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3화
그녀는 생명력으로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지직.
-으읏…… 흐읏…….
고통스러운 듯 그녀의 영혼이 노이즈를 일으키며 비틀거렸다.
사실상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희생하여 지금껏 그래왔듯 계속해서 마굴 즉 [헬] 의 존재들을 억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시스템. 그런 마굴이 단순히 닫힌다고 사라지는 게 아닌, 저들을 억제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억제자인 페르세포나가 무너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륙 곳곳에 몬스터들이 머리를 들이밀 것이다.
“그 전에 하나 물어봅시다.”
나는 페르세포나를 향해 물었다.
“지구 쪽 차원에 몬스터들. 마굴에서 나온 놈들입니다. 당신이 보낸 겁니까?”
-맞아.
그녀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구 차원, 평온의 신께서 마굴의 포화 현상을 조금 해소할 수 있게 도와주신 거야. 지구 차원에 몬스터가 유입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구 차원의 현상과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달리 선택이 없었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변화.
지구도 마굴도, 서로 어느 정도 이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 새끼 몬스터는?”
내 물음에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영혼은 기억이 드문드문 없으니까.
몬스터 여왕은 괴로운 자리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느낄 고통을 다른 이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저기. 날 회복시켜줄 수 있어? 비록 영혼뿐이지만. 아직까진 제어할 수 있어. 내가 마굴을 억제할 테니. 내게 다시 움직일 힘을 줘.
그녀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계획이 있다고 했죠.”
-응?
“다프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그리고, 당신은 당신대로 윤회에 들 수 있게.”
-그건 불가능해. 둘 다 얻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안 되는 일이니까.
다프네의 문제를 제하고서라도 페르세포나를 구원하면 마굴이 날뛴다.
마굴을 안정시키면 페르세포나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야. 나는 그녀의 영혼을 복제해 만든 금기를 어긴 클론, 석상으로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마굴이라는 단절된 공간 속에 있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빠져나간다면, 그땐 두 영혼이 어떤 충돌을 일으킬지 몰라.
“선결과제는 총 두 가지네요. 몬스터 여왕의 대체. 그리고, 두 영혼의 충돌.”
프리아 여신이 내게 남긴 권능중에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게 있을지.
그게 가능했다면 프리아 여신이 이미 그녀를 구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프리아 여신이 사랑하는 건 다프네지 금기로 태어난 페르세포나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당시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애의 여신. 어쩌면, 그녀는 내가 페르세포나를 언젠가 만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레이나를 구원하여 내게 보낸 게 아니었을까.
“딱 한 가지. 조금 위험하고 불가능에 가깝지만 가능한 방법이 있어요. 확률은 극히 낮고. 당신이 더 이상 당신이 아니게 될 겁니다.”
물론 그녀는 레이나 때와는 달리 잘해봐야 윤회 가능성을 부여하는 정도일 뿐이다.
“실패하면 당신의 영혼은 소멸할 테고. 나는 다프네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굴을 소멸시킬 겁니다.”
-…….
“반대로 성공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다프네와 영혼이 같지 않게 됩니다. 둘 다 존재할 수 있게 되니까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 여왕의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는 건 네 말대로 힘들어.
다만 이렇게 해서 성공한다 해도 몬스터 여왕을 대체할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녀는 떠날 수 없다. 아니, 떠나지 않으려 들 것이다.
“당신이 낳은 새끼 말입니다.”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강한 힘과는 별개로 정말로 순수하던데.”
순수하기에 페르세포나가 표면적으로 만들어놓은 의식에 감화되어 다프네를 향한 증오를 내비쳤다.
“인간이 몬스터 여왕이 되었기에 고통스럽다면, 반대로 몬스터가 몬스터 여왕이 되면. 그땐 어떨 거 같습니까.”
몬스터이기에 몬스터 여왕이 되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힘이 강해질 뿐.
그기에 제어가 된다면?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또 그 새끼 몬스터에게 있어서 정말로 잔인한 강요였다.
-그건…….
“당신은 어떤 방식이건 이제 오래 못 버팁니다.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버릴 건 버려야 하나.
매번 기적을 바랄 수는 없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텐데. 그녀와 내 영혼이 같다는 건 영원히 변치 않아.
“맞아요. 나는 프리아 여신처럼 온전한 영혼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미 죽은 그녀를 굳이 되살릴 필요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그녀는 차라리 기억을 모두 지우는 게 나으리라.
“시간이 갈수록 확률은 줄어듭니다. 사실 이것도 당신이 의지를 아직 유지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고요.”
-…….
“할래요 말래요. 다프네와 당신 모두 만족할 방법은 이것뿐인 것 같은데.”
-실패하면?
“세상의 시스템이 어떻게 되든 마굴을 소멸시킬 겁니다.”
그녀에게도 물러설 길이 없어졌다.
-해볼게. 얼마나 괴롭던 버티는 것만큼은 자신 있어.
“행운을 빌게요. 다른 케이스처럼 자고 일어나면 끝난다 이런 건 불가능하니 이 악물고 버티셔야 합니다.”
* * *
몬스터 여왕이 되면서 겪을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보더라도 멀쩡한 정신을 지닌 이가 자신의 살점이 썩어들어가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육체가 뒤틀리는 것. 끝없는 고독 속에 홀로 던져지는 괴로움을 견디는 게 쉬울 리 없는 것은 알고 있다.
몬스터가 아니기에 몬스터가 되면서 느끼는 고통.
이게 사실 다른 말로 하면…….
“태생부터 몬스터는 그렇게 뒤틀릴 것도 없다는 거잖아.”
다프네를 찾아온 나는 그녀에게 대뜸 말했다.
“전에 내가 지구에서 어떤 몬스터를 봤다고 말했죠.”
“…….”
“그놈 찾아냅시다. 마굴 시스템은 빌어먹을 시스템이지만 없으면 안 돼요.”
“그래서.”
“그놈을 다음 대의 몬스터 여왕으로 만들 겁니다.”
“야. 데이비.”
“아니면, 뭐 다른 사람이라도 또 희생시킬래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그놈을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런데. 그놈이 과연 네 생각대로 움직여줄까? 또 한가지. 나는 이 빌어먹을 마굴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
그녀는 페르세포나가 결국 마굴 때문에 고통받고 끝내 마굴 때문에 소멸했다는 사실이 분했던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말했다.
“당신이 내게 늘 하던 말이 있잖아. 자신의 위치를 잊지 말라고.”
내 말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으니 이런 결정을 내린 거겠지?”
“지금은…… 아직 확정된 게 없어요. 괜히 말했다가 설레발 치게 만드는 것도 그리 원치 않고, 나름대로 서프라이즈라 생각합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는 거야. 일이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
일리나에게 설명을 해주며 나는 선택을 종용했다.
“할래요 말래요. 쫄리면 돌아가요. 나 혼자서라도 할 테니.”
“아니. 빌어먹을 마굴 시스템은 이대로 두지 않겠어.”
내 말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다시 뜨며 대답했다.
“우선 페르세포나가 깨어났을 때 그 여파로 나타난 몬스터부터 정리해. 이야기는 그 후에.”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페르세포나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그녀가 다프네를 막기 위해 한 행동으로 인해 마굴의 영향이 퍼져나갔다.
대부분은 페르세포나가 억제했지만 단 한 곳.
한곳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몬스터가 이미 유출되어버린 것이다.
“꺄아아악!!”
“젠장 다리가!!”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의 서쪽 기숙사.
현재 그곳은 거대한 몬스터의 침공으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다들 움직여!!”
성기사인 필디르와 루시아, 그리고 기사단에 남은 소수의 기사단원들은 필사적으로 기사단에 남은 후배 기수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단발성 마굴이었다.
몬스터를 뱉어내자마자 마굴이 사라지긴 했지만, 문제는 그 몬스터의 존재에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튀어나온 마굴은 지옥의 문 그 자체였다.
“저건 대체 뭐야…… 완전히 처음 보는 거잖아.”
필디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괴물을 틀어막고 있는 기사단장들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기사단장들의 힘으로도 저 괴물을 막기엔 버거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전력은 현재 마굴의 조사로 인해 판도라 영역 내부로 진출했다.
이곳에 남은 건 대부분 후방 지원, 혹은 269기나 270기수처럼 아직 다 여물지 못한 새싹들.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루시아!!! 뭐 하는 거야!!!”
그때 멍하니 달려나가던 루시아 쉘만은 필디르의 갑작스런 외침에 눈을 부릅뜨며 몸을 숙였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벽면이 박살 나며 그 틈새로 기괴하게 생긴 야수형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2족 보행형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염소, 혹은 사자와 흡사했다. 문제는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을 보았을 때 도저히 이걸 하나의 동물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마치 수십 마리의 동물을 합쳐놓은 듯한 뒤틀림. 그 뒤틀림은 정상적인 게 아니었다.
“으읏!! 이리 오세요!!”
루시아는 허겁지겁 도망치던 270기 후배 기수를 잡아당겨 공격의 범위에서 빼낸 뒤 몸을 날리듯 메이스를 휘둘러 공격을 상쇄시켰다.
“꺄악!!”
하지만 버프 마법을 걸어도 근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 안 차려?! 정면으로 맞서지 마! 지금은 일단 후퇴! 단장님들이 움직이실 때까지 우리 임무는 도망치는 거다!”
“알겠어요!”
두 사람이 다시금 270기 후배들을 인솔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마물이라는 게 저런 거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신들의 힘에 대한 자신감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적을 보았을 때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힘의 여부를 떠나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들의 습격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두려웠다.
평소 자신들이 무시했던 선배들은.
이런 괴물들을 상대로 도망치고 유인하고 토벌하면서 대륙을 지켜온 것일까.
고작 힘만 믿어온 자신들과는 너무 달랐다.
“너희들은 기사단의 미래야. 선배들이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잘 따라와!”
필디르가 방패를 들고 전방을 인솔하며 내달리자 270기 후배 기수들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후방에서 그들을 보조하며 낙오되는 이가 없게끔 확인하던 루시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지금은 생각해봤자 의미 없어.’
필디르가 그냥 꿈을 꾼 거라 하였지만. 데이비가 이곳으로 자신을 날려 보낸 이후 루시아는 어떤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그게 꿈이었을까. 꿈 치고는 너무 맞아 떨어지는 게 많았다.
그렇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믿어온 버팀목인 다프네 성녀는…….
가짜였단 말인가.
그런 혼란 속에서 우울해하던 찰나.
“이익!! 그냥 싸우라고! 왜 도망만 치는!”
“안돼!!!”
참다못해 혈기를 터뜨리는 한 후배의 속 터지는 행동에 그녀가 몸을 날렸다.
자신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해 다시 덤비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는 아직 불가능했다.
-크아아아아앙!!!
다른 이들이 모두 도망치니 따라 도망치긴 했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베델은 급기야 자신이 막아서기 위해 호기롭게 돌아섰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죽는다는 직감에 그를 관통했다.
그리고.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이 그의 육신을 찢어발기려던 찰나.
루시아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그와 함께 달려나가던 다리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목숨은 건졌으나 베델의 그런 무리한 행동으로 인해 루시아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베델! 일어나세요! 여기서 멈추면 죽어요!”
“아……아아……. 서, 선배…….”
“난 괜찮으니 일어나요 어서!!”
완전히 겁에 질린 그를 향해 루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뒤에 쫓아오는 괴물들은 일반적인 마물과는 달리 알 수 없는 공포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마물과 계속해서 충돌해온 자신들은 어느 정도 면역이 있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후배 기수들에겐 극도의 공포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루시아!!”
“필디르! 먼저 가요! 저는 베델을 데리고 다른 길로 피신할 테니!”
그렇게 외치며 그녀는 뒤따라온 괴물을 베델의 앞에 서서 홀로 막아섰다.
“베델. 일어설 수 있어요?!”
“그게…….”
“기사단이라면 일어서세요! 당신은 강하니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그 외침에 베델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건방지게 굴고, 그렇게 예의 없이 굴었는데. 왜 이 선배들은 자신들을 이토록 지키는 것일까.
죽게 내버려 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당신은 기사단원입니다. 우리는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베델은 눈물을 흘렸다. 어리석었다. 자신들이 너무 어리석었다.
“죄송……죄송해요 선배……. 제가……제가 너무 어리석어서…….”
사태판단을 하지 못한 베델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제 선배가 다친 사실에 참을 수가 없게 된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참회했다.
이에 루시아가 그를 다독이며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필디르 일행을 쫓던 야수 괴물이 급기야 다리 아래로 점프하여 두사람을 더욱 몰아붙였다.
-그우우우어어어어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괴물이 서서히 다가온다.
파악!!!
그리고. 베델을 밀친 루시아를 한 손에 낚아채 들어 올렸다.
“서……선배!!!”
베델의 외침에 루시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서 가라는 시늉을 했다.
“으……으아아아아아!!”
그리고, 베델은 결국 통곡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홀로 남게 된 루시아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인생의 의미가 사라졌다.
자신이 들은 게 사실이라면, 성녀 다프네가 가상의 만들어진 존재이며 제대로 된 존재가 아니라면, 결국 자신은 무엇을 믿고 살아온 것일까.
그렇게 슬픔에 휩싸인다. 성녀 다프네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서 교단에 입적한 그녀가. 지금껏 살아오며 지탱한 모든 게 부서졌을 때 느낄 절망은 거대했다.
“태초의…… 휘광이시여…….”
그녀는 그렇게 절망하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잠깐 시간을 벌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녀가 기도를 읊기 시작했다.
본래 다프네를 향해 올리던 기도가 아닌. 프리아 여신을 향한 기도를.
하지만 기도가 완성되기도 전 그녀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어떤 여성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세 쌍의 빛으로 된 날개를 흩날리며 다가온 그녀는 단지 손을 뻗는 것으로 야수형 괴물을 그 자리에서 증발시켜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처음 봤을 때부터 본 적 없던.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자신이 믿어온 존재가 사실 몇몇의 업적이 합쳐져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였음을 알았을 때 느낀 허탈함과 슬픔은 거대했다.
하지만 루시아는 반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페르세포나라는 또 다른 성녀는 둘째 치고 눈앞의 그녀도 결국 자신이 아는 다프네 성녀라는 것을.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토록 믿어왔던 존재를 아무런 미련 없이 영접하게 된 루시아는 만족스레 웃으며 정신을 잃었다.
“얘 좀 아픈 거 같은데?”
“냅둬요. 무슨 생각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으니.”
그리고 그 뒤로 데이비의 목소리와 함께.
“기사단에 있는 마물들 전부 치우는데 3분 준다. 움직여라.”
데이비의 말에 따라 하늘을 검게 물들이듯 검은 흑룡이 날아든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날개 없는 거대한 지룡과 두 정령왕. 그리고 4마리의 신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단 본부를 초토화 시키던 몬스터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존재들의 공습에 일제히 당황하며 벗어나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