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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84화 (1,084/1,559)

제1084화

중부 대륙의 알베르타 왕국.

규모가 거대한 국가로서 대륙 최고봉에 달하는 농업국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알베르타 왕국은 대륙 각지로 수많은 농산물을 상단을 통해 공급하는 곳이기도 했다.

무역보복.

그 원흉이 참 기가 막히기 그지없다.

“이게 말이 돼? 결혼한 남성에게 청혼을 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는 건가?”

보통 이런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첩실로 들어가는 케이스.

즉, 이 앙큼하기 그지없는 어린 재상이 내게 첩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당연히 일리나의 입장에선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장난질을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언니, 이거 내가 잘못한 거예요?”

“아녜요 일리나 언니. 이 일은 절대 정상적인 외교가 아닌걸요.”

“에이리아의 말이 맞아.”

고민을 하는 세 사람을 보던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에이미를 필두로 한 영지 관리직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신뢰를 저버린 알베르타 왕국에 정식 항의하고 물량을 약속받은 대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윽고 일리나가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네가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따를게. 다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어이가 없는 거 아니야?”

혼인을 치르고 잘살고 있는 일국의 대공에게 대뜸 연락해서 청혼을 한 것도 모자라 이걸 빌미로 무역분쟁을 일으키다니.

알베르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만큼 이 일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전대 알베르타 재상. 그 사람은 정말 신뢰가 두텁고, 인망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한숨을 내쉬는 일리나의 중얼거림에 에이리아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예전에 알베르타의 공작 영애를 본 적이 있어요.”

“본적이 있다고?”

“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성국의 수도 교원에서 선대공작을 따라온 그녀를 잠깐이나마…….”

어떤 사람이었느냐 질문을 던지니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죠.”

결국, 이렇다 할 단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전쟁이라도 벌이게?”

“무역분쟁에 무력이 들어가면 그건 폭거야. 그것도 특별한 명분도 없이 그렇게 했다간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단번에 작살날걸.”

그건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놓고 넌 오라버니가 계신 팔란 황궁 창공에 메테오를 불렀잖아.”

“그거하곤 별개야.”

뭐가 다르다는 건지 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심쩍은 게 있구나.”

“그냥.”

묘한 느낌이 든다.

* * *

알베르타 왕국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는 데엔 많은 인원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륀느. 단 둘이 출발한 것이다.

평소대로의 복장에 늘 그렇듯 새하얀 붕대만 감긴 맨발로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오는 륀느의 입은 쉬지 않고 간식거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생체 골렘. 그것도 극한의 정수를 지닌 륀느인 만큼 저걸 먹고 혹여나 살이 찌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데이비 님. 륀느의 감지 회로에 매우 불온한 기척이 감지.”

“어……어?”

“감정회로가 급속도로 가열, 이것을 알 수 없는 분노라 명시.”

륀느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 눈치도 빨라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와.”

육로로 향하기엔 알베르타 왕국까지 가는 데엔 며칠 이상이 소요된다.

그렇다고 공간 전이를 하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이에 내가 선택한 것은 간단했다.

[빌어먹을! 내가 네놈의 탈것취급이나 받아야겠나!!]

왜 잔뜩 화가 났는지 모를 메가로드리아의 성질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거 숲에서 늘어져 있으면 살찐다. 운동도 좀 해야지.”

내 말에 메가로드리아는 성질을 부리면서도 이내 천천히 몸을 낮췄다.

[계약자. 나를 함부로 타고 다니는 것도 안 좋은 것은 알고 있나?]

메가로드리아는 이미 대륙 내에서도 유명한 존재지만 그가 출현하는 것은 범국가적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하고도 남을 수준이라는 모양이었다.

물론 왕국의 영공이라면 몰라도 타국은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메가로드리아가 보일 경우에만.

“넌 지금까지 잘만 날아다니면서 문제가 안 된 걸 보면 모르냐? 나만 믿어.”

내 말에 메가로드리아가 짜증스레 날아오른다.

동시에 빛을 굴절시켜 곧바로 메가로드리아를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 나는 놈을 타고 빠르게 창공으로 향했다.

* * *

알베르타 왕국은 평화롭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알베르타의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내려선 뒤 메가로드리아를 역소환 시킨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벽과 그 성벽 위로 보이는 거대한 백색의 왕궁, 그리고 그 왕궁의 정면을 장식하는 거대한 석상을 시야에 담았다.

알베르타의 초대 국왕이라 불리는 인물의 석상으로 대륙 내에서도 제법 유명한 관광 상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비 님. 새로운 미각 데이터 감지.”

“나중에 원 없이 먹게 해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

내 말에 륀느가 입맛을 쩍쩍 다셨다.

나는 적당히 용병 신분으로 위장해 알베르타의 수도에 진입했다.

공문을 띄워 공식적으로 방문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머릿속에 생각해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도 내에서 순환하는 마차에 올라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내 시야에 수도의 풍경이 보인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다 왔수!”

이윽고 마차가 멈춰 서자 눈앞에 거대한 저택이 시야에 담기기 시작했다.

마차에서 내가 내리자 륀느가 폴짝 뛰어 내 뒤에 선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꼬마는 노예요? 아무리 노예라지만 너무 헐벗었구먼.”

마부가 그런 말을 하면서 떠나가버리자 내가 고개를 돌려 륀느를 바라보았다.

“너 그렇게 입고 있으면 하인스 영지에선 문제가 안 되는데 이런 곳에선 풍기문란죄로 잡혀가 임마.”

내 말에 륀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륀느의 데이터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현상.”

“원래 문화라는 게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많아. 이거나 뒤집어써.”

나는 륀느에게 고풍스러운 로브를 덮어주며 거대한 저택으로 다가갔다.

“정지, 정지. 멈추시오!”

이윽고 나를 막아서는 경비병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여기가 머전트 공작가입니까?”

“그렇소. 누군데 이곳을 찾아오시었소?”

경비병이 정중한 것을 보면 주인을 알 수 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을 향해 미소지으며 품 안에 있는 미스릴 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정중한 그들에게 나 또한 그에 맞춰서 대우를 해주었다.

“라운 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공문 없이 찾아온 건 사과할 일이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급히 재상을 만나 봬야 할 거 같은데요.”

“응? 헉!”

이윽고 내가 가진 미스릴 패와 그 안에 새겨진 문양을 본 경비병들이 숨을 삼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문양의 진위를 떠나 지금 내가 가진 패는 보통 왕족들이 사용하는 패였기 때문이었다.

“시…… 실례 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서로 눈치를 살피던 경비병 중 하나가 급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다린 지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곧 저택 안에서 걸어 나오는 정갈한 복장의 사내와 내가 눈을 마주쳤다.

“어서 오십시오. 데이비 올 라운 왕자님.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라 들어가자 저택의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화물이 적재된 곳도 있고, 그 화물을 들고 이동하는 인부들도 보였다.

예전 선대 머전트 재상과 사업 이야기를 나눈 건 팔란 제국이었다.

그 탓에 나는 이 저택에 와본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같이 오신 분은…….”

“제 호위입니다.”

내 대답에 근처에 있던 기사나 집사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의문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면 호위분은 잠시 이쪽으로.”

집사장의 말에 륀느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질문.”

“예?”

“알베르타 왕국 명물인 팥빵을 요구.”

사무적이면서도 기계적이며, 뻔뻔하기까지 한 어조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집사장은 능숙하게 그것을 받아넘겼다.

“시녀들을 시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이분을 모셔라.”

“예 집사장님.”

이에 륀느는 먹을 걸 주면 다 따라가는 어린아이마냥 나를 버리고 시녀들을 따라 훌쩍 떠나버렸다.

그렇게 떠나가는 륀느의 뒷모습을 보던 내가 떨떠름하게 집사장에게 말했다.

“누가 보면 며칠은 굶긴 줄 알겠네.”

“허허, 많이 먹고 많이 커야 할 나이로 보입니다만. 혹 제가 실례되는 말을 하였는지요.”

“실례되는 말은 아닙니다.”

이후 나는 집사장을 따라 내부로 한참 걸어 들어갔고. 이내 커다란 방으로 안내받았다.

“아가씨. 데이비 올 라운 왕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집사장의 말에 잠시 고요함이 일었다. 하지만 곧 문 너머로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가씨가 아니라 각하야. 준비 다 됐으니 들어오시라고 전해줘.”

나는 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에 본래라면 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청력이 좋은 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된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집사장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고 나는 곧 그 내부로 들어가 이 거대한 저택의 주인이자 선대 재상이 사망하고 현 알베르타 왕국의 재상이 된 이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본 것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10대 소녀의 뒷모습이었다.

연한 빛깔의 드레스와 엉덩이 부근까지 가지런히 정리된 분홍빛 머리카락이 상당히 시야를 끌었다.

“어서 오세요. 이리 찾아오실 줄 몰랐네요.”

이윽고 고개를 돌린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알베르타 왕국의 재상. [튜나 드 머전트] 라고 합니다.”

튜나 드 머전트.

이전까지 사교계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가 최근에서야 두각을 드러낸 머전트 재상의 금지옥엽.

현재 알베르타 왕국의 재상.

실제로 그녀가 국가연합 연회에 참석했을 때 누군가가 입을 모아 말했다.

대륙 최고 미녀 중 하나와 견줄 미모를 지녔다고.

이곳에 오기 전 그림자의 정보를 통해 들은 것은 그게 전부였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굉장히 종잡을 수 없고, 독특한 인물이라고.

그 외에 그녀는 머전트 재상에 비해 상인으로서의 재능은 없다는 말이 있거나 아가씨답지 않게 굉장히 사냥을 좋아한다는 소문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문이나 연통도 없이 찾아와서 제가 폐를 끼친 게 아닌가 싶네요.”

내 말에 그녀는 한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접은 채 입을 살짝 가리고 옅게 웃었다.

‘가면.’

“아니랍니다. 대륙의 성자분이 오셨는데 그런 자잘한 절차가 중요할까요. 여기 앉으시죠.”

그녀가 곧 고급스러운 소파를 가리켰고 나는 그대로 앉았다.

그러자 그녀는 맞은편에 앉은 뒤 뒤따라온 시녀에게 말했다.

“다들 나가줄래?”

“하, 하지만 아가 아니 각하.”

“괜찮아. 다른 분도 아니고 이분은 믿을 수 있는 분이니.”

그녀의 말에 시녀들은 불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시녀들이 나가자 그녀는 조용히 근처에 놓인 찻잔에 홍차를 따라 내게 건네주었다.

“드셔보세요. 알베르타 왕국의 자랑인 복숭아 홍차랍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홍차를 입에 대자 복숭아의 달고 부드러운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그나저나 이렇게 찾아오신 건 제가 보낸 청혼서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러 오신 건가요?”

“조금 당혹스러운 제안이긴 하네요. 미안하지만 이미 혼인을 치른 몸이기도 합니다.”

“네.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당신은 알베르타 왕국의 재상이죠. 어느 쪽이든 양측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배경이니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제안이네요.”

내 말에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하지만 청혼을 한 건 단순 변덕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혹, 계약 혼인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그건 또 뭔데.

내가 침묵하자 그녀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때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재미있는 걸 들이미시네.”

본래 목적이었던 식량 거래도 거래지만 그녀의 행동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첫인상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틀에 잡혀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녀는 소문처럼 무능력한데 세습이라는 제도 하나만으로 재상에 오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찾아온 건 이것 때문이 아닌데 말이죠.”

“네. 알고 있어요. 제가 승인한 하인스 영지로 수출하던 물품을 철수시킨 것 때문이겠죠?”

홍차를 음미하는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선재 재상님과의 계약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없으면 이쪽도 그냥 넘어갈 순 없네요.”

정중한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신뢰를 무시한 상인은 절대 오래갈 수 없죠. 저는 그 사실을 잘 알아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눈빛에는 두려움 망설임, 죄책감. 여러 감정이 비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저는 알베르타의 재상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이 나라의 백성과 상인으로서의 신뢰를 모두 지켜야 합니다.”

“빙빙 돌려 말하지만 결국 그거네요. 하인스 영지로 보내야 할 물량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눈치가…… 엄청 빠르시네요. 정보는 거의 새어나가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살면, 안 보이는 것도 간혹 보입니다.”

“누가 보면 수백 년은 살아오신 분 같네요.”

“오는 길에 수도를 좀 둘러봤습니다. 농업이 발달한 국가치고 어째선지 농산물의 거래량이 굉장히 적어보이더군요. 마치, 아끼는 것처럼.”

나는 륀느와 마차를 타고 수도 내를 순환하며 본 광경을 떠올렸다.

“…….”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 지나오면서 파악하셨다고요?”

“못할 건 뭡니까.”

그쪽이 인생 2회차 같은 짓을 하면, 이쪽은 다회차 고인물 같은 짓을 할 수밖에.

“뭐. 보아하니 엄청난 사태가 벌어져서 본래 생산되어야 할 농산물들이 모두 못쓰게 된 거 같은데, 이렇게 되면 재상께서 내게 제안할만한 거라곤 두 가지뿐이겠네요.”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납기 기한을 늘리거나, 혹은 다른 물품으로 거래를 대체하거나. 후자의 경우는 거의 아닐 테고, 전자의 경우가 맞겠네요.”

“…….”

“미안하지만 둘 다 안됩니다.”

내 말에 그녀가 입술을 보이지 않게 깨물었다.

“국가 산하기관에 비축분 있죠? 그걸 이용하면 하인스 영지에 필요 물량을 보내줄 수 있을 텐데.”

“안 돼요!”

그녀가 소리쳤다.

“이번 사태로 잉여 생산품까지 모조리 못쓰게 됐어요! 그것까지 보내면 이 나라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될거에요!”

“고작 사람 몇몇 굶어 죽는 정도에 그칠 텐데요. 어차피 몇 달만 지나면 해결책이야 나올…….”

쾅!!!

그녀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내 멱살을 틀어잡았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야!!”

그녀의 외침에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배가 고프다는 게 뭔지 알아?!”

그녀의 외침은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자가 흉내 내는 게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것이 연기면 그녀는 섬뜩할 정도로 재능이 좋은 상인이고, 그게 아니라면 정말 백성을 생각하는 인물이리라.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고 태어난 공작가의 영애.

사랑받고 자랐을 아가씨가 마치 오랜 시간 굶어본 것 같은 말을 한다는 게 웃기게 느껴진다.

이런 걸 두고 인생 2회차 같다고 하던가.

우스갯소리지만 그녀는 단순히 또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었다.

격하게 소리친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흠칫하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뻔뻔한 일인데…….”

이에 내가 물었다.

“반대로 물어볼게요. 튜나 재상.”

“…….”

“당신이 보내주기로 한 식량이 부족해지면 굶어 죽는 건 이쪽입니다. 알베르타의 백성은 중요하고 이쪽 사람들은 굶어 죽어도 된다 이겁니까?”

내 말에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당신 말대로 배고픔은 참 거지 같지요. 나도 잘 압니다. 그래서 단 한 명도 굶기고 싶지 않아요.”

어느 쪽이건 지켜야 할 건 똑같다.

“필요한 식량은 반드시 전달 될 겁니다. 다만 어떤 방식이건 신뢰에 금이 가는 건 분명하겠죠.”

“어디서요? 어떻게? 참고로 하인스 영지는 그동안 쌓아온 당신들과의 신뢰를 믿어왔기에 창고의 비축분까지 모조리 꺼내 라운 왕국 곳곳에 생긴 재난민들을 구호했습니다. 이제와서 이렇게 나와버리면 이쪽도 곤란하죠.”

나는 압박 면접을 하는 것처럼 그녀를 몰아세웠다.

“거기에 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대뜸 물건을 철수시켜? 내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당신은 이 사태를 내게 어떻게 설명했을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침묵했다.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능숙하지만, 아직 그녀는 어리고 미숙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했을까.

그녀가 말했다.

“제가 보낸 서신을 받지 못하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단을 통해 물품을 전면 철수한다는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만.”

내 말에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바르고 후작…….”

이를 뿌득 소리 나게 갈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사태가 벌어지고 가장 먼저 하인스 영지에 서신을 보냈는데…… 혹…… 받지 못하신 건가요?”

“어떤 내용입니까?”

애초에 물어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종의 상황으로 인해 식량 공급에 차질이 있으니 가능하다면 식량을 비축해달라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신용에 금이 가는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한 명이라도 굶는 사람이 덜 나왔을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 적이 많구나?”

내 물음에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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