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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69화 (1,069/1,559)

제1069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임무 도중 처단부대 대장의 마수에 걸려 사로잡힌 리더, 붉은 전갈을 대신해 저항군을 이끌던 말톤은 온몸에 생긴 상처로 인해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끔찍한 내상으로 입에서 피가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힘없이 고개를 돌리자 수적으로, 개개인의 힘으로도 벅찬 저항군 동지들이 피를 흘리며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콰직!!

“크아아악!!”

쓰러진 그의 팔을 짓밟으며 거구의 사내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거한 골리앗.

재상을 따르는 4명의 처단부대. 그중 뱀파이어 실시를 제외한 또 한 명이다.

어째서 이자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거한 골리앗은 분명 정보를 종합했을 때 영토분쟁으로 인해 이곳에 없을 터였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거한 골리앗.

악귀 밴전스.

흉수 바크람.

재상의 전력이 모두 모여있다.

그들 하나하나가 재앙에 가까운 힘을 지닌 자들로, 저항군은 지금껏 그들의 눈을 피해 계획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셋 모두가 모여있는 경우는 사실상 본 적이 없었다.

그래. 시작은 처형 일자가 갑자기 앞당겨지면서부터였다.

본래 예정대로라면 본래 반나절 정도 더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 도움을 요청했고,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처형식을 지키는 이들의 수나 수준을 면밀히 조사한 것도 사실이다.

리더를 잃으면 저항군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체적으로 치러야 했을 시련이었다.

그의 힘이 정확히 어떤 힘인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에게 손을 벌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습격을 감행했다.

저항군의 리더를 구하기 위해 힘을 길러온 저항군 멤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왕국의 병사들을 제압했고, 빠르게 붉은 전갈을 데려오기 위해 처형대까지 진입했다.

그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하면 당장 이 촌극을 만들어낸 빌어먹을 재상의 목을 따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저항군이 광장에 모조리 들어섰을 때.

말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방해역장.

수십 겹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방해역장이 깔리고,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단단한 결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처단부대의 매복 공격이 시작되었다.

처단부대는 오랜 시간 재상의 수족으로써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힘의 근원이었다.

재상에게 거스르는 존재는 처단하고, 타국에조차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무력집단.

마치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물론. 말톤은 어느 정도 저항을 예상했으며, 후에 처단부대와 맞닥뜨렸을 때를 대비하여 숨겨둔 카드가 있었다.

특수한 각성제를 통한 전력의 상승.

그 힘이라면 재상은 몰라도 리더를 구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리라.

그래야 했는데.

재상은 악귀 그 자체였다.

포로가 된 저항군 동지들을 묶어 그들을 방패로 내세운 것이다.

거기에 잘 움직이지 않는 처단부대 대장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니 그야말로 광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전황은 점점 나빠질 뿐이었다.

방해역장으로 인해 저항군의 전력이 크게 감소한 것이 너무도 컸다.

“키히…… 키히히히…….”

거한 골리앗은 잔인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톤을 짓밟았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힘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통 어린 신음을 참으며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하나둘 동지들이 쓰러졌고, 끝내 모두가 제압당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너지는가. 원통하고 비참함이 그를 감쌌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차라리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였더라면. 이렇게 대부분의 동지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아니 일부러 죽이지 않고 괴롭히는 이들을 보니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이럴진대. 처형대에 묶여있는 리더는 어떻겠는가.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무 분하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는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콰직!

제압당한 채 쓰러져 있던 말톤의 앞으로 거한 골리앗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재상을 바라보게 했다.

“재상!!!”

“허허허, 고놈 참 목청이 좋구나.”

공개처형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곳에 있던 이들 모두가 그의 끄나풀이었다. 여기서 그를 도울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너무 노려보지 말게. 내 일부러 너희 반란분자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지 않았나.”

대체 어디가.

목숨만 붙어있지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을 저지르고 있는 저 끔찍한 악마들을?

산채로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사람의 팔다리에 톱질하며 비명을 듣고 웃고 있는 저 악마들을?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여기서 살아나간다 할지라도 다시는 일어서지도, 앞을 보지도, 못하게 된 이들이다.

반반한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옷가지들을 찢겨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신이 되는 치욕을 겪고 있었다.

끔찍한 지옥.

인계의 지옥은 어디에 있는 게 아니었다.

“흐음. 뭐. 반란분자를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이만큼 자비롭지 않은가. 안 그런가? 전 기사단장 말톤?”

빠득…….

말톤이 이를 악물었다.

“아. 걱정 말게. 나는 자비로우니 말이야. 붉은 전갈의 처형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저자에게 현혹되어 내게 검을 들이민 자들 또한 이 나라의 신민이 아닌가!”

그는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뭐, 물론 가벼운 벌은 필요하겠지만.”

그가 오만하게 웃으며 콧수염을 쓸어내렸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무얼. 자네들은 하나의 일념 아래에 모였다지?”

“…….”

“나는 말이네. 자네들의 그 신념이 참…….”

재상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섬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겹기 그지없어. 어이, 시작해라.”

그의 말에 따라 어떤 종이를 보고 있던 처단부대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나마 상황이 멀쩡하던 한 소녀를 끌고 나왔다.

“안돼!! 알리아!”

알리아. 붉은 전갈의 동생.

“너희들의 그 잘난 신념이 무너지는걸 보는 게 참 그리 즐거울 수가 없지…… 저 아이의 목숨 하나면 너희 전부의 목숨 정도는 살려주지. 어떠한가.”

역겨운 소리!

붉은 전갈이 저항군의 실질적인 리더이며 명분이듯, 그의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알리아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자신도 돕겠다며 나선 것이 참사를 부른 것이다.

“웃기지 마! 우린 무너지지 않아!”

제압당해 무릎이 꿇려진 상태에서도 눈빛을 잃지 않은 그녀였다.

“그래. 그렇겠지.”

이에 재상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거한 골리앗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푸욱!!

그야말로 가차 없이 검을 내리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골리앗이 빠져나감으로 인해 느슨해진 제압을 떨쳐낸 말톤이 몸을 던져 그녀를 끌어안고 검을 대신 받은 것이다.

“커헉…….”

“부…… 부장!”

깜짝 놀란 알리아의 외침에도 말톤은 그녀를 놓지 않았다.

악마 같은 재상은 붉은 전갈의 동생인 알리아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녀를 감싸는 말톤이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걸 즐기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될 걸 모두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푹!! 푹! 푹!!

그럴수록 주변에서 비웃음이 더욱 커지고, 말톤의 몸에 커다란 상처가 더욱 짙어졌다.

사람이 흘린 것이라곤 보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출혈 속에서도 그는 절대 놓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녀만큼은 죽게 두지 않겠다는 집념이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양팔이 으깨져 버린 사내가 괴성을 내지른다.

“젠장! 제발…… 제발 누구라도 제발…….”

닿을 리 없는 기적을 찾으며 울부짖는 이도 있었다.

“그만!!! 그만해!! 나만 죽이면 되잖아 이 개자식아!!”

끝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붉은 전갈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무슨 소리를. 넌 어차피 죽게 될거야. 다만 그냥 죽일 수야 있나. 감히 나를 방해해왔는데.”

재상이 그를 비웃자 붉은 전갈은 피눈물을 흘리며 입술이 찢어질 것처럼 강하게 물었다.

절망은 짙어지고. 슬픔은 가속화된다. 인계의 지옥, 그 절망 속에서 그들의 마음이 서서히 꺾여나갈 때 즈음이었다.

툭…….

모두의 귓가에 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쌔애앵 와장창!!!!

어떤 마법으로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방해역장들이 일순간 뒤틀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검은 코트를 입은 흑발의 청년.

싸늘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는 끝내 말톤을 죽이기 위해 검을 들었던 거한 골리앗의 앞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그야말로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에 거한 골리앗도 놀랐는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툭!!

하지만. 그가 내지른 주먹은 방금전의 엄청난 위압이 서린 출현과는 다르게 너무도 미약했다.

“허? 이게 뭐야.”

잠시 자신이 굳어버릴 정도로 놀랐다는 사실이 화가 난 것일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거한 골리앗이 무어라 하려던 찰나.

콰직!!

상식적으로 들릴 수 없는 소리와 함께.

거한 골리앗의 육체에서 상상 이상의 피 분수가 터져 나오며 그의 육신이 벽면에 처박혀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간과 일대 주변 전체에 엄청난 균열이 일어났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이들은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가면을 쓴 청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에 모두가 경악했다.

재상의 곁에 있던 나머지 두 명의 강자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며 나를 본다.

아마 저들이 뱀파이어 실시와 같은 처단부대 대장이리라.

뭐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내가 내지른 주먹으로 인해 생긴 여파는 주변에 막대한 지진을 일으켰다.

대지가 갈라져 당장이라도 비틀릴 것 같고 허공이 찢어져 그 사이로 모조리 빨려 들어갈 것처럼 뒤흔들렸다.

이에 손을 가볍게 휘저어 그 여파를 강제로 침묵시키자 찢겨 나간 공간, 대지가 다시 고요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네놈은…… 그놈이구나.”

나를 향해 싸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재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주변을 둘러본 나는 저항군 병력이 얼마나 끔찍한 몰골인지 보고 눈을 감았다.

죽이지 않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괴롭히고 있다.

참혹한 짓이지만. 오히려 그게 이들을 구할 빌미를 준 것이다.

다만 이들을 내가 구해도 되는가.

그런 의문이 들어 프리아 여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조용히 나를 직시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자…… 네…….”

거의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나를 부르는 말톤의 상태가 사실 제일 심각했다.

팔다리 멀쩡한 곳이 없었고, 몸은 피 칠갑으로 당장 과다출혈 쇼크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네. 말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요. 살려줄 테니.”

내 말에 그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살 수 있는 부상이 아니라는 건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말톤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저항군들은 처단부대에게 제압당해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

이대로 두면 목숨을 부지해도 과거와 같이 멀쩡히 사는 건 아마 불가능하리라.

“보통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놈들은 말이야…….”

가면을 쓴 채 재상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잘 안 죽는지 잘 아는 놈들이거든.”

그리고, 그런 놈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인간을 갈아 마셔온 놈들이 대부분이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매에 미소가 그려진다. 부드러운 웃음이 아니라 차가운 조소였다.

“사람 어지간히도 고문했나 보다?”

“……네놈의 이름이 뭐지?”

“들어서 뭐하게. 그게 중요해?”

내 물음에 재상이 고개를 까딱였다.

“고개가 빳빳한 게 보기가 그리 좋진 않구나. 저놈을 내 앞에 데려와 꿇려라.”

동시에 처단부대원 다수가 일제히 나를 향해 파고들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것처럼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짧게 혀를 차고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휘리릭!! 쩌어엉!!

순식간에 백색의 기운이 날아들며 처단부대를 가볍게 베어버렸다.

단순한 라이트 세이버 마법이지만 강화된 마법의 위력은 그들을 베어버리고도 남았다.

방해역장이 없으니 딱히 출력이 줄어들 것도 없고.

그렇게 처단부대 일부를 베어버린 빛의 줄기는 그대로 재상을 향해 날아들었고, 여유롭게 서 있던 두 명의 처단부대 대장이 한발 나서더니 그대로 내 공격을 막아냈다.

카아아앙!!!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프리아 여신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여기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질문을 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듯 수첩에 글귀를 적어 보였다.

[원하는 대로.]

여기선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신답니다.

내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드러내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은총 좀 빌립시다. 여신님.”

내 말에 그녀가 무언가 불만이 찬 표정으로 수첩을 끄적였다.

[할부가 안 끝났어.]

“아 묻고 더블로 갑시다. 그냥.”

[은총 도둑.]

“거참.”

화아아아아악!!!

내 몸에서 막대한 신성력이 쏟아져 나온다.

“신성력?!”

“교단의 인간이었나?!”

경악하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프리아 여신을 통해 고위 성마법을 발현했다.

[9위계 성마법]

[그랜드 리커버리]

화아아아악!!!

동시에 막대한 빛이 내 앞에 모여들었다가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고, 이내 연녹빛의 빗방울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처단부대에게 제압당해 끔찍한 부상을 입었던 저항군의 몸이 본래의 모습으로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고도 믿기 힘든 기적의 세례.

부상의 정도에 따라 신관이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 있다곤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회복은 치료 수준을 넘어 시간 역행을 이용한 재생에 가까웠다.

물론, 정말 시간 역행은 아니지만 보는 이들의 시선엔 그리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마법을 지켜보던 재상이 짜증스레 소리쳤다.

“뭣들 하나! 저놈을 막지 않고! 교단에 저런 놈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거늘…….”

그 말과 동시에 박살 난 벽 속에 처박혔던 거한 골리앗이 파편을 비산시키며 몸을 일으켰다.

“크아아아!!! 감히 나를!!”

피 분수를 일으키며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였다.

그런 그가 살아난 모습에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던 찰나.

나는 그의 몸 안에 특수한 시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던 처단부대의 시체에서 검을 빼앗고는 한걸음 가볍게 내디뎠다.

“내 육신에 그깟 검이 먹힐성싶으냐!”

스륵.

동시에 살수왕 헤르메이샤의 월령보가 나를 감쌌고, 검은 연기 속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검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휙 던져버렸다.

그런 내 행동에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 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경악한 듯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오러 블레이드로도 쉽게 잘리지 않는 골리앗의 육체가 어떻게…….”

인간의 육신이나 특수한 개조를 통해 육체가 변한 사내.

골리앗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져 버린 것이다.

촤아아악!!

“끅…… 끄르르륵…….”

그리고 그런 그를 끝장내버린 나는 가면 아래의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재상에게 말했다.

“이제 둘 남았네?”

처단부대는 물론이요. 타국에서도 초 긴장상태에 돌입해야 하는 최강전력인 골리앗이 너무도 허무하게 당해버린 것이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상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고, 저항군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골리앗과 같은 처단부대 대장들은 저마다 중얼거렸다.

“실시 그년이 죽었다고 했을 때 헛소리라 치부했는데.”

“단순히 허풍은 아니었다는 말이구나.”

이후 나를 노려보던 재상이 내게 말했다.

“왜 저들을 돕는 거지?”

“왜 돕기는. 도와준다 했으니 돕는 거지.”

내 말에 재상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이쪽으로 와라. 내 손을 잡으면 저놈들 이상의 부귀영화와…….”

“아.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얼른 쳐내자면 도와주는 건 덤일 뿐이야. 네가 뭔 짓을 하건 그건 변함없을 거다.”

“뭐라?”

그렇게 말한 나는 어느새 다가온 프리아 여신님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바타를 통해 휴가를 즐기고 있는 여신님을 해하려 했으니까.

“그…… 계집은…….”

“잊었다곤 하지 말자고. 내가 왜 널 없애려는 건지 알겠지?”

“그년과 무슨 관계지?”

“직장 상사, 근데 아까부터 자꾸 말이 짧네.”

내 미소가 짙어지자마자 처단부대 대장 두 명이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재상을 가로막았다.

쩌어엉!!!

동시에 엄청나게 압축된 바람의 주먹이 그들과 충돌했고 그들을 일순간 밀어내며 사라졌다.

“네 이놈…….”

재상이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곧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주변을 짓누르는 기류에 그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주변을 압박하듯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처단 부대 대장 두 명의 표정도 보기 좋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어이.”

그리고 그런 재상을 향해 내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신벌 받아도 책임 안 진다.”

대체 그녀가 뭐기에!!

그들의 표정에 서린 감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검지를 들어 하늘 위를 가리킬 뿐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공격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이라는 건 때때로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게 한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그들은.

곧 눈을 부릅 뜨며 굳어버렸다.

“적어도 니들은 시간에 감사해야 할 거다. 이곳에서 내가 그 망할 근육 토끼를 부르지 못하니까.”

하늘 위에는…… 일대 영역 전체를 뒤덮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법진이 가동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매개체나 매개물, 혹은 단신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초거대 마법진이 아무런 소리소문없이 만들어졌다는 게 경악스러운지 격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 크기는 언 듯 봐도 수백 미터에 달하는 크기였다.

마법사가 아닌 자가 봐도 섬뜩할 정도의 크기와 정교함에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뇌운이 서린 마법진을 보며 프리아 여신이 수첩을 내게 들이밀었다.

[은총 도둑]

“아 거 좀 빌리자니까.”

다프네가 최근에서야 만든 광역 성마법을 써먹어 볼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물론, 이번엔 허락도 받지 않고 그녀의 은총을 슬쩍 빼간 꼴이지만 말이다.

[9위계 최후 성마법]

[세인트 저지먼트]

본래 성마법은 고위계로 갈수록 공격 능력을 지닌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없다면, 만들면 그만인 것을.

물론, 이걸 만든 건 내가 아닌 다프네였지만 말이다.

내 손끝에 따라 하늘과 공명하던 거대한 마법진이 뒤틀리기 시작했고, 압도적인 신성력을 머금은 초고열 고압의 벼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재상은 기겁하며 몸을 웅크렸고, 처단부대 대장 두 명은 기이한 힘을 발휘하여 동시에 재상을 그 벼락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반면 그만한 힘이 없는 일개 처단부대나 재상의 끄나풀이들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재앙, 신벌 그 자체였다.

[촌스러워.]

뜬금없는 프리아 여신의 질타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뭐 그럼 아마겟돈이라고 지을까요? 아니면 딥 임팩트는 어떠시나. 아니 그전에 촌스럽다니 여신님이 그런 말 써도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무표정으로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감정적이다.

본래 프리아 여신과는 완전히 다를 정도로.

그때였다. 나를 보던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희고 가는 손을 뻗어 내 가슴팍을 터치했다.

스르르릉…….

그러자 또다시 내 복장이 빛으로 휩싸이며 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변한 옷은…… 새하얗고 고풍스러운 고위 신관의 복장이었다.

다만 외관에 상당히 치중이 많이 된 터라 평범한 사제복이라기보다는 대외 이미지용 같은 복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내 변화를 바라본 그녀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다고요?”

그녀는 대답 대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새하얀 모자를 만들어 내 머리 위에 씌웠다.

“거 인형놀이 하시는데 자꾸 기적 쓰시네.”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초 고위계의 신성 벼락이 쏟아져서 아비규환이 된 주변과는 너무 대비되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 뼈다귀는 자기가 잘 숨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둘 것.]

나는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익숙한 기척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무섭다고, 재상의 숨겨진 최대 전력이라는 게 설마 그일 줄 몰랐다.

다만.

“알아요. 알아. 여기서 죽이면 안 되는 거.”

그냥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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