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6화
비명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아가…… 아니 각하!! 괜찮으십니까!”
벌컥 소리를 내며 다수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내 내부의 상황을 보고 모두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약간 흐트러진 옷매무새에 예쁘게 정리된 분홍빛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끙끙거리며 쓰러져 제압당해있는 사내와 그런 사내를 제압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각하!!”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놀란 표정을 짓는 그들이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순식간에 튜나를 감싸듯 막아서고 나와 내가 제압한 사내를 경계했다.
“데…… 데이비 왕자님?! 이게 무슨…….”
“첫 번째 가르침이니까 잘 기억해두라고.”
존대를 집어던진 내 한마디에 바닥에 쓰러진 사내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비…… 빌어 먹…… 우웁!!”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구역질을 하고는 그대로 추욱 늘어져 버렸다.
그의 뒷목을 엄지로 압박하던 것을 멈춘 나는 천천히 일어난 뒤 몸을 가볍게 턴 뒤 튜나 드 머전트를 바라보았다.
“공작가 경비가 원래 이렇게 허술한가?”
바닥에 쓰러진 사내는 겉보기엔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분명 처음 이 저택에 왔을 때 보았던 사병 사이에서 보였던 사내였다.
“각하…… 대체 어떻게 된…….”
“살란이…… 후작의 꾀임에 넘어간 것 같아요.”
보아하니 이자는 공작가의 가신이었으나 후작의 꼬임에 넘어가 그녀를 배신한 듯 보였다.
그녀를 죽이던, 망가뜨리던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었을 터.
안 그래도 흔들리는 그녀의 심기를 흔들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리라.
“뭐…… 뭐라고요?! 살란 이 자식이!!”
바닥에 쓰러진 살란을 포박한 그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데이비 왕자님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며 쓰러진 살란을 바라보았다.
저 눈빛 안에 담긴 감정은 혼란과 회의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일로 그녀의 정신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는 건 분명 알 수 있었다.
“살란을…… 구속하세요. 그리고…… 으윽…….”
“각하!!”
“아가씨!!”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그녀를 순식간에 받아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혼란에 몸이 견디지 못했는지 의식을 잃어버린 그녀가 추욱 늘어지자 시종과 시녀들이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에 나는 쓰러진 그녀의 맥을 빠르게 짚고 신성력을 끌어올려 그녀에게 스며들게 했다.
아직 어린 몸이다. 거기에 딱히 몸이 튼튼한 편도 아니라서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정신이 셧다운 당한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겨우겨우 정신력으로 버티던 그녀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계치를 넘은 모습이었다.
“집사장. 그녀를 데려가서 눕혀. 내일부터 못 해도 사흘간은 영양에 각별히 신경 쓰되 절대 위에 부담이 가는 음식을 내놓으면 안된다는 걸 잊지 마.”
“하, 하지만 왕자님.”
“적어도 환자를 두고 내가 거짓이나 할 것처럼 보이나?”
이미 대륙에 나의 의술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과거 바리스와 윈리가 다스렸던 오르뎀 영지에서 융해 가속 바이러스를 해결했고, 그 외에도 흑사병에 버금가는 전염병을 틀어막거나 전쟁통에 엄청난 사람들을 구한 전례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가씨 주치의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왕자님께서 성자라곤 하시나…….”
“헛소리 말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외알 안경을 쓴 노인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왕자님.”
“당신은?”
“람세스라 하옵니다. 현재 튜나 각하의 주치의를 맡고 있습니다.”
람세스? 문득 비슷한 이름. 비슷한 생김새에 내가 흘러가듯 물었다.
“라운의 궁정의 람다스 경과 아는 사이입니까?”
내 물음에 그가 허허 웃어 보였다.
“제 친척입니다.”
“어쩐지.”
“어서 각하를 모시게. 데이비 왕자님께서는 대륙 질병관리 본부에서도 감히 견줄 이가 없는 분이시니! 이 노인이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지병도 해결할 수 있을 테지!”
“예…… 예!”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
“자연스럽게 지병까지 치료하게 만드시네요.”
“허허. 의원으로서 환자를 보고 넘어갈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허…….”
“실은 아가씨께서 최근 식욕도
너스레를 떠는 그를 향해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극심한 피로로 인해 실신해버린 튜나를 보며 재상의 영혼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은 정신을 차렸지만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하자면 그녀는 당장 무리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괜찮나?”
“면목 없네요. 왕자님.”
“일단 쉬는 게 좋을 거야. 벌써부터 그렇게 무리하면 나중에 몸이 못 버티지. 그리고 네 지병 말인데.”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정신적인 압박감을 가진 일종의 정신병이야.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마음가짐이 흐트러져 있으니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거다.”
“그럴 수가…….”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쓰러지면 가장 기뻐할 인간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그녀의 손에 맥을 짚던 것을 멈추고 살짝 물러나자 그녀가 쓰게 웃어 보였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익숙하다라…….”
이상하리만치 감정적이게 된 것일까. 그녀는 내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제 아버지께서는 정말 좋은 분이셨지만 반면 정말 엄하신 분이시기도 했어요. 그렇기에 전 어릴 때부터 몸이 아픈 것으로 누군가에게 티를 내본 적이 없네요.”
-이……이보게 왕자! 어서 말해보게! 지금 튜나의 몸 상태가 어떤가! 어디 많이 아픈가?! 약! 약이 필요할 터인데!
‘좀 닥쳐봐요. 영감님. 머리가 징징 울리니까.’
-크…… 크흠…….
순식간에 물러나는 그를 노려본 내가 다시 물었다.
“선대 재상님께서 그렇게 엄격했나?”
내 물음에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그럼요.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어떤 시험을 내리신 적이 있어요. 아버지께 칭찬을 받고 싶었던 저는 정말 힘들게 노력해서 시험의 과제를 해결했죠.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과제를 하던 도중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미련한 것. 자기 몸 관리도 할 줄 몰라서야 어찌 공작가를 이끌겠다는 것이냐!
“그 당시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럽…… 잠깐만요.”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아까부터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해를 못 했는데…….”
“할말이 있나?”
“왜 자꾸 반말이세요?”
…….
잠시 그녀와 나 사이에 침묵이 오갔다.
“크흠. 계속해봐.”
“대답부터 해주세요.”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이쪽도 이야기해줄게.”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나를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아버지는 지병으로 언젠가 제가 홀로 남겨질 때 주변에 득시글거리는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셨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자잘한 실수를 할 때마다 혼나기도 하고…… 전에는 하인들의 체력을 생각지 않고 일을 시켰다고 뺨을 맞기도 했죠.”
그녀의 회상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젠장…… 젠장! 어서 나아야 할 텐데!
딸의 뺨을 치고 아픈 상황에서도 다그치던 양반?
대체 어디 있는데?
생각해보면 선대 재상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딸 자랑을 했었다.
‘그래.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한 양반이 잘도 뻔뻔하게 그런 태도를 보입니다?’
-그…… 그것은…….
‘쯧…….’
할말이 없어졌는지 침묵하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우선 네 아버지, 선대 재상이 내게 남긴 전언이 있었다.”
“아…… 아버지가요?!”
“그래. 네가 온전히 재상의 몫을 해낼 수 있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 달라고 하시더군. 대금을 치르기로 약속을 했으니 이쪽은 그에 걸맞게 대가를 지불해야지.”
내 설명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지금 반말하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상관있지. 넌 교관이 교육생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내 물음에 그녀의 인상이 대뜸 찌푸려졌다.
“무슨 헛소리를…….”
“지금부터 나는 네 교관이다. 앞으로 일주일간, 내가 널 가르치는 동안은 교관님이라 불러. 그 후에 널 알베르타의 재상취급을 하건 뭘 하건 해줄 테니.”
“잠깐만요! 이게 무슨…… 저는 아직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이보다 한점 전이에요! 그런데 이제와서…….”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안 한다면 지금이라도 물리자고.”
내 말에 조용히 내 시선을 직시하던 그녀의 심정은 복잡해 보였다.
“거짓말을 하는 눈은 아니군요.”
“사실 여기 온 이유 중에 하나는 네 아버지, 선대 재상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온 것도 있으니까.”
“아버지는, 잘 올라가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흘끗 돌렸다.
그러자 선대재상의 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보였다.
“그래.”
내 대답에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짧게 파르르 떨다가 물었다.
“당신은 제게 뭘 가르쳐줄 수 있죠?”
“글쎄. 그건 네가 배우기 나름 아닐까?”
내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리고 하나는 이미 가르쳐줬잖아.”
첫째. 진상에게 휘둘리지 마라.
내 웃음에 그녀는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말은 누가 못할까요. 제가 묻는 건 현실적인 변화점이에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당신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만. 제가 당신에게 배운다 하여도 뭐가 변할지, 또 당신에게 배운 걸 내가 써먹을 수나 있는지 하나도 확신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 입술을 달싹였다.
“당신은 타국의 주요 인사입니다. 그런 인물이 제 자문 스승이 된다면 이 왕국 내에서 당연히 곱게 볼 수 있는 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런걸 신경 써야 할 만큼 네가 낮은 지위였나?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 한번 곱씹어봐.”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한 일들을 그녀가 조사를 했기 때문.
냉정하게 분석할 때 내가 하인스 영지를 키우는데 사용한 방식은 본래대로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당신이 대단한 수완가라는 걸 모르진 않아요. 다만, 당신의 방법은 당신의 힘과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죠. 저 같은 머리만 돌아가는 인간에겐 불가능한 가르침 아닌가요?”
꼼꼼하게 따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구르다 보면 다 알게 돼.”
그녀의 표정이 구겨진다.
* * *
알베르타 왕국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인스 영지의 1왕자이자 대공 데이비 올 라운이 현재 머전트 공작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 이 일로 알베르타 왕실은 그녀가 나를 통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몇몇은 과거 그녀가 내게 청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그녀와 청혼에 대해 긴밀하게 의논하기 위해 왔다는 이도 있었고 선대 재상이 죽어 조의를 위해 잠시 머무르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존재하면 당연히 이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샐 수밖에 없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요?”
튜나는 내가 저택의 사용인들을 모두 불러모으게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시작하기 전에 살짝 밑밥을 뿌려놨거든.”
“밑밥이요?”
“그래. 내가 이곳에 온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지.”
“그렇죠?”
“내가 정확히 여기서 뭘 했고, 뭐 때문에 있는지는 다른 이들은 몰라야 해.”
그런데 왜 소문이 돌고 있을까.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잘 기억해라. 뛰어난 상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다. 그런 정보를 날름 유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싹부터 쳐내야 해.”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제 사용인들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넌 유능하다. 튜나.”
내 칭찬에도 그녀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런데 인간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스릉!!
나는 곁에 있던 호위의 스태프를 빌렸다.
그리고는 허공에 빛으로 된 가루를 뿌렸다.
“다들 이게 뭔지 궁금할 거다.”
내 설명에 그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간단해. 내 질문에 반드시 거짓을 말할 시 심장이 터져 죽는 저주다.”
내 설명에 사용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내가 물을 질문은 단 하나야.”
빙그레 웃은 내가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튜나와 나의 동향을 외부 정적에게 보고하였는가.”
즉. 정보를 누설하는 제비 자식이 존재하는가였다.
내 말에 사용인들이 술렁거리며 말한다.
“알다시피 나는 성자이지만 마법사이기도 하다. 이 정도 간단한 저주는 어렵지도 않아. 너희가 튜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지?”
빙그레 웃으며 마법을 그들에게 스며들게 한 나는 이윽고 수많은 사용인 하나하나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볶듯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상상 못 할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몇몇이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이기가 무섭게 그들의 앞에 섰다.
“대답해볼래?”
“그…… 그것이…….”
퍼억!!!
순식간에 그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린 내가 스태프를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가 아니야. 잘못은 혓바닥과 뇌가 했는데 왜 손이 벌을 받냐는 거지.”
“흐…… 흐으으윽!! 살려주십시오. 아가씨…… 아니 각하!!”
겁에 질려 소리치는 한 시종의 외침에 튜나가 나를 말리려 들었다.
“그만두세요! 그는 오래전부터 이 공작가를 모셔온……!”
“질문에나 답해. 튜나의 동향과 내 행동을 바르고 후작에게 보고했나?”
내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그를 두둔하려던 튜나도 멈칫했다.
“살랑…… 왜…… 대답을 못 해?”
“아…… 아가씨…… 그게…….”
“설마…… 너.”
“이거 끌고 가.”
내가 기사들을 향해 말하자 기사들은 자신들에게 명령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이내 살랑이라는 사내를 끌고 갔다.
무거운 침묵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이유로 배신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게 내가 가르칠 두 번째다. 내부의 배신자는 외부의 유능한 적보다 위험하다.”
“……이게 가르침이라는 건가요? 살랑의 배신은 믿을 수가 없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당신이 아니면…….”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방금 이곳에 건 마법은 저주가 아니야.”
“네?”
“단순히 빛을 드러내는 마법이지. 저주? 그냥 혓바닥 놀림일 뿐이고.”
내 미소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간단해. 너와 이들이 마법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트릭에 낚이는 거야.”
자신들이 그저 속았다는 사실에 멍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며 나는 튜나에게 말했다.
“알베르타 왕국은 마법을 증오한다. 그래서 연금술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닌 마법 아티펙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
“…….”
“마법이 밉다고 그것에 대해 알지도 않으려 하는 시점에서 이미 패배하는 거다.”
“그럴 수가…….”
“지금부터 내가 네게 사흘 동안 여러 지식을 전수해줄 거다.”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는 건 힘이고 곧 네 기반이 되는 거다. 질문하나 하지, 튜나 드 머전트.”
“뭐죠?”
“넌 내가 저주를 걸었다는 말을 왜 믿었지?”
“그야 당신이 마법사고…….”
그렇게 말을 하던 그녀가 움찔거렸다.
“그렇지? 내가 마법사기 때문에 믿은 거야. 그 고정관념은 마법사에게만 해당할까?”
내 미소에 그녀가 점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세 번째 가르침이다. 상인은 눈으로 보고도 함부로 믿으면 안 돼.”
“무슨 뜻이죠?”
“알베르타 왕국은 마법을 증오한다.”
“그건…….”
“그런데 이런 마당에 바르고 후작이 마법을 이용해 네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때. 넌 이 나라의 후작이 마법을 익히지 않을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니라고 믿을 거냐?”
내 말에 그녀는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는 건 힘이다. 넌 고정관념에 너무 잡혀 있어. 마치 마법이 없는 곳에서 살다 온 인간마냥 말이야.”
내 미소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눈치챘지만 나는 굳이 그걸 파고들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존재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가 마법을…….”
말을 하던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메뚜기 떼!”
“한번 조사해보긴 했나?”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베르타에 엄청난 흉작을 가져다준 메뚜기 떼가 과연 정말 자연현상으로 나타난 것인지 그녀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마법을 증오하는 국가에서 그 기둥 중 하나인 후작이 마법을 이용한 짓을 저지를 거라곤 아무도 생각지 않았을 테니까.
* * *
“허어…….”
어두운 집무실. 창밖을 바라보던 한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어찌하고 있다더냐.”
“자세한 정황은 저희가 포섭한 이들이 모조리 색출되는 바람에 알지 못했습니다만…….”
“쯧. 사람을 너무 잘 믿는 어리숙한 튜나 그 계집은 절대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데이비 왕자가 색출해냈다고 합니다.”
“그자는 왜 여기 와있는 거지?”
“그게…… 튜나 재상의 자문으로…….”
“방해꾼이 생겼군…….”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희끄무리한 어떤 유령 같은 형체가 그를 바라본다.
“어찌할 거지? 이렇게 되면 네가 바라는 목적을 이룰 수가 없는데.”
바르고 후작의 중얼거림에 그 희끄무리한 영체가 파르르 떨었다.
-그를 쫓아내든 죽이든 알아서 해. 아직 생명력이 더 필요하다.
“좋아. 내일 내가 그자를 조금 만나봐야겠군. 그래 봐야 튜나 같은 힘에 심취한 애송이일 뿐이니까.
-일이 잘못되면…….
“걱정 마라.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넌 나와 맺은 계약만 확실히 이수하면 돼. 넌 생명력을 갈취하고, 난 네 힘을 이용해 튜나 그 계집을 진창까지 끌어내린다. 그리고, 머전트 공작가가 몰락했을 때.”
그때 그녀에게 손을 뻗으리라.
“원래 절벽의 꽃은 따는 과정도 스릴이 있는 법이지.”
바르고 후작의 대답에 희끄무리한 영체가 스르륵 하며 흩어졌다.
-믿도록 하지. 다만 일이 꼬였을 땐 반드시 나를 불러라.
“좋아. 네가 그를 죽일 힘을 지니고 있기를 믿어보지.”
-생명체 따위를 어찌 못할 내가 아니야.
“너희 정신체는 참 신기한 족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