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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24화 (1,024/1,559)

제 1024화

“보니까 어떻든? 생각보다 심각하지?”

“왜 이런걸 추천해준 겁니까. 이놈 못써요.”

단호하게 답했다.

밸런스가 망가진 원귀의 서리. 내가 원귀의 서리를 우치만큼 많이 다뤄본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이건 많이 위험하다. 생기의 구슬을 각성시키는 촉매가 아니라 잡아먹어 버릴 만큼.

“아니, 그 정도 되는 촉매가 아니면 구슬을 각성시킬 수 없어. 비연이 조금만 더 자신의 힘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온전하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게 아니라 동면을 통해 장기간 생존해온 거니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원귀의 서리는 이렇게 볼 수 있지.”

그는 원을 하나 그린 다음 그 중앙에 선을 하나 그어 반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짙고 어두운 원한. 그리고 반대쪽은 그 원한을 기준으로 삼고 커져가는 힘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네게 가르친바 있을 거다.”

“예. 그렇죠.”

“다만, 지금 네가 본 원귀의 힘 밸런스는 이래.”

그가 반원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그러자 원귀의 원한이 더욱더 많은 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 상상 이상으로 원한만 깊어져 있어. 힘의 상승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원한과 집념만 더 깊어진 꼴이지. 네가 해야 하는 건 이 밸런스를 절반으로 만드는 거야.”

“거 도사라는 양반이 영어 씁니까?”

“두억시니도 미국물 먹은 마당에 나라고 못 먹을 건 뭐야. 세상은 글로벌하게 사는 거야 임마.”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짧게 헛웃음을 흘린다.

당장 저 일이 실시간이면 방법이야 차고 넘치지만 수천 년 전의 일을 내가 무슨 수로 해소하겠는가.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라고요.”

“어떻게 하긴. 곰곰이 생각해봐. 이건 내가 네게 주는 시험이야.”

“시험은 얼어 죽을. 자기가 못하니까 그냥 떠넘기는 거잖아.”

내가 대놓고 짜증을 드러내자 그가 피식 웃었다.

“들켰네?”

이 인간을 그냥…….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원귀의 서리가 가진 원한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은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평행세계를 유도한 뒤 그가 그곳에서 마음껏 복수를 할 수 있게 하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원귀 스스로도 이해는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어디에도 그것을 풀 곳이 없다는 것을.

“천천히 생각해봐. 어차피 생기의 구슬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결정이 났다면…….”

망설임 없이 움직여라.

“내가 이걸 누굴 보고 배웠는데.”

* * *

생각과 다르게 이주가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티오니스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지구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국이 원전 폐기물 정화와 재활용 기술을 세계시장에 발표하고 시범 적용에 들어가자 많은 국가에서 그것을 눈독 들여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의 경우 한차례 메가로드리아가 방사능을 모조리 먹어치워 버리면서 해결이 되었지만, 장기적인 해결은 아니었기에 그들 또한 거기에 편승하는 모습이었다.

하루아침에 주가가 폭등하는 기적을 경험한 한국 정부에서는 의도하지 않게 기쁜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삼국, 중국과 일본 측에선 무역 물품으로써 그것들을 확보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자와 다른 방법으로 기술을 강탈하거나 까내려야 한다는 움직임도 많았다.

“왜 싸우는 걸까요.”

“원래 국가란 가까운 이웃일수록 사이가 안 좋지.”

티오니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 짐을 싸고 있는 티아라가 뉴스를 보며 중얼거리자 나는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시켜주었다.

“짐은 다 쌌고?”

“네. 그동안 충분히 즐겼으니까요.”

“에오니샤는?”

“아…… 그게…….”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한다.

이에 불안한 생각이 든 내가 그대로 뛰어 올라왔다.

본래라면 일주일도 전에 데려오려 했지만 일이 끝난 김에 지구에서 좀 놀다 가겠다는 티아라와 에오니샤의 의견으로 인해 그녀들을 잠시 그곳에 체류시켰었다.

어떤 의미로는 불법 체류나 다름없지만, 한국 정부에서 그 정도 편의도 안 봐줄 리는 없었다.

티아라도 에오니샤도 일주일 정도만 더 놀다가 가겠다고 했기에 기다렸건만 벌써 2주가 다 됐는데도 에오니샤는 소식이 없다.

“에오니샤. 들어간다.”

이윽고 내가 에오니샤의 방문을 쾅쾅 두들긴 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이게 뭐냐?”

“아…… 오라버니? 거기 발조심 하세요.”

어두 컴컴한 방안에서 패드 하나만 붙잡고 용을 쓰고 있는 방구석 폐인 하나가 보인다.

* * *

“에오니샤.”

“잠깐만요 오라버니! 이놈만 잡으면 업적을 전부…….”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악!!! 노 피격 업적이!!!”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탓에 일부러 좀 풀어주고자 게임을 시켰는데. 이게 또 역효과가 나버렸다.

“데이비.”

나를 보는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니 이게 나도 이렇게 극단적일지는 몰랐지…….”

“후우…….”

한숨을 내쉬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내 어깨에서 내려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싸 쥐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에오니샤를 한번 보고는 과자봉지들을 집어 들었다.

“본녀가 치울 테니 그대는 에오니샤를 어떻게 해.”

등을 철썩 후려치고는 나가버리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안돼…… 안돼…… 이제 거의 다 했는데…… 오라버니!!”

“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역으로 소리 질러버리자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오라버니?”

“넌 어떻게 된 게 적당히가 없냐 어?”

극과 극!

워커홀릭. 혹은 극한의 방구석 백수…….

한숨이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에오니샤. 따라와.”

“으으…… 귀찮은데…….”

“따라 나와.”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너 얼마 전까지 밤잠 설쳐가며 연구하던 그 에오니샤가 맞냐?”

내 물음에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연구 따위 언젠간 하겠죠…….”

그녀의 발언에 나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종량제 봉투를 들고 들어온 페르세르크가 그대로 내 종아리를 걷어찼다.

“그대가 책임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인간아…… 인간아…… 애를 밖에 내놔서 놀게 해야지 게임을 시켜?!”

나는 이 일을 현아에게 털어놓았다가 그대로 한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으음…… 현수야. 이건 삼촌이 봐도 네가 잘못했다.”

서류를 정리하던 삼촌도 나를 보며 쓰게 중얼거렸다.

“게임은 무섭긴 하죠…….”

그 뒤를 이어 연희 누나까지 나를 몰아세우자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동심이 완전히 박살 날 정도로 일 중독이라…… 어쩔 수 없이 노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뿐입니다.”

내가 전생에 지구에서 놀아본 거라곤 컴퓨터 게임과 영화뿐이다.

그러니 뭘 아는 게 있어야지.

“자전거나 여행, 등산은?”

“그런걸 왜 합니까…… 힘들기만 하지. 그건 쉬는 게 아닌데.”

내 대답에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인간 많이 변한 줄 알았더니 근본적인 건 그대로네. 그 게을러 터진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회랑에 있다.

검신이라고.

원귀의 서리도 서리인데 정작 에오니샤가 이렇게 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오빠야 그렇게 게으른 사람 아니잖아.”

“저 나잇대 애들이 여기 지구에서 평범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고.”

“많지! 어휴, 화상아! 그래서. 에오니샤는?”

“억지로 끄집어내서 페르세르크와 쇼핑 보내놨다.”

인식 저해 때문에 사람이 몰려들거나 귀찮은 일은 없을 테지만 좀 전 스마트폰을 통해 들어온 근황에 따르면 에오니샤가 고작 30분 만에 굉장히 지겨워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난 몰라. 진짜 이제 손 못 댄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쓰디쓴 한숨을 내쉬는 삼촌을 보며 내가 연희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이거 어떻게 안 돼요?”

“흐음…… 현수야. 조금 극약처방이 하나 있긴 한데.”

“극약처방이요?”

“응. 누나 친구 동생도 그랬거든.”

그녀가 예쁘게 웃자 나도 덩달아 미소지어주었다.

“알려주세요.”

“그래? 그럼 하나만 확인하자. 에오니샤 그 아이. 왕족이잖아?”

“그렇죠.”

“그거면 됐어.”

그녀는 생각난 김에 움직이려는지 어디론가 향하더니 이내 커다란 상자를 내게 건네왔다.

“이게 뭡니까?”

“극약처방.”

상자 안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과자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현수 너는 누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혼 좀 나야 해 넌.”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다.

세상 물정을 그나마 잘 알던 바리스나 윈리와는 다르게 에오니샤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내게 물들어버린 결과였다.

* * *

“X신.”

신랄한 욕설에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니. 그렇게 말할 것까지 있습니까?”

“있지 등신아. 넌 임마 니 동생을 대체 무슨 꼴로 만든 거야.”

“아니 너무 무리하니까.”

“그런 애들은 적당히라는 걸 몰라 임마! 그러니까 네가 옆에서 잘 보고 절제를 시켰어야지!”

“후…….”

“오오…… 화내는 것도 이쁜 내 사랑 다프…… 커억!!”

느끼한 말투로 다가와 다프네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아폴론이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나는 곧 연희 누나가 알려준 방법을 고스란히 털어놓았고, 다프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극약처방…… 부작용도 걱정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겠다. 일주일 뒤에 결과를 보자고.”

다프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상황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워커홀릭에서 단시간에 게임 폐인이 되어버린 에오니샤를 되살릴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녀가 게임을 하지 못하게 막는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이라는 게 의외로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보니 극약처방이긴 하지만 손을 쓸 수밖에 없다.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연희 누나가 말한 일주일이 더 흘렀을 때.

나는 에오니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녀의 방에 들어서자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며 문을 연 내게 소리 질렀다.

“노크!!!”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이불을 돌돌 말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3…… 3킬로나…….”

“쪘다고?”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에오니샤가 저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극약처방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네가 딴 건 안 하고 게임만 주구장창하면서 콜라에 과자에…… 그 꼴이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이…… 이럴 순 없어요! 오라버니가 주신 거잖아요!”

“그렇지. 내가 줬지. 그런데 넌 네 관리를 스스로 못했지?”

내 말에 그녀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적당히 다독여줬을 테지만 이번엔 별수가 없었다.

“에오니샤.”

“……흑…… 흐흑…….”

“방법이 있다.”

잘못된 건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

그녀에겐 적당히라는 단어를 좀 강하게 새겨줄 필요가 있었다.

“오늘부터 오라버니와 같이 운동 좀 하자.”

대신. 운동의 강도는 이 오라버니의 기준대로 한다.

“그러다가 이번엔 애를 근육질로 만드는 거 아니야?”

“……아니야 적당히 할 거야.”

동생의 재활 프로젝트로 인해 원귀의 서리는 당장 우선순위에서 순식간에 뒤로 밀려버렸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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