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2화
누구든 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꼬여버리기 전까지는.”
나는 팔짱을 낀 채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망할…… 망할…….”
계속해서 자책하고 있는 다프네는 끝내 페르세포나가 소멸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봐요 다프네.”
“데이비. 닥쳐.”
그녀가 싸늘하게 일갈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게 내 잘못입니까? 이미 회생 수단이 없어요.”
정확한 사실은 다르지만 나는 눈으로 보인 것만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회생이 불가능합니다. 정화가 되어야 하는데 정화를 해도 결국 그녀는 소멸한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녀를 다독이듯 말했지만,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알아. 안다고. 그래서 널 탓할 순 없어.”
“그러면.”
“하지만 데이비. 미안하지만 나는 끝까지 이 일을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그녀가 내 시선을 피했다. 스스로도 이게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녀는 끝내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업은 지고 가야겠죠. 그럼 말해주세요.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데이비. 지금은 그녀 혼자 있게 두는 게…….”
“아니. 나도 확인은 해봐야 무엇을 하든지 하니까.”
“그래도 그렇…….”
“아니야.”
일리나의 말을 끊으며 다프네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녀를 찾았을 때. 난 그저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그녀의 영혼잔재는 애초에 수복이 안 되는 수준인걸.”
다프네를 향한 극도의 증오만을 내비치는 페르세포나의 혼은 정화를 버티지 못하고 소멸할 만큼 약해져 있다.
“그녀가 이토록 내게 증오를 품고 있을 거라곤 예상 못했…… 아니, 예상했다고 해야겠네. 그녀가 마굴에 떨어진 이유는 결국 나 때문이니까.”
성녀 다프네를 희생시키는 건 불가능하기에 그 대타로 페르세포나를 희생시켰다.
“그 기사 놈들?”
“맞아. 그 씨 발라먹을 배신자 놈들.”
이후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내가 부순 석상들은 하나같이 마굴의 힘의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다프네의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그녀가 마굴에 간섭할 수 없게 만드는 억제장치.
정확히 말해서 저 석상은 다프네를 지키기 위해 프리아 여신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녀가 마굴에 간섭할 수 없는 금제이며, 그녀는 절대로 부술 수 없는 것.
여기까지는 사실 다프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석상이 부서지려 할 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그 석상을 부수고 내가 마굴에 간섭할 수 있게 되면 나는 영혼 교환을 사용할 수 있어.”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그녀의 영혼을 정화시켜서 윤회의 고리에 들 수 있게 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어.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프리아 여신이 내게 걸어둔 금제인 저 빌어먹을 석상들을 부숴야 가능하니까.”
“아무리 망가져도 반신격 영혼이 스며들면 윤회 정도는 할 수 있겠네요.”
영혼은 같은 게 아닌 이상 서로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페르세포나는 금기로 만들어진 다프네의 클론으로 본래 존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영혼이 된 것이다.
당연히 같은 영혼이니 섞일 수가 있다.
문제는 그런 선택을 내렸을 경우 지불해야 할 대가에 있었다.
자신의 성녀 성자를 극도로 사랑하는 프리아 여신이 금제를 걸어둘 정도면 그것이 원하는 대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다프네와 페르세포나의 입장 반전.
고작 페르세포나의 영혼에 윤회의 기회를 주기 위해 멀쩡한 다프네가 소멸되거나. 그보다 더 끔찍한 사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페르세포나가 당신을 그렇게 미워하는데도 그녀를 구해야 합니까? 이런 성격 아니었잖아요.”
그 물음에 다프네는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억지로 나오지 않으려 하는 대답을 쥐어 짜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나를 미워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좀 전에도 말했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다프네의 클론. 성녀 양산계획의 유일한 산물.
“그건 미련에 가깝네요.”
“그게 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 것도 아니고, 평생 남을 위해 살다가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간 그녀를 그 지경으로 만든 원인은 내게 있는데.”
애초에 그녀를 마굴에 던져넣은 것은 마굴에 홀려버린 그 배신자들이다.
몬스터 여왕은 존재해야 한다라며 외치며 그들을 지키던 놈들.
그놈들이 범인인데 왜 다프네가 그걸 뒤집어쓰는가.
평소 다프네라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냈겠지만. 지금 그녀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건 어쩌면 페르세포나가 살았던 당시 그녀에게 어떤 미련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이 일의 발단은 내가 몬스터 여왕에 대해 알고 그것을 다프네에게 전해주면서 시작되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안됩니다.”
“……무슨 소용인데. 네가 그녀를 소멸시켜버렸는데.”
그녀가 무슨 계획을 세웠건 페르세포나의 영혼이 남아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그녀의 눈앞에서 페르세포나의 영혼잔재를 베어버렸으니 다프네로써도 더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힘없이 추욱 처진 그녀를 일리나가 위로해보지만 어떤 말도 현재 다프네를 위로할 수단은 없었다.
* * *
다프네를 뒤로한 채 암숲의 어두운 곳까지 들어온 나는 아직 남아있는 마지막 마굴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균열 같은 형태의 마굴은 처음 봤을 때와 큰 차이는 없었다.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지만, 확실히 느낌은 있었다.
굉장히 꺼림칙한 느낌이.
츠츠츠츳…….
마굴에 손을 들이밀기가 무섭게 검은 암흑이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서서히 확산되어 내 팔을 휘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딱히 가리지는 않는다는 거네.”
조용히 중얼거린 나는 마굴의 입구에 서서히 신력을 끌어올려 쏟아붓기 시작했다.
석상이 매개체가 되어 마굴을 유지하기에 석상이 박살 나면 자연스레 마굴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다프네에게 걸린 금제를 풀 생각은 없었다.
페르세포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콰직!! 콰지지지직!!
“내가 기분이 좀 많이 나쁘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곧 마굴 속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말했다.
“얼른 끝내자.”
츠츠츠츠츳!!!
동시에 내 손에 검붉은 기류가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마지막 마굴을 후려쳐 부숴버렸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공간이 갈라지고 마굴의 균열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서히 사라진다.
동시에.
축소되는 균열 속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와 내 팔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나를 잡아당기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역으로 내게 끌려 나왔다.
-키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내게 괴성을 토해내는 이는 다름 아닌 페르세포나였다.
그녀의 형체는 좀 전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다프네나 일리나가 보았다면 깜짝 놀랄 모습이었다.
현재 페르세포나의 영혼잔재는 초단이를 버텨낼 힘은커녕 정화를 받아낼 힘조차 없으니까.
그녀가 소멸하지 않고 마굴 속에서 다시 튀어나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그녀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이었다.
내가 벤 것은 페르세포나가 아닌. 페르세포나가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던 힘의 연결 끈.
즉. 페르세포나는 소멸한 게 아니라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끊어져서 다시 마굴 속으로 쫓겨난 것이었다.
-키……키아아악!! 다……다프네…… 다프네!!
악을 쓰며 저항하는 그녀를 힘으로 찍어눌러 제압한 내가 천천히 말했다.
“다프네는 당신이 소멸한 줄 압니다.”
그 순간 그녀가 움찔거렸다.
“정신 아직 유지하고 있죠? 솔직히 존경스러울 정도네.”
그녀의 영혼이 조각났으면서도 의지를 유지하고 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말하기 어려우면 조금 도와는 드릴게.”
나는 그녀의 몸에 생명력을 서서히 불어넣었다.
임시방편이고 정화에 써먹으려도 써먹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녀를 잠깐 안정시키는 데엔 충분하리라.
그녀는 기적에 가까운 존재였다.
파스스…… 파스스스스…….
끔찍하게 일그러졌던 페르세포나의 피부가 마치 갈라지는 것처럼 벗겨진다.
그리고, 아주 일부 그녀의 육신이 새하얀 빛을 머금었다.
그러기를 잠시. 괴성을 내지르던 그녀는 잠시동안 자신의 변화를 눈치챈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좀 전까지 증오를 내비치던 게 거짓이었다고 말하듯 내게 말했다.
-아픔이 사라졌어…….
“이제 내 말 들립니까? 귀찮으니까 한번에 갑시다.”
-네가 날 도왔구나. 고마워. 그런데 어떻게…….
“연기가 너무 어설퍼서 눈치챈 겁니다.”
일리나는 미숙하고 다프네는 패닉에 빠져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본래대로라면 다프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연기였다.
“자. 그럼. 페르세포나라고 부르면 됩니까? 주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그녀를 제압하던 손을 풀며 손가락을 튕기고 공간을 단절시킨 내가 물었다.
“어떻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까.”
조각난 영혼이 어떻게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아직까지 흩어지거나 미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다프네를 위해서 버티고 버텼을 뿐이야.
그게 말 처럼 쉽게 되면 기적이 괜히 기적이 아닌데.
“다프네는 당신이 자기를 미워할 거라던데.”
-아니. 내게 그녀는 너무 소중해. 그녀가 있기에 내가 있었으니까.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이제는 완전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프네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그녀가 품고 있는 분위기는 다프네와는 정반대였다.
-석상이 부서지면 안 돼. 나는 그걸 막기 위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의지를 쏟아부어 그녀에게 보여 줄 수밖에 없었어.
다프네를 향해 끝없이 증오를 표출하는 페르세포나를 보면 다프네가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그녀가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 석상에 글귀를 새긴 거, 당신이죠?”
다프네와 자신의 연관점을 눈치채 달라고.
-맞아.
그녀가 옅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 내가 부어 넣은 생명력도 한계가 오는지 그녀의 형체가 다시 끔찍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에 그녀는 다급히 내 팔을 잡고 말했다.
-꼬마야. 잘 들어 절대 그 석상이 부서지면 안 돼. 그녀는 아직 그 석상의 진짜 존재 이유를 몰라.
“당신은 알고?”
-처음이자. 마지막 여신의 계시를 받았으니까.
석상에는 다프네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석상을 부수게 되면 내게 간섭하여 영혼 교환을 하려 들지도 몰라.
정확하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그렇게 되기도 전에 내 영혼이 소멸하고 그 여파로 그녀의 영혼도 반쪽으로 조각날 수 있으니.
문득 페르세포나가 금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석상을 부수지 말아 달라는 것일까.
듣던 것과 다르게 그렇게 이타적이진 않은…….
-그렇게 되면…… 몬스터 왕을 잃어버린 마굴이 대륙 전역에 퍼지게 될 테고. 끝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 그걸 막기 위해선 나를 대신할 몬스터 여왕이든 왕이든 존재해야 해.
그녀의 말에 나는 이해했다. 석상이 부서지면 다프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페르세포나의 혼은 그대로 소멸한다.
즉 석상이 두 영혼이 이렇게 존재할 수 있게 버텨주고 있는 마지막 기둥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가 우려하는 건 석상이 부서져서 자신의 영혼이 흩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렇구나. 당신이 소멸하면 다음 대의 몬스터 왕이 생겨날 때까지 계속해서 희생이 생겨날 테고, 그걸 원치 않으니. 당신이 영원히 그 자리에서 고통받으면서 지키겠다?”
-…….
몬스터 여왕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세상의 시스템 규칙상 마굴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야 한다면 그 안의 몬스터를 제어할 몬스터 여왕 또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라스트 위스프를 배신했고 몬스터 여왕을 지켜야 한다며 갑자기 헛소리를 한 놈들의 대의는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마굴과 싸울 바에. 차라리 한 명을 희생시켜 그것을 영원히 유지시키자고.
“그 말을 듣고 자진해서 뛰어든 겁니까?”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긍정이라는 것을 모를 순 없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면 나를 대신하여 [헬]로 떨어지려 들 거야. 몬스터 여왕은 가장 적합한 영혼이 아니면 불가능해.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현재 세상에서 몬스터 여왕이 될 수 있는 존재는 그녀뿐이야.
끝없는 나락 [헬]
마굴의 정식명칭인 모양이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그녀에게 내가 아직 존재한다고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 되면 그녀는 석상을 부수려 들 테니까.
“하나 물어봅시다.”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영혼잔재에 의식이 남아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걸 잘 모르는 모양인데.”
페르세포나와 다프네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눈앞에 의문이 있으면 일단 풀어야 했다.
“당신 말대로 당신이 몬스터 여왕으로서 계속해서 대륙을 수호하고 있는 거라면, 곧 당신의 영혼이 완전히 찢겨지면 그때는?”
-…….
“오만하게 설마 끝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드는 두 성녀의 행동거지에 나는 비웃음이 나왔다.
“재밌는 계획이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