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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60화 (1,060/1,559)

제1060화

환각을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신의 영역의 중앙에 위치한 프리아 여신이 잠든 성소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잠든 이후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던 공간이며, 사실상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 깨어나는 그 순간까지 신경도 쓸 생각이 없는 곳이었다.

“웁…….”

성소에 들어서자마자 막대한 신력이 내 몸을 감싼다. 마치 세상에 해가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라도 하듯 나를 감돌던 신력은 이내 내 몸 안의 신력을 확인하고는 물러나듯 사라졌다.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프리아 여신이 수면기에 들어가면서 생겨난 장소이며, 이곳에서는 그 잘난 신들인 넬타리드나 타나토스라도 감히 힘을 쓸 수 없으리라.

금기의 힘으로도 이곳만큼은 건드릴 수가 없는 게 분명했다.

“…….”

천족의 형상을 한 문지기 석상 너머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안에는 거대한 빛의 기둥과. 그 빛의 기둥 중앙에 있는 어떤 거대한 석판과 그 석판을 회전하는 기이한 빛의 줄기들이 보였다.

프리아 여신에게 형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륀느의 몸을 통해 고대 시대 강신한 적이 있는 만큼 그녀의 강신형태는 주로 륀느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그녀의 본질은 이렇게 형태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 적응이 안 되네.”

잠든 여신이 내 목소리를 들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당신이 무슨 이유로 나를 과거로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알다시피 시간 전이는 평행선 도약과는 달라요.”

석판에 대고 말해본들 대답이 들려올 리는 없었다.

애초에 평행세계 자체도 본래대로라면 프리아 여신을 제외하고 절대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일 텐데.

대체 무슨 수로 나를 과거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인지.

나비효과, 타임패러독스. 그런 단어들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관측은 가능하되 간섭은 불가하다.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오로지 프리아 여신 한 명뿐이리라.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다 중앙에 놓인 석판에 손을 뻗었다.

거부반응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석판은 나를 거부하지 않고 마치 오히려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필요할 때만 찾아서 미안합니다만. 그래도 좀 도와주세요.”

이곳에 오면 해답이 존재할 것이다.

그게 내 결론이었고, 지금 나는 그것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심사숙고 끝에 나는 잠든 그녀의 편린을 건드렸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다시금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내 정신이 석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힘. 아무리 그녀의 권능을 이어받았다 해도 그녀가 아닌 이상 절대 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이 밀려온다.

나는 그것을 저항하지 않았다.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지 괜히 까불었다가 피만 볼 텐데 뭣 하러.

그녀의 의도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그녀를 만나 확인해야 했다.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리아.]

“아리아?”

[아리아.]

그 한마디와 함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본 것은 병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고 있는 마족들의 모습과, 불타는 민가들이었다.

* * *

“움직여! 어서!”

“빨리빨리 움직여라!”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길 잠시. 병사들은 마치 나를 개무시하듯 마족들을 잡아 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꺄악!!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얼어 죽을! 따라와!!”

“이년은 비싸게 팔리겠는데.”

“끌고 가서 개인 노예로 만들 거다. 비켜.”

저들끼리 싸우는 모습. 겉보기엔 정규병사들이지만 하는 짓은 도저히 병사가 아니었다.

흔히 보이는 오합지졸 양아치들이 이런 모습일까.

멍하니 있던 찰나였다.

끌려가던 한 마족이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꺄악!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병사들의 것과 다르게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동시에 그동안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내 바지를 붙잡고 애원하는 마족 소녀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런 내 침묵이 불편했는지 기사 중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리와 이년아. 어딜 도망치려고. 어이 꼬맹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출입 통제구역인 거 몰라?”

“출입 통제구역?”

“하. 뭐야 이거. 뭐 아무것도 모르고 기어들어 온 건가? 어쩔까요? 조장님.”

“어쩌긴. 우리 이런 일 하는 거 광고할 일 있냐? 척 봐도 귀한 짓 자제 같은데 재수가 없었으려니 해야지. 끌고 와.”

그 말과 함께 병사 중 하나가 창을 들이밀었다.

“자 그럼 저항하지 말고…….”

“라운 왕국 제 1왕자이며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이다. 소속을 밝혀.”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내가 담담하게 물었다.

아닌 걸 알면서도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병사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서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라운 왕국? 그런 곳이 있었습니까?”

“있을 리가 있냐. 이 일대에 그런 국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들었지? 어디 사기를 치려고, 왕족 사칭죄는 괘씸해서 넘어가 줄 수가 없다. 양손 들고 엎드려!”

그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른다 이거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이걸 본 이상 네놈을 살려둘 순 없다.”

프리아 여신의 인도로 온 이곳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여긴.

티오니스이면서. 티오니스가 아닌 곳.

“저항하지만 않으면…….”

일개 병사를 쳐내는 것이 어려울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손을 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벌어진 일 하나에 나라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고, 내 인연 하나하나가 없었던 것이 될 수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이 일은 척 봐도 인간과 마족의 분란이다.

그리고, 이 분란이 마족과 인간의 전쟁의 발단일 경우라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게 과거이며, 이것이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면,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내가 손을 대면 안 되었다.

이에 내가 벗어나려던 그 순간.

콰아아앙!!!

일대가 폭발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검기가 날아든다.

“크아아악!”

“젠장 무슨 일이야!!”

나는 방금 날아든 검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했다.

“중검…….”

내 중얼거림과 동시에 가벼운 경장을 입은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을 잡아서 노예로 파는 놈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만. 그걸 눈앞에서 볼 줄은 몰랐네.”

백은색의 거검을 손에 쥔 사내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자 조장이라 불렸던 사내가 눈을 부릅 뜬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마……말도 안 돼.”

“뭐가 안되지?”

“어……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그건 곧 올라갈 너희 상관에게나 물어봐라.”

“크윽?!”

“중요한 건 너희들 모두 잡혀가던 여기 있건 죽는 건 똑같다.”

콰아아앙!!!

엄청난 중량이 담긴 일검이 백은색의 거검을 든 사내. 검신 하레스의 손에서 휘둘러지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저항한다는 선택을 상실한 채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신 하레스는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파고들어 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그는 상당히 귀찮아하는 듯한 성정을 지닌 사내였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그는 오히려 그 반대의 느낌이 강했다.

“비……빌어먹을 여기서 죽을 순 없어!!”

그중에는 도망치다 결국 저항을 선택하는 이도 있긴 했다.

하지만 하레스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고, 마지막 한 명의 숨통을 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마을을 약탈하던 병사는 약 30명.

그 서른 명이 모두 척살 당하는데 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말없이 그를 지켜보고 있기를 잠시. 나는 주변에 쓰러진 병사의 시신을 걷어차 그가 깔아뭉개고 있던 철검을 튕기듯 어검술로 띄웠다.

쌔애애앵!!! 카아앙!!

동시에 검신 하레스의 중검이 내게 날아온 건 같은 시간대의 일이었다.

“호오?”

어검술로 띄워 올린 검을 한 손으로 낚아채 그의 검을 받아친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다른 느낌이 든다고 했던가.

내가 아는 회랑의 인간. 귀찮음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게으른 검신 하레스에 비하면 지금 눈앞의 그는 확실히 약했다.

물론, 보통 세간의 기준을 잡으면 그는 영웅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강한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나와 비교하기엔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는 내 목 근처에서 검을 거둘 생각이었겠지만 나는 괜한 호승심으로 인해 검을 들어 그의 위협을 정면으로 파쇄시켜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가 무분별하게 내 목숨을 노린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이 인간에게 당한 게 얼만데.

아. 이때가 기회인데. 마음껏 복수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단순히 위협만 할 생각이었다만, 이렇게 정면으로 받아낼 줄이야, 저 빌어먹을 놈들과는 다르다 이거군.”

검을 비틀어 쳐낸 뒤 살짝 거리를 벌린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곳을 아는 인간은 없다. 저들과 함께 온 자라면 네가 저들의 수장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나가던 여행자입니다.”

“뭐?”

“지나가다 보니 이곳에 들리게 되었네요. 저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과연 이 말을 그가 믿을까.

사실 어림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차하면 비가시 마법을 이용해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생각해두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나는 그에게 내가 그의 제자이며, 삼천 년 후의 미래에서 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믿건 믿지 않건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요.”

“자……잠깐만요!”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마족 소녀가 나와 하레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 홀른은 저들과 같은 편이 아닐지도 몰라요.”

“뭐? 무슨 뜻이지 그게?”

“그게 저들이…… 이 홀른을 보면 안 될걸 봤다고 제압하려 했거든요.”

마족 소녀의 마음 씀씀이에 괜히 씁쓸함이 밀려왔다.

검신 하레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그녀가 노예로 팔려가건 말건 손을 대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 할 짓을 하는 게 그리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족 소녀의 말에 그는 조용히 나를 직시하다 검을 거뒀다.

“검을 휘두른 걸 사과하지.”

“방금 거, 다른 사람이었으면 죽었습니다.”

“안 그래도 놀라던 참이다. 너 정체가 뭐냐.”

“지나가던 여행자입니다. 그보다. 사람을 죽이려 했으면 그에 따른 보상을 좀 받아야겠는데요.”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한 선에서 무조건 도와주지. 너를 향해 검을 휘두른 것도 사과하겠다.”

“별건 아니고요. 사람을 하나 찾고 있습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네. 사람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름밖에 몰라요. 아리아.”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성은?”

“모릅니다.”

“빌어먹을 이 대륙에 아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한둘인 줄 알아?”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아리아라는 이름이 사람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 이름 하나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뭐 다른 특징은 없나?”

“마법사라고 하더군요.”

“마법사라…… 나이는?”

“잘 모릅니다.”

“아는 게 없구만.”

이 인간. 스승의 과거고 나발이고 쌓인 것도 많은데 다져버릴까.

그런 충동에 휩싸였을 때였다.

“내 부인이 알고 지내는 친구와 이름이 비슷한데. 설마 아니겠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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