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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97화 (1,096/1,559)

제1097화

이곳에는 다른 이들의 눈이 없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건 다름 아닌 튜나의 혼이었다.

[아빠…… 아니라고 말해요. 내가 잘못 들은 거라 말하라고요!!]

튜나가 날뛰기 시작하자 저승이가 순식간에 그녀를 낚아챘다.

[이거 놔!!]

격분하며 버둥거려보지만 비상한 상술을 떠올리는 것을 제외하고 일반인이었던 그녀가 저승이를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거……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

눈물을 흘리며 소리 지르는 튜나의 저항에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잠시 비키겠습니다.]

저승이는 곧바로 튜나의 혼을 데리고 사라져버렸고, 이곳에 남게 된 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가 있던 곳을 바라보다 재상의 혼에게 명시시켰다.

“명심하세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당신의 영혼은 다시는 윤회의 고리에 들지 못합니다.”

인간의 혼은 윤회를 못 하고 소멸한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미지의 공포를 넘어선 영혼에 각인된 본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소멸의 공포는 혈육의 정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칠 만큼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뜻이었다.

“그걸 알고 결정을 내린 게 맞습니까?”

나는 자리에 앉은 채 또박또박 계약서를 읊어주듯 물었다.

[그렇네.]

단호한 답변.

나는 과연 저런 상황에서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결정은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로 견고했다.

그렇게 딸아이가 소중했으면, 생전에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표현하지 않는 미련한 작자는 많이 봐왔다.

팔란 제국의 황제. 살리반 데 팔란과 그 동생인 일리나 데 팔란.

일리나는 아직도 제 오라비를 원망하지만, 살리반은 원망을 일부러 받아가면서까지 일리나를 지키려 들었다.

그도 언젠가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할 걸 후회하는 날이 올까 싶었다.

“한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그 외에 문제는…….]

“이런저런 후유증이 남을 겁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니 몸에도 문제가 갈 것이고.”

웃긴 일이었다.

산소공급이 멈춘 뇌는 죽음에 이른다. 현재 튜나의 몸은 누가 봐도 죽은 이의 육신. 거기에 영혼이 들어간다고, 다시 심장이 뛴다고 해서 뇌가 멀쩡할 가능성은 사실 낮았다.

내 설명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된다면…….]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해주자면 운이 나쁘면 그대로 사망. 혹은 뇌사로 인해 영혼까지 망가집니다. 여기까지가 의사로서의 소견이고, 신관으로서의 소견은 윤회의 고리에 오르려면 못해도 1~200년은 회복해야 할거에요. 그동안 영혼의 강을 떠돌 테고.”

내 설명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제 딸이 참혹하게 살해당했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받아들인 것이다.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 남은 소견이 있는 것 같은데.]

“신격을 지닌 자로서의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하, 까짓거 복구할 가능성은 있어요. 다만, 생명력을 본래 인간이 품어야 할 이상으로 끌어와서 육체부터 회복을 시켜야겠죠.”

사망에서, 가사상태로 바꿔서.

[그다음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인가?]

“일단은요. 본래 같으면 그것도 불가능합니다만. 이래저래 준비해놔서 나쁠 건 없죠.”

이미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튜나의 육신을 살폈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녀의 몸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세 번째 달 타나토스를 이용해서.

죽어서 한 인간을 살렸으니 언젠가 네 죄도 조금 가벼워질 거다. 타나토스.

[허…… 자네는 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것인가, 하면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내다본 게 아니라 가능성을 하나 놔두었을 뿐입니다. 시신의 상태는 사망 확인이지만, 환부가 조금 이상했거든요. 그리고,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그래. 지금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충분히 가능성은 개척해두었지만. 가능성 개척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

[그게 뭔…….]

“튜나의 혼이 너무 약해서 가사상태의 육신에 혼을 싣고 육신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에 영혼이 크게 충격을 받을 겁니다.”

반드시 성공시킬 테지만. 대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대가가 필요해요. 아마, 그녀가 살면서 강렬하게 감정을 품은 기억 중 하나가 날아갈 겁니다.”

그게 공작가에 대한 애착일지. 본인의 전생의 기억일지, 혹은, 알베르타를 향한 충성심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에 대해 잊어버릴 수도 있어요.”

딸을 살리기 위해 소멸까지 감수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건 너무 쓸쓸한 결말이었다.

* * *

바탄 왕국의 트릭 백작과 개조인간 특수부대가 처단되고 이틀이 지났다.

알베르타 왕실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빌어먹을 바탄 개자식들이 지금 이 나라의 재상을 암살하고 이 나라의 백성을 잡아서 인체실험을 했다. 이거 아닙니까!!”

비밀시설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결국 알려지고 말았다.

도나가 혼란을 일으킬 겸 그에 대한 정보를 실토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처지였다.

“인체실험의 대상이 알베르타 백성인지 아닌지는…….”

“이봐요 자작!!! 이 나라가 바탄 왕국이오?! 바탄이 아니라 알베르타요 알베르타!! 알베르타 국내에서 숨겨진 비밀 유적을 몰래 가동시킨 것도 모자라 그곳에서 사람을 잡아 괴물을 만들었소! 그런데 알베르타의 백성이 아니다?!”

튜나의 죽음으로 인해 바르고 후작 쪽에서 굉장히 발언권이 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작 전면에 나섰어야 할 바르고 후작은 침묵을 고수했다.

그렇게 되니 결국 두 세력의 눈치만 보던 귀족들이 이때다 싶어 서로를 물어뜯으며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말은 똑바로 하시오! 이번 기회에 친 바탄 세력을 모조리 밀어내려는 수작 아니오! 전쟁은 아니 되오! 그에 따른 페널티와 전쟁에 들어가는 물자나 손해 또한 무시 못 할 터! 특히 지금처럼 전 국가 차원의 흉년이라면……”

“허어…… 왼쪽 뺨을 맞았으니 오른쪽 뺨도 내주자는 식이로군! 바탄 왕국에서 자신들은 아니다라면서 저리 뻔뻔하게 나오는 걸 보고 화도 나지 않는가?!”

그 귀족들의 입장에서 바탄 왕국의 전쟁으로 사실 백성들이 얼마나 죽어 나갈지는 크게 관심 없는 분야였다.

그저 이번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 인가에 대한 생각만 가득할 뿐이다.

“…….”

젊은 알베르타의 국왕은 침묵하고 있는 바르고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 왜 아무 말도 없소.”

“그것이…….”

“폐하아아아!! 무엇을 망설이시옵니까!! 이 나라의 재상을 암살한 사건입니다!! 강력하게 국제연합을 통해 항의하고, 바탄이 그에 따른 적법한 대응을 보이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허어! 이 답답한 사람을 봤나! 국제연합에선 전쟁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거 모르시오?!”

“그렇다고 한들, 예외 조항도 분명 존재하는 법.”

계속되는 설전 속에서 알베르타의 젊은 국왕은 머리를 감싸 쥐고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바르고 후작과 튜나가 신경전을 벌일 때가 훨씬 좋았다.

어째서인지 바르고 후작은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물러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우들이 제가 호랑이 인양 미쳐 날뛰고 있는 꼴이었다.

“폐하아아아아!!”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귀족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구…… 국경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바…… 바탄 왕국이 전 병력을 국경으로 배치했다는 보고가!”

“뭐라?!”

이쯤 되면 아주 작정하고 공격을 시작한 꼴이다.

애초에 튜나가 암살당한 시점에서 두 국가는 전쟁을 언제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자신들은 관련 없다 강짜를 부리던 바탄이 전쟁의 움직임을 보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친 바탄 왕국파 귀족들중 극심한 성향을 띤 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폐하! 현 왕국의 실정을 생각하면 전쟁은 절대 아니 되옵니다.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협상을 반드시 성공시켜 전쟁을 방지하겠습니다.”

“협상이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이겠지! 이 빌어먹을 매국노가!”

“뭬야?!”

또다시 시끄러워지는 어전을 보며 국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바탄 왕국은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다는가.”

“그것이…… 저희 알베르타에서 비밀 생체 병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국경 요새를 습격했다고…….”

얼토당토않은 소리! 자신들은 그런 바가 없었다.

그런데 바탄 왕국은 아주 서로 죽일 기세로 격분하고 있었다.

“후작. 우선은 그들의 침략에 맞설 준비를 하라. 그리고 사람을 시켜 그들이 공격을 당했다는 요새를 조사해보게. 만약 습격당한 바가 없다면……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걸세.”

“예 폐하.”

두 국가의 팽팽한 신경전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압박감은 더욱 짙어져 갔다.

서로 정보 교환이 안 되는 시점에서 알베르타는 바탄 왕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바탄 왕국이 침공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며. 이미 그들은 전쟁 준비가 아니라. 알베르타로 진군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가장 심각한 것은 바탄과 알베르타는 수많은 국가 방호조약을 체결 중이다. 따라서 이 전쟁이 발발하면 사실상 수많은 국가가 끼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신중하게 결정하시오. 바탄와 알베르타의 전쟁은 복잡하게 얽혀있지. 전쟁이 벌어지면 이것은…….”

필히 세계 대전의 불씨가 된다. 국제연합이 그동안 막아온 전란이 대륙적으로 퍼진다는 소리였다.

웃긴 일 같지만, 전쟁의 불씨는 너무도 사소한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국제연합이 전쟁을 만류한다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그 모든 게 부질없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국제연합이 추구한 평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거대한 전쟁도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어디를 가든 같은 진리였던 모양이었다.

알베르타와 바 탄 왕국의 소식을 전해 들은 국가들은 곧 전쟁을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튜나였지만. 그녀는 사망했다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운이 짙게 감돌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머전트 공작가 내에선 튜나의 영혼 안착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내 기억을 유도해주게.]

선대 재상은 그녀가 큰 기억을 잃어야 한다면 차라리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기를 바랐다.

당연 튜나는 반발했다.

하지만 선대 재상의 결정은 완고했다.

[싫어요! 어떻게 아버지를 잊으라 말하세요?!]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것이냐?! 차라리 이런 나쁜 기억은 잊어라! 나에 대한 추억 전반을 잊어버리면…….]

[싫어!! 싫다고!]

소멸하는 것도 슬픈데. 기억에서까지 잊히는 건 너무 잔인하다며 엉엉 우는 그녀였지만 끝내 재상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선대 재상은 죽기 전 해주지 못한 것들이 한이라도 되었는지 의식의 시작 전까지 해주지 못한 모든 것을 해주었다.

마치 스스로 만족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한다. 딸아. 넌 이 아비의 유일한 자랑거리였고,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많은 단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법진의 중앙에 주저앉은 튜나를 향해 재상이 환하게 웃어주자 튜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법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며 오열하던 튜나의 혼이 작은 반딧불처럼 축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그녀의 육신 또한 막대한 생명력을 기반으로 마치 회복하듯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운 그녀의 분홍빛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흔들릴 정도로 옅은 바람이 불었다.

페르세르크와 데이비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법이 발현되며 반딧불처럼 작아진 그녀의 혼이 육체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 의식 자체는 사실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아니 높았으나 이 정도면 어렵지 않았다.

데이비는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주변의 신력들을 조율하여 그녀의 육신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선대 재상은 사라지기 전 딸의 모습을 제대로 각인하겠다는 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컥!!]

그의 영혼이 유지할 힘을 잃으며 고통을 수반했고 비틀거리며 무너진 그가 영체 상태임에도 피를 울컥 토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끝내 반동을 참아낸 것이다.

물론 튜나의 영혼도 굉장히 힘들 테지만 눈에 보이는 건 선대 재상의 혼뿐이었다.

이윽고 맹렬하게 폭풍처럼 회전하던 튜나의 혼이 완전히 육신에 스며든다.

딱딱하게 식었던 그녀의 육신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그녀의 창백한 피부에 서서히 혈색이 돌며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재상의 혼이 마치 흩어지듯 발끝부터 파스스 부서지기 시작했다.

[다…… 된 건가?]

“예. 성공했네요.”

[고맙네…… 데이비 왕자. 이 은혜는 절대 잊지 못할걸세.]

“안 무섭습니까?”

[왜 안 무섭겠나. 지금도 온몸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것을.]

그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억제하며 억지로 웃음 지었다.

저렇게 웃는 것도 힘들 정도로 두려울 텐데. 그는 끝내 튜나의 뺨에 손을 올렸다.

[재상의 위치는 어찌 돼도 좋으니. 네가 원하는 삶을 살 거라. 사랑한다.]

나의.

[소중한 튜나야.]

그 말을 끝으로 선대 재상의 혼은 완전히 흩어졌다.

그의 영혼이 소멸한 것이다.

인간의 혼은 어지간해선 소멸하는 일이 없을 텐데.

그렇게 사라지는 선대 재상의 혼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구나…….”

튜나에게 화를 내던 그녀였지만 아비에 대한 기억까지 잃어야 한다는 사실에 못내 씁쓸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튜나의 심장이 뛰고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딱히 육체의 후유증은 없었다.

그녀의 몸은 당장이라도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진 상태였다.

신격으로 그녀의 육신을 회복시키는 것도 모자라 희석시킨 영약까지 먹였으니 오히려 문제는 없으리라.

다만. 한가지는 확실히 지워졌을 터였다.

그녀가 가진 최근까지의 기억 중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무언가에 대한 키워드.

“으응…….”

천천히 눈을 뜨는 튜나를 바라본 데이비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누…… 누구세요?!”

그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장난치지 마라.”

“…….”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데이비를 노려보았다.

“뭔가 마음에 안 드네요. 반말이라니,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인가요?”

그리고는 소리쳤다.

“아빠…… 아빠는?!”

그리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기억을 잃은 게 아닌가?

기억이라는 게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모든 기억은 연관이 되어있다.

함부로 기억을 지우면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기억이 사라지거나, 혹은 구멍이 뻥 뚫려버린 것처럼 기억에 괴리가 남게 된다.

지금 그녀처럼.

굉장히 스스럼없이 본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녀는 확실히 선을 긋고 있었다.

페르세르크는 그녀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 말하지만, 곧 나와 동시에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설마 최근까지의 기억 중 가장 임펙트가 강했던 기억 중 하나를 지운다더니…….’

그녀는. 내게 품고 있던 연모의 감정을 모조리 잃었다.

고작해야 며칠인 주제에. 대체 얼마나 강하게 마음속에 담은 것인지.

그래. 차라리 잘된 거다. 에이리아 때와 다르게 그녀는 책임질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고.

데이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튜나 재상. 일단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곧바로 채비해서 왕성으로 가는 걸 추천하지.”

그래도 교관님이라 불렸던 기억은 있는지 그녀가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죠?”

“당신이 죽은 것을 기점으로 세계 대전이 발발할 낌새거든.”

대륙급 전쟁이 벌어지면 이쪽도 굉장히 귀찮아지니까.

설사 그렇게 된다면, 이쪽도 방법을 바꿔서 강제로 억누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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