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7화
두두두두두두두!!!
미친 듯이 몰려오는 몬스터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요시키가 듣기로는 분명 이만한 숫자의 몬스터. 이만한 수준의 몬스터라면 데이비 본인도 위험하다 말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거지는 여유롭기 그지없다.
마치.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요시키는 그런 그의 행동이 단순 여유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저 같은 엄청난 괴물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그는 이미 충동이 격화된 상황에서 이판사판이라는 듯 소리 질렀다.
“흐흐흐흐!! 웃기지 마라!!!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무슨 자격으로 나를 심판해! 이걸 봐라!”
그가 격노하며 머리에 뒤집어쓴 것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젊은 외관과 다르게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휑한 모습이 드러났다.
[세상에…….]
[저건 좀 선 넘었지!]
[미친. 경악스럽다.]
[어우야…….]
[x]
[x…………joy]
[XD]
순식간에 그의 몰골을 본 채팅이 혼돈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마치 멀쩡한 청년의 머리 위에 대머리 가발을 씌우면 저리 될까.
문제는 자연스러운 두발 상태이다 보니 그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비친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진짜 훤하네.]
[저게 대체 뭐야. 병이야 유전이야. 뭘 어떻게 해야…….]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뭐?! 웃기지 마라! 여기서 네놈은 죽는다!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인정합니다.]
[모근은 킹정이지…….]
[아 저건 살려주셈. 에바다.]
“아니 이 양반들이? 내가 뭘 했다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러거나 말거나 저 멀리서부터 몰려들기 시작하는 수백 마리의 강대한 몬스터들이 점차 가까워진다.
[아참. 몬스터!]
[미친 진짜 위험한 균열인데 하필 성자라 긴장감 없이 지켜봤다.]
[현 세계 최종급 레이드 현장.jpg]
이 몰골을 보고 신이 난 건 시청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인마궁 사수자리가 매우 잔인하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사자궁 사자자리가 말을 잇지 못합니다.]
이것들은 데이비가 아는 별자리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자주 보였다. 근육에 미친 타우르스보다야 낫지만, 일선에서 물러난 이 두 놈은 처음과는 너무 변해있었다.
마치 세상에 점점 녹아드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정리부터 해야겠네요.”
[어우야 저거 숫자가…….]
[미친 우르사크 변종이잖아! 저거 S급들도 기겁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모두가 경악하던 찰나. 데이비가 손을 뻗었다.
“흐……흐흐…… 그래 죽어…… 그냥 여기서 죽어버려라!”
“그건 사양하마.”
그리고는 특유의 장난기가 살짝 가라앉은 위압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선 채 기다리고 있는 로드 스켈레톤들을 향해서.
“사슬 풀자.”
* * *
요시키 카사토는 결국 포박당한 채 나를 향해 악을 쓰는 상황에 놓였다.
“우우우웁!! 우우웁!!”
“아 거 시끄럽네…….”
짜증스레 중얼거린 내가 손을 뻗었다.
“자라.”
[슬립]
털썩-
요시키가 강화된 슬립 마법을 버텨낼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가 이렇게 포박당한 이유는 극심한 충동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주변의 커다란 돌을 집어 들고 덤벼들고자 하는데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요시키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방송을 통해서 나는 이 균열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했다.
요시키 카사토가 저지른 함정으로 인해 대차게 몰려오던 몬스터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몬스터의 대군단을 고삐 풀린 야생마들이 모조리 짓밟고 으깨버렸기 때문이었다.
로드 스켈레톤 35체.
9서클 사령 마법이며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고유마법으로 데스 로드 고유의 권한을 이용해 특수한 스켈레톤. 즉 [백골 군주]를 구현하는 마법이다.
겉보기엔 그냥 해골이나 다름없지만, 이놈들의 본질은 오러 블레이드를 다발로 뽑아내 마치 신기전 쏘아내듯 날려 보내는 괴물 같은 놈들이었다.
물론 그만큼 강한 스켈레톤이면 반사적으로 사기가 높아지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힘 대부분을 억제하는 사슬을 목에 걸어놓는 편이다.
하지만 거리낄 것도 없는 만큼 나는 그것을 풀어버렸고. 막대한 사기를 터뜨리면 놈들이 본래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날뛰었는지 형태는 남아있던 파괴된 도시가 이제는 그냥 폐허. 혹은 흔적이라 불러야 할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이놈의 해골들은 내게 부복한 채 명령을 기다릴 뿐이다.
“지금부터. 몬스터가 보이는 즉시 시간 끌지 말고 모조리 베어버려.”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놈들이 하나둘 위풍당당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는 아직 한참 남았다.
나는 로드 스켈레톤들을 앞세워 내밀고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와…… 생전 처음 보는 것들 그득그득하네…….]
[애초에 저거…… 다른 사람이었으면 막는 거 가능하긴 함?]
[어림도 없지. 나도 각성자 출신이지만 저건 진짜 아님 S급이니 1세대 각성자니 다 모아놔도 이건 안될 거.]
[와…… 이런 균열이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고…….]
[무슨 걱정? 어차피 티오니스 성자 있으면 몬스터 따위가 인류를 절대 넘볼 수 없음.]
맹목적인 믿음도 보였다.
단순 인류라는 카테고리에 나를 엮어 버리면 하나의 동질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만약 내가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있으면. 그땐 어떻게 할겁니까?”
[그거야…….]
“거봐. 지금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더 노력해서 힘을 길러야 할 겁니다.”
요시키의 문제로 시끄럽던 채팅창은 곧이어 새로운 몬스터들의 습격과 내가 지켜주지 않거나 못하는 상황을 상정한 듯 심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어서야 내가 억누르고 있던 균열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깨달은 것이다.
본래 목적은 사실상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때. 누군가가 지나칠 수 없는 말을 했다.
[데이비 왕자님.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 요시키 카사토는 그냥 핑계였고 일본 균열 놔뒀다가 이런 상황 유도한 거. 전부 지금 이것 때문임?]
[미친 나 방금 소름 돋았네. 진짜임?]
머리 좋은 인간이 있긴 하네.
그것도 상당히.
“글쎄요.”
[CCJ 소속 기자입니다. 그럼 이 상황을 알면서 유도한 건데. 이 일 때문에 사망한 각성자에 대해서…….]
“우선 그전을 짚고 갑시다.”
담담하게 말한다.
“각성자는 목숨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입장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있다면……]
“미안한데 나는 보이면 돕는 거지 각성자의 목숨 하나하나 지켜야 할 의무는 없어요.”
[너무 생명을 경시하는 사상 아닌가요?]
그 질문에 내가 물었다.
“이봐요. 그쪽 이름이 뭡니까.”
[C…… CCJ 소속 기자 제니퍼 로사라고 합니다.]
“좋아요. 제니퍼 씨,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힘을 왜 남에게 자꾸 베풀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
차가운 말투로 내가 쏘아붙였다.
“당신이 뭐 보태줬나? 선은 넘지 말아야지.”
[그건…….]
내 말에 채팅이 다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게 맞지.]
[의존하고 도움받고 다 좋은데. 선은 지켜야지.]
[CCJ 주가 내려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역시 FXXk CCJ 기자들 마인드 대박이네.]
괜한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것을 막지 않았다.
지구의 인간은 몇몇을 제외하면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과 다르다.
가족은 지키지만 내 울타리 바깥의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건 사절이었다.
현실에 안주하면 편하기야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칫 나와 사이가 틀어지는 순간 지구는 과거와 같이 몬스터에게 삶의 터전 대부분을 빼앗기는 치욕을 다시 맛볼 수 있다.
그 사실을 나는 방송을 통해 인지시켜주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야 각성자를 밀던 뭘 하던 해서 스스로 힘이라도 기르지.
물론 그렇게 되면 신성 그룹의 주가가 상승하는 건 덤이지만 말이다.
-키아아아악!!!
다시 고개를 돌려보자 사방으로 흩어진 로드 스켈레톤들이 급기야 맨손으로 몬스터들을 잡아 찢고 부수는 게 보였다.
거대한 오우거처럼 생긴 강화종 몬스터의 양턱 끝을 잡아 찢어버리는 녀석이나, 섬광처럼 날아들어 드롭킥을 가하듯 몬스터의 몸을 관통해버리는 놈도 있었다.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아주 곤죽을 만들어버리는 녀석도 있었고, 엄청난 힘으로 낚아채 머리통을 터뜨려버리는 놈도 있었다.
[와. 저거 마석 전부 다하면 얼마야.]
“이거 일부만 챙기고. 나머지는 피해입은 쪽에 전부 기부할 겁니다. 떼먹지만 않는다면야.”
피식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진 나는 사냥하지 않는 로드 스켈레톤 중 일부에게 자루 주머니를 던졌다.
“가서 마석 싹 다 담아놔.”
좀 전에 한바탕 쓸어버렸던 곳까지 포함해서.
겉보기엔 작은 보따리지만 확장마법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 겉보기엔 굉장히 긴장감 없는 사냥이지만 몬스터의 수준은 절대 얕지 않았다.
칵! 칵!!
로드 스켈레톤 중 하나가 커다란 마석을 손에 쥐고 있다가 그것을 입에 넣고 콱콱 씹어 돌린다.
퍼억!!!
“야. 깨물지 마 임마. 흠집나면 니가 책임질 거야?”
[미친 악덕 사장 ㅋㅋㅋ]
[개 귀엽네 스켈레톤 ㅋㅋㅋ]
그런 모습을 본 이들의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려 할 때쯤이었다.
-크우우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포효와 함께 폭풍을 동반한 빛의 기둥이 쏘아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대균열의 몬스터와는 조금 수준이 다른 강대한 힘의 여파가 느껴지자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놈이 있네. 마석 줍는 놈만 놔두고 나머지는 따라와. 인명구조 들어간다.”
* * *
“하아…… 하아…….”
필사적으로 달리는 선발대 각성자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하악…… 하악…… 더…… 더는 못 뛰어요.”
상대적으로 육체능력이 낮은 마법사 계열이나 회복 담당 각성자들이 먼저 리타이어하자 그들을 데리고 빠르게 후퇴하던 각성자들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죽어 나갔다.
들어오면 안 됐다.
균열에 입장한 이후 그들이 느낀 감정은 한결같이 후회뿐이었다.
강해도 너무 강하고,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나하나 유인해서 빠르게 처리하고 자리를 이탈하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지만 그것도 일방적으로 강한 몬스터라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미 희생자만 다수 나타난 꼴이다.
“다들 움직여!! 놈이 쫓아오고 있다!! 코오나!”
각성자 선발대의 팀장인 토호 야스나로는 푸른 기류가 서린 검을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코오나를 향해 소리쳤다.
“길을 텄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전에 몬스터가 대규모로 빠져나간 탓에 퇴로가 생겼어!”
“알고 있어요.”
“무리하지 말고 시간을 벌어줘. 최대한 빠르게 부상자부터 이동시킬 테니!”
토호의 외침에 코오나는 이를 악물고 선녀의 힘을 끌어내어 검에 담았다.
그리고는 외눈박이 몬스터 티탄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여 급소를 베고 찔러넣었다.
강화종 티탄은 하나하나가 현 S급이라 불리는 각성자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리만 해도 아슬아슬한데.
그런 강화종 티탄이 무려 수십 마리.
상황은 최악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땐 각성자들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정도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래서 균열의 크기치고는 제법 할만한데? 라는 생각까지 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건 얼마 가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운이 좋았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 균열 내부에서 그들이 토벌한 몬스터는 가장 최하위 몬스터이며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감히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놈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말았다.
몬스터의 공세에 밀려 탈출도 하지 못하고 고립되어있는 상황인 터라 이들은 시시각각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코오나가 해태의 힘을 다시 빌려 사용하기 시작한 탓에 어떻게든 버텼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였다.
다른 여타 몬스터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강화 티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몬스터들의 공세에 중상자가 속출했고 토호는 조금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강행 돌파하여 후퇴하는 선택을 내렸다.
다행이라면 조금 전 몬스터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향했다는 사실이었다.
몬스터들의 대규모 이동 덕분에 퇴로를 얻은 이들은 코오나와 원거리 각성자들의 백업을 받으며 빠르게 이동해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서걱!!!
“크아아아악!!!”
선두에 있던 토호 야스나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고, 좀 전까지만 해도 달려있던 그의 왼팔이 피를 뿌리며 힘없이 나뒹굴었다.
육체능력이 뛰어나 어지간해선 칼도 잘 듣지 않는 야스나로의 팔이 반응도 못 할 속도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홀른…… 죽인다.]
동시에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기괴한 생명체가 목을 기괴하게 꺾으며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퀴퀴하고 끔찍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피 냄새와는 다른 진득진득하고 퀭한 냄새였다.
그제야 각성자들은 굳어버린 채로 야스나로를 일격에 제압해버린 괴물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일단 인간과 흡사했다. 정확히는 꼽추 인간의 모습이었다.
반면 놈의 얼굴은 이건 인간이 아니다 라고 말하듯 기괴한 해골 같은 형태였다.
뒤통수는 굉장히 길고 날카로웠고 눈두덩이는 검게 패어있어 눈동자가 있는지도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회색빛의 깡마른 체격. 잔뜩 부풀어 오른 배와 배꼽이 있는 부분에는 거대한 탯줄 같은 것이 길게 늘어 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탯줄의 끝은 마치 갓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듯 거대한 살덩어리 같은 게 달려있었다.
마치, 태반 채로 빠져나온 것처럼.
다른 몬스터에 비하면 정말 왜소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일방적인 공포. 움직였다간 반드시 죽는다라는 섬뜩한 공포가 그들의 사지를 마비시켜버린 것이다.
[홀른…… 죽인다…….]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다가온 괴물이 고개를 기괴한 소리를 내며 꺾었다.
이에 야스나로가 이를 악물고 괴성을 내질렀다.
“그으아아아아!! 죽어라. 괴물!!!”
그의 손에 쥐어진 무기가 괴물을 향해 휘둘러진다.
터어어어엉!!!
하지만 그의 무기는 괴물에게 닿기도 전에 마치 스스로 터져버리듯 아예 조각나서 사라져버렸다.
쳐냈던지. 아예 공격이 먹히지 않았던지 어느 쪽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을 공격한 것 때문일까.
괴물은 야스나로를 한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손톱이 길게 돋아난 팔을 뻗었고.
“크읍!!?”
그의 복부를 한 차례 꿰뚫어버렸다.
섬뜩한 고통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팔이 하나 잘려나가고, 복부가 꿰뚫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저항하지 못했다.
속도, 위압. 힘. 모든 면에서 일방적인 존재.
체격은 작으나 이 균열에 들어와 눈앞의 괴물보다 강한 존재는 본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건 몬스터가 맞긴 한 것인가.
처음 보는 계통의 몬스터는 많이 봤지만, 눈앞의 존재는 엄연히 이질적이었다.
[엄…… 마…… 복수.]
기괴하게 중얼거린 괴물은 배꼽에 이어진 살을 질질 끌며 움직였고 곧 손톱에 관통당한 야스나로를 마치 파리 털어내듯 던져버렸다.
“티……팀장!!!”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중상자가 되어버린 야스나로는 엄연히 S급이라 불리는 각성자였다.
사실상 일본 최고의 각성자라는 소리였다.
그가 약한 게 아니었다.
눈앞의 괴물이…… 너무 강하다.
[홀…… 른…… 죽인다.]
그런 괴물은 마치 아직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것처럼 계속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괴물을 보며 코오나는 긴장한 채로 해태의 힘을 언제든 끌어낼 준비를 했다.
이 괴물. 좀 전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폭풍이 서린 빛의 기둥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분명했다.
다행이라면 괴물의 등장으로 다른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기괴한 괴물이 작정하고 날뛰기 시작하면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이곳 모두가 처참한 육편이 되어버릴 것이다.
끔찍한 미래가 그려진 각성자 중 일부는 겁에 완전히 질려 와들와들 떨었고.
그 일부는 두려움을 못 이겨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썼지만, 압도적인 힘을 지닌 절망 앞에 무너진 것이다.
대체 이런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다른 균열을 홀로 처리한 데이비 올 라운은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숨 막히는 위압에 짓눌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버리는 각성자들을 보며 코오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놈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다행이라면 대놓고 적의를 보이는 이들만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말이다.
[너…… 홀…… 른?]
그때 회색빛의 괴물이 천천히 탯줄을 질질 끌며 다가와 코오나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홀른. 인간을 칭하는 단어라는 건 과거 알프 온라인을 할 때 들어 알고 있었다.
맞다고 대답하면 어찌 될까. 아니라고 대답하면 어찌 될까.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놈이 다시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너…… 홀른?]
대답을 강요하는 그 모습에 각성자 중 하나가 소리 질렀다.
“호…… 홀른같은 건 아니야!!”
촤악!!!
그 말과 함께 각성자의 머리통이 사라져버렸다.
반응도 못 할 속도였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홀른이 아니라 대답한 각성자를 죽여버린 괴물은 다시 굳어있는 코오나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너……홀른?]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혼란. 복잡함이 뒤섞여 그저 멍하니 기다릴 뿐이었다.
이러다가 짜증이 난 괴물이 죽이는 건 아닐까. 코오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차올랐지만 그럼에도 입이 뻐끔거려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해도 죽고, 맞다고 대답해도 죽는다면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상황이 되니 코오나는 반사적으로 어떤 인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렇게 무력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이 괴물을 그리고 이 균열을 처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복잡하고도 의미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곳에 없으니 말이다.
그때 괴물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쇠를 긁는듯한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다프네…… 다프네 냄새, 홀른. 죽여…….]
괴물은 뭔가 좀 이상했다.
어쩌면 이 괴물은 지금까지 지구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근원에 대한 단서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쯤 생각이 미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괴물이 변덕을 부려 죽이지 않기를 바랄 뿐.
텁-
“읏?!”
[홀, 른. 죽여. 다프네…… 죽여.]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며 놈의 안광이 더욱 짙게 일렁였다.
그리고, 곧 코오나의 팔을 부러질 것처럼 강하게 쥐었다.
“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위압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했다.
일방적인 폭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