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0화
“아니…… 저게 무슨…….”
코오나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깐!! 협상! 협상을 요구한다!]
“아니 그래. 협상하자니까? 여기 이게 협상이라고.”
[크아아아악!! 코오나 이 미친놈을 당장 말려라!!]
데이비는 해태의 머리를 붙잡아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놈을 밀어 넣으려 하고 해태는 필사적으로 앞다리를 이용해 솥의 양 끝부분을 잡은 채 버틴다.
[으아아아아!!]
“질기게 버티네.”
그때 데이비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코오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여겼는지 급히 달려들었다.
“잠깐만요!!”
아무리 싸운 사이라지만 코오나에게 있어 해태의 존재는 굉장히 가까운 사이. 그런 만큼 눈앞에서 요리 당하기 직전인 해태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륀느는 얄밉게 테이블까지 준비해 포크와 나이프의 끝으로 테이블을 통통 두드릴 뿐이었다.
“데이비 님. 륀느가 새로운 미각 데이터를 매우 기대. 신수의 요리를 높게 평가.”
“조금만 기다려라.”
“잠깐만요! 그만 하세요! 해태 님도 이제 알았을 거예요!”
그녀가 필사적으로 말리자 결국 데이비가 팔에 힘을 풀었다.
[흐억…… 컥…… 빌어먹을 저거 그냥 기름이 아니다!!]
해태 정도 되는 신수가 고작 튀겨지는 기름에 빠졌다고 타격이나 받을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버텨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저거 그냥 기름이 아니라 무언가가 더 들어갔다고.
저기 빠졌다간 뼈도 못 추린다는 본능이 그를 버티게 만든 것이다.
“눈치 빠르네.”
[빌어먹을 원하는 게 뭐냐!!]
한 번 더 거절했다간 코오나가 말려도 저 망할 기름 속에 집어넣을 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해태는 급히 소리 질렀다.
형체를 구현한 지금이기에 구현을 해제하면 놈이 자신을 잡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데이비의 주변에서 퍼져나오는 무형의 힘은 그의 힘을 강제로 제약하고 있었다.
대체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것인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노려보는 해태를 향해 데이비가 말했다.
그래. 대체 뭘 부탁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들어나 봐야겠다.
영혼의 후각까지 쓸 정도면 해태가 한번 맡아본 영혼의 향이라는 소리인데. 그런 게 있기나 한가?
그런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런 해태의 생각은 곧 데이비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모조리 백지가 되어버렸다.
“우치를 찾아야 하는데. 그 인간이 어디 숨어버렸거든.”
[뭐?]
앉은 채로 노려보던 놈이 눈을 부릅떴다.
“우치를 찾을 거라고. 이 인간 작정하고 숨어서 영혼의 후각이 아니면 특정하는데 한참 걸릴 거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우치는 이미 예전에 죽었다!]
“그래. 죽은 인간이지만 영혼은 아직 있어.”
데이비의 말에 해태는 혼란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에 있건 영혼의 후각으로 대상을 찾으라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해태의 코에는 어떤 우치의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다.
[장난은 딴 데 가서 알아봐라. 세상 어디에도 그의 영혼 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 지금은. 하지만 내가 도와주면 넌 할 수 있어.”
그 말에 해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놈이 하는 말이 정말인가. 우치는 정말 사라지지 않고 아직 영혼으로 남아있는 것인가.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데이비가 그의 선택을 종용한다.
“할 거야 말 거야. 안 한다고 버티겠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는데.”
[……빌어먹을 그 방법이 뭔지부터 말해라! 다만 거짓말이면 나는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우치와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 않았나?”
[닥쳐라!!]
그가 분개하며 포효했다.
[우치 놈과 내 사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놈뿐이다!]
그래. 싫다 싫다 해도 결국은 정이 든 사이라는 거지.
유일하게 남은 우치의 흔적이 남은 신수.
다른 신수들이 우치가 사라지고 스스로 사라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해태 이놈은 조금 별난 케이스나 다름없다.
[코오나.]
이윽고 그르렁거리던 그가 코오나를 바라보았다.
“네?”
[자리를 좀 비켜라.]
자세한 내막은 전혀 떠들지 않은 그의 말에 코오나는 말없이 해태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난 아직 네 녀석에게 힘을 빌려줄 생각이 없다! 네 녀석이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네요. 그럼.”
그렇게 돌아선 코오나가 자리를 비키자 해태는 데이비를 다시 바라보았다.
[자세히 말해봐라. 그가 정말로 살아있는 것인가?]
“살아있다고 말하긴 애매하지. 육신은 예전에 사멸했고, 지금 남은 건 신격이니까. 근데 이 인간이 지금 내 뒤통수를 치고 잠적을 해버려서 말이다.”
그 영혼의 후각을 맡을 수 있게 해줄 테니 찾아달라.
해태는 모든 요구사항을 이해했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영혼의 후각 이외엔 찾을 방법이 없다라…….]
“쓸데없는 생각하는 거 아니지?”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좋다. 도와주지.]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사람 하나 소리 없이 처리해다오.]
코오나를 보내버린 해태의 행동을 떠올린 데이비가 조용히 물었다.
“코오나와 관련 있는 건가 보지?”
[…….]
“그리고, 싸움을 대판 벌인 이유고?”
눈치가 왜 이렇게 빠른 건지. 해태는 한숨을 내쉬며 긍정했다.
그가 이 일을 중요히 생각한다면 그의 힘으로 자신도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
해태는 그리 생각했다.
“싫은데?”
하지만 곧 이어지는 데이비의 대답에 얼이 빠져버렸다.
* * *
우치가 중간계인지 중간 틈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단단히 숨어버린 상황에서 해태의 영혼의 후각으로 찾으려면 그에 맞는 권능을 발현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무리하게 힘을 쓸수록 지구의 신 넬타리드에게 부담을 주는 상황.
그렇다면.
[평온의 신 넬타리드께 고하오니. 당신의 기적을 조금만 넘겨주시지요.]
넬타리드는 중간계 그 자체에 직접 관여하진 않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라면 충분히 반응해줄 수 있다.
넬타리드는 프리아 여신과 다르게 위계가 조금 낮은 대신 영향력도 있을 테니.
우우웅…….
동시에 손목에 새겨졌던 넬타리드의 성흔이 옅게 빛나며 그의 힘이 내게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용해 각 차원의 틈을 미약하게 만들었다.
[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고 있던 해태가 투덜거리다 멈칫했다.
[이 냄새…….]
“찾았나?”
[틀림없다…… 우, 우치가 분명해!]
놈이 경악한 듯 나를 본다.
[생전 처음 보는 냄새들이 가득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 우치, 이 인간 어디 있어 지금.”
[정말 우치의 영혼 향…… 그가 아직 존재했단 말인가…….]
얼마나 멀리 있건 상관없다.
위치만 특정한다면.
이에 해태는 익숙하지 않은 각 차원에서 흘러들어오는 냄새를 맡아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한참을 침묵하다 내게 말했다.
[그의 위치를 찾았다…….]
놈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약속을 받아내기 전까진 말해줄 수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인간을 치워달라는 이야기였다.
“코오나와 충돌해서 생긴 문제 아닌가? 그걸 나보고 처리해달라고?”
[저 멍청한 것.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수백 년 전에나 있을법한 일에 휘둘리고 있다!]
놈이 답지 않게 분노했다.
[정략혼이라더군. 코오나의 집은 유서 깊은 가문이다. 정확히는 그 유서 깊은 가문에 코오나가 입양된 것이지만.]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놈과 정혼자가 되었으니 그놈이라도 치워달라고?”
[눈치가 빨라서 편하군.]
해태는 말을 멸하는 신수.
아무리 어린 여아를 아끼는 놈이라도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죽이는 악수는 아니었다.
즉. 이놈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해태를 따라 코오나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파마의 신수 해태가 저렇게 혐오하는 인간이라면 뻔하지.
그 인간이.
짜아아악!!
“빌어먹을 넌 내가 우습게 보이나? 어딜 갈 땐 반드시 내게 말하라고 했을 텐데? 외간남자와 감히 사담을 가져?”
“…….”
악귀만큼 흉악할 때.
“답 나왔네.”
[저 빌어먹을 놈이 기어이!!]
해태가 으르렁거리며 놈에게 덤벼들려 한다.
하지만 놈이 당장 그를 물어 죽였다간 놈의 힘이 극도로 약해지는 것.
반대로 코오나에게 절대 좋을 수 없다.
그대로 해태의 발을 걸어 놈을 넘어뜨린 뒤 놈의 머리를 지면에 처박은 뒤 말렸다.
[빌어먹을 놈! 놔라!]
“가만히 좀 있어 봐 임마. 협상 다시 해?”
싸웠어도 일정 선 이상 무조건 저주고 배려해주는 해태였다.
놈의 말에 나는 조용히 뺨을 맞고 침묵하는 코오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사내의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제법 정갈한 정장에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누가 봐도 제법 능력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 번만 더 외간남자와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알겠나?”
“…….”
“대답해라. 코오나. 네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우리 그룹에서 네 조부가 하는 사업을 도와줄 수 없다.”
“네. 죄송합니다.”
평소에도 밋밋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차가울 정도로 무감각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따라와라. 오늘도 스케줄이 산더미다.”
그렇게 코오나의 팔을 잡아끄는 그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해태가 아무리 부탁해도 나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코오나를 보고 있으면 한때 현국으로 팔려가듯 나가서 수모를 겪었던 내 동생. 1왕녀 타냐 올 라운이 떠오른다.
[저놈…… 처리해라. 그러면 도와주겠다.]
해태가 분노를 담아 내게 으르렁거렸다.
“거 남의 집안일은 알아서 좀 처리하지.”
[그녀는 제 조부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 인생이 어찌 되건 이 망할 정혼에 응할 생각일 테고.]
“그래서?”
[나는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다. 네가 나서지 않겠다면 나는 흉수가 되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놈을 물어 죽일 것이다.]
그건 곤란하지.
“좋아. 한 주일 안에 처리해줄게.”
[일주일? 방법이 있나?]
“있지.”
빙그레 웃으며 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 인간 어디 있는지부터 말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치가 들고 튄 생기의 구슬이다.
* * *
인적 하나 없는 고요하며 웅장한 풍경이 일품인 산악지대.
그곳에서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초가를 지은 채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던 우치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 크 좋은 말이야.”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지구였다.
데이비는 자신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찾으려 들겠지만 절대 이곳을 쉽게 찾진 못할 것이다.
천중원이나 다른 대륙을 포함해서 아주 신나게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닐 터.
그놈 성격상 각 세계를 수색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을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을 찾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곳 지구에서만큼은 어지간해선 절대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넬타리드 신의 영향권인 지구에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절대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을 테니까.
설마 도망쳐서 비연이 있는 지구에 숨어있을 거라고 그가 생각이나 할까.
어림도 없는 소리.
즉. 비연이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까지 일은 저승이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느긋하게 지내면 된다.
비연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 이내로 끝날 테니 말이다.
아무리 구미호라지만 그녀는 너무 오래 존재했다.
한계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놈이 자신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가 자신을 찾아 이곳에 왔을 땐 그의 추적을 피해 다시 도망칠 방법이 모두 완비가 될 것이다.
요지는 몇 년 안에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마 독고준이 만들었던 희대의 독주 열반주가 담긴 호리병을 빙글빙글 돌리던 찰나였다.
묘한 한기가 주변을 감싼다.
“역시 산이라 그런지 바람이 선선하구만.”
느긋하게 중얼거린 그가 술안주로 과일이나 까먹기 위해 꺼내 오려던 찰나.
우치는 곳간으로 만들어둔 창고 내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어떤 도둑놈이 감히…….”
으르렁거리며 창고 내부로 들어간 그는 도둑이라도 들었는지 그가 모아둔 과일들이 모조리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감히 어떤 놈이!!”
격분하는 그가 도력을 싸늘하게 피워냈다.
잡히면 이놈의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리리라.
앞니를 아주 미닫이문으로 만들어버리리라!
그렇게 분기탱천하며 그가 돌아서려던 찰나.
갑자기 창고 문이 스스로 움직이듯 쾅!! 하고 닫혀버렸다.
동시에.
우치는 식은땀을 흘렸다.
“흐…… 흐흐…… 흐흐흐흐흐…….”
섬뜩한 웃음소리에 우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대한 사막에 바늘 하나를 던져놓고 한번에 그것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림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형. 요즘 전등은 등잔 밑도 밝은 거 모르죠?”
“아…… 아아아…….”
우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악귀 같은 제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데이비가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비연, 여기라면 1년 중 364일 지내도 상관없을 겁니다.”
걱정 말아요. 하루 정도는 쉬게 해드릴게.
“뭐…… 뭣?!”
그 말과 함께 주변에 경악스러울 정도로 두꺼운 결계가 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우치가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자, 잠깐?! 비연이라니! 데이비 이 무슨?!”
“시작은 형이 했어. 나는 빚지고는 못살지.”
“자…… 잠깐 데이비!! 생기의 구슬 때문이냐?! 넌 아직 이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다 설명할 테니!!!”
격하게 소리치던 그는 데이비가 도저히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잠깐!! 내가 여기 갇혀있으면 영혼의 강은! 그건 누가 돌보…….”
“저승이에게 일 다 떠넘겼잖아요. 안 그래요? 알아서 하겠지.”
도끼로 제 발등을 찍었다…….
뒤이어 굳게 닫힌 창고 문이 열리며 우치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너무도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우치. 나 너무 행복해.”
“오…… 오지마 미친년아!”
“흐흐…… 흐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