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1화
습격에서 해방되었으나 피해가 막심했던 마족들은 슬픔이 가득했다.
지금 이 시기. 즉, 검신 하레스의 생전에는 아직 마족과 인간의 대전쟁이 벌어지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두 종족이 사이가 좋은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검신 하레스는 마족을 미워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어서 옮겨! 이쪽으로!”
살아남은 마족들은 마을의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하레스는 부스스 한 제 머리카락을 벅벅 긁어 보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하레스는 갈색의 털을 지닌 말의 목덜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고생이 많구나. 다시 돌아가야겠다.”
푸르릉 소리와 함께 투레질을 한 말은 그의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몸을 낮췄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거지? 나는 이번 일의 배후를 처단해야 하는데.”
“저 병사들은 정규병사 아닙니까?”
“병사 중에서도 저런 놈들이 있기 마련이지. 다른 것이라고 해봐야 머리에 작은 뿔이 있고, 다루는 힘이 조금 다를 뿐이지 모두 같은 생명일 텐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네.”
마족과 인간은 유별나게 앙숙 같은 느낌이었다.
엘프 드워프도 마냥 사이가 좋진 않았으니 마족 한정은 아닐 테지만.
“그러고 보니 이 시대엔 오크도…….”
“음? 뭐라 했는가?”
“아닙니다.”
담담하게 말한 나는 이곳을 떠나려는 하레스와 방향을 달리했다.
그에게 쌓인 걸 풀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하는 충동도 일었지만 우선 가장 먼저 아리아라는 인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가 돌아가서 검신 그 양반이 꼬장을 부리면 이쪽도 피곤해질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아직 자네를 믿기엔 조금 어렵네. 자네 같은 존재가 어디서 뚝 떨어졌는지도 모르니까.”
“이해합니다.”
“자네 정도의 힘을 지닌 자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꽤 외진 곳에서 와서 말이죠.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그는 나를 스윽 훑었다.
“받게.”
그가 내게 건네준 것은 어떤 쪽지였다.
“그 여자는 대륙을 유랑하기 때문에 나도 어떻게 나도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순 없네만. 그녀가 아르부트 왕국 쪽으로 갔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네.”
아르부트.
오래전 사라진 왕국인지 들어본 적만 있었다.
“아르부트라…….”
“여행자라 들었네만. 짐도 없어 보이는데. 혹시 여비가 있는가?”
“여비 지원해주시게요?”
“자칫하면 내 손에 죽을뻔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는 내가 생각 이상의 힘을 품고 있다고만 생각할 뿐 제대로 된 파악은 못 하고 있었다.
하기야. 지금 이 시기에도 마법과 검기를 병행하는 이가 존재하겠느냐마는.
“한데. 그동안 신분은 어떻게 증명한 거지? 모험가 조합이라도 가입한 건가?”
“조합이요? 아뇨…….”
“하면?”
“그냥 다녔습니다.”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된 거야.”
“이제 나흘째네요.”
“빌어먹을.”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어떤 증표를 하나 던져주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증표. 제법 귀하다.
“받게.”
“귀해 보이는데요.”
“내 증표야. 어디 가서도 홀대받진 않을 거다.”
“당신은요.”
“새로 발급받아야지. 이 정도 위치에 있으면 증표 하나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일은 잘 없다.”
그가 이 증표를 건네주는 건 엄연히 그가 나를 죽일뻔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유도한 것이긴 하지만.
“이 숲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면 거대한 요새가 있을 거다. 그곳에서 쾌속편 마차를 타면 이틀 정도면 아르부트 왕국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그리로 가.”
그가 내 등을 떠밀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이 마을에 대해선 발설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만약 엄한 데서 이야기가 세어나간다면 자네가 말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겠군.”
“명심하죠.”
하여튼 인성하고는…….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복구에 여념이 없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고 있던 현재의 티오니스에서도 언젠가는 마족과 인간이 완전히 화해하는 날이 올지는 사실 잘 모를 일이다.
전쟁을 막는 건 가능해도 그들의 증오를 막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레스와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을 떠나온 입장이라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했던 참이라 나는 하레스가 알려준 방향으로 천천히 향했다.
목적지는 아르부트. 한 번이라도 가본 곳이라면 무리 없이 좌표를 설정해 워프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곳의 티오니스는 내가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세계였다.
가장 효율적인 건 시야 범위 내 공간 전이 마법이 전부.
애초에 내가 찾는 아리아라는 인물이 하레스가 말한 그 마법사가 맞는지조차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지구에서 철수 영희 스미스 등등 흔해빠진 이름이 있듯 티오니스에서 아리아라는 이름은 극히 흔할 뿐이니까.
끼익!! 끽! 끽!!
숲 저편에서 별의별 몬스터의 소리가 다 들려온다.
말없이 그것들을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몸을 가볍게 풀었다.
“그래. 어디 관광 온 것도 아니고.”
다시 올 수 없으니 충분히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도 없었다.
이후 나는 아공간 속에서 작은 큐브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디셉티콘 편대 골렘의 큐브였다.
메가트론이나 그런 녀석들은 변형보다는 본체의 힘에 치중한 터라 마차형태에서 크게 변하지 않지만, 이놈은 달랐다.
이놈의 주목적은 전투가 아닌 이동수단. 상당량의 마정석을 본래 형태가 아닌 이동에 치중을 둔 케이스였다.
“만들어놓길 잘했네.”
철컥! 철커덩!!
이윽고 내 마나에 영향을 받은 큐브가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좋아.”
역시 로망은 스포츠카렸다.
철컹!! 키이이잉!!
물론 형태는 진짜 스포츠카와는 달리 과거 에오니샤와 황색 바위 부족의 드워프들이 만들었던 하인스 아카데미 내의 자동화 이동수단을 베이스로 한 터라 자동차라는 느낌은 들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달려보자.”
숲으로 난 길은 험하기 그지없지만.
이게 또 로망이라는 게 오프로드를 미친 듯이 달리는 맛이 없잖아 있다.
“하이퍼리온, 첫 시운전이다, 메인 출력 가동하고 출발하자!”
[명령 인수.]
키이이이이잉!!! 콰아앙!!
상당한 굉음을 내며 에오니샤가 만든 이동수단과는 격이 다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새로운 골렘은 내구성 하나만큼은 확실한지 간혹 보이는 장애물 따위는 그대로 부숴버리면서 지나가기 시작했다.
-꿰에에에에엑!!
그 과정에서 4족 보행형 몬스터가 튀어나와 길을 막았지만…….
“비켜 이것들아.”
탑승한 채로 버튼을 강타하듯 내리치자 거대한 차량의 전방에 흉악한 드릴이 튀어나온다.
-쿠악!!
끔찍한 소리와 함께 놈들을 치고 지나간 나는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만들기를 참 잘했어.”
숲의 험난한 길 따위는 이놈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 * *
하레스가 알려준 아르부트 왕국까지 가는 길은 숲에서 빠져나가 요새에 도착하고 요새에서 이틀 동안 마차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게 생명인 만큼 쉬어주고 먹어야 하거니와 그 속도가 차량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특히 험난한 길에서는 말도 쉬이 지치는 만큼 애초에 속도가 같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도시국가 아르부트.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호수에 둘러싸인 거대한 외벽과 수상 다리를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새로 만든 막내 이동수단용 골렘 하이퍼리온을 아공간 속에 밀어 넣었다.
“흠…… 여기저기 문제가 많네. 나중에 돌아가면 한번 수정을 해야겠다.”
취미생활로 만든 놈이라도 제법 각을 잡고 만들었지만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한번 시운전을 한 끝에 놈은 거의 방전되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보인다.
“새로운 시도라 영 시원찮네.”
정작 골렘에게 자아가 있었다면 니가 그렇게 험하게 모는데 멀쩡할 차가 몇 개나 되겠냐! 라고 소리치겠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정지. 어디서 오셨습니까!”
“여행자입니다. 신분은…… 이거면 될까요.”
나는 하레스에게서 받았던 증표를 그에게 건네주었고 그것을 본 병사는 잠시 눈을 비비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랜드 마스터님의 보증을 받으신 모험가분이시군요. 어서 오십시오!”
그랜드 마스터라…… 지금 이시기의 그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물론, 아무리 수준이 높다곤 해도 지금 이들의 수준과 하레스를 비교하면 그랜드마스터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건 사실이지만. 사실상 지금 그의 힘을 생각하면 린디스 제국의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애초에 제국 최강전력이라 불리는 그녀와 비슷한 시점에서 이미 초인에 가깝지만,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아직 그는 멀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예 그럼.”
우선은 정보 길드를 털…… 아니 찾아가서 아리아라는 이름에 대해 싹 다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이거 놔요!”
“어허! 이거 왜 이래 진짜! 통행증이 없으면 못 들여 보내준다니까!”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여기 있었다니까 진짜!”
큰 소리를 내며 소란을 일으키는 이에게 시선이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제법 젊은 여인이었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기본적인 생김새는 하늘빛의 긴 생머리에 레인저와 흡사한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모험가였다.
다만 복장과 다르게 그녀의 등엔 마법사임을 증명하는듯한 스태프가 쥐어져 있었다.
외모만 따지면 거친 일을 하는 용병이나 모험가보다는 왕가의 여인이나 귀족 영애 같지만 거친 일을 해도 손에 굳은살 하나 배기지 않는 일리나를 보면 외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는 행동이나 입고 있는 옷 때문인지 더 어려 보이는 느낌이었다.
“됐고! 통행증 없으면 출입이 불가하다! 억울하면 다른 영지로 가서 신분증을 다시 만들어와.”
“하…… 진짜 미치겠네…… 의뢰 중에 잃어버렸다니까. 그리고 일을 뭐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해요! 여기서 다른 영지까지 하루를 내리 걸어야 하는데!”
“어허 내 알 바인가?”
“와 진짜 이 인간!”
“시끄럽고 다른 사람들 기다리니 얼른 물러나! 정 그러면 신원을 보증해줄 사람을 찾던지! 물론 어지간한 인간으론 안 되겠지만.”
그러던 중 그녀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그녀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여지자 나는 귀찮음을 직감하고 돌아섰다.
“오빠! 여기 있었구나!”
동시에 그녀가 후다닥 달려들어 내 팔을 붙잡았다.
“하하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그녀의 미소에 병사들은 나를 향해 사실이냐는 시선을 보냈다. 그랜드마스터의 증표를 지닌 모험가가 되어버린 내가 신원보증을 해버리면 그녀는 신분증이 없어도 입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괜히 사람이 돕게 만들고 싶게 만드는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나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화답했다.
이에 그녀 또한 나를 향해 더욱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쳤나 보네요.”
그녀를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 아아?!”
도와줄 것처럼 미소를 지어놓고 내가 개무시를 해버리자 그녀가 당황한 듯 주춤거린다. 이에 병사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질질 끌어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원하는 것. 마법의 초기 구조.]
육성이 아닌 머리에 직접적으로 들이박히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에게 끌려나가며 버둥거리는 그녀는 여전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그녀의 입매가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묘한 익숙함. 기시감이 든다.
그리고. 그녀가 방금 내게 보낸 사념의 힘이 신력임을 깨달은 나는 망설임 없이 태도를 바꾸었다.
“제가 착각했네요. 제가 찾던 사람이 맞습니다.”
허탈하게 웃으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방금은 아니라더니……?”
“……맞는 거, 같네요.”
빠득 소리 나게 이를 악물며 내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사념을 날려 보냈다.
그녀와 똑같은 신력으로.
‘술래잡기는 안 해서 다행이네요. 여신님.’
이윽고 자신의 생각대로 된 것을 확인한 그녀는 좀전의 활발함은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나는 곁에선 채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프리아 여신이 찾으라던 아리아 본인이자. 하레스가 말했던 부인과 연이 있던, 또 페르세르크의 기억을 지우는 마법을 걸어준 5서클 마법사.
그리고. 프리아 여신. 그녀 본인.
“솔직히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그녀는 강신이나 강림이 아닌 아예 그녀 본인이 인간처럼 내려와 있었다.
그녀가 이랬던 적이 있었나. 애초에 세계의 규칙상 그녀는 절대 내려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눈앞에 그녀는 멀쩡히 서 있었다.
그런 내 의문에 그녀는 답하지 않고 조용히 벤치에 앉아 새들을 손에 올려놓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좀 전 실랑이를 벌였던 모습은 마치 그녀가 아니라 그저 흉내 낸 것뿐이라는 듯 그녀의 행동은 상당히 맹해 보였다.
“그래 뭐. 당신을 찾았으니 다행이긴 한데요. 이제 뭐 어떻게 합니까?”
내 물음에 그녀가 공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를 한참.
참다못한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봐요 여신님. 여신님이 여기 내려 와있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문제가 생기는지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애초에. 당신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인 그녀인 터라 과거의 그녀라도 나를 보는 순간 미래에서의 관계를 이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과거의 프리아 여신이며 나는 그런 여신의 권능을 받은 만큼 쉽게 나를 파악할 수 없을 텐데.
애초에 그녀의 꿍꿍이가 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기억 제거 마법 때문에 본래엔 불가능한 시간 여행까지 시킨 이유를.
단순히 마법의 초기구조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면 시간여행을 할 것도 없이 그 마법을 내 눈앞에서 다시 보여주면 그만이다. 프리아 여신도 그 정도 융통성은 이제 있을 텐데.
그녀가 잠들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기엔 분명 과거로 오기 전 그녀가 남겨놓은 목소리를 들었었다. 이곳으로 와서 아리아를 찾으라던 목소리.
게다가 나를 과거로 보내준 건 유일하게 시간에서 초월한 그녀의 힘이었다.
마치 이때를 위해서 이 힘을 모아놓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그녀의 힘을 받아들였으니까.
그 정도의 힘이 남아있다면 굳이 나를 과거로 보내는 힘쓰는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솔직히 의문투성이였다. 그 외에 다른 무언가 중요한 이유가 있
이에 내가 설명을 다그치자 그녀는 잠시 멍하니 나를 보다 허리춤의 파우치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제법 귀할 텐데, 이시기엔.
이윽고 휴대용 깃펜을 꺼내 무언가를 쓱쓱 써 내린 그녀가 그 글귀를 내게 보여주었다.
[너를 기다렸어,]
역시 그녀는 지금의 프리아 여신이 아닌 과거 시간대의 그녀가 맞았다.
[이곳에서. 먹을 것을 사. 내게 먹여.]
“네?”
점점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먹을 것을 사서 먹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내 물음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손뼉을 가볍게 치고 다시 무언가를 썼다.
직접 말로 하면 될 텐데 이상하게 수첩을 애용하는 그녀였다.
[직접 먹여.]
더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노점상의 찐 감자를 가리켰다.
이에 찐 감자 노점과 그녀를 한참 번갈아 보던 나는 하레스가 증표와 함께 넣어준 주머니에서 통화 몇 개를 꺼내 찐 감자를 사 왔다.
“어서 오슈.”
“찐 감자 하나만 주세요.”
“연인이요?”
“직장 상사입니다.”
내 대답에 노점주인이 허허 웃어 보였다.
“아리따운 상사분이시구먼. 여기 받으시오. 뜨거우니 호호 불어먹어야 할거요.”
그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제와서 느낀 것이지만 그녀의 모습. 말수가 줄고 무표정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니 그녀의 모습. 이제와서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륀느가 자라면 이런 모습일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다.
말없이 찐 감자를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를 써 내렸다.
[호호 불어.]
“아니 지금 대체 뭐 하는 건데요.”
호호 불어라는 단어가 적힌 수첩을 강조하듯 한 번 더 들이미는 그 모습에 나는 일단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훅훅 불어서 감자를 조금 식히고 건네자 이내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는 예쁜 입을 살짝 벌렸다.
마치 먹여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점점. 그녀가 이해할 수 없어진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