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3화
지구의 인어 소야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베헤모스가 언제 돌아오나 기다리며 잔뜩 침울해져 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잠깐 사라진 것뿐인데도 이렇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묘한 느낌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아! 수호자님! 우악!”
허공이 찢어지며 모습을 드러낸 베헤모스가 바다에 엄청난 여파를 만들어내자 그 파도에 휩쓸린 소야가 비명을 지르며 휘리릭 쓸려나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낚아챈 새하얗고 긴 수염이 그녀를 휙 던지듯 베헤모스의 몸체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 참!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흥! 망할 계약자 놈이 불렀다!]
“그래요?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만요. 그런데 무슨 일로 가신 거예요?”
[똑똑한 내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놈이 나를 부르고 한다는 짓이 나를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었으니.]
베헤모스의 말에 인어 소야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게 전부에요?”
[아! 기억났군!]
“뭔가요?!”
스르르륵!!
새하얀 수염이 움직이며 그녀를 낚아채 어디론가 들이밀었다.
[그 부분이 가렵다! 좀 긁어봐라!]
“…….”
그것을 본 소야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억나셨다면서요.”
[그래! 가려운 게 기억났다!]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며 소야는 빠르게 바닥으로 내려갔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돌멩이를 가져와 단단하고 거대한 베헤모스의 피부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시원하세요?”
[좀 더 세게 긁어라! 하여튼 약해빠져선!]
“제가 약한 게 아니고 수호자님이 너무 단단한 건데요!!”
소야의 볼멘소리에 베헤모스가 잠시 그녀를 노려보았다.
평소라면 대뜸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포악한 게 베헤모스였지만 그는 놀랍게도 빛으로 휘감기며 그보다 훨씬 작은 모습으로 변했다.
[이 정도면 되나?]
“해…… 해볼게요.”
그렇게 긁으며 소야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어? 수호자님.”
[왜!]
“이게 뭔가요?”
소야는 자신이 긁던 베헤모스의 피부에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 뭔가 있나?]
이에 베헤모스가 급히 몸을 뒤틀어 바라보려 하지만 신체 구조상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망할! 귀찮군!]
“아니 이건 무슨 문양이라고 해야 할지…….”
소야의 눈에 비친 베헤모스의 지느러미 아래쪽 부분에는 특수한 십자가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소야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몸을 비벼서 지워버려야겠군!]
“그래도 멋있는데요? 정말로 지우시게요?”
[귀찮으니 그냥 둬야겠다!]
수호자 베헤모스의 대답에 소야가 키득거렸다.
남들은 그를 무서워하지만, 소야의 눈에는 베헤모스라는 이 거대한 생명체가 귀엽기 그지없게 보였다.
“자 그럼 북쪽으로 가요! 글쎄 저와 사이가 안 좋은 아델리 갱단 자식들이 범고래와 결탁하고 물범을 공격했데요! 제가 물범하고 얼마나 친한지 잘 아시잖아요.”
[그게 뭐냐!]
“에이 그 있잖아요. 그 미치광이 펭귄 자식들. 그보다 범고래가 문제라니까요?”
[흥! 귀찮다!]
“아하~ 혹시 범고래가 무서운 거예요?”
[감히!! 내가 두려워하는 게 있을성싶으냐! 안내나 해라!!]
정말 다루기 쉬운 존재다.
소야의 입가에 장난기 서린 미소가 걸렸다.
퍼어어엉!!!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아가는 베헤모스를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 문양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뭐였더라…….”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녀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몰라! 같이 가요. 수호자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저것을 기억해내는가가 아니었다.
북해의 범고래들과의 자존심 싸움이 더욱 중요할 뿐이었다.
“앗 따가!”
그때 소야가 몸을 파르르 떨며 팔 부분을 부여잡았다.
“뭐…… 뭐야?”
그녀의 팔에는 독특한 상처 같은 것이 나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파고 들어간 것 같은 그런 상처였다.
스르륵…….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맹렬하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베헤모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갑작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하늘 높은 곳에서 일리나가 빠르게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본 일리나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건 아니죠.”
[쯧.]
그러자 태블릿으로 아쉬움을 표한 그녀가 일리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인격을 생성한 아바타라곤 해도 눈앞의 그녀는 태초의 신의 일부.
그런 만큼 고작 피조물 따위가 창조주에게 덤벼드는 건 상식적으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당신이 나를 위해서 해준 일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녀가 복잡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진짜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저를 떠보는 건 그만두세요. 그리고, 이 이상 페르 언니에게 걱정을 줄 순 없어요.”
그녀의 말에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나와 일리나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이야기한 것일까.
씁쓸한 감정이 서린 일리나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내 눈이 부릅 뜨여져 버렸다.
가만히 있던 프리아 여신이 내 기척을 완전히 속이고 접근한 뒤 뺨에 입을 맞추고는 일리나에게 혀를 쏙 내민 것이다.
“뭐…… 뭐 하는?!”
이에 당황한 일리나가 소리치려던 찰나. 프리아 여신은 내게 팔뚝만 한 석판 하나를 휙 던져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태초의 벽화. 언젠가. 네가 정말로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 내면을 들여다봐.]
완전히 흩어져 버린 그녀를 보며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석판에는 어떤 태양과 거대한 짐승이 그려져 있었다.
겉보기엔 벽화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나는 이 짐승이 내가 아는 어떤 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오!!”
여신이 사라진 직후 일리나가 분개하며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그게 뭔 소리야.”
“어……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아는 거 같은데. 너 뭐했냐?”
내 물음에 그녀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화…… 낼 거야?”
“들어는 보고.”
내 대답에 그녀가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게…….”
우물쭈물하는 그녀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점점 뭔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춰주었다.
일리나의 눈이 쟁반마냥 크게 뜨여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황한 기색을 귀엽게 내비쳤다.
“어?”
“이래도 말 안 해?”
“아, 그, 그게!”
한 번 더 입을 맞추자 일리나의 표정이 울 것처럼 변했다.
“그만 놀려 데이비.”
그때 그런 내 심문을 틀어막은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페르세르크였다.
그녀는 막대사탕을 오물거리며 서 있는 륀느를 대동한 채 다가와 말했다.
“알려고 들지 마.”
“뭔데. 너도 알고 있었어?”
“본녀가 몰랐을 리가 있나.”
“미안한데 나는 들어야겠어.”
“데이비. 이건.”
“말해.”
단호한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리나. 가서 위병들을 통솔해주겠니?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해도 하늘에서 갑자기 베헤모스가 나타난 탓인지 많이 부서졌구나.”
“그…… 그러네요.”
“먼저 가봐.”
페르세르크의 말에 일리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다 기습적으로 뺨에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널 배신하려던 건 아니야. 사랑해 데이비.”
그 말과 함께 후다닥 뛰어가는 그녀였다.
이후 잠시 침묵하던 페르세르크는 파괴된 현장을 지켜보며 말했다.
“베헤모스를 왜 소환한 게야 대체. 덩치 때문에 함부로 소환하지도 못한다더니.”
“내가 부른 게 아니야. 여신이 불렀지.”
“여신이…… 환수왕을 멋대로 불러냈다고?”
“그래. 거기다가 그놈. 균열을 먹어치워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분명 문제가 생겨도 생겼어야 했건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일엔 미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홀로 중얼거린 그녀가 나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무슨 뜻이야?”
“프리아 여신의 행동엔 모든 미래의 가능성이 서린다는 뜻인 게지.”
“그게 좀 전 일하고 관련이 있나?”
그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작게 만든 뒤 내 어깨에 올라앉았다.
최근 들어 작은 모습으로 지내는 경우가 잘 없었기에 새삼스러운 기분이었다.
반대로 조금 그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로 연심을 드러내기도 전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 함께 지내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에. 프리아 여신이 에이리아의 몸에 그대의 아이를 품게 만든일. 기억해?”
그녀의 말에 나는 씁쓸한 기억이 떠올라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는데.
에이리아가 품었고, 지금은 유산되어 윤회의 고리에 오른 첫 아이.
이름도 붙여주지 못했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언급하는 그녀의 말에 내가 침음성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에겐 아빠로서 완전히 실격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떠올랐기에 설마 그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에이리아가 그렇게 아이를 품고 유산하지 않았다면 그대가 에이리아를 받아들였을까?”
그 한마디에 나는 냉수를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리나도 마찬가지지. 에이리아를 그대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리나 또한 그대의 품에 들어온 격이지.”
“그건 네가…….”
“그렇기에 가능성이라고 한 게야.”
프리아 여신이 세상을 조율하면서 나와 합을 맞춘 미래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가 한 이해 못 할 행동으로 생겨난 변화까지.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침묵했다.
“뭐 그런 게지. 그래서, 그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후회해?”
“넌 아무렇지도 않냐?”
에이리아가 품고 있던 아이가 고작 그런 이유로 사라진 것인데.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구나 데이비.”
“뭐?”
“에이리아가 기억을 잃고 평행세계에 같이 떨어졌을 때. 그녀는 그대를 연모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기억을 되찾았어. 그건 신조차 놀랄 기적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에이리아가 가장 바라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지.”
“그럼 그 아이는 왜 죽인 건데.”
에이리아의 유산은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프리아 여신이 내 아이를 죽인 거 아닌가?”
“후우…… 이건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온전하게 태어나지 못한 아이는 영혼 또한 불안전하지.”
“그래서?”
“그 아이의 영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전하게 태어났고.”
“설마.”
“그 이름이 다리안 올 라운.”
그 한마디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대의 소중한 아들. 이건 비밀이니 어디 가서 떠들지 말아.”
잃은 줄 알았던 다리안의 영혼은 가짜 육체를 벗어나 온전하게 안착했고, 다시 내 품에 안겼다.
다리안은 굉장히 낯가림이 적은 편이었다.
그 덕분인지 지구에 있던 삼촌도 다리안을 볼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리는 걸 자주 본 적이 있으니까.
“이 이야기는 얼마 전 프리아 여신에게 직접 들은 거야. 그녀도 이제 그 문제가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 판단한 거겠지, 여신께서 그대의 곁에서 장난을 쳐도 본녀가 그냥 두는 건 사실 그 때문이야.”
어쩐지 그녀가 유별나게 프리아 여신에게 관대하다 싶었다.
“지구에 좀 다녀와.”
“거긴 왜.”
“올 때 메로나.”
그녀가 쪼르르 날아오르며 말하자 말없이 기다리고 있던 륀느가 눈을 반짝였다.
“데이비 님! 효율적인 베이비시터를 위해서는 베스트라킨스 61 풀콤보를 요청해! 륀느가 아빠는 외계인을 높게 평가!”
프리아 여신처럼 감정 없는 얼굴이지만 어째서인지 상당히 다급한 느낌이었다.
“그, 그래. 61가지 아이스크림 맞지?”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이는 녀석을 보니 역시 륀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하인스 영지의 재정은 일개 영지가 보유하기엔 너무도 거대하기 그지없다.
물론, 영지 전체 내의 상업 수익보다 영지 전체에 시행하는 사업이 대부분의 수익인 터라 정작 영지민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하. 하필. 파괴된 곳이…….”
이중 삼중으로 결계를 쳐놨는데. 이 빌어먹을 고래 자식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결계까지 먹어치워 버리고 중요한 사업 물품을 박살 내버렸다.
상당량의 고가의 물품을 적재해놓은 창고가 박살 나버린 것이다.
“당장 보유현금이 많은 터라 큰 문제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손해가 제법 있어요.”
물론, 공적인 자금으로는 그 정도가 손해지만, 사실 타 차원과의 거래를 필두로 계산하면 전혀 손해 볼 게 없었다.
예쁜 정장을 입고 보고를 올리는 그녀의 말에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다고 해도 손해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고래 새끼를 어떻게 하지?”
정작 이 망할 돌대가리 환수왕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수밖에.
실제로 현 하인스 영지는 상당한 복지를 하는 터라 나가는 돈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새로운 돈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반대요.”
하지만 간혈천으로 재미를 보려던 내 생각은 골고다 장로의 발언에 잠시 멈춰졌다.
“이유는요?”
“흐음…… 내 인간의 사회를 잘 아는 바는 아니오만…… 이전에 볼티즈 왕국과 린디스 제국에서 비슷한 사업을 진행한 바가 있었소.”
하기야 동부대륙은 화산지대가 여기저기 분포되어있으니 말이다.
“많은 자금이 들어갔지. 하지만 어떻게 되었을 거 같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그리 잘 안 되었다는 것뿐이네요.”
“그렇소. 처음에야 으리으리한 숙소와 깔끔한 시설로 유입되는 관광객이 제법 많았지. 하지만 그게 전부였소.”
“저하. 온천 사업이 성공한 사례는 서대륙에 있는 몇몇 국가가 전부에요. 그것도 이웃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찾거나 국내에서 관광객이 방문하는 정도였죠.”
외화가 필요한 현시점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발언이었다.
“은사께서 말씀하신 터라 내 이미 한번 간혈천을 보러 갔소만…… 온천수에 상당한 불순물도 검출되었소이다. 단순히 온천으로 써먹어도 경쟁성이 없는데 불순물이 섞이면 외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법이오.”
그는 객관적으로 사업의 불리함을 내게 알려왔다.
“요지는 경쟁성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안전성도 확보되지 않는다는 소리네요.”
단순히 뜨거운 지하수가 솟아오른다고 그게 다 사업아이템이 되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달의 풀이나 에오니샤의 시계가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디까지나 부족한 공급, 폭발적인 수요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방사능 관련 사업을 했을 때도 잘 먹힌 것은 그와 같은 사례이기도 했다.
반면 지금 내가 찾아낸 간혈천으로 뭔가 재미를 보는 건 어려워 보였다.
“아 물론, 영지의 자금을 생각할 때 영지민들의 복지와 내부 경제를 돌리는 데엔 제법 쓸만할게요. 불순물이야 거르는 망을 주기적으로 설치하고 교체해주면 되는 일이니.”
적어도 외화벌이는 안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걱정 마. 인간이란 몸에 좋고 피부 좋아진다고 하면 기를 쓰고 찾아오는 자들이 많으니까.”
“예? 하지만 그건 허위광고…….”
“누가 허위로 광고한대? 걱정 마 수단이 있으니까.”
간혈천에 정령을 분포하는 정도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성수라도 뿌리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몸을 담그는 것으로 주변 일대를 성역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딱 한 명 존재했다.
인간 녹차.
아니, 정확히는 신격이니 신 녹차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에 어떤 구상이 그려지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저하?”
“흐흐흐…… 아냐. 걱정 마. 장로님은 일단 견적만 뽑아주세요.”
“크흠…… 이…… 일단 견적을 뽑는 정도라면야. 알겠소.”
“저하, 그리고…….”
에이미가 조심스레 말한다.
“영지의 식량을 전반담당하던 알라우이 상단에서 전언이 왔어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꺄우~“
내 품에 안겨 버둥거리는 다리안에게 젖병을 물려주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 에이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라우이 상단을 통해 저희 하인스 영지에 주기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주던 중부대륙의 국가 알베르타의 머전트 공작가에서 수출품목을 전면 철수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해요.”
“뭐?”
그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인간이 상도덕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알베르타 왕국은 거대한 상업 국가이며 농업 국가이기도 했다.
싼값으로 제공되는 알베르타의 밀이나 쌀, 여러 곡물은 수많은 대륙의 식량줄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일로 인해 나는 알베르타 왕국의 머전트 공작과 한번 만나 이에 따른 협약을 나눈 바도 있었다.
서로 이득이 되는 사안이었으니까.
“그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나.”
내 중얼거림에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저하께서 협약을 나누었던 머전트 공작이 지병으로 두 달 전 세상을 떠나고 젊은 공작 영애가 자리를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요.”
재상의 자리?
재상의 자리라는 게 마냥 그렇게 세습이 되는 게 아닐 텐데?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집무실의 한켠에서 서류 더미에 파묻혀있던 일리나가 고개를 스윽 들었다.
“소식 못 들었어?”
“어?”
“알베르타의 재상인 머전트 공작의 영애. 그 여자가 네게 청혼했었어.”
“뭔 개소리야 이게.”
“그걸 내가 거부했더니 이러는 거 같은데?”
다시 말해서 무역보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