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2화
스르릉!! 카가가가가각!!
눈을 부릅뜬 [바트라나카트], 즉 바트라는 절대 느끼거나 보는 게 불가능해야 할 자신의 힘을 일리나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쳐내는 것도 모자라 역으로 공격해오기 시작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리나의 오러 블레이드를 포함한 공격들은 특수한 정신체인 바트라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해야 한다.
“그아아아아!!”
일리나에 의해 잘려나간 육신을 강제로 이어붙인 그녀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일리나는 한 손에 든 백은의 거검 칼디라스를 이용해 놀라울 정도로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이며 모든 공격을 쳐내고 부서뜨렸다.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다!!”
강하게 악을 쓰는 그녀를 보며 일리나는 주변이 파괴되는 것을 인지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상자 아저씨의 농장. 영지 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휴식처.”
“닥쳐!!”
“네가 부순 게 얼마짜린지 알아?”
서걱!!
맹렬하게 덤벼들던 수인족 소녀 바트라를 향해 한 발 내디딘 일리나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를 지나치듯 미끄러지며 검을 튕겼다.
쩌억!!
“끄아아아악!!?”
분명 공격이 제대로 닿지 않았어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공격이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타격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익!!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말라고!!”
그녀가 목적은 일리나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프리아 여신을 발견하고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균열. 그리고, 그 균열을 서서히 잠식하며 부수고 있는 데이비를 막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바트라에게 방해꾼에 불과한 일리나와의 접점 시간이 길어지는 건 그녀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넌 절대 저기로 못가.”
일리나가 균열 쪽을 가리키며 차갑게 웃었다.
“까불지 마! 네가 아무리 그래 봐야 결국 나를 죽일 순 없어!!”
그녀의 외침에 일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베어낸 것까진 좋지만 결국 그뿐이잖아. 안 그래?!”
그녀의 외침에 일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 자신 자체가 에너지 치면서 정작 본체도 아니지.”
바트라의 본체는.
그녀를 유지시키는 거대한 힘인 균열이다.
“데이비가 저걸 완전히 박살 내면 넌 누가 건드리지도 않아도 사라질 테고. 그래서 급하게 쫓아가는 거 아니야?”
“닥쳐! 사명도 모르는 게!”
“사명 같은 소리 하네.”
귀를 후비적거리며 일리나가 다시 움직인다.
“흡?!”
날카롭게 빛나던 일리나의 황금빛 금안이 번뜩였다.
[초중검]
[일검 강 베기]
“아…… 안돼!!”
서걱!!
새하얀 빛을 머금은 칼디라스가 정확히 대각선으로 바트라의 육신을 베어버렸다.
쩍!!
하지만 그것으로 죽진 않았다.
육체를 강제로 이어붙인 바트라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소리 질렀다.
“망할 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어!”
그녀의 외침과 함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의 보이지 않는 손톱이 일리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검을 내리친 자세를 하고 있던 일리나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카앙!!!
동시에 일리나의 손에 쥐어진 칼디라스가 일렁이더니 거대한 빛으로 변했고, 이내 두 자루의 검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데이비가 검을 함부로 쪼개면 목숨줄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이해 못 할 소리를 하며 칼디라스를 두 자루의 검으로 분리시킨 일리나의 눈에 금빛의 안광이 마치 잔상을 남기듯 일렁였다.
“그래도 쓰려면 해야지 별수 있나.”
일리나의 전신에 시공격검을 발현할 때 보이는 마나의 흐름이 자리를 잡고 부드럽게 일변했다.
[마령검 80초식]
[필사즉생 생즉필사]
오로지 검신의 검만을 다뤄온 그녀가 사용한 것치고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부드러운 검술이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리나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바트라의 시선에 잡히지 않았지만 이미 일리나의 검은 교차되어 휘둘러진 후였다.
콰드드득!!!
그리고, 그녀의 검이 멈추기가 무섭게 그녀를 향해 날아들던 엄청난 수의 보이지 않는 공격들이 일제히 조각나듯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그 조각난 공격 너머 바트라의 육신. 그리고 바트라의 육신의 뒤편 공간까지 모조리 일그러뜨렸다.
바트라는 눈을 부릅뜬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일리나의 공격은 바트라가 인지할 수 있는 속도 범위를 넘어섰고,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했다.
대지가 갈려 나가고 허공이 찢어져 그 사이로 공기가 빨려들어갔다.
“말도 안돼. 이럴 순없어…….”
자신이 왜 당해야 하는지. 대체 일리나의 검이 뭐기에 이렇게 치명적인지 그녀로썬 이해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방금의 공격을 절대로 맞으면 안되었다는 판단뿐이었다.
“안돼, 힘이…….”
점점 균열에서 이어져 전해지는 유지력이 떨어지며 그녀의 신형이 빛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심장을 찔리거나 뇌가 관통당해도 죽지 않는 것이 정신체들의 공통점, 바트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리나는 바트라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재능의 소유자였다.
체질. 재능 모든 것이 그녀와 시공격검 자체가 잘 어울리게 만들어낸 것이다.
“데이비만큼의 화력은 안 나오네.”
일리나가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중검과 시공격검에 특화된 그녀가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역시 마령검을 흉내 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흉내를 넘어 극의에 달하는 80번대 초식은 사실 반쯤 성공한 것도 이번이 처음에 가까웠다.
주변의 공간이 유리창 깨지듯 부서진다.
바닥에 쓰러진 바트라는 몸에서 빠져나가는 에너지들을 잡으려 손을 뻗지만 허무하게 흩어져 나갔다.
바트라의 그런 손끝에는 일리나가 말없이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존재 같았으나 그 외모는 죽음의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네 말대로 결국 나는 널 근본적으로는 죽이지 못할 거야.”
아무리 공격을 방어하고 쳐내도 일리나가 세상에 소속된 존재이며 신격이 아닌 이상 세상의 규칙 자체에 해를 가할 순 없다.
물고기를 물에 넣어본들 익사할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방법이 없진 않지.”
촤악!!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칼디라스를 한 손에 든 채 그녀가 허공을 갈랐다.
이격으로 베어진 공간으로 인해 균열과 이어진 끈이 대부분 끊어지고 마지막 하나 힘겹게 남아있던 가닥이 끝내 완전히 끊어졌다.
바트라는 그런 그녀를 괴물 보듯 보며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바트라가 있었던 자리에 흩어진 에너지들은 갈 곳을 잃고 푸른 빛의 기둥이 되어 하늘 높이 쏘아져 올라갔다.
바트라라는 만들어진 정신 자의식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가 바트라를 끝내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린 반대편 쪽에서 똑같은 기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명의 정신체를 상대하던 보팔 레빗과 에반젤린도 끝을 낸 듯 보였다.
일리나의 입장에서 나머지 한 명을 그 둘이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조금 의문이 들긴 했지만 크게 생각하진 않았다.
* * *
쓰러져서 흩어지기 시작하는 조그마한 소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소년은 수인 소녀였던 바트라와는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바트라가 공격적이라면 이 조그마한 소년인 로구엘레는 방어에 특화된 존재였다.
실제로 보팔 레빗의 일격을 맞고 전신이 터져나갔음에도 마치 몸의 모든 입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돌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육신은 어째서인지 방어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빌어먹을 새하얀 2족 보행형 토끼와 온몸에 별을 두른 정체불명의 미노타우로스, 마지막으로 거대한 방망이를 든 넝마를 걸친 기괴한 도깨비로 인해 부활할 틈도 없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무식함의 극치! 단순함의 표본!
그에게 가해지는 모든 힘을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 치명상을 입어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그였지만 그의 그런 행태를 본 망할 근육 덩어리들은 아주 물 만난 것 마냥 멈추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서로가 멈추지 않는 소모전이라 해도 생명체인 이상 반드시 지친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승기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변수가 발생해버렸다.
칠흑의 검을 든 작은 소녀.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위험성은 두 근육 괴물 놈들에 비하면 정말 하잘것없었지만, 그녀는 로구엘레가 보기에 그를 상대하기 위해 모여든 이중 가장 위험했다.
일의 발단은 로구엘레가 에반젤린의 정신을 장악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면서 시작되었다.
꽤 중요인물로 추정되는 그녀만 장악하면 이 무식한 근육 덩어리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크나큰 실수가 될 줄 알 리가 없는 그는 근육 덩어리들과 대치하며 에반젤린이 접근하게 틈을 만들었고, 에반젤린이 실수를 한 틈을 타 그녀와 접촉하여 그녀의 내면 속으로 자신의 자아를 밀어 넣었다.
그게 악몽의 시작이었다.
당당하게 에반젤린의 정신 내부까지 침입한 그가 에반젤린을 장악하려던 그 순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 파고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에 깜짝 놀란 그는 반사적으로 링크를 끊었지만, 그 무언가가 남긴 상흔은 끔찍한 상처가 되어 그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형태조차 보지 못했다. 다만 그 찰나의 순간 그 무언가가 로구엘레의 정신을 단숨에 파괴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틀려버린 그의 정신은 정신체의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의 재생능력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계략을 꾸몄으나 역으로 당해버린 그는 본능적으로 후퇴를 택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속도 면에서나 로구엘레라는 개체는 다른 정신체에 비해 육체 능력이 극도로 떨어졌다.
게다가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인 정신 관련 부분을 일순간에 파괴당한 탓에 그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는 것에 점점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그는 근육 덩어리들에 대한 생각은 모두 잊어버린 채 에반젤린의 내면에서 본 무언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그는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비틀리고 부서져 갔고. 어느새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육신의 절반 이상이 입자화하듯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건 말도 안 된다고!!
그의 마지막 외침은 절망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 * *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했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아. 재난 지원금이 날아간다.”
허공에 묶인 채 멈춰있는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 그리고, 서서히 비틀어지고 있는 거대한 균열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나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새하얗고 긴 팔들을 찢어발기면서 균열을 약화시켰다.
[데이비. 이쪽 끝났어.]
일리나의 연락이 귓가에 들려오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빛으로 된 기둥이 쏘아져 올라간다.
그 뒤로 다른 방향에서도 똑같은 기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빠! 여기도 끝났어요!]
에반젤린의 외침에 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다친 덴 없어?”
[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네. 그 꼬마…… 저를 보더니 갑자기 약해지더니…… 도망쳤고, 결국 근육 아저씨들에게 소멸됐어요.]
근육 아저씨. 그 흉측한 놈들을 그렇게 곱게 표현해주는 것을 보면 에반젤린도 참 심성이 곱기 그지없다.
암, 누구 딸인데.
아. 이클립스는 성질머리가 더러웠던가.
남은 한 놈이 왜 갑자기 약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걱정했던 것 치고는 일이 잘 풀린 꼴이었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물러나. 아빠가 마저 정리하고 돌아갈 테니까.”
[네! 꼭 안전하게 돌아오셔야 해요!]
그때 허공에 묶여있던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태블릿을 내게 던졌다.
그곳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어지러워.]
“……거 조금만 더 매달려봐요.”
[풀어줘.]
그녀의 무감각한 요구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사슬을 잡지 않은 손에 쥐고 있던 홍단이를 허공에 띄워 올리고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허공을 후려쳐 그 안에서 죽창 형태의 신창 롱기누스를 소환해냈다.
파지직…….
동시에 황금빛 전류가 창에 모여들며 변하기 시작한다.
[신창 롱기누스 2번 형태]
[핵죽창]
콰지지직!!!
마치 벼락을 손에 쥔 것처럼 스파크를 튀기는 황금빛의 창을 균열을 향해 겨누자 균열이 더욱더 힘을 내뿜으며 더 많은 손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위험을 감지하고 나를 저지하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프리아 여신은 요지부동이었다.
태블릿 화면에 어떤 무언가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빨리, 어지러워.]
그러한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프리아 여신을 포박해 끌고 올라가려던 사슬이 한차례 철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그 사슬 속에서 기이한 검은 가시 같은 것들이 길게 뻗어져 나오며 프리아 여신을 향해 날아든다.
조금만 더 그냥 두고 싶은데.
고민하던 찰나 프리아 여신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바타가 부서지면 안 돼.]
“왜요?”
[부서지면 널 못 봐.]
그녀는 끝내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김이 샐 지경이었다.
[치졸한 성자. 밴댕이 소갈딱지.]
역시 그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일단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균열을 비틀어버리고자 롱기누스를 던져 가시를 박살 내려던 찰나였다.
[태초의 청소부.]
“어?”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이곳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형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창공의 공간이 한차례 찢어지며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감이 쏘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베헤모스?"
놀란 내 중얼거림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놈을 못 알아볼 내가 아니었다.
다만 그 크기가 내가 아는 베헤모스보다 훨씬 거대했다.
실제로 창공에서 나타난 놈은 일대 하늘 전체를 완전히 가려버릴 정도로 거대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킬로미터 단위로도 쉽게 계산할 수 없는 크기.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작은 대륙 하나가 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놈은 하늘에서 추락하듯 떨어지며 그대로 균열을 향해 거대한 입을 쩍 벌렸고.
한입에 균열과 그 균열 주변의 공간 전체를 삼켜버렸다.
쿠우웅!!!
동시에 바닥에 꽂힌 사슬과 프리아 여신을 포박해 끌고 올라가려던 사슬까지 일제히 가루처럼 흩어지며 사라진다.
그야말로 황당한 모습이었다.
“뭐야…….”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속에서 베헤모스가 지상에 추락하려던 찰나. 놈의 크기가 일순간 줄어들며 수백 미터에 달하는 크기로 작아졌다.
그 거대한 형체 그대로 떨어졌다면 영지 전체가 날아갈 사이즈였지만 베헤모스는 떨어지면서 수백 미터에 달하는 나름대로 작은 사이즈로 줄어들며 추락했다.
“야. 너 뭐냐?”
계약자인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소환된 것도 웃기지만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방금 전 생전 처음 보는 형태로 나타나 균열을 먹어치워 버린 것이다.
마치. 균열이 있던 공간 전체를 먹어버린 것처럼. 하늘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포식에 관한 환수왕이라지만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환수왕인 베헤모스가 강하다 해도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
[음? 뭐냐 계약자! 언제 날 부른 거냐! 빨리 돌려보내라! 소야가 기다리고 있다!]
거대한 눈에 나를 담은 채 녀석이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놈은 방금 전 자신이 한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내가 천천히 물었다.
“방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 있냐?”
[음? 무슨 헛소리냐! 방금 전까지 나는 사냥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건방진 백상아리 놈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나는 황당함을 애써 누르며 롱기누스를 본래 형태로 돌리고 아공간에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프리아 여신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쟤 뭡니까.”
내 물음에 프리아 여신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려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태블릿엔 나를 비난하는 글귀가 유난히 반짝였다.
[은총 도둑, 밴댕이 소갈딱지.]
그러게 사람 몸 가지고 장난치랬나.
방금 전 프리아 여신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 사용하여 어떤 트리거를 당겼을 뿐이었다.
즉. 방금 균열을 먹어치워 버리고, 차원을 뚫고 멋대로 튀어나온 것 모두가 베헤모스의 힘이라는 소리였다.
“아니 그래서 쟤 뭐냐고요.”
환수 소환사인 영웅 셰인 스크리프트에게조차 들은 적이 없던 모습에 내가 재차 대답을 강요하자 프리아 여신은 나를 말 없이 바라보다 갑자기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시선을 피했다.
[시선이 강렬해.]
“…….”
동시에 그녀는 손을 뻗어 내 한 손을 잡은 뒤 어디론가 데려갔고, 베헤모스의 바로 옆에 도착한 뒤 잡고 있던 내 팔로 그녀를 가두듯 베헤모스의 피부를 짚게 했다.
흔히 벽치기라고 부르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코를 움켜쥐었다.
답답해서 복장이 터진다는 게 이런 곳에 쓰이는 것이리라.
급기야 나는 그녀의 양 뺨을 잡아 마구잡이로 잡아당겨 버렸다.
[아파.]
“아프라고 당기는 겁니다. 예?”
[아파, 아파. 아파.]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가 버둥거린다.
하지만 나도 물러날 순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놈 뭐냐고요.”
그때 바닥에 추욱 늘어져 있던 거대한 고래 녀석, 베헤모스가 눈을 번뜩였다.
[그렇군! 기억이 났다!]
“뭐? 기억났다고?”
이미 내 관심사는 망할 균열보다 그걸 먹어치워 없애버린 베헤모스에게 꽂혀 있었다. 프리아 여신은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 머리통 나쁜 베헤모스에게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 거기 앞에 수염 부분이 너무 간지럽다! 이상하군, 똑똑한 내가 왜 이런 걸 까먹고 있었는지, 계약자 얼른 좀 긁어라!]
베헤모스는 내 상상 이상으로 미련하고 생각이 없는 놈이었다.
그의 외침에 나는 미련 없이 놈을 걷어차 공간을 열어 날려버렸다.
“꺼져 이 새끼야!”
물어본 내가 등신이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에 내가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프리아 여신을 바라보자 그녀가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궁금해?]
그녀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아선 안 되는 섭리야. 그래도 알고 싶으면…….]
그녀가 제 뺨을 톡톡 두드렸다.
[오는 게 있어야 해.]
“동작 그만. 지금 누구 남편한테 수작 부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