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0화
“정말 허탈하네…….”
“내가 알던 그 강력한 지네형 몬스터가 맞나…….”
생존한 각성자들은 현재 허탈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키아아아악!!
콰직!!
거대한 몬스터 한 마리를 골검으로 찢어버리는 로드 스켈레톤이 차디찬 서리를 입 밖으로 흘려내며 걸어 나간다.
거대한 몬스터가 휘두른 거대 철망치를 맞으면 단번에 조각나버릴 정도로 빈약한 모습이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쩌어엉!!!
한 손으로 거대한 철망치를 막아선 해골이 안광을 번뜩이기가 무섭게 그의 뒤로 날아든 두기의 로드 스켈레톤이 뒤쪽의 지형 채로 몬스터를 삼등분시켜버렸다.
일방적인 학살.
압도적인 유린.
달리 표현할 말이 있을까.
몬스터와 다를 바 없는 외향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은 다행히도 각성자들을 호위하는 입장이었다.
출구까지 쉬지 않고 달려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들은 닥치는 대로 보이는 몬스터들을 찢고 죽여나갔다.
하지만 그런 아군임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한기 서린 안광이나 서리를 보며 온몸이 굳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게. 한 인간이 소환한 스켈레톤이 맞는가.
스켈레톤을 다루는 각성자는 소수지만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소환하고 다루는 해골은 이렇게 무식하게 강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무엇인가. 하나하나의 역량은 낮지만, 다굴에 장사 없다고 물량전으로 싸워 이기는 존재가 아니던가.
본래 네크로맨서, 혹은 사령술사라는 것들은 그런 게 정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건 좀 이야기가 달랐다.
수도 많으면서.
그 하나하나의 위력도 가히 일방적인 수준.
이 정도면 이 해골들만 이용해도 하나의 길드의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른 기에 달하는 해골들이 천천히 전진하며 닥치는 대로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각성자 중 하나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저기 코오나…… 몸은 괜찮아?”
“네.”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각성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것들 말이야…… 갑자기 돌변해서 우릴 공격하진 않겠지?”
“맞아. 나 저것들 눈빛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코오나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었다.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요.”
“그렇겠지? 아…… 저거 너무 아깝다…….”
몬스터를 코어 채로 분해해버리는 스켈레톤을 보며 각성자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상위 몬스터의 코어인 만큼 주워가기만 하면 대량의 돈을 만질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하나같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었으니까.
“저게 다 얼마야…….”
“버리는 건 아닐 거에요.”
“응?”
의아해하는 각성자 동료를 올려다보며 코오나가 뒤를 가리켰다.
이에 시선을 뒤로 하자 커다란 보따리를 든 로드 스켈레톤 하나가 가는 길에 보이는 마석들 중 온전한 것들만 챙겨 담고 있었다.
“와…… 저게 다 얼마야…….”
분에 넘치는 욕심은 화를 부른다. 각성자들은 곧 보이기 시작하는 출구를 보며 안도감과 나른함이 몰려들었다.
“빨리 나가자!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기가 싫다!”
그렇게 말하며 해골들의 안내를 받은 그들은 균열의 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요시키 카사토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탈출에만 신경을 쏟는 각성자들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아참…… 이 해골들…… 우리랑 같이 나가는 거야?”
“아마도요?”
“밖에…… 아무 일 없겠지?”
소란이 날 것 같은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았다.
* * *
대균열의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혹시나 싶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모여든 각성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통제를 하는 군인들까지.
벌써 데이비가 들어간 지 시간이 꽤 흐른 만큼 바깥에 있는 이들은 혹시 뭔가 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까지는 개인방송을 통해 확인했지만, 그 이후부터 뭔가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며 방송이 끊어졌다.
그러니 긴장할 수밖에.
그때 균열에서 스파크 음이 들리더니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온…….”
“젠장 물러나!!”
설마 문제가 있겠냐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이들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균열에서 나타난 건 사람이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얼어붙을 것 같은 스켈레톤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결국, 균열이 브레이크를?!”
“포격 준비해! 각성자가 버티는 건 조금밖에 안 된다!!”
긴장한 채로 소리 지르며 움직이는 이들. 이 상황에서도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취재하는 기자들까지.
하지만 혼란에 빠진 광장을 만들어낸 범인들인 로드 스켈레톤들은 인간들의 그런 반응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잠깐 저 해골들…….”
그중 하나가 스켈레톤들의 정체를 눈치채고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저거…… 티오니스 성자의 스켈레톤 아냐?”
“잠깐만…… 확실히 비슷하게 생긴…….”
“엥? 저게 뭐야?”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듯 밖으로 나온 스켈레톤 중 일부는 기지개를 켜더니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한 스켈레톤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카드를 갈비뼈 속에서 끄집어내더니 빠르게 세팅하며 다른 스켈레톤들에게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다리는 동안 할 게 없으니 카드게임이나 하자는 듯한 느낌이었다.
네다섯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 이게 뭔…….”
물론 모든 스켈레톤들이 그러진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기괴한 웨이브를 보이며 저들끼리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는 섬뜩한 안광과 서리를 내뿜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간 뒤 굳어있는 그들의 물자 사이에서 식량을 멋대로 끄집어내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는 야금야금 씹어먹는다.
분명 턱 아래로 음식이 보여야 하는데 입안으로 사라진 음식들은 마치 증발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인 스켈레톤들의 기행에 사람들은 한참 동안 멍하니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기자들을 통해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놀 줄 아는 스켈레톤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었지만 말이다.
* * *
거대한 공동. 그 중앙에 놓인 거대한 괴물의 시체.
그리고, 그 시체에 달라붙어 괴기스러운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회색 괴물.
주변의 모습은 각기 다른 흙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심기를 거스르는 건 나를 포위하듯 나타난 기사들이었다. 망령인지 뭔지 애매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놈들이 나를 침입자로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놈들에게 괴물을 가리키며 상황을 인지시켜주려 하지만 놈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죽은 이는 죽은 대로 두어야 하는 법.
-안식을 방해하지 마라.
“말이 안 통하네.”
짜증이 일어난 나는 놈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시체에 달라붙어 두려움을 토해내고 있는 회색의 괴물을 끝장내기 위해 홍단이를 들어 올렸다.
휘리리릭!! 서걱!!!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한 기사가 몸을 회전시키듯 힘을 실어 내게 검을 휘둘러 들어왔다.
조금 변질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기사들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으니 처단하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휘리릭…… 챠악!
검을 빙그르르 돌려 고쳐 쥔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노인공경은 웬만하면 해드리고 싶은데. 그게 세상 흘러가는 걸 부정하고 과거에만 처박혀 있는 양반이라면 공경은 공격이 될 뿐이다.
“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중검]
[태산 쪼개기]
콰아앙!!
얇은 홍단이의 검신에 폭발적인 중량이 서린다.
어마어마한 중량이 서린 종베기에 망령 기사가 검을 들어 방어하려 했지만, 홍단이는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검 채로 기사를 양단해버렸다.
-그으으으으으으…….
동시에 갑옷이 잘려나가며 그 안에서 연녹빛의 연기 같은 것이 스스스 뿜어져 나왔다.
특별한 불사 특성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물론, 갑옷 자체가 굉장히 단단한 느낌이긴 했지만 강화된 홍단이의 권능을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한 명을 지워버린 내가 다른 기사들을 마저 베어버리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갑작스레 안광을 번뜩인 그들이 자리를 잡고 검을 바닥에 내리꽂은 것이다.
동시에 독특한 마법 술식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그대로 막대한 빛을 토해냈다.
명백히 도망치려는 의도였다.
콰득!!
본래라면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마법을 빠르게 분석하고 그 틈을 잡아챈 뒤 청단이를 박아넣었다.
“가긴 어딜 가.”
스산한 미소를 지은 나는 꽂힌 청단이를 손에서 놓은 뒤 장막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양손을 밀어 넣었다.
강제로 장막을 찢어발기며 손을 밀어 넣은 내가 씨익 웃자 망령 기사 중 하나의 안광이 잠깐 일렁인듯한 느낌이 든다.
콰득!!!
동시에 놈의 목을 잡아 비틀어 꺾어버린 뒤 강제로 장막을 찢어발기고 나면 남는 것은 학살일 뿐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힘이었다.
단순 협동능력도 굉장하지만 그들의 개개인이 가진 힘의 역량은 라스트 위스프 기사들이 가지고 있던 평균적인 힘을 한참 웃돌았다.
“제법이십니다. 영감님들.”
콰앙!!!
발로 밀 듯 복부를 걷어차 날려버린 나는 남은 기사들을 향해 악귀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일그러뜨리고 부수고 찢었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학살극. 놈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당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저항했다.
조금 생소한 방어마법 디버프 마법, 공격 방식.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놈들을 모조리 부숴버리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뭔가가 부실했으니까.
움직이기 시작하는 흙 인형들까지 모조리 부수고 나서야 나는 다시 회색 괴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놈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나의 흐름도. 기사들이 쓰는 독특한 힘의 흐름도 없었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짜증 나게 진짜…….”
인상을 찌푸린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균열이 흔들리며 사라질 기미를 보이자 그대로 허공을 찢어발겼다.
신의 영역.
그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조금 물어볼 게 있었기에.
그런 내 의중을 알고는 있는지 회랑의 영웅들은 으리으리한 신전의 내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던 걸 보니 이게 그냥 일은 아닌…….”
그들의 그런 적극적인 태도에 고마움을 느낀 내가 말을 걸려던 찰나.
나는 보고 말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카드와.
술병과.
안주로 보이는 고기나 과자까지.
“어? 데이비 왔어? 너도 한잔해.”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 인간들에게 무엇을 바랄까.
한숨이 절로 나온 나는 다프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엉? 뭐야.”
“다프네. 이게 뭡니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엠블럼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든 그녀가 엠블럼을 본다.
“어라? 이건…… 그거네.”
동시에 다프네에게 치근대기 위해 다가온 아폴론이 대답했고.
다프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네.”
“아는 겁니까?”
“있어. 씨 발라먹을 배신자 새끼들.”
“어허.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쯧.”
세상에. 아폴론이 다프네에게 타박을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로지 다프네 편이었던 아폴론의 그런 태도에 나는 마치 신기한 걸 본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x같은 건 어쩔 수 없잖아.”
다프네가 흥미가 가신 듯 내게 엠블럼을 던졌다.
“이거 어디서 났어.”
“보고 있던 거 아닙니까?”
“우리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알아?”
조율은 내팽개치고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인간들이?
나는 이 인간들을 하나같이 직무유기로 한번 뒤엎어버리게 권능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 나랑 이야기하자. 별로 다프네는 좋아하지 않을 테니.”
그때 아폴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등을 떠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