기다려라. 금방 다녀오마.”
그녀를 보고 있자면 온몸에 죄책감이 진득하게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동생의 동심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오빠로서 그저 씁쓸함만이 감돈다.
* * *
비 연이 준 생기의 구슬은 아직 이렇다 할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변형시켜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간이 촉박한 문제는 아니었던 만큼 나는 우선 에오니샤의 상태를 조금 호전시키는 쪽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다 할 원한이 없다.
처음 그녀와의 인연은 살아남기 위해 나를 찾아와 거래를 제시했던 그녀였다.
비록 그녀의 모친은 내 어머니를 죽게 만든 존재. 그리고, 나 또한 죽이려 했던 리네스 바리에타의 딸이지만 칼루스와 베네디트 이 망할 놈들과 다르게 그녀는 어릴 때부터 나를 멀리서 바라만 볼 뿐 특정 이상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질투심으로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간 제 엄마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자신의 어미를 죽인 나를 두려워했지만 나는 연좌제를 그녀에게 씌우지 않았다.
처음엔 살기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는 그녀가 퍽 웃겨서 그녀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는 없는 일이리라.
살기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옛날 내가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망망대해 위로 날아오른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참치라…… 손질할 자신은 있는데 이놈을 어디서 잡아야 하지?”
내가 가진 지구의 정보는 대부분 전생의 무균실에서 매체를 통해 본 것들이 전부였다.
“분명 원양어선에서 대량으로 잡았었지.”
알고 있는 것이라곤 큰놈은 500kg이 넘는다는 점과 무리 지어 다닌다는 점이다.
찾기만 하면 낚는 거야 그리 어려운 게 아니건만.
고민하고 있던 나는 문득 저 해양 저 멀리서 둥둥 떠내려오는 거대한 섬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어? 오랜만이에요!”
배를 까뒤집고 있는 거대한 수염 달린 고래와 그런 고래의 배 위에 추욱 엎드리듯 추욱 늘어져 있는 인어 하나.
인어 소야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너희들은 매번 이렇게 떠내려 다니냐?”
“너무 열심히 돌아다녀서 지쳐서 쉬고 있었죠. 아참. 제가 또 재밌는걸 알아왔…….”
“됐다. 니가 입만 열면 아주 혹한기가 펼쳐지더라.
다시는 개그 한다고 내 앞에서 말하지 말라.
[응? 계약자.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잠깐 들른 거니까 일 봐.”
내 말에 베헤모스는 다시금 추욱 늘어져 버렸다.
분명 베헤모스는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괴물이었을 텐데.
요즘 베헤모스를 보면 극한의 권태기에 빠진 듯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덩치 유지하려면 먹을 것도 많이 필요할 텐데.”
내 물음에 베헤모스가 피식 비웃음을 던졌다.
[환수의 필요 영양분은 마나로 대부분 충당한다. 네놈이 퍼뜨린 마나가 너무 방대해서 그리 신경 쓸 것도 없군. 게다가 간식도 이미 먹었으니.]
“간식?”
[마침 참치 떼가 한 무더기 지나가기에 모조리 먹어치워 버렸다.]
놈의 말에 내가 인어 소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다 생태계 저래도 괜찮은 거 맞냐?”
차라리 메가로드리아처럼 방사능을 간식마냥 먹어치워 버리면 덜 할 텐데 이놈은 아주 생태계를 분해시켜버리고 있다.
“샨드라미네아는 용암을 간식으로 주워 먹고, 메가로드리아는 방사능. 넌 대체 뭐냐.”
[먹는 거로 캐묻지 마라. 먹을 땐 고양이도 안 건드린다. 하여튼 무식하기는!]
“개야, 어패류 자식아. 네가 간식으로 먹은 건 고등엇과가 아니라 초등어냐?”
내 말에 녀석이 움찔거렸다.
[소야. 분명 고양이라고 했을 텐데?!]
“수호자님 저는 개라고 분명 말씀드렸어요. 그새 까먹으시고는…….”
빡대가리는 빡대가리구나.
“그런데 참치? 참치가 어디 있는지 알아?”
“음…… 그건 왜 찾으세요?”
“회 치려고.”
내 말에 몸을 일으킨 소야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근방은 수호자님이 모두 먹어치워 버려서…….”
나는 그대로 베헤모스의 배를 콱 밟아버렸다.
[커헉!!]
“적당히 처먹어라 돼지야. 어휴…… 그래서 이 근방엔 없다고?”
“음…… 아. 얼마 전에 북반구 쪽에서 온 녀석들이 있어요. 성격이 워낙에 나쁜 무리라. 전에 말 걸려고 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을뻔했다니까요.”
과연 그냥 말만 걸었을까.
나는 그녀에게 그 참치 무리가 어디 쪽으로 향했는지만 들은 채 다시 몸을 띄워 올렸다.
“아참.”
하지만 곧 소야의 부름에 멈칫했다.
“몸에 그거 뭐에요? 신기한 걸 가지고 계시네.”
그녀는 내 몸 어딘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손뼉을 치더니 자신의 비늘 하나를 콱 틀어쥐고 긴장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제 비늘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자…… 하나둘하고…… 흐읍!!”
두둑!!
“꺅!!”
비명을 지르며 베헤모스의 배 위를 뒹굴뒹굴 구르고 뭍으로 튕겨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던 그녀가 낑낑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오색 빛이 머금어진 비늘을 건네주었다.
“받으세요.”
“이건 왜?”
인어의 비늘. 인어는 불사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선물이에요. 언젠가 쓰실 일이 있을 거예요.”
나는 그녀가 건네준 비늘을 받아든 위 이리저리 살피다 아공간 속에 보관했다.
“뭐. 일단 잘 쓸게.”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수호자님 이번엔 대왕오징어 먹으러 가요!”
[꽉 잡아라. 멍청한 것!]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몸을 뒤집고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저 괴이한 조합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이후 나는 그녀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다시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대량의 움직임이 감지 되기 시작했다.
“찾았다.”
맹렬하게 이동하는 거대한 움직임을 향해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힘을 끌어올린다.
“싱싱하게 가져가야겠네.”
쩌저저저저적!
내 손끝에 닿은 바닷물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 * *
“우와. 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오라버니?! 그게 대체 뭔…….”
연구의 마무리단계에 들어서 여유가 생긴 것인지 밖으로 나와 커피를 홀짝이던 에오니샤와 티아라는 바짝 얼어붙은 거대한 참치를 등에 지고 나타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고 싶다면서. 참치.”
“우와…….”
“세상에…… 먹고 싶다고 직접 잡아 오신 거예요?”
“그래. 동생한테 먹고 싶은 거 하나 못 먹게 할 순 없지.”
내 말에 티아라가 에오니샤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미쳤나 봐…… 왜 저런대?”
“나도 몰라요…….”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듯 나를 보는 두사람을 향해 내가 쏘아붙였다.
“다 들린다.”
“아니,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람이 죽는다는데. 갑자기 왜 이래요?”
“왜긴. 오빠가 동생 먹고 싶은 거 하나 못 구해주나?”
“아니. 평소에 안 그러시잖아요.”
괜히 뜨끔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에오니샤를 보니까 좀…….”
“좀?”
“내가 과했나 싶어서.”
머쓱하게 말하자 티아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작 열두 살 된 애를 연구실로 밀어 넣어서 빡세게 가르치다 못해서, 예? 막 자라나는 아이에게 철야를 밥 먹듯이 하게 만드는 게 잘못된 걸 이제 알았어요?”
“아니 뭐…….”
“이야…… 우리 왕녀님 키 안 클 텐데. 이제 어쩐대?”
“아니 그래서 반지 줬잖아! 반지!”
“반지?”
욱한 심정에 소리친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산타가 오라버니셨어요? 어쩐지…….”
“…….”
티아라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이 상황 어쩔 거냐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오라버니가 주신 거면 낄게요. 뭔지 모를 불법 침입자가 주고 간 반지를 어떻게 껴요. 당연히 그냥 놔뒀지.”
“아니 그건 숨겨야지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요!”
티아라가 질렸다는 듯 소리쳤다.
딱히 내가 산타 노릇을 했다는 걸 티아라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눈치 빠른 그녀는 에오니샤가 아침에 겪은 일을 듣고 바로 상황을 이해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마당에 내가 말실수를 해서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동심을 개 박살을 내버렸으니…….
“아 시끄럽고! 둘 다 따라와라!”
나는 쭈뼛쭈뼛 따라오는 두사람을 데리고 부산의 별장으로 공간을 점프시켰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대형 도마 위에 참치를 올려놓았다.
웬만해선 굴리는 나였지만 지금 에오니샤는 너무 상태가 심각했다.
한창 꿈을 키우고 자라야 할 아이가 저렇게 찌들어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에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면 당장은 몰라도 후에는 엄청난 반동으로 돌아올 것이다. 투자한 세월이 얼만데 그녀가 그렇게 망가지게 둘 수 없었다.
극도의 일 중독인 에오니샤를 풀어주기 위해선 강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터엉!!
나는 거대한 참치의 머리통을 잘라낸 뒤 말했다.
“에오니샤. 지금부터 넌 연구 금지다.”
“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경악하는 그녀를 향해 내가 쏘아붙였다.
“내가 살다 살다 너 같은 일 중독은 처음 본다.”
“오라버니만 하진 않거든요?! 시, 싫어요! 얼마 안 있으면 연금학파 학회도 있다고 해서 꼭 가보려고 했는데!”
“너랑 나랑 같냐? 싫으면 계약서 찢자. 지금부터 넌 자유야. 연구를 하건 놀건 네 맘대로 하면 된다.”
“아 오라버니!!!”
비명을 지르는 에오니샤를 무시한 채 나는 도마 위의 참치를 빠르게 손질했다.
“됐고. 일단 만들어주는 대로 먹기나 해.”
입이 댓발로 튀어나오긴 했지만 결국 에오니샤는 나를 거역하지 않고 내가 주는 참치를 야금야금 씹어 삼켰다.
하지만 곧 이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정말 먹고 싶었는데. 맛있네요.”
“…….”
“고마워요. 오라버니…….”
그녀의 미소에 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이거 먹고 자료 조금만 더 검토할게요.”
저거 심각한 일 중독이 맞다.
이 몰골을 페르세르크에게 들켰다간…….
온몸에 오한이 돋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