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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23화 (1,023/1,559)

제 1023화

원귀에게서 강탈한 원귀의 서리는 굉장한 음기를 품고 있었다.

척 봐도 몸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기운이 풀풀 풍긴다.

원귀의 퇴치 이후 심령동아리부원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떠나갔다.

[난 이제부터 귀신 안 찾으련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더니…….]

[하…….]

공포에 질려서 그런 게 아닌 다른 무언가였다.

물론 그들이 애써서 사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데 내가 굳이 조언을 할 것도 없었다.

“으…….”

원귀의 서리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는 에반젤린이었다.

그녀는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의 감정에너지를 먹고 자랐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구 이상으로 감정에너지라는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아빠! 이거 뭐에요?!”

내 뒤에 숨은 채 온몸을 파르르 떨며 그녀가 물어왔다.

“좋은 약에 쓸 거야.”

“야…… 약이요?”

“그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잖아.”

“하지만 저건…….”

알고 있다.

절규, 절망, 슬픔. 괴로움 같은 마이너스 같은 감정의 집합체가 모여 음기가 되었으니까.

오랜 시간 쌓여온 그 힘은 아무리 약에 쓸려 해도 자칫하면 평범한 인간마저 미쳐버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당연히 이걸 맨땅에 쓰진 않을 거야.”

내가 필요한 건 이 감정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너지가 가지는 힘의 영향뿐이었다.

인어의 비늘을 먹은 생기의 구슬과 원귀의 서리.

기본적인 재료는 이제 다 모았다.

그렇다면 이제 원귀의 서리에서 빼낸 일부의 힘을 생기의 구슬과 연동하여 생기의 구슬 자체를 각성시켜야 한다.

나는 우치가 조언해준 대로 방진을 바닥에 그려낸 뒤 그 중앙에 원귀의 서리를 던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만 조금 정도는 원기를 중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과유불급.

서리가 품은 원념이 너무 과하게 짙어져 있다.

우치가 예상한 원념 수준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말이다.

“그럼 못쓰냐. 그건 아니다 이 말이지. 데이비. 신성력은 쓰지 말고 아주 조금만 원기의 한을 직접 중화시켜줘라.”

귀찮게 한다. 다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이만한 원귀의 서리를 다시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나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그럼, 어디 한번 보자.”

나는 방진과 공명하는 원귀의 서리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동시에 마치 원귀의 서리가 자신의 원한을 보라고 호소하듯 내 정신을 당기기 시작했다.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자 내 정신은 원귀의 서리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 * *

캉!! 캉캉!!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들려온 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처참한 비명.

두두두두두두!!

“휘이이이이호~”

말발굽 소리와 누군가의 환호성 소리였다.

알싸한 통증이 내 가슴팍에서 느껴져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피가 잔뜩 묻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친 손. 햇볕에 탄 것처럼 구릿빛을 띠지만 꽤 검을 잡아 본 것처럼 단단한 팔과 몸이다.

척 봐도 본래 내 몸은 아니었다.

“안돼!!! 덕이야!”

“아빠!! 아빠!!”

말에 타고 있는 사내가 던진 올가미에 몸이 묶여 질질 끌려가는 소녀가 보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풍경은 누가 보면 지옥도라 표현할 정도로 참혹했다.

말을 타고 내달리며 사람들을 베고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건 산적과 비슷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봐도 그런 아마추어 같은 놈들과 달랐다.

타오르는 민가.

낭자하는 선혈.

사람이 타면서 생기는 코를 찌르는 악취까지.

멍하니 몸을 일으킨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내 몸은 원귀, 즉 우치가 봉인한 특급 원귀가 처음 원한을 깊게 품었던 그곳에서, 그 원귀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신나게 말을 타고 달리며 사람들을 베어 죽이는 놈들과 대놓고 아녀자들을 잡아 희롱하고 있는 놈들을 보며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현실이 아니기에 나는 이곳에 묶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화된 내 영혼은 본래 육신만큼은 아니지만 못해도 과거 회랑에서 수련을 끝마쳤을 때 이상의 힘 정도는 우습게 보유하고 있다.

-움직이지 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우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나는 끌어올리던 힘을 포기한 채 힘을 거두었다.

그래. 원귀의 원한이 정확히 뭔지. 직접 봐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해소시킬 수 있을 테니.

“서방님!! 살려주세요!!”

“안돼!!! 그러지 마시오!! 제발!!”

“꺄아아악 싫어!!”

그나마 깔끔한 옷을 입은 사내가 소복만 남긴 채 털이 덥수룩한 사내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여인을 향해 손을 뻗고 절규한다.

“거기서 지켜보기나 해! 이야 야들야들한 게 오늘 밤은 몸보신 좀 하겠구만!”

-보아라…….

그 말과 함께 주변이 일변한다.

마치 부웅 뜨는 것처럼 많은 것이 변한다. 육신의 제어권이 사라지며 내 시야가 점점 높아지며 주변이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끔찍하게 죽어 나간다.

남편의 앞에서 희롱당하다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여인, 아비를 부르짖으며 약탈자에게 끌려가는 소녀, 올가미에 묶인 채 마을을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사내와 무기에 베여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이들까지.

그 모든 장면이 보였다.

내가 나서지 않았을 경우 벌어질 일들이었다.

그가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앞집의 강 씨. 뒷집의 연신내. 대장장이 돌쇠.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까 전까지 내가 몸을 차지하고 있던 이가 있었다.

그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어디에 누구, 어디에 누구…….

하나하나 가리키며 누구인지 말할 때마다 그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나가거나 참혹한 일을 당했다.

그 몰골을 보고 있던 내가 물었다.

“이게 네 원한의 근원이냐?”

-죄인으로서 추방된 나를 받아준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를 받아주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아녀자는 희롱당하고 끌려갔고, 노인들은 말발굽에 짓밟혀 죽었다.

“널 도와줬다는 이유로? 이상한데? 약탈자는 척 봐도 북방족인데?”

-그렇다. 나를 증오하는 위쪽에서 나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 저들을 불러들이고, 병사들을 파견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군데?”

-부여의 무신. 이름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꽤 오래전 양반이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모두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게 원한이냐고.”

-내 원한의 목표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장면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꽤 화려한 궁에 포박되어 묶인 그 사내와 그들을 에워싼 수많은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라! 감히 폐하의 명을 받아 무신이 된 자. 천인공노할 반역을 꾀한 죄를 물어 당장 이곳에서 죽여야 하나! 폐하의 자비로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죄인을 북방으로 추방하라!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솔들에게 모두 죄인의 신분을 찍어라!

귀족으로 보이는 이가 꽤 화려한 복장을 한 왕의 곁에 선 채 소리친다.

제법 저항이 있었는지 다수의 인간이 죽어있고, 죄인 취급을 당하던 원귀 본인도 몸에 화살을 두 발이나 맞고 있었다.

-평생을 충성했다. 하지만 간신의 모략에 넘어가 반란죄를 뒤집어썼고 그렇게 대역죄인이 되었다.

“…….”

권력 다툼에서 밀린 우직한 충신의 결말은 그리 희소성 있는 상황이 아니다.

-폐하! 신은 결단코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무엄한 놈! 감히 하늘이 알고 땅이 알거늘! 네놈이 국고를 횡령하고, 그 돈으로 병사들의 병장기들을 사들여 반란을 꾀한 것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귀족으로 보이는 사내의 외침에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끝내 저항하지 않았다.

-폐하. 신의 충절을 절대 의심하지 마옵소서. 신은 죽어도 상관없으나.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더 이상 저 간신들의 손에 놀아나지 않으셔야 합니다!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끌어내라! 폐하. 귀찮은 것들은 모두 제가 맡을 터이니 이만 드시지요.

음흉한 웃음을 짓는 그를 바라본 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보아라…….

이윽고 그가 손을 휘젓자 또 한 번 장면이 일변한다.

조용한 누군가의 침실 바닥에 그가 몸을 포박당한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좀 전 원귀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던 간신이 나타난다.

-그러게 내가 방해하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결국 폐하는 내 말을 듣는 다 이 말이네.

-이 빌어먹을 간신 놈이!!

-자네는 내 심기를 건드려도 너무 건드렸어. 그러니 곱게 곱게 몸을 숙였어야지.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분노하는 그를 향해 사이한 웃음을 지어 보인 그가 바깥에 소리쳤다.

“데려오라.”

그의 말과 함께 곧 문이 열리며 우락부락한 사내 몇몇이 두세 명의 여인을 끌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연희야!!! 부인!!”

몸을 포박당한 채 그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사내에게 끌려들어 온 건 다름 아닌 원귀, 즉 부여의 무신의 부인과 그 여동생이었다.

“이건 다 자네가 잘못한 거야. 좋게 말할 때 내게 보냈어야지. 그러니 내가 이렇게 자네를 직접 끌어내리고 취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여인의 뺨을 쓸어내리며 간사한 웃음을 지은 그가 이내 그녀들을 잡아 쓰러뜨렸다.

“시작하자꾸나.”

그리고 쓰러진 그녀들의 옷가지를 잡아 찢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해라!!! 대체 얼마나 나를 농락할 셈인가!!!

-저놈을 눌러라.

-그아아아아아아악!!!

팔다리가 묶인 채 버둥거리는 그를 덩치 큰 사내가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봉인한다.

-꺄아아아악!! 오라버니!!!

-서방님! 살려주세요!!!

처참한 비명.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

그는 대역죄인의 누명을 뒤집어썼고.

그의 부인과 동생들은 죄인의 낙인을 찍었으니까.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눈앞에서 부인과 여동생이 빌어먹을 원수에게 농락당하는 꼴을 모두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보아라.

또 한 번 장면이 변한다.

이번엔 처음 그가 죽었던 장소였다.

-왕궁에 충성을 다했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나 왕은 간신의 혓바닥에 놀아나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

-두 사람이 자결하고, 나는 광인이 되어 떠돌았다. 그놈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끝내 죽이지 않고 끔찍한 삶을 이어나가게 만들었다.

광인이 되어 정처 없이 떠돌던 그를 받아준 것은 북방의 한 작은 화전민 마을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과거 원귀가 무신으로 있을 당시 그가 지켜준 적이 있던 이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원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를 받아주었고, 그가 정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를 보필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3년 정도.

이 모든 게 그 간신의 계략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번 망가뜨리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 간신은 그가 다시 발붙일 곳을 찾게 유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화전민 마을의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던 그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

그 꼴을 지켜보고 있던 간신은 다시 한번 그에게 절망을 씌웠다.

-북방 화전민 마을은 이전부터 약탈을 자주 당했다. 그래서 본래 내가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막았건만. 실은 그들 전부가 그 간신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이 약탈한 물품을 간신이 받고, 그들의 약탈을 눈감아주는 식으로.

“그러니까. 그놈이 약탈자 놈들에게 이 상황을 사주했고. 본래라면 네가 만든 규칙대로 병사가 이곳을 지켜주어야 했지만. 오지 않았다?”

-보아라.

그는 부정하지 않고 다음 장면을 보여주었다.

결국, 화전민 마을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그는 그 원한이 짙어 죽지 못하고 원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원귀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간신을 향한 증오로 성불하지 못한 그는 왕궁으로 찾아갔고. 그 간신의 침실까지 숨어들었다.

그에게 저항하는 이를 대역죄로 씌워 팔아넘긴 간신은 자신에게 저항한 이들의 식솔 중 얼굴이 반반한 이들을 끼고 잠들어있었다.

원귀가 되어 스스로를 불태워가며 그런 그의 목을 졸라 죽이려던 찰나.

간신이 기다렸다는 듯 말하며 눈을 떴다.

-그래. 원귀가 되어서도 나타날 줄 알았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영적인 힘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특질능력자.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주술과 흡사하나 정확히는 특수한 힘을 품은 존재. 지구에 특질능력자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지켜보았다.

사실 있는지 없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결국, 그는 그 특질능력자의 힘에 의해 제압당했고.

-오랜 시간 그의 손에 놀아나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 너무 원한이 쌓였다.

그가 내게 말한다.

-이미 오래전 일이다. 간신은 결국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리고 죽었고, 폐하는 그가 조금씩 먹인 독에 중독되었다. 나라가 흔들리고, 세상이 도탄에 빠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나는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가 내게 묻는다.

-내 원한이 느껴지는가.

힘이 없어서 죽어서까지 처참하게 유린당한 원귀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곳의 장면은 고작해야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여기서 내가 다 엎는다 쳐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원귀의 집념은 내가 자신을 중화시키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물었다. 너는 이것을 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내가 아파트에서 잡아낸 원귀는 껍데기일 뿐.

진짜 본체는 이놈이구나 하고.

이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떤 방식이든 놈의 원한을 전부 풀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서리가 사라지며 못 쓰게 될 테니.

하지만 그가 보여준 것들은 사람의 기분을 참 더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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