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4화
-끄우어어어어어!!
기괴한 염소 울음소리를 터뜨리는 염소형 야수 괴물이 거대한 첨탑에 매달려 포효를 터뜨린다.
하지만 그렇게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던 놈은 곧이어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거대한 흑룡의 플라잉 니킥에 그대로 괴성을 내지르며 고꾸라졌다.
-케에에엑!!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처박힌 염소 괴물이 몸을 일으켜 포효를 터뜨리지만, 놈은 반격할 수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폭풍 같은 바람이 몰려들어 놈을 압박했고 이내 칼날처럼 회전하며 모조리 핏방울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흑룡의 출현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거대한 체격을 지닌 탓에 공격이 제대로 박히지 않던 괴물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거대한 지룡에게 물려 패대기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득!!!
게다가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는지 거대한 지룡은 놈을 물어뜯은 뒤 그대로 마그마와 같은 것들을 뿜어내어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일방적인 학살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리인포스 알파 본거지를 지키던 기사단장 일부는 마물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내비치며 나타나 괴물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을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이비의 소환수는 정말 경악스럽군…….”
“저렇게 일방적으로 처리가 가능한 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애초에 저 지룡은 전에 봤던 샨드라미네아……가 아니었나?”
“데이비가 조련했다더군.”
“저 흉포한걸? 허 참…….”
“솔직히 저는 살면서 정령왕의 존재를 실제로 보는 게 이렇게 쉬울지는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령사 계통의 기사들은 허탈함을 드러냈다.
“그중에 가장 괴악한 건…….”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새하얀 토끼가 거대한 사자형 마수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어마어마한 주먹질을 쏟아붓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방, 한방에 살점이 뭉개지고 대지가 뒤틀리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붉은 팬티 한 장만 걸친 저 새하얀 2족 보행형 근육 토끼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갑작스레 굉음이 울려 퍼지며 크기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방적으로 거대한 괴물은 그 크기가 큰 거로 유명한 샨드라미네아나 메가로드리아 이상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엉!!!
“크윽?! 포효에 이 무슨 힘이?!”
단순 포효만 내질렀음에도 마스터급에게조차 영향을 끼칠 정도의 위압이 느껴진다.
“저건…… 뭐냐. 늑대야?”
“지옥 파수견……이구나.”
거대한 세 개의 늑대 머리에 터질듯한 근육을 지닌 괴물은 겉보기에도 이전과는 격이 다른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맡겠네!”
기사단장 중 연륜이 많은 사내 한 명이 바닥을 부술 듯 박차며 놈에게 날아들었다.
위협적인 오러 블레이드가 괴물의 머리 중 하나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카아앙!!
“이런 미친?!”
그토록 예리한 오러 블레이드가 그대로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동시에 괴물은 거대한 팔을 이용해 그를 낚아챘다.
“끄아아아아악!!”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그 고통 속에서 그가 비명을 내지르자 마물들을 찢어발기던 두 마리의 용과 두 명의 정령왕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됐어. 저건 내가 치운다.”
그 말과 함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속 있던 기사단장은 갑자기 주변의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침묵에 시선을 들어 올렸을까.
그의 시야에 한 사람이 날아드는 게 보였다.
오른손을 말아쥐고 내리 칠 것처럼 파고드는 그의 주먹이 천천히 움직인다.
굉장히 느린 속도이건만, 어째서일까.
그의 눈에 데이비의 작은 주먹이 그토록 거대하게 보였다.
터어어어어어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늑대의 머리 두 개가 터져나간다.
갑작스런 치명상에 괴물은 괴성조차 내지르지 못하며 힘없이 나가떨어졌고, 결국 붙잡고 있던 기사단장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터업!!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파공음을 보며 기사단장이 멍하니 자신을 부축한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자네…… 방금 그 힘은 대체…….”
검사들이 사용하는 오러나 마법사들의 마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좀 희귀한 힘입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지만, 그는 천천히 내려와 그를 바닥에 뉘고는 손을 뻗었다.
[하이리커버리]
순식간에 신성력이 감돌며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크으…… 죽을뻔했군…… 고맙네. 다만…… 저거 아직 살아있네.”
“데이비! 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기사들의 외침과 함께 기사단장을 치료하던 데이비의 뒤로 머리가 아직 하나 남은 놈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새까만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낫을 들어 데이비를 반으로 갈라버리려던 찰나.
“뭐가 살아요?”
“엉?”
꾸르르륵…….
괴이한 소리와 함께. 데이비를 노리던 놈의 육신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황당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향해 기사단장이 물었다.
“뭘…… 한 건가…….”
“그냥. 육체 붕괴 저주를 걸었을 뿐입니다.”
베르샤의 저주가 생각보다 참 쓸만하네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데이비는 손을 툭툭 털었다.
“마굴 조사는 끝났습니다. 피해자는요?”
방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이 허탈해질 정도로 너무 빠른 정리였다.
“어…… 없네만…….”
“잘됐네요. 여기 마굴 하나 열거니까. 준비해주세요. 임시방편이 아니고 완전히 마굴을 차단할 테니.”
그 말에 기사단장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그으으으으…….
마굴의 여왕에게 변화를 느낀 존재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과거 라스트 위스프 기사단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인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페르세포나를 마굴에 떨어뜨린 이들은 그 수가 상당했다.
-동족들이 많이 당했소.
어둠 속에서 묵빛의 갑옷을 입은 이가 입을 열었다.
-대의를 위해. 몬스터 여왕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할 터.
-이대로 가다간 몬스터 여왕이 소멸하고 향후 계속해서 몬스터의 출몰이 시작될 것이오.
그들 중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페르세포나와 비슷하게 하나의 의지만을 남긴 채 영혼이 조각나 그저 움직이는 시체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그들에겐 대의가 존재했다.
대륙에 퍼져나가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선 누군가가 희생해서 몬스터 여왕이 되어야 하고, 그 몬스터 여왕이 잘못되지 않게 지키면서 이 끝없는 지옥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몬스터 여왕 페르세포나는 사실을 알고 달려온 기사단원들에 의해 결국 토벌되었지만, 그녀의 영혼을 붙잡아 지금까지 유지시켜온 이들이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헬]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를 데려오라.
그 말과 함께 아주 희미한 빛만 들어오는 어둠 속 공동으로 누군가가 추욱 늘어진 한 사내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크윽…… 뭐야…….”
이윽고 질질 끌려온 사내는 거칠게 바닥에 내팽개쳐지면서 천천히 눈을 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름을 말하라.
“다…… 당신들 뭐야!”
사내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사들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겁에 질려 물러나려 하지만 그를 단단히 포박한 기사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라.
“웃기지 마! 여긴 어디야! 당장 날 내보내라!!”
-이름을 말하라. 적합한 육신이여.
그 말과 함께 한 기사의 헬름의 눈구멍 속에서 보랏빛 안광이 번뜩였다.
그러자 격하게 저항하던 사내가 서서히 저항을 멈춘다.
-이름을 말하라. 적합한 육신이여.
“요……요시키. 카사……토…….”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요시키 카사토였다.
지구의 균열에서 사라졌던 그가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마굴의 내부, 심연과도 비슷한 헬의 밑바닥이었다.
이윽고 요시키가 공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혼만 남은 자들의 새 육신이 될 자여. 계약은 완수되었다. 너의 육신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힘을, 그동안 모아온 심연의 힘을 사용하여 이단을 처단하리라.
그 말과 함께 기사들의 육신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크……크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요시키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거리지만, 연기로 변한 기사들은 일제히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나둘. 이내 수십 명의 기사들이 모조리 그의 몸에 스며들었고 이내 발작하듯 경련하던 그가 천천히 멈췄다.
그리고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을 때.
요시키의 안광은 보통 인간의 것이 아닌 광기에 휩싸인 의지를 지닌 보랏빛 안광으로 가득했다.
-세상을 위해. 대의를 위해.
공허하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가 입고 있던 복장이 뒤틀리며 이내 어떤 갑옷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그의 육신은 보랏빛 화염에 불타듯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몬스터 여왕은 바뀌지 않는다. 영원히 지옥을 통치하여야 한다.
공허하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의를 망치려는 자. 단죄의 검을 받으라. 몬스터 여왕은 오로지 단 하나. 예외는 용서하지 않는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뒤틀려버린 기사들의 의지가 뭉쳐진 요시키에게는 오로지 페르세포나만이 몬스터 여왕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광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쩌억!!
그 말과 함께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이내 균열이 일어나며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방해하는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어떤 괴물로 인해 도망쳤던 회색의 아이는 겁에 질린 채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순수한 만큼 공포도, 악의도 전혀 몰랐던 아이는 단순 태어났을 때 페르세포나가 표면에 포장하고 있던 다프네를 향한 증오만을 철석같이 믿고 증오만을 내비쳤다.
다프네를 지키기 위해 페르세포나가 죽기 전부터 내비치던 방어기제였다. 그런 방어기제가 현재 회색의 괴물 아이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엄…… 마…….
회색의 괴물 아이는 균열의 안에서 시체가 된 제 어미의 육신을 끌어안았다.
현재 괴물이 있는 곳은 헬의 중심지도, 균열 안도 아닌 어떤 독립된 공간이었다.
처음 데이비를 발견하고 급하게 도망쳤던 회색 괴물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때. 괴물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괴물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두 명의 여성이 공간을 찢으며 진입하고 있었다.
동시에 회색 괴물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페르세포나가 덧씌워둔 표면적인 증오, 다프네를 향한 증오로 똘똘 뭉친 괴물에게 있어서 눈앞에 나타난 다프네는 증오의 대상 그 자체였다.
-그아아아아아악!! 그아아아아아!!
이윽고 괴물이 다프네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한다. 기세만으로도 s급 각성자들을 짓누르던 괴물이었고 지금은 더욱 분노한 상태였지만.
콰아앙!!!
다프네가 괴물의 머리를 낚아채 바닥에 처박아버리면서 모든 게 정리되어버렸다.
“데이비 이놈 맞지? 유일하게 이질적인 영혼. 이놈뿐이야.”
“맞아요. 그 녀석.”
데이비라는 이름에 회색 괴물이 크게 움찔거렸다.
“널 찾아왔다. 대체 무슨 수로 널 바꾸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마굴을 억누르기 위해 널 제압해야 한다면, 얼마든지 해주지.”
가녀린 체격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힘으로 괴물을 찍어 누른 다프네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다프네의 물음에 데이비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적 하나 열어주세요.”
이윽고 데이비의 말에 다프네는 인상을 찡그린 채 물었다.
“그러니까 무슨 기적.”
“공간 정화. 마굴 내부 공기가 영 갑갑하네. 마법 쓰는 데 집중이 잘 안 되니까.”
그 말에 다프네는 짜증을 내면서도 버둥거리는 괴물을 짓누른 채 영역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프네. 아직 내게 화가 났습니까?”
“당연한 걸 물어?”
그녀의 말에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깜짝 서프라이즈가 있다고 했죠.”
“그래서 그게 뭔데.”
“보면 압니다.”
그 말과 함께 공간을 정화하는 다프네의 신성 마법 위로 어떤 마법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마법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신력의 흐름이었다.
우우웅…….
동시에 다프네가 만들어놓은 틈 사이로 어떤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바닥에 쓰러진 괴물은 물론 모두가 그곳에서 나타난 이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회색 괴물은 물론, 일리나와 다프네 모두.
“어?”
“페르……세포나?”
분명 뒤틀리고 조각난 영혼이었던 페르세포나였다.
하지만 다프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생김새가 달라졌으나 페르세포나가 분명했다.
“어…… 어떻게 된…….”
-어…… 엄마…… 엄마…….
버둥거리는 회색 괴물이 페르세포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동시에 페르세포나는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현신 후 다프네가 제압하고 있던 회색 괴물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많이 힘들었지 아가. 네게 이런 것만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작은 회색 괴물을 안정시킨 페르세포나는 다프네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오랜만이야. 정말 미안해.”
“페르세포나…… 너.”
“정말 미안해. 널 속일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데이비 저 아이 덕분에 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
영원히 지속되었어야 했을 지옥에서 올라올 수 있는 구원의 기회를.
그 말과 함께 페르세포나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회색 괴물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힘 일부가 회색 괴물에게 넘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다프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페르세포나는 분명…….”
“소멸했다고요?”
“분명 검으로 베었을 텐데?”
“페르세포나를 벤 게 아니니까요.”
“너 이새께…….”
그렇게 말한 다프네의 표정은 짜증이 서려 있지만, 안도감이 더욱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데이비는 초단이를 뽑아냈다.
“자세한 사실은 나중에 알려주겠습니다만. 페르세포나는 당신을 위해 극악의 확률을 뚫고 버텨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영혼의 변화. 새로운 영혼으로의 진화.
과거 레이나가 그러했듯 페르세포나 또한 영혼을 강제로 변이시켜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시켰다.
하지만 레이나처럼 천족이라는 존재로 새로이 완전히 부활하는 게 아닌 영혼의 구조를 바꾼 것 뿐이기에 이 일이 잘 풀려도 페르세포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윤회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뒤틀린 영혼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정화였다.
의지가 없다면 절대 버티지 못할 정화를 그녀는 미약한 의지를 붙잡고 끝내 버텨냈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영혼 구조가 강제로 뒤틀리는. 편법의 고통 또한 견뎌냈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론 불가능하지만. 데이비 올 라운은 그녀가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을 조각난 영혼을 붙잡고 버텨낸 정신력의 소유자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그녀는 두 차례의 끔찍한 고통을 끝내 버텨냈으니까.
성공확률은 고작해야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수준.
“다프네 당신을 지키려고 그 극악의 확률을 버텨낸 겁니다. 그 집념이 섬뜩할 정도네요.”
경악스러울 정도로 이타적인 성격에 다프네를 향한 헌신.
그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데이비는 덧붙였다.
그리고. 새로운 영혼으로 변화된 그녀는 이제 마지막으로 몬스터 여왕으로서의 굴레를 벗어나 회색 괴물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링크를 시작했다.
비틀린 몬스터 여왕의 아이지만 그것은 페르세포나가 증오를 거둬들이고 의지를 심어주기만 하면 온전히 변할 수 있었다.
문제는 페르세포나에게 안겨 꺼이꺼이 기이한 울음을 터뜨리는 회색 괴물이 아니었다.
“방해하는 놈들 반드시 옵니다. 그 씨 발라먹을 배신자들은 미쳐있으니까요.”
광기에 휩싸여 다른 방향은 보지 않는 놈들.
그놈들이 반드시 이곳에 나타나리라.
애초에 이곳은 마굴의 내부. 지옥이었으니까.
그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당장 나타나진 않지만, 페르세포나가 회색 괴물에게 몬스터 여왕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양도하는 동안 그녀를 지켜주어야 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이윽고 다프네가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데이비!!”
“왜요.”
“다 설명해라! 반드시.”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가락을 뚜둑 소리 나게 꺾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만 페르세포나의 영혼이 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거잖아.”
“아슬아슬했죠.”
그 말과 함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굴, [헬] 과 중간계의 경계인 이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하며 공간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무언가의 것으로 보이는 팔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