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4화
나를 포함한 268기 기수들이 신입 기사로 들어온 이후 신입 기사들이 두 차례 더 들어왔다.
본래대로라면 기사단이 신입 기사들을 기수로 묶어 훈련시키는 주기는 짧아야 5년에서 10년으로 본래라면 268기 이후의 기수는 없어야 정상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과거 흑마법사들과 일루미나티 같은 습격, 그 외에도 여러 사건으로 인해 기사단의 수가 확 줄어든 터라 기사단 총 본산에서도 별수 없이 조금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신입기사들을 모아온 것이다.
오만한 놈들이 들어온 게 그 때문일까.
북쪽 위험지대 감시로 파견되어있다가 돌아온 앵커 나이트 소속의 쌍둥이 자매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여 알려주었다.
“원래 후배 기수가 없어야 하는데 말이야.”
추가로 유입된 기사단은 269기 8명. 그리고 문제의 270기수 10명.
수가 268기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이 정도도 겨우 끌어모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기사단을 차출하는 방식은 여러 조건을 필요로 하니까.
“물론 오만한 성정은 잘못됐어. 하지만 그들을 비판할 수 없는 건 그에 따른 실력이 충분하고, 본인들의 의지 또한 이 기사단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이 있기 때문이야.”
즉. 성질머리가 나쁜 놈들은 아닌데 자의식 과잉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기사단에도 앓는 소리는 나왔지만, 선배 기수가 어디 호락호락해? 리인포스 알파만 조금 유별난 거지.”
아직 녀석들이 견습 딱지를 달고 있는 것은 정식 기사 승격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배 기사들의 훈련을 본 270기 녀석들이 갑작스레 선배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며 대놓고 도발을 한 것이다.
물론, 선배들 입장에선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후임양성에 필요한 녀석들을 심하게 다룰 수는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
본래 견습 기사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대규모 임무에 차출되면서 견습 녀석들의 훈련을 266기가 맡게 된 것.
문제는 266기가 유일하게 마스터급 기사가 없는 기수라는 게 문제였다.
좋은 선배냐 한다면 정말 좋은 이들이지만 실력 면에선 조금 딸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탓에 266기가 훈련을 당당하던 도중 기사 하나가 견습 기사에게 당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이후로 저 꼴이었다.
선배가 생각보다 별것 아녔다는 사실을 깨달은 녀석들은 급기야 저들끼리 뭉치며 선배들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리인포스 알파 내에 있는 최소한의 위계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선배들의 경우 대부분 선생들과 함께 임무를 나가 있는 터라 그들을 교정해줄 이가 없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특질능력자가 많은 이번 기수에서는 조금 특출난 힘을 지닌 녀석들이 많은 터였다.
“그래서 우리 268기가 호출된 거야.”
266기부터 해서 가장 성적이 좋은 268기. 임무에서 복귀시킨 그들을 이용해 이번에 새로 들어온 270기 견습 기사들을 교정하라는 게 임무였다.
“그냥 다 불러내서 쥐어패면 안 돼?”
“다무르. 그 입 다물어.”
“쩝.”
루시아 쉘만의 파트너, 성기사 필디르의 말에 다무르 녀석이 입을 삐쭉거리며 물러났다.
“후우…….270기 녀석들이 하다못해 저 다무르 녀석 정도만 되었어도…….”
“내가 뭐!”
“적어도 너는 짜증은 나도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리진 않았잖아.”
“…….”
268기 중 다무르 녀석도 제법 세속적이고 찌든 면이 있지만 그런 녀석조차 최소한의 예의는 반드시 지켰다.
하지만 이번 녀석들은 달랐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위험에 심취한 아이들.
물론, 그 기준이라는 모호하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 녀석들은 아직 마경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266기 선배들은 협동과 정보 조사가 중요하다 말했는데. 그걸 들어먹질 않으니까.”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내게 일리나가 물었다.
“저건 힘으로 찍어누른다고 되는 거 아닐걸.”
“알아.”
“데이비! 방법이 있어?”
애초에 전면전으로 붙어도 압살의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결론적으로
“결과적으로 저놈들은 기본적으로 기사단 선배들이 쌓아 올린 매뉴얼을 개무시하고 있다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럼 내가 나설 것도 없네.”
이놈들에게 준비와 정보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보여줄 때가 됐다.
“이놈들 훈련이 언제라고?”
“내일.”
“훈련장은?”
“예전에 네가 우리를 상대로 괴이한 짓을 저질렀던 곳.”
“그래. 조건 좀 바꾸자. 이 훈련 말이야. 일리나와 내가 전면에 나서면 아무 효과가 없으니까.”
그 말에 동기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라고. 너희들이 나를 상대로 얼마나 치밀해졌는지를.”
“아주 찍어눌러 줄게.”
* * *
“최고 기수라더니 뭐야. 정작 두 사람이 빠지면 무슨 소용이야.”
“아예 빠지는 건 아닌 모양이야. 멀리서 지켜보고 조금만 도와준다고 하는데. 직접 나서진 않는다고 하니까.”
“그런데 우리 승리조건이 뭐? 목적지에 도달해서 코어에 손을 대면 이긴다고? 장난해?”
더 황당한 것은 코어를 지키는 건 오로지 3명까지. 그 외에는 코어 반경 2킬로미터 내에 접근 불가능이라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즉, 다른 기사들의 발을 묶고 최대한 빠르게 코어까지 진입. 그 후에 코어에 손을 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3명임 막고는 있겠지만 재능이 과한 270기 견습 기사들에게 선배 3명 정도는 어렵지 않다 판단되고 있었다.
“우리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네.”
“실제로 별것도 없었으면서.”
꽤 유명한 268기 선배들과 전략전 훈련을 한다는 소식에 270기 10명의 견습 기사단원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268기에는 그 유명한 인물이 둘이나 존재한다.
일인 군단이자 성자 데이비 올 라운.
검신 하레스의 검을 물려받았다 알려진 엄청난 재능의 존재 일리나까지.
그 두 존재가 이번에 훈련에 참가한다는 말로 인해 긴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그 두 사람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직접 적으로 싸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일리나는 훈련에서 빠져버렸다.
그러니 270기 막내 견습들의 시선에선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270기 기수의 리더나 다름없는 소년 바루스는 인상을 찡그린 채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268기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느긋하게 말장난을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데이비도 보였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말이야. 사람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러다가 한번 제대로 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대놓고 들으라는 듯 빈정거리지만 268기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윗 기수 선배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268기 선배들은 개가 짖나…… 라는 듯한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식당에서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선배들은 저들끼리 떠들기에 바빴다.
그 때문일까.
팀장인 바루스의 만류에도 혈기가 넘친 270기 동기 중 한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을 가지고 걸어 나갔다.
그리고.
쿠당탕!!
일부러 넘어지며 식판 전체를 쌍둥이 자매인 샤이르에게 끼얹어버렸다.
싸늘한 침묵이 오간다.
바루스는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제지하지 않았고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선배들의 웃음소리는 대번에 끊어졌다.
“이 새끼들이!!!”
격분한 헤그가 벌떡 일어나 거병을 움켜쥐었지만 그 곁에 있던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펜디르가 그의 팔을 잡아 앉혔다.
“식사 중에 떠들지 마. 에너지 보급만큼 중요한 건 없어.”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이런 사태가 되었음에도 전혀 나서지 않는 268기. 데이비가 포함된 선배 기수의 행동에 소년은 더욱더 여유가 생겼는지 급기야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하. 268기 선배님들이 대단하다는 말도 들었는데. 설마 이런 것도 못 피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씨익 웃으며 도발하는 그를 보며 샤이르 렌다는 자신이 계약한 물의 정령을 불러 끼얹어진 음식을 깔끔하게 털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후배님. 앞을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안 그래?”
“서……선배가 선배다워야 선배 대접을 하지요. 안 그래요?”
소년 베델의 도발에 샤이르는 다 먹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경에 가면 식사를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음식으로 장난치지 마.”
“하…….”
끝까지 도발에 안 넘어가 주는 선배들의 행동에 베델이 더 나서려 했다.
하지만 270기 팀장인 바루스가 그를 제지했다.
“그만해 베델.”
“하지만 팀장!”
“됐어.”
담담하게 말한 그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데이비에게 다가갔다.
느긋하게 식사를 음미하고 있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바루스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이름이?”
“바루스입니다. 특질능력자죠.”
“그래. 재능있는 후배가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어.”
“예. 조만간 선배님과 모의 전략전을 펼치는 것도 기대하고는 있습니다. 다만…….”
그가 주변을 스윽 훑었다.
고작 이 인원으로 되겠냐는 표정이다.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 선배님이나 일리나 선배님이 직접 나서지 않으신다면…….”
“이봐 바루스 후배.”
“예?”
“기사단 수칙 8조가 뭐지?”
그 물음에 바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기사단은 언제고 최선을 다하며, 승패에 승복하여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입니다.”
“그래. 그거 잊지 않기를 바라지.”
담담하게 말한 데이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이에 베델이 바루스의 곁으로 다가와 피식 웃었다.
“별거 없네요. 역시 팀장의 힘입니다.”
“…….”
베델을 포함한 다른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바루스는 묘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모의 전략전을 펼칠 시간이 되었다.
268기 동기들은 상대가 후배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봐 후배들. 군장이 상당히 단출한데?”
거병을 등에 멘 헤그가 베델을 향해 묻자 베델이 비웃음을 던졌다.
“그런 건 쓸 일도 없을 겁니다. 하나같이 겁쟁이들이네요.”
“그래 뭐. 너희들이 그렇다면야.”
기존의 식량도 최소화하고, 리페어 툴이나 방독면. 그 외에 마법 아티펙트조차 최소화했다. 그들의 행색은 그야말로 초고속 행군에 특화된 것이었다.
“너희 선배들이 어떤 전략을 해올지도 모르는데 너무 자신만만하네.”
“오히려 선배들이야말로 저희들을 너무 쉽게 보시는 거 아닌가요?”
“다들 준비해.”
한 차례 모의 전략전을 했다가 패배한 전적이 있던 266기 선배가 약간 주눅이 든 목소리로 외쳤다.
이에 각 기수는 숲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266기 선배의 시작 신호가 시작되기 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들. 상식이 통하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지.”
헤그가 방독면을 쓰윽 눌러 쓰며 말했다.
“냅둬.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럼 나는 준비하러 간다.”
필디르가 파트너인 루시아 쉘만의 팔을 잡아끌었다.
“성녀 다프네 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쿵!!
그때였다.
루시아의 성복 치마 아래로 무언가 묵직한 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이게 왜 떨어졌담…….”
그녀가 스커트 아래로 떨어뜨린 건 다름 아닌 묵직한 메이스였다.
“너 그걸로 애들 다 죽일 일 있냐?”
“걱정 말아요. 다프네 님의 가호가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데이비.”
그때 쌍둥이 자매인 샤이르가 내게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전부 다 나서면. 정작 코어는 누가 지켜?”
그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셋까지만 지킬 수 있다면서. 그럼 최소 헤그와 펜디르. 그리고 내가 지키는 게…….”
“괜찮아. 일리나는 물러났지만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잖아.”
“정작 그 메가트론도 전면에 나선 거 아니야?”
메가트론을 언급하는 샤이르의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독한 놈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이미 이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부 은연중에 흘렸다.
하지만 270기 후배들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 결과는 곧 결과로 나오리라.
삐이이이익!!
이윽고 거대 독수리의 울음소리와 함께 전략전이 시작되자 나는 곁에 있던 메가트론을 향해 말했다.
“포격위치로 이동. 포격 준비.”
[명령 수행 중.]
직접 나서지 않는다 했지 손을 아예 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데이비 올 라운이다.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서 굳이 버프 마법은 걸지 않으마. 나는 나대로 시작할 테니 알아서 잘 피하고 찍어눌러.”
그 말과 함께 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CS 멀미탄. 준비.“
철컹!!!
메가트론이 양팔을 땅에 고정시키고 등 뒤에서 뽑아낸 거대한 포신을 준비한다.
“좌표 입력, 652.522.119. 출력 3레벨.”
내 말에 포신이 기이잉!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이미 270기 기수들은 여유롭게 진입을 하고 있다.
상당히 자신이 있는 건지 속도가 만만찮지만, 곧 268기 동기들이 그들의 속도를 서서히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조금 전 제 선배들이 준비하라 한 것들이 왜 필요한지 아직 모르고 있다.
철저하게 준비해도 직접 당해보면 이게 보통 대처가 어려운 게 아니구나 할 텐데.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땐 쓴맛을 보는 수밖에.
[데이비. 우리 준비됐어.]
나는 씨익 웃으며 선고했다.
“5단계 cc 탄환. 전탄 발사.”
투쾅!!!
엄청난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경험과 조언을 무시하는 놈들에겐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