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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27화 (1,027/1,559)

제 1027화

“보자…….”

조용히 눈두덩이를 잡아 빛을 살짝 밝힌다.

“음, 괜찮네.”

고개를 주억거리자 눈앞에 앉은 세 명의 소녀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막시모스 녀석의 동생, 내가 의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먼저 수혜를 본 인물이자 일국의 왕녀였던 라티아나 반 테랄리아.

그녀는 가장 먼저 좌절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 보여서 문제예요……. 너무 잘 보여서…… 논문도 너무 잘 보여…….”

눈이 보여서 기뻐야 할 텐데.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그리고, 현 왕국의 맹인 공주, 마리아.

그녀는 이제는 세상을 보는 게 완전히 익숙해졌는지 제법 즐거운 표정이다.

마지막으로, 용의 둥지에서 타락용의 공격으로 인해 두 눈을 적출당하고 심장까지 파열당한 불쌍하고 어린 드래곤이다.

“이 눈 정말 신기하다!”

작은 금발의 드래곤 소녀의 말에 나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나중에 내가 크면 나랑 결혼해!!”

호바나 뒷목 잡고 쓰러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래. 네가 다 크면 그때 생각해 보자.”

물론 굳이 아이의 동심을 파괴할 순 없다는 것을 에오니샤를 통해 확인한 바 있어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부작용이 있을 경우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노력에 대한 대가가 싸게 먹히긴 한 모양이었다.

세 사람을 보낸 뒤 적절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머릿속에 쑤셔 박아 넣은 나는 아카데미의 의학부에 보낼 정보를 간단하게 추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별자리 놈들은 요즘 뭘 하고 있는 거지.”

최근 들어 조용해진 탓에 나도 그놈들을 굳이 건드리진 않고 있다.

“에반젤린. 시작하자.”

연무장으로 나온 나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에반젤린이 칠흑색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한 손에 내려 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의 목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용신검 트와일라잇.

수르트에게서 신의 금속을 탈탈 털어서 직접 만들어 준 무기로 에반젤린에게 사실상 가장 잘 맞는 무기이기도 했다.

그녀의 검인 트와일라잇은 소재가 소재인 탓인지, 내가 이것저것 집어넣은 탓인지 무게만 해도 5킬로가 넘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너비가 10여 센티에 길이만 1미터 50센티.

사실상 에반젤린이 한 손으로 휘두르기엔 꽤 큰 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인간이 아닌 고대룡의 후손.

그 정도 무게는 그녀에게 나뭇가지만큼 가벼우리라.

“갈게요.”

이윽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검을 집어 들어 올린 그녀가 검 끝을 내게 겨누고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쿠웅!!

엄청난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그녀가 섬광처럼 쏘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대로 목검을 빙그르르 돌리듯 움직여 그녀의 검 끝을 가볍게 쳐낸 뒤 파고들었다.

“엇?!”

퍼엉!!

마치 물 흐르듯 파고든 내 검의 손잡이 끝이 그녀의 복부를 강하게 때린다.

미리 쳐 둔 장막 덕분에 직접적인 충격은 가해지지 않았지만 묵직한 감각만은 확실히 들어갔으리라.

“읏…….”

당황한 듯 비틀거리며 내게서 거리를 벌린 그녀는 내 가르침을 잊지는 않았는지 순식간에 균형을 되찾았고 강제로 흐름을 자신에게 끌어오기 위해 움직였다.

중검의 파괴적인 중량이 담긴 일격과 독고준의 검술인 마령검이 적절하게 뒤섞여 위협적으로 나를 몰아붙인다.

파앙!! 팡!!

예전엔 갓 소드마스터가 된 터라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어디 가서 다쳐서 오진 않겠네.

“제법인데? 이 정도면 나도 설렁설렁은 못 하겠다.”

“정말요?!”

신이 난 듯 에반젤린의 검격이 더욱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대단한 속도였다.

“그래. 하나하나가 위협적이다.”

“검을 봐주는 거야?”

그때 일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꺄악?!”

다만 그런 내 행동 때문에 오히려 에반젤린이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칭찬에 신이 난 그녀가 자신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힘을 끌어내 공격을 퍼부어 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내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본래라면 내가 피할 것을 상정하고 공격을 해 온 것일 터다.

하지만 내가 일리나의 부름에 멈춰 버리자 자연스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일리나에게 고개를 돌렸던 내가 손을 뻗는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아아아앙!!

엄청난 소음과 함께 묵직한 충격파가 터져 나가며 내 뒤쪽에 있던 거목 두어 개가 그대로 충격파에 의해 부서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밟고 있던 강화된 연무장 바닥 또한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물론.

그녀의 검을 맨손으로 잡은 나는 멀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

멍하니 나를 올려다본 에반젤린은 상황을 이해한 듯 나를 바라보았고 이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흑…… 아빠 거짓말쟁이…….”

방금 전까지 나도 이제 대충은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1~2분도 채 되지 않아 가볍게 그녀의 공격을 맨손으로 잡아 버렸으니 내가 그녀를 속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게 분한가?

“대단한데 에반젤린? 데이비가 저 정도로 정교하게 막은 건 오랜만에 봤어.”

그때 일리나가 손뼉을 치며 칭찬해 주자 에반젤린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가볍게 받아낸 것처럼 보이지만 내 손에 둘러진 마나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내가 방대한 마나를 일순간 터뜨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서린 무의 극한을 느낀 건지 놀란 표정을 연신 지 어보였다.

“아…….”

“잘했어.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만 하자.”

“네에…….”

검을 거둔 에반젤린이 트와일라잇을 집어넣으려 했다.

“잠깐. 내가 봐줄게.”

그때 일리나가 싱긋 웃으며 가슴팍에 달아 둔 브로치를 풀어냈다.

치이잉!!

동시에 그녀의 손에 커다란 백은의 거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데이비. 비켜 줄래?”

“그래.”

검에 관해선 일리나의 경지도 대단한 편이니까.

일리나와 바톤 터치 후 연무장에서 내려오자 에이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보여 주었다.

“간식을 좀 만들었어요.”

“오. 맛있겠는데? 다리안은?”

“홍단이가 등에 업고 놀러 나갔어요.”

최근 홍단이는 포대기를 이용해 다리안을 업고 놀러 다니는 데에 아주 재미가 들렸다.

자기도 콩알만 한 주제에 저보다 더 작은 아기를 등에 업고 돌아다니는 게 퍽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옆에 앉자 에이리아는 미리 준비해 둔 자리에 바구니를 놓고 그 안에 놓인 간식거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데이비 오라버니…….”

“엉?”

“아…… 아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벌리라는 시늉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순간적으로 피가 머리에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천천히 입을 열자 그녀는 간식을 내 입속에 쏙 넣어 주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꿈만 같아요.”

그녀의 꿈이었다고 했던가.

사랑하는 사람과 느긋한 여유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한다 속삭이고, 같이 앉아 손을 잡고 같은 풍경을 보며, 언젠가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하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삶.

그녀가 바란 것이다.

“만족해?”

“정말로요.”

그녀의 말에 나는 말 없이 그녀의 뺨을 쓸어주었다.

카아앙!!

“데이비! 끝나고 나도 해 줄 거지?!”

에반젤린의 검을 강하게 쳐낸 일리나가 대뜸 물어온다.

일리나는 애정 표현이 돌직구에 가깝다. 겉보기엔 고고한 인상이지만 그녀는 한번 작정한 것이라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정이었으니 말이다.

그 좋은 예시로 그녀는 내가 심판자들의 몽환 세계에 갈 때도 몸을 내던졌고, 붉은 공허에 있을 때도 겁도 없이 들어와서 나를 끄집어내지 않았던가.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 방식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

우치가 생기의 구슬을 가지고 떠난 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이대로 흘러가 준다면, 곧 페르세르크에게 선물을 해 줄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게 다 끝날…….

싸아아아아…….

갑작스런 한기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비 오라버니?”

“잠시만.”

가족과 보내는 단란한 시간을 감히 방해하네. 선 씨게 넘는구나 네가.

자리를 벗어난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눈치도 없나?”

-이대로는 못 삽니다, 억울한 존재시여!

나를 향해 다가와 허겁지겁 소리치는 그, 저승이를 보며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뭔 귀신 곡하는 소리야.”

-일단 귀신은 맞습니다만…….

“…….”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매달렸다.

이 양반이 왜 이래.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 * *

“…….”

저승이를 통해 들은 상황을 확인한 나는 한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

“그 양반. 튀었다고?”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삽니다!

“아니 댁은 이미 죽었고. 그래서, 어쨌다고?”

-영혼의 강을 관리하는 위대한 존재인 빌어먹을 우치 그 작자가 제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다 떠넘기고 잠적했다, 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인간. 아직 구미호 비연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쯤 생각이 미치자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기 시작했다.

비연에게 한번 미이라가 될 정도로 기를 빨려 버린 그가 너무 쉽게 포기한다 했다.

비연이 그의 목줄을 틀어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의 영역에서 우치는 로아이아스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계통으로 영혼의 강을 관리한다.

그것은 그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며,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내가 일을 부여해 놓은 것이기도 했다.

장기간 잠적하지 못하게. 일정 기간엔 반드시 영혼의 강으로 돌아와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게끔 유도했다.

신의 영역으로는 비연이 가지 못하고 그는 죽어도 중간계로 내려오려 하지 않을 테니 사실상 오작교 시스템을 이용해 비연과 그를 강제로 가두는 방식으로 만나게 해 주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내 시선을 원귀와 그의 시험 같은 질문, 그리고 불쌍한 저승이의 과거를 모조리 이용해서…….

나를 물 먹였다…… 이 말이지.

내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서린다.

“그래. 저승이 네가 있으면 그 양반 굳이 그곳에 얽매이지 않고 원 없이 잠적 탈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저승이가 영혼이 가루가 될 만큼 갈려 나가야겠지만 우치가 그런 걸 신경 쓸 양반인가.

이 인간이 나를 제대로 물 먹인 것이다.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아무리 벌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영혼 인도, 저승사자 근로 기준법에 한참 어긋나 있습니다! 벌을 받아도 인권…… 아니지 귀권은 챙겨 주셔야지요!

그의 외침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귀권 좋아하네. 벌 받는 놈이 뭘 따지는 게 그렇게 많아.”

-어지간하면 말도 안 합니다!

고작 인간의 영혼이 승화된 저승이와 권능으로 영혼의 강을 조율하는 우치는 다르다.

영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 밑이 며칠은 잠을 못 잔 사람처럼 퀭했다.

우치에겐 쉬운 일이나 저승이에겐 그렇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소리였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일주일 만에 나를 찾아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리라.

문제는 저승이가 싫다 싫다 해도 결국 그는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있다는 점.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형이 무슨 표정 짓고 있을지 훤하네.”

-크으…….

자신이 처음부터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분기탱천하자 나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그럼 생기의 구슬은.”

생기의 구슬. 우치가 완성시켜 주기로 하고 가져간 중요한 물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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