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1화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 속에서 사실 가장 미치고 펄쩍 뛸 거 같은 건 닉스가 아닐까.
-이……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사령술사인 닉스는 실제로 나와 첫 만남 때 9서클에 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상 대륙에서 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를 해칠 수 없는 절대 강자의 경지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이 그때와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사령 마법에 오랜 시간을 들인 그라도, 데스 로드와 비교하면 장난 수준에 가까운 경지.
마법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그에게 마법을 빼앗으면 그 결과는 이렇듯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래서 사람은 재능 하나만 믿고 까불면 안 돼.”
아, 저놈은 마족이구나.
저항군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던 닉스의 안광이 혼란스럽게 흔들린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해버리면 후에 놈이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
사실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내가 섬에서 닉스를 처단했던 그때의 결과가 바뀌진 않겠지만 정말 괜찮은 게 맞는지 조금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멈춰.]
갑작스레 나를 제지한 프리아 여신이 수첩을 들이밀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놈에게 지속적으로 가하던 방해와 디스펠을 모조리 해제했다.
동시에.
-이놈들!!! 감히 나를 우롱해!? 다들 죽여버리겠다!!!
치이이이잉!!! 터어엉!!
닉스의 몸에서 갑자기 거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며 그를 공격하던 저항군들의 몸이 한참 멀리 튕겨 나갔다.
“크윽?!”
“뭐, 뭐야 저건.”
저항군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허공에 떠오르는 거대한 리치를 보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저건 좀 큰 거 같은데요?”
내 말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뺨을 쿡쿡 잡아당기며 장난치기에 바빴다.
즉, 아직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이제 그녀의 행동에 아주 조금 정도 이해가 되고 있다.
수 겹의 검은 마법진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저건…….”
그의 마법을 지켜보던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바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굴욕에 굴욕을 당한 닉스는 지금 꼭지가 제대로 돌아있다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제…… 젠장! 공격이 안 먹혀!
-어떻게 좀 해봐!!
다급한 이들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중 일부는 내게 달려와 소리쳤다.
“저…… 저건 어떻게 안 되오?!”
그 물음에도 나는 조용히 기다리듯 침묵했다.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마법진은 닉스의 사령 마나와 깊게 링크되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지옥을 보여주마!
그의 외침에 쓰러져 있던 재상도 눈을 번뜩였다.
“그…… 그래! 닉스! 다 죽여버려라! 한 놈도 남김없이 전…… 커억?!!”
하지만 격하게 소리치던 그의 몸이 크게 경련하더니 이내 닉스의 손아귀로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재상의 혼이었다.
-닥쳐라! 쓸모없는 놈! 네놈의 혼은 제물에나 쓰일 것이다!
닉스가 영혼을 빼앗기고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한 재상을 걷어차 버리자 재상의 육신이 마치 마른 흙더미처럼 가볍게 부서져 내려버렸다.
일국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원흉치고는 참 허무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닉스는 마치 폭주한 것처럼 마법진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며 그 마법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 광장을, 아니! 이 나라를 통째로 지도상에서 지워주마!
마법의 규모는 이제 마법을 모르는 이가 봐도 여지없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상해…… 저런 마법은 비정상적이야.”
“이런 배치라니! 저게 말이 돼?!”
마법에 조예가 있는 이들은 닉스의 마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면 모르는 이는 그 힘에 짓눌려 괴로워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크으……대체 저게 뭔데!”
“정신 나간 마법!! 저런 흉포한 마법은 시전자도 반드시 멸하게 될거야! 저 미친 뼈다귀 자식! 지금 자폭하고 있다고!”
“그런 거 치고는 너무 멀쩡하지 않냐 저거?!”
“그러니까 나도 모르겠다고!”
거대한 자폭마법에서 본인만 멀쩡하면 그건 단순히 위험한 자폭마법이 아닌 훌륭한 광역학살마법이 된다.
현재 닉스가 힘을 점점 키우고 있는 저 마법은 시전자의 생명력까지 빨아들이듯 공명하고 있다.
실제로 저항군의 영혼이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도 내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곳에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리라.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저항군들이 재차 공격을 가해보지만, 그에게 닿는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닉스에게 유효한 공격 자체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가 만들어내는 사령 마나의 폭풍으로 인해 그를 공격하던 저항군의 마법사들이 되려 마나 역류에 시달리며 피를 토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저항군의 표정이 점차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이…… 이봐! 저건 어떻게 안 돼?!”
“이러다가 우리 다 죽게 생겼어!”
나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말도 무시한 채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당장 1초 후에 마법이 터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프리아 여신과 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느긋했다.
실제로 저 정도로 완성되어버리면 그냥 디스펠로는 해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제, 끝이다.
곧 분노가 폭발한 닉스의 외침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양팔을 펼친 그의 주변으로 시꺼먼 마법진들이 수십 수백 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인류의 종말을 고하듯 폭발적인 힘을 드러내는 마법진에 모두가 절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하하하!! 네놈이 어떻게 내 마법을 방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불가능할 거다!
닉스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죽어라!!
놈의 외침과 함께 그의 주변에 떠올랐던 새카만 마법진들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법진 하나하나에서 막대한 힘이 충돌하기 시작했고, 저항군은 틀렸다고 판단했는지 눈을 꽉 감았다.
도망치기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죽음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지금.]
프리아 여신의 수첩에 글귀가 적히자마자 오른손이 올라갔다.
“확실히 디스펠로는 끊기 힘들겠네.”
내 말에 닉스가 나를 바라본다.
-흥 어림도 없는 소리. 디스펠 따위의 마법으로 내 마법을 차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지금 이 마법은 더 이상 해제가 불…….
따악!!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손가락을 튕긴 내가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거야 보면 알겠지.”
콰직…….
손가락을 튕기기가 무섭게 고요한 침묵이 주변을 휩쓸기 시작하자 닉스가 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안광의 흔들림이 광기와 포악에서 혼란과 경악이 서린 흔들림으로 변한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구조적으로 디스펠 마법을 이용해 해제할 수 없는 마법의 완성.
완성된 절대 마법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갑자기 멈추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콰지직!!
그리고, 굉음과 함께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보는 게 진실이 아닌 환상이라 생각했는지 악을 쓰며 마법을 내게 먼저 쏘아 보냈다.
하지만 이미 뒤틀리기 시작한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 구조 해석하고 간섭해서 내부에서 과부하 시킨 거지.”
-그게 무슨……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보고 있으면서도 못 믿네.”
구조를 해석하고 간섭하여 매듭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가동되는 디스펠과 다르게 지금 내가 한 것은 마법이라기보다는 강제로 마나에 대한 강제력을 발휘해 매듭을 푸는 게 아닌 매듭을 잘라버리는 행동이었다.
제아무리 단단하게 묶인 밧줄이라도 끊어져 버리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물론 무식한 방법이며, 어지간해선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놈과 나에겐 지대한 차이가 있었다.
닉스는 내가 처음 놈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약했고.
나는 그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으니까.
쩌적…… 쩍!!
눈앞에서 자신의 모든 마법이 부서져 내리는 것을 본 닉스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의 내부에 있던 막대한 힘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의 내부에서 지대한 폭풍을 일으키며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크으?!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가 무너져 내리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불사의 식을 통해 죽지는 않겠지만. 그 고통은 오로지 그가 감내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닉스의 혼에 작은 틈이 생기는걸 볼 수 있었다.
“아…….”
나는 닉스의 몸에 생긴 어떤 변화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불사에 금이 갔네.”
나는 그것을 보며 짧게 탄성을 흘렸다.
미래의 닉스는 죽었다. 그것도 수르트가 만든 화살에 의해.
완전한 불사라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겠지만 틈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 때문에 기다리라고 한 겁니까?”
내 물음에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나를 대신해 프리아 여신의 신벌이 떨어지면서 닉스에게 타격을 가하고 그의 불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프리아 여신의 신벌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녀의 신벌로 인해 생길 다수의 문제를 내가 직접 해야 했다.
-크윽?! 두, 두고 보자!!
급기야 닉스는 굴욕적인 후퇴를 선택한 듯 갑작스레 마법을 발현시켰다.
그냥 도망가주는 게 이쪽도 마음이 편하긴 한데.
솔직히 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신벌 말입니다.”
나는 조용히 여신에게 물었다.
“이 땅의 저항군이나 시민들도 모두 포함해서 지워버린 거 아닙니까? 이만한 사람이 살았다면 그만큼 엄청난 변화가 있을 텐데.”
[괜찮아. 내가 해결해.]
너무도 황당한 대답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알아서 하신다면야.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믿기로 한 이상 끝까지 믿을 생각이었다.
“이…… 이긴 거야?”
“이…… 이겼어!! 우리가 빌어먹을 놈들을 모두 물리쳤다고!!”:
저항군은 그동안 이 아르부트 왕국을 좀먹고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켜온 재상과 그 끄나풀인 수많은 부하들을 처리한 게 쉬이 믿기지가 않는지 저항군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상 재상이 무력화되었다면 더 이상 왕국과 저항군의 힘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붉은 전갈을 구출하러 왔다가 저들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참살해버릴 줄 몰랐다는 외신의 입장도 제법 있으리라.
그런 그들을 구경하던 나는 조용히 한발 물러났다.
내가 할 일은 끝난 만큼 더 이상 엮일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닉스는 본래의 의도대로 불사에 상처를 낸 뒤 쫓아냈고, 나머지는 내 계획대로 프리아 여신을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아니, 아직 그 대가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느낀 것은 서로를 얼싸안고 너무도 기뻐하는 저항군을 뒤로한 채 멀리 그들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을 때였다.
“그건 또 언제…….”
나는 프리아 여신이 손에 작디작은 새까만 일렁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해 보이는 그녀는 낮게 천천히 눈을 뜨며 검은 일렁임을 바라보았다.
“신벌이라도 내리시게요?”
내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은 일렁임은 다름 아닌 영혼이었다.
그것도, 본래 닉스가 흡수해서 사라졌어야 할 재상의 혼.
“대체 얼마나 뒤틀렸길래 영혼까지 색이 시커멓게 변한 거야.”
어지간한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는 불가능할 텐데.
아니, 저 정도로 심각하니 그녀가 직접 신벌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말없이 영혼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이내 손을 움켜쥐었고, 검은 영혼은 그대로 사라졌다.
놈에겐 명복도 이제는 사치가 되리라.
이후 프리아 여신이 나를 바라본다.
나름대로 소심한 복수가 끝났다. 그녀가 또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을 담아 그녀를 보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침묵하다 제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과 가슴 부분이 공명하며 붉은 소용돌이가 몰아쳤고, 이내 그녀의 손에 눈물 모양의 붉은 보석이 나타났다.
보옥? 조금 다른데.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자 그녀는 뭔가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어.]
“…….”
[이것은 본디 사라졌어야 할 신벌의 매개체.]
프리아 여신이 죽으면서 이것이 폭주하여 신벌이 떨어졌다.
[막대한 힘을 품고 있는 태초의 정수.]
아바타라곤 해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을 품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태초의 정수를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내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그걸 내 손에 쥐여주었다.
즉. 그녀가 죽으면서 폭주해 사라졌어야 할 정수가. 그녀가 멀쩡해짐으로써 온전히 남게 되어버린 것이다.
[황혼의 아이. 고대룡의 공주.]
본능적으로 눈을 크게 뜬 내가 그 이름이 부르는 뜻을 입에 담았다.
“에반…… 젤린.”
[언젠가 그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할 거야.]
무표정이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필요할 거라고요? 이게?”
[멀지 않은 미래. 네가 가져다준 나의 자아가 보여준 어떤 미래.]
그녀의 대답에 나는 움찔거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별자리 놈들과 한번 엮인 뒤로 에반젤린이 복잡한 심정을 꼭꼭 숨긴 적이 있었다.
동시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프리아 여신을 무시하고 지나쳤다면. 이걸 얻을 수 있었을까.
[고마워?]
그녀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침묵하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거…… 진짜죠?”
에반젤린은 인간과 다른 고대룡이기에 나는 그녀의 양육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정보를 최대한 알아야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진짜. 바람 잘 드는 날이 없네.”
고대룡은 하나같이 왜 이래, 진짜.
[황혼의 아이. 고대룡의 공주. 그녀의 직계. 이 이상은 문제없어.]
즉. 에반젤린이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던 고대룡 이클립스의 직계 딸이기에 이런 것이라는 소리였다.
[고마워?]
그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문득.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고…… 고맙긴 합니다. 당연하죠. 소중한 딸인데.”
내 말에 그녀가 수첩을 다시 들이밀었다.
[고마우면 보답해야지.]
“……여신님?”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지?
[보답해야지?]
수첩에서 글귀가 살짝 바뀌었다.
“아니 잠깐만요. 당신을 구해준 걸로 이야기가 다 된 거 아니었습니까? 원래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었다면서요.”
그 운명을 살짝 비틀고 그녀와 손을 잡은 채 아주 운명의 줄기를 농락했다.
저항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아르부트 왕국은 개혁을 받고 현 국왕이 처형대로 끌려가더라도 그 수명이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그동안 아르부트 왕국을 노리던 이들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신벌로 수많은 인간이 죽는 것보다야. 차라리 조금 더 나은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프리아 여신은 죽을 운명이었으나 나로 인해 살아났다. 그 대가로 나는 이 붉은 보석을 받은 줄 알았건만.
그녀는 내 생각 이상으로 뻔뻔했다.
[상관없어.]
“당신 원래 이랬습니까?”
감정이 본래의 프리아 여신보다 풍부한 아바타인 건 알겠는데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영악해져 있었다.
[너를 보고 배웠어.]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
자업자득이었다.
“그……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몸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다. 동시에 내 옷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그녀가 한 손으로 코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이고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나를 기준으로 빙그르르 돌았고. 그녀의 손끝을 따라 연녹빛의 빛이 모여들어 한차례 내 모습을 스캔하고 복사하여 마치 작은 인형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게 시작이라는 걸 아직 몰랐다. 그녀의 아바타가 살아남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아. 이건 선 넘지 진짜!!”
[이건 못 참지.]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 건데요!
이후 나는 내가 변한 모습을 보며 대놓고 짜증을 부렸다.
그녀가 바꿔버린 의상은 다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