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0화
일방적인 학살, 능욕에서 상황이 반전되자 분위기가 급변한다.
멍한 얼굴로 현실을 직시하는 저항군은 물론, 살아남은 재상과 재상의 부하들 또한 뭔가 상황이 기괴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한 듯 보였다.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오러를 다루는 주제에 신성력이라니. 팔라딘과는 다르다.”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난 두 명의 남녀, 내가 베어버린 거한 골리앗이나 뱀파이어 실시와 같은 아르부트 재상의 전력이며 남은 처단부대의 대장들이다.
듣기로는…… 그래, 여성 쪽이 악귀 밴전스.
남성 쪽이 흉수 바크람이라고 했던가.
둘은 상당한 위압을 내비치며 당장이라도 나를 공격할 기세를 보였다.
“죽여!! 그놈을 죽이라고!!”
재상은 자신의 부하를 죽이고 계획을 어그러뜨린 굴러온 돌인 내가 굉장히 거슬렸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서걱!!
“크아아아아아!! 내 팔이!! 팔이!!”
그때 누가 반응할 새도 없이 날아든 칼날이 그의 팔 한쪽을 날려버리자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내질렀다.
아직 자신의 비장의 수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너무 안일했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저런 싸이코인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문득, 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나중에 놀아줄 테니까 좀 닥치고 있어.”
예전에 내 동생 윈리를 인질로 삼았던 빌어먹을 놈과 겹쳐 보인다.
더 열 받네.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말한 나는 나를 막아서고 있던 두 처단부대 대장들이 그 틈을 타 나를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악귀는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흉수는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가 내 뒤를 점했다.
“우릴 앞에 두고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니야?”
내 시선을 잡아끌 듯 여성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눈에 무기를 찔러넣었다.
몸을 슬쩍 비틀어 그 공격을 피해내자 그녀의 입가에 더욱 미소가 짙어진다.
공격이 빗나가는데 뭐가 그리 여유로운지.
마치 공중제비가 물 흐르듯 악귀에 이어 흉수의 공격까지 흘려내 버리는 데엔 성공했지만 내가 내려선 자리엔 독특한 문양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건.”
“글쎄? 적에게 그런 걸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악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골리앗을 베어버린 건 조금 놀랍지만 말이야. 너. 가진 힘에 비해 전투 경험이 많진 않구나?”
나를 놀리듯 말하는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카앙!!!
그들은 나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절대로 빌미를 주지 않았다.
악귀가 시선을 끌고, 흉수가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다. 어지간한 마스터들이라면 손도 못쓰고 당할 만큼 그들은 강했다.
텁!
또 한차례 기이한 마법진을 밟자 검백색의 마법진의 빛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이내 내게 스며들었다.
동시에 내 손등에 기이한 문양이 생겨난다.
“양쪽에 타투라도 해주나?”
처음 밟은 마법진에서 오른손에, 두 번째 밟은 마법진에서 왼손등에.
기이한 문양을 보며 내가 묻자 흉수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이 마법진에 뭔가 있다는 거겠지.
이들은 정확히 말하면 특질능력자에 가까웠다.
조금 독특한 형태의.
그렇게 그들의 공격을 슬쩍슬쩍 흘려내기를 몇 차례 반복했을까.
내가 다섯 번째 마법진을 밟았을 때 그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끝났네.”
“그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 두 사람이 내게서 물러났다.
“다 보여준 거야? 이게 전부?”
내 물음에 흉수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피…… 필사의 마법진…… 설마!! 안돼!!”
그때 회복을 받고 정신을 차린 말톤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맞아 필사의 마법진. 다섯 번 밟는 순간 그 대상을 완전히 사멸시키지.”
그래서 직접적인 공격을 피해서 시간을 끌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0초. 네 목숨이 남은 시간이다.”
흉수 바크람의 이죽거림에 나는 신기한 듯 손등에 생겨난 문양을 바라보았다.
프리아 여신이 바꿔버린 복장 때문에 영 적응이 되지 않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래. 한번 해봐.”
내 말에 바크람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직 사태판단이 잘 안 되는 모양인데……”
“10초 지난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내가 그들에게 손등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어…… 어떻게 문양이?!”
그들에게 보여준 검백색 문양이 그들의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경악하는 그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좀 전에 말했지. 전투 경험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경험이 정말로 풍부했다면…….”
말을 잠시 흐린 내가 차갑게 웃으며 한 발 내디뎠다.
“당장 튀었어야지.”
터어어엉!!
그야말로 순식간에 파고든 나는 악귀 밴전스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어 튕겨내 버렸다.
“커헉…… 쿨럭…….”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격통에 벽면에 처박힌 그녀가 숨을 쉬기 위해 꺽꺽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가 회복하게 두지 않았다.
“은총 가져갑니다.”
[은총 도둑.]
허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가져가니 프리아 여신의 타박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하지만 그녀가 아바타로 존재하면서 내가 그녀의 은총을 내 의사로 가져올 수 있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냥 두기가 참 아까웠다.
이거 참…… 중독되네.
콰직!! 콰지지직!!
벽면에 처박혀 꺽꺽거리던 악귀의 양어깨와 무릎에 성화가 머금어진 신성한 창을 꽂아 넣은 나는 남은 처단부대 대장인 흉수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하위 신성 마법이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지?!”
경악하는 그가 급히 그림자 속으로 숨으려 했지만 나는 그가 숨어버린 그림자에 똑같이 광창을 던져 주었다.
“크아아아악!!!”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광창에 찔린 흉수 바크람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피를 한 움큼 토해낸 그의 표정은 아주 가관이었다.
놀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저항군 또한 설마 그 강대한 국가급 전력인 그들이 이렇게 손도 못쓰고 당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
악귀와 흉수가 유도한 마법진은 확실히 치명적이다.
특질능력인 만큼 마법으로 디스펠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을 제하고서라도 나는 내무에 침투한 힘을 씹어먹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끄륵…… 끅…….”
악귀가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자 흉수 바크람은 급히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인질로 잡은 것은…….
“……야.”
프리아 여신이었다.
내 곁에 있었으나 놀라울 정도로 표적이 되지 않던 그녀였지만 살기 위한 욕망으로 가득한 바크람은 내가 그녀에게 쩔쩔매던 모습을 기억했는지 그녀의 목에 짧은 송곳을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이년의 목숨은 없다!”
그의 외침에 내 표정이 점차 싸늘하게 변해간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수첩을 내게 들이밀었다.
[꺄악.]
진짜 영혼 없는 흉내였다.
인간을 흉내 내고 싶은 것인지 그녀의 그런 행동에 나는 그녀의 행동이 륀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하하…… 네놈. 이년의 목숨이 중요하겠지? 움직이면 이년의 목숨을…….”
서걱!!
스릉…… 촤아악!!
그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그와 수 미터 떨어져 있던 내가 검을 가볍게 털어내기가 무섭게 그의 목이 떨어져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선을 넘으면 안 되지.”
아무리 악인이라도, 그녀를 위협하는 건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 악랄한 심연의 신 타나토스조차 그녀를 직접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진 않았으니까.
아닌가?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엔 좀 전 나를 향해 내비치던 사이한 웃음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처단…… 부대 대장이 저렇게 손쉽게…….”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속에서 나는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낸 뒤 끅끅거리고 있던 악귀 밴전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안돼…… 안돼!!”
힘겹게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내 손을 보자마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는지 급히 소리쳤다.
[9서클 화염계]
[헬 파이어]
“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검은 화염이 그녀를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이들은 강하다. 기본적으로 마스터급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게다가 거기에 더 얹어 특수한 특질능력으로 육체를 한 층 더 강화시키고 고유의 힘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힘은 일개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렸고, 하나의 일인 거대 전력이 된 것일 것이다.
그런 만큼 저기 팔을 하나 잃고 경악하고 있는 재상에게 자신의 부하인 처단부대 대장들이 이렇게 당하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부류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뭣하나.
“대체…… 대체 뭐냐!! 네놈의 정체가 뭐냔 말이다!!”
격하게 소리치는 재상의 모습에 나는 가면을 고쳐 쓰고는 그에게 한걸음 내디뎠다.
“네가 이분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인계 지옥이 되건 아니건 사실 손대진 않았을 거야.”
내 말에 그가 이를 빠득 깨물었다.
“저 계집이 대…….”
서걱!!
“끄아아아아아악!!”
“입이 화근이지.”
나머지 팔도 잃어버린 그가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보며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살아남은 처단부대원들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내 앞을 막아섰다.
좀 전 광역 성마법으로 한차례 쓸어버린 이들을 제외하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다시 마법을 발현하는 것도 좋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진 못한다.
“막아!! 저 괴물이 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나름대로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었겠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처단부대 대장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상황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 이봐. 다 죽일 필요까진!”
“정신 못 차린 멍청이가 있네.”
싸늘하게 말하며 나는 전신을 검은 연기로 감쌌다.
마치 육신이 검은 연기가 된 것처럼 변하는 나를 보며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던 그들 중 하나의 목이 허무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촤악!!
“끄아아아악!”
서걱!!
“커헉! 제…… 제발!”
격하게 소리치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나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역전이 되는 것도 모자라 일방적인 학살극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 학살극을 막는 이는 없었다.
“끄륵…… 끅…….”
그렇게 마지막 처단부대까지 내게 살해되고 나서야 주변의 싸늘해진 공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챙그랑!!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버린 나는 천천히 재상을 향해 다가갔다.
“이봐.”
그때 나를 부른 붉은 전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죽일 건가?”
“나는 맞고는 그냥 안 넘어가는 주의거든.”
최소한 어떤 사정이라도 있었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율이라도 했겠지만. 재상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놈일 뿐이었다.
“그래.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었겠지. 목숨을 부지해도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을 살아야 했을 거다.”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벌벌 떨고 있는 재상에게 다가갔다.
“하고 싶은 말은?”
“그를 죽이는 것만큼은 내가 하고 싶다.”
뻔뻔한 요구였지만 나는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원한이 깊네.”
“…….”
“편한 대로 해.”
모로 가든 목적지에만 도달하면 되니까.
“저…… 정말인가?!”
붉은 전갈이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알아서 하라고, 나는 죽었다는 결과만 있으면 장땡이니까.”
이에 부축을 받고 있던 그가 홀로 남은 재상에게 천천히 다가가려던 찰나.
우우웅!!!!
갑작스레 대규모의 마법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동시에 주변에 쓰러진 수많은 시체들에서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어딘가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아!”
그 모습을 본 재상이 눈을 부릅뜨며 환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이봐! 무슨 짓…….”
쿠우우우웅!!!
동시에 엄청난 위압이 주변을 감싸 누르기 시작했고, 저항군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경악한 듯 소리쳤다.
“이게 무슨…….”
“크…… 크흐흐…… 그래. 시체는 관계없지. 영혼의 수가 중요할 뿐.”
“크윽! 그게 무슨 소리냐!”
붉은 전갈의 외침에 재상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뒤로 시커먼 무언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만들어진 검은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존재.
거인족.
그 모습에 저항군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다.
“설마…….”
“그래. 소개하지. 처단부대 따위와는 격이 다른 존재다. 너희들이 쓸모없는 저놈들을 모두 죽여준 덕분에 불사의 식이 완성되었구나.”
본래라면 저항군을 모두 죽여서 불사의 식을 완성시킬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반면, 처단부대 쪽이 모조리 학살당하면서 이 해골 녀석이 급한 대로 처단부대와 그 대장들의 영혼을 흡수하고 삼켜서 불사의 식을 완성시킨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유발하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거대한 해골을 보며 저항군은 두려움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쓰으…… 하아…… 어울리지 않는 공기로군.
쇠를 긁는듯한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안광을 번뜩이는 해골을 보며 내가 씨익 웃었다.
“참 인연이 짙네.”
초대 리치. 닉스. 후에 봉인 당하는 놈이며, 페르세르크를 마왕으로 만드는 데 주력을 다한 놈이다.
평행선에선 티오니스를 지옥으로 물들였던 놈이며, 초대 리치라 불릴 만큼 그 힘은 강대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내가 유일하게 죽여선 안 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초대 리치 닉스는 나와 이미 두 번 이상 만난 적이 있다.
티오니스에서는 수르트의 화살을 이용해 완전히 소멸시켰고, 평행선에선 그를 죽일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지독한 봉인진에 가둬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과거의 닉스.
과거와 평행선, 현재. 아주 이대로 가다간 태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만날 만큼 이놈과 나는 연이 깊은 느낌이었다.
위풍당당한 거대 해골이 손에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프리아 여신의 신벌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은 존재.
특수한 불사의 힘을 지녀 청단이 홍단이로도 완전 소멸까지는 못 시켰던 놈이기도 했다.
죽이지 못하면 차라리 손을 안 대는 게 맞을 텐데.
애석하게도 이놈은 현재 재상을 따르고 있다.
그냥 두면 아마 재상의 명에 따라 공격하려 들리라.
저놈을 죽이지 않고 차라리 도망가게 만드는 방법이라면…….
고민하던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봐. 아직 싸울 수 있지?”
“뭐?”
닉스의 출현으로 생긴 위압으로 인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저항군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재상의 목은 내줄 테니까 저건 당신네들이 싸워.”
“그…… 그건!”
“걱정 마. 저거 그냥 센 척하는 해골이야.”
내 말에 붉은 전갈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닉스 또한 자신을 무시하는 내 발언에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는구나, 홀른이여. 죽음을 보여주지. 데스포그.
그의 말과 함께 대량의 사령 마나가 모여든다.
[디스펠]
와장창!!
소리 없이 무언가가 깨져나간다. 동시에 닉스의 마법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는 잠시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데스포그라는 말에 긴장하고 있던 저항군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현실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불사의 식 때문에 내부의 마나가 조금 꼬인 모양이군. 그렇다면! 데스 스피어!
그의 외침에 나는 뒷짐을 진 채 빙그레 웃었다.
[디스펠]
와장창!!!
그의 마법 술식이 그대로 박살 나며 손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기현상을 보였다.
“뭐…… 뭐야.”
호기롭게 외치는 것과 다르게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좀 전 전신을 짓누르던 위압도 사라진 지 오래 의심을 품던 저항군이 이내 검을 들고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인간들이 감히!!
자신의 마법이 왜 발현이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있던 그가 격하게 소리 질렀다.
-죽어라!!! 프로미넌스!!
[디스펠]
와장창!!!
또다시 상쇄.
마법이 전혀 발현되지 않는 닉스는 고작 거대한 뼈다귀일 뿐이었다.
“그것 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하다못해 저런 뼈다귀 정도는 치울 수 있겠지?”
멀찍이 선 채 뒷짐 지고 구경하고 있던 내 말에 저항군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정작 닉스 본인은 미치고 펄쩍 뛰는 상황이었다.
마법이 발현되지 않고 있었으니까.
과거엔 디스펠을 사용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그것조차 힘들었다.
그저. 단단한 샌드백일 뿐.
내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리자 닉스가 당황한 듯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마법은 모조리 내게 차단되어 부서져 발현되지 않았다.
당당하게 나타났던 닉스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모양이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인데.
-왜…… 왜 안 되는 것이냐!!!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며 무력하게 무너지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던 안광 속에서 그가 눈을 부릅뜬다.
-네놈…… 네놈이 내게 무슨 짓을 했구나!!
“에이. 사람 의심하면 쓰나.”
[디스펠]
와장창!!
“뭐야 이놈!! 별거 없잖아?!”
“최후의 카드라고 하더니 죽어라. 이 뼈다귀야!”
“컥!! 그…… 그만!! 내, 내가 내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 것이냐!!”
“몰라 이 뼈다귀야!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