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1화
평소와 다른 아폴론의 나름 진지한 표정에 다프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야. 꺼져. 내가 할 테니까.”
“오. 내 사랑 다프네. 그럴 필요까진…….”
“아…… 됐어! 언제까지 그럴 거야.”
“…….”
물러나는 아폴론을 흘낏 노려본 그녀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다른 영웅들이 없는 곳으로 향한 그녀는 내게 말했다.
“데이비.”
“뭘 말하려고 그렇게 무게 잡아요.”
“별거 아냐. 그놈들은 다 죽였어?”
“일단은요. 괴물도 사라졌고. 대신 그 회색 괴물 놈이 도망치긴 했는데. 영향력은 없을 겁니다.”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아. 아폴론이 왜 라스트 위스프를 창설했는지 알고 있어?”
“마경의 마물들 때문 아닙니까?”
기존의 몬스터 이상으로 위험한 것들이 가득한 극지의 몬스터들을 감시하고 토벌하는 기사단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티오니스의 풍경도 나오진 않았으리라.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마물왕을 유도하고, 마물의 유출을 막아왔으니까.
물론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내가 한바탕 엎기 전까지는 현상 유지에 배신자들도 한가득했지만.
“네가 본 그 거대한 괴물은 아마…… 페르세포나일 거야.”
“페르세포나?”
“그래. 오래전에 라스트 위스프가 창설되게 만든 원인인 몬스터 여왕이야.”
여왕이라는 단어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몬스터 여왕?”
“데이비. 지금 지구에 있는 몬스터들이 어디서 오는지 조금 의문이었지? 나도 그랬거든. 그런데 네가 말해준걸 듣고 나니 조금 짚이는 곳이 있어.”
그놈들은 오래전 티오니스에서 차원단위로 박멸된 존재였다.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떴다.
그 흉측하고 거대한 괴물을 떠올린 나는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 시체의 영혼 잔재에서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이라고요?”
“맞아. 인간. 인간이지만 몬스터의 마굴에 떨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인간. 나와 같은 교단의 여성 신관이기도 했어.”
순간 그녀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영웅들에 비해 상당히 끓는점이 낮은 만큼 그녀는 제법 감성적인 인물이었다.
“예전엔 말이야. 티오니스 곳곳에 어떤 구멍이 있었거든. 정식명칭은 마굴이라고는 부르는데 지금처럼 생식으로 조금씩 생겨나는 몬스터와 다르게 그곳에선 몬스터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생겨나. 마치 복사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마굴 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인간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페르세포나는 그곳에 끌려들어 갔어. 그리고, 3년 정도가 지났을 때 그녀는 괴물이 되어있었고.”
“잠깐만요. 그 말은…….”
“마저 들어 이 씨 발라먹을 x끼야. 몬스터의 여왕이 된 거야. 마굴에서 나온 몬스터는 여왕의 말을 따라 종족 숫자와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고.”
“이야기 듣고 있으니까 마치 인간이 몬스터가 된 것 같다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가능성은 있겠지. 어쨌든 그녀가 몬스터 여왕이 된걸 알아낸 건 아주 우연이었어. 당연히 몬스터 여왕이 나온 뒤로 마굴은 더욱더 활발하게 몬스터를 뱉어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왕을 필두로 티오니스를 전반적으로 침공.”
그녀가 말을 끊었다.
묘하게 씁쓸하고 힘들어 보였다.
“어쨌든 몬스터 여왕은 그때 죽었어. 아폴론과 내가 토벌했거든. 몬스터 여왕을 죽이고 마굴을 전부 파괴했고.”
더 이상 티오니스에는 몬스터 여왕을 필두로 한 마굴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폴론은 그때 당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향후에도 이런 상황이 또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비밀 기사단을 만들어 막아서자.
“솔직히 전부 놀랐지. 저 난봉꾼 새끼가 저런 말을 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데. 조금 단서가 부족해서 심증만 갈 뿐이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기사단을 창설했는데. 갑자기 배신자가 나왔다?”
“그렇지. 네가 다 죽여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그 회색 괴물 놈은 차기 몬스터 여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요.”
“그건 잘 모르겠어. 다만. 내가 조율하고 있는 이상 마굴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거야. 그러니 더 이상은 신경 쓰지 마.”
이 이상은 알아봐야 의미가 없다.
“그럼 그 살아 나간 놈은요.”
“그놈이 만능인 줄 알아? 내가 틀어막을 테니 걱정 말라고.”
그녀가 내 등짝을 철썩 후려쳤다.
“볼일 다 봤으면 가봐. 별거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것을 본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녀의 표정이 저렇게 힘들어 보이는지 한번 조사해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눈치 빠른 다프네라면 아주 거품을 물면서 나를 쳐 죽이려 들 테니 물러나는 수밖에.
“그럼 어쩔 수 없지.”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 하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개인적인 일일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괜한 찝찝함을 덮어놓은 채 다시 균열을 열었다.
“아참. 그놈들 소환해제 안 했구나.”
* * *
균열이 사라진 직후 일본에서는 조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균열은 사라졌다. 선발대로 들어간 각성자들이 살아나오고, 정체 모를 스켈레톤들이 균열의 입구에 앉아 간식을 까먹고 카드게임을 하는 것도 조금 황당한데 균열이 사라지고 정작 나와야 할 인간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데이비가 균열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행방불명 혹은 사망했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시체는 균열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왠지 그라면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라는 입장인 쪽은 스켈레톤들이 아직 멀쩡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살아있다 말하지만, 확증을 내놓을 순 없었다.
그 소식은 당연히 상황을 지켜보는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균열이 사라졌는데도 안 나오는 건…… 설마 죽었다는 건가?”
“말도 안 돼.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실제로 봤으니 그런 괴물 같은 인간이 죽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스켈레톤들은 아직 멀쩡하지 않은가. 마치 그가 죽었을 리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기…….”
혹여 균열에서 문제가 생길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코오나는 답답함을 느꼈는지 복잡한 표정으로 스켈레톤의 쇄골을 톡톡 두드렸다.
따다닥?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를 부딪치는 스켈레톤을 향해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주인이 안 나와요?”
그 물음에 스켈레톤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다른 각성자나 기자들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 침묵을 바라본다.
이에 스켈레톤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스팡!!!
갑작스런 빛과 함께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사라져버렸다.
“설마…….”
그제야 코오나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스켈레톤이 사라졌다.
몬스터 균열에서 나오지 않고 균열이 사라지는 건 죽은 경우를 제하면 없다.
“아…… 안돼…… 안돼!!”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스켈레톤이 있던 자리를 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코오나!”
“안돼!! 안된다고!!”
절규하듯 소리 지르며 그녀가 외쳤다.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지구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계산적인 면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코오나는 그와 많은 일을 겪었고 솔직한 심정으로 그에게 정이 제법 들어있던 참이었다.
비록 조금 무서운 사람이긴 하지만 그는 결국 선발대로 들어온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아…… 아아아!”
평소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한 그녀가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은 수많은 카메라에 담겨 퍼져 나갔다.
이날. 지구의 각 매체에서는 티오니스 성자가 공식적으로 균열을 모두 틀어막고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정작 데이비는 콧노래를 부르며 티오니스의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었지만.
* * *
지구에서 그런 난리가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작 나는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을 찾고 있었다.
“보리스 선생님.”
“데이비 오랜만이구나.”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는 라스트 위스프의 기사이자 리인포스 알파 소속의 선생님.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인물이기도 하며 상당한 인격자이기도 했다.
겉보기엔 굉장히 다혈질적인 근육질 남성이지만 그는 상상 이상으로 섬세한 사람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네가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밀과 향신료는 늘 잘 받고 있다.”
“이 정도밖에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늘 그렇지. 무슨 일인지 마물들의 움직임도 요즘엔 굉장히 뜸하고. 신입 기사들도 이제 다들 들어왔으니까.”
늘 그렇듯 있는 듯 없는 듯 티오니스를 지켜주고 있는 기사단의 존재에 나는 고마움을 표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비록 직접 활동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아니지. 네가 이렇게 물자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은요?”
“늘 그렇지 뭐.”
새삼 말할 게 있을까.
나도 의례상 물어본 말일 뿐이었다.
“다만 이번에 리인포스 알파의 신입 기사들은 좀 기가 드세더구나.”
“기가 세요?”
“그래. 재능도 출중한데…… 좀 자만심이 강하다고 하는구나.”
그가 나를 흘끗 본다.
“요새 바쁘니?”
“아…… 조만간 한번 일리나와 그쪽에 들릴게요.”
“그래. 일리나 생도. 아니 일리나 경도 못 본 지 꽤 됐지. 결혼했다고.”
그는 이미 들은 사실을 재차 드러냈다.
“왜 이러실까 선생님.”
“하하하하. 어쨌든. 너무 밟지는 말고, 잘 부탁한다.”
“저희 기수 훈련하듯이 하겠습니다.”
물론, 조금만 더 과격하게요.
그거면 충분했다.
“그런데 왜 그러니?”
“아뇨. 사실 기사단의 비밀서고를 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비밀서고. 그 말에 보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비밀 서고라 함은…….”
“한 인물을 좀 찾아보고 싶어서요.”
지구의 균열은 안정화되었고 최소 몇 년간은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궁금증이 문득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네가 집행관이긴 하지만 일반 기사로 남기로 한 탓에 권한은 없단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말해주면 내가 한번 찾아는 보마.”
“그럼, 페르세포나에 대해 한번 조사해주실래요?”
“페르세포나? 그건 누구냐?”
“부탁드리겠습니다.”
“흠…… 일단 알았다. 한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긴 한데.”
더는 깊게 묻지 않는 그였다.
“알았다. 금방 한번 찾아보마.”
보리스의 협조를 받아낸 후. 나는 그에게 와인 하나를 선물한 뒤 총 본산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익숙한 인물이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게 보인다.
“저는 그냥 평기사입니다.”
“강자에 대한 예우일 뿐입니다.”
총본산의 전력이었던 바사라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나를 지나쳐 걸어가 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이내 천천히 다시 움직였다.
* * *
지구, 일본의 합동 분향소엔 수많은 사람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부분 이번 사태에 휘말려 사망한 각성자들이었다.
실제로 균열이 터지기 전에 막은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런 분향소의 사진 중앙에는 어떤 인물의 웃는 얼굴이 찍혀 있었다.
티오니스의 성자. 데이비 올 라운.
바로 그였다.
일본 내에선 이번 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분향소에 시신 없는 그를 기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별로 마냥 좋은 사이는 아니라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균열을 막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대체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의문이지만. 이번 일로 모든 국가는 확실히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의 수준을 당장 끌어올리지 않으면, 데이비가 경고했던 차후의 대균열에서 무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거라는 것.
데이비처럼 압도적인 클리어는 불가하겠지만 적어도 다수의 힘을 모아 막아내는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그 입장이었다.
“코오나 양 또 왔습니까.”
분향소를 관리하던 인물인 외교부 인물 와키자카 사토는 피곤한 표정으로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네…….”
“그와 많이 친분이 있었나 봅니다.”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저 의무 때문에 제 후견인이 되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제가 못나서 그런 거니까요.”
“코오나 양은 충분히 귀엽고 착한데 말이죠.”
“그 사람이 보기에 저는 상당히 답답한 인물이었을 테니까요.”
그 말에 와키자카는 말없이 코오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는 저는 그러면 안 됐어요.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면 안 됐어요…….”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람은 본래 잃고 나서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법이죠. 안타깝지만…… 이번 일을 딛고 일어서서 더욱더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흑…… 흐흑…….”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였다.
본향소엔 유가족들과 조의를 표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각성자 분향소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도 다수 보였다.
러시아의 대통령. 미국의 대통령.
한국, 중국, 영국과 프랑스. 그 외에도 데이비와 친분이 있던 국가나 도움을 받았던 국가에서는 모두 통치권자나 대리할 사람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물론 단순 거래 대상이었던 이들에겐 문제가 안 되지만 직접적으로 데이비에게 도움을 받았던 이들은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급기야 몇몇 국가는 데이비와 굉장히 우호적이었기에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지키고 희생했는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방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퍽 우스운 모습이지만 그들은 정치적이든 인륜적이든 그것을 선택했다.
참 씁쓸한 표현이지만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런 분향소의 흐름을 보며 코오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한 여성을 바라보았다.
데이비의 의남매. 신성 그룹의 차기 총수라 불리는 젊은 아가씨.
신현아였다.
그녀에게 사과를 해야 할까.
할 자격이나 있을까.
정작 현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 다시는 만날 가능성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억에 하나라도 그에게 다시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말하고 싶었는데…….”
“자…… 그럼 합동 발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분향소를 담당하던 직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든다.
“흐윽…… 꼭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무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