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8화
회색빛 피부의 깡마른 괴물이 코오나의 팔을 잡아 힘을 주자 그녀의 가녀린 팔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력이다.
코오나는 해태의 힘을 추가로 다루는 육체계통의 능력자.
그녀의 육체수준은 이미 초인의 경지에 있는 만큼 트럭과 부딪혀도 멀쩡한 수준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그녀가. 단순히 팔을 잡힌 것만으로도 저렇게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눈물이 뚝뚝 흐르지만 억지로 비명을 참은 채 이를 악물고 있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들이민 괴물은 마치 탐색하듯 그녀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홀……른.]
놈은 마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처럼 코오나의 몸을 여기저기 부러뜨리며 호기심을 드러낼 뿐이었다.
“코오나!!”
“늦었어! 달려!!”
각성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고 도망쳐서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측.
그리고, 한쪽은 아직 어린 코오나를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는 측이었다.
“흐읍!!”
쿠웅!!!
그때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하듯 회색의 괴물과 충돌하여 코오나를 떨쳐낸 것이다.
양팔이 부러지고 다리 한쪽이 거의 걸레짝이 되어버린 코오나는 쓰러진 채 피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어째서 해태의 힘이…….’
해태의 힘이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지만, 저 괴물은 그런 힘을 무시하고 그녀의 육신을 부러뜨렸다.
물론 코오나보다 먼저 치명상을 입은 팀장 토호 야스나로의 상태는 심각했다.
“데리고 나가!! 내가 시간을 끌겠다!”
날아가 버린 팔 한쪽 때문에 휑한 느낌은 들지만, 그는 전의를 꺾지 않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들어와라. 네놈은 절대 이 뒤로 가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막아섰다.
외세의 힘을 빌리는데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인 그였다.
자국의 일은 자국 내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사상이며,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게 되면 앞으로도 끌려다닐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날아가려는 의식을 붙잡은 그가 무기를 쥐었다.
-그우? 그아아아…….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공격에도 괴물은 너무도 멀쩡했다.
비틀거리며 의아함을 표한 괴물의 공허한 안광이 그를 직시한다.
그리고는 이내 얼굴의 형태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 대 맞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며 절규하던 괴물은 곧이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급기야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야스나로의 몸에 돌격을 가한 것이었다.
“커헉!!”
반응할 새도 없이 당해버린 그는 마치 포탄 쏘아지듯 튕겨 나가버렸고 커다란 나무를 박살 내며 쓰러진 뒤 입을 꺽꺽 소리를 냈다.
“안 돼요!”
“이리와! 너라도 살아야지!”
쓰러진 코오나가 부러진 팔을 뻗으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각성자 두어 명이 그녀를 둘러매고 달리기 시작했다.
“팔다리 전부 부러졌어! 이대로 둘러매고 계속 달린다!”
“야스나로! 당신 끝까지 버텨!”
결국, 야스나로를 제외한 모두가 괴물을 등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정말 별거 없어 보이지만 온 전신이 저릿하게 만드는 위압감의 정체가 그놈이라는 것을 안 이상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
-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괴물은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 야스나로의 몸을 후려쳤다.
광기가 서린 주먹질 소리가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그를 구할 방법이 없음을 직감한 코오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살아남은 각성자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중간중간에 몬스터의 행렬이 보이긴 했지만, 놈들은 어째서인지 각성자들을 쫓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도망쳤을까.
야스나로의 희생을 딛고 한참을 도망친 각성자들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숨을 골랐다.
“후우…… 후우…… 여기서 잠깐이라도 쉬어야 해요.”
“무슨 소리야! 그놈이 쫓아오면!”
“지금 달리면 그나마 남은 체력마저 온전하지 못할 거에요!”
순식간에 설전이 오갔지만, 잠깐이라도 쉬어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일했다.
살아남은 각성자의 수는 고작해야 열 명 남짓.
그것도 상위클래스 급 각성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몰살당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도 다시는 헌터 사냥을 못할 것 같은 부상을 입은 이도 있었다.
“우린 죽을 거야…… 우린 다 죽을 거야!!”
“닥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하지만 이대로 어떻게 도망간다는 거냐! 팀장도 저렇게 죽어 나자빠졌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이대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몬스터가 왜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출구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3~4시간은 걸릴 거다! 그동안 그놈이 잘도 놀겠군! 야스나로 그 인간이 잘도 버티겠어!”
가장 강한 각성자.
1차 각성자인 토호 야스나로가 버틴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이는 없었다.
버티기는커녕 그저 고기 방패로써 버티는 게 한계라는 것을.
절규하는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절…… 버리고 가세요.”
“뭐?”
“화연 언니에게 받은 해태 신수의 힘…… 폭주시키면 잠시 정도는 버틸 수 있어요.”
“이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네 팔다리 멀쩡한 곳이 없는 거 안보여?!”
치료를 받고 뼈를 붙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구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
“맞아. 게다가 아직 애를 홀로 던져두고 도망가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물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자고! 지금 방법은 그게 전부잖아!”
“닥쳐! 어떻게 인간이 그딴 말을 할 수 있냐!”
“웃기지 마라! 각성자는 결국 전부 목숨 내놓은 직업이야! 거기에 애 어른이 어딨어!”
“그래도 그렇지! 그래! 당신 방어 계통 각성자잖아! 그럼 당신이 버티던가!”
“뭐라고?! 말 다 했어?!”
주변 상황은 보지도 않고 소리 지르며 싸우는 이들은 인간의 본연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친 얼굴로 주변을 보던 코오나는 짧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해태를 불렀다.
‘신수님.’
[웃기지 마라. 넌 살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해태 님도 여기 몬스터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시잖아요.’
해태는 강한 신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코오나라는 존재에게 묶여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선녀의 힘을 본래 건네주었던 이와 같은 방법을 택하려 했다.
[그녀와 같은 판단을 내리지 마라. 그녀는 티오니스가 진짜라는 것을 안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해태의 단호한 말에도 코오나는 몸을 일으키며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다들 움직이세요. 놈이 오고 있어요.”
그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해태의 힘을 이용해 볼 수 있는 미래는 아주 한정적.
과거와 다르게 지금 그녀는 미래를 보는 힘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본 미래에서 보이는 것은 새빨간 피뿐이었다.
죽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녀의 그런 행동에 몇몇이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해태의 힘을 끌어낸 후였다.
해태는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결국 그녀의 말에 따라 주었다.
신성한 신수의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푸른색과 백색이 섞인 기류가 그녀의 전신에 감돌았고 그녀의 눈동자가 청백색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코오나 너…….”
“가세요. 놈이 오고 있어요. 아스나로 씨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평소 사용하던 검은 던져버리고 커다란 롱소드를 꺼내 든 그녀가 숨을 골랐다.
“어서 가세요. 가서 데이비 왕자에게 꼭 제 말을 전해주세요.”
그라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올 것이다.
[홀른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다프네라는 이름.]
다프네가 누구인지는 그녀도 들은 바 있다. 정말 우연찮게 데이비와 페르세르크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지만 말이다.
아마 그라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드시 오리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검에 기운을 불어넣은 뒤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몰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것은 그 회색의 괴물이 아니었다.
“몬스터…… 군단…….”
“저건 안돼…….”
회색의 괴물은 혼자서 어그로를 끌라면 끌 수 있다. 아주 잠깐일지라도 생각보다 놈이 단순해서 속여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규모의 몬스터라면 혼자서 어그로를 끄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올곧게 각성자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4족 보행형 늑대 같은 몬스터부터 형태를 특정하기 힘든 괴물까지.
생전 처음 보는 존재 중엔 한때 나타나 뉴질랜드의 3분의 1을 박살 내버린 거인 형 몬스터도 존재했다.
절망한 이들은 도망갈 생각도 못 한 채 굳어버렸다.
“너무하잖아…… 이런게 무슨 균열이야…….”
“이걸 어떻게 인간이 막냐고…….”
“이렇게 죽는 거야?”
죽음을 직감한 이들은 하나같이 허탈한 얼굴을 했다.
그중 몇몇은 죽음을 직감했고, 몇몇은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아아아…… 엄마아…….”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새카맣게 몰려오는 몬스터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한 수준의 몬스터들이다.
그런 몬스터가 수를 헤아리기 힘든 수준으로 몰려오니 모두가 절망할 수밖에.
도망칠 곳이 없어진 것을 깨달은 각성자 중 일부는 무기를 집어 들고 전의를 불태웠다.
“X. 가더라도 한 새끼라도 더 끌고 간다.”
“그래요…… 가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그들의 말을 시작으로 다수의 각성자들이 죽음을 각오했다.
“여기서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균열이 터졌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알고 있지?!”
“네!”
“그럼 가자! 빌어먹을 팀장,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일단은 팀장의 복수라도 해주마!”
그렇게 단단히 기합을 넣고 기세를 끌어올리는 그들을 향해 코오나가 해태의 힘을 이용해 가장 먼저 공격을 가하려던 순간이었다.
지축을 울리며 미친 듯이 달려드는 그들의 위세에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
공격을 해야 하는데. 지근거리까지 왔는데 뭘 할 수가 없다.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버렸던 코오나는 이내 이를 악물고 힘을 방출하여 그들을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두두두두두두두두!!!!!
몬스터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각성자들을 개무시하고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에 환장한 황소들이 그것을 쫓아 떼 지어 달리는 것처럼 지나쳐버리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때. 청각이 좋은 코오나의 입에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죽기 싫다…… 도망친다!]
[도망친다! 도망친다!]
그들은 생존한 각성자들 따위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이게 무슨…….”
“방금 저 새끼들……도망친 거야?”
“뭔데…….”
튀어나왔다 하면 일국을 단숨에 멸절시켜버릴 법한 숫자와 강함을 지닌 몬스터들이 대체 뭘 보고 도망치는가.
설마 그 회색의 배가 볼록한 그 괴물을 보고 도망치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회색의 괴물이 모습을 보인 곳은 놈들이 도망친 곳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비…… 빌어먹을 저놈이 여기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괴물은 배꼽에 붙은 탯줄을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쩔뚝거리는 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는 놈은 살아남은 각성자들을 모두 죽이려는 듯했다.
“크윽!! 몸이 무거워…….”
“젠장 이게 무슨 위압이야…….”
회색의 괴물의 근처에만 가면 몸이 짓눌린다.
마치 포식자의 앞에 내던져진 것 같은 압박이 전신을 벌벌 떨리게 만들었다.
그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놈의 손에는 시체인지 살아있는 건지 모를 야스나로가 쥐어져 있었다.
[홀른…… 못 움직여…… 홀른…… 죽여…….]
놈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점점 다가오고 모두를 압박감만으로 짓눌렀다.
그때였다.
각성자들을 쫓아온 회색의 괴물은 좀 전 몬스터 군단이 미친 듯이 달려왔던 방향을 보더니 몸을 비틀거렸다.
쿠우우우웅!!!
동시에. 회색의 괴물이 내뿜던 것과는 아예 격이 다른. 아니 정확히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중력 같은 것이 일대 전체를 짓눌렀다.
“이 새끼들이 술래잡기라도 하러 온줄 아나 내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인간의 모습이 모두의 시선에 담겼다.
죽음을 직감하고 있던 이들은 의아해했고.
코오나는 그 존재를 보자마자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달려들었다.
“어어?”
파악!!
그리고는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