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8화
-으음…… 카트린느 대공이 보내준 정보에 따르면 린디스 제국을 포함한 동대륙은 물론, 서대륙의 콘타스 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해요.
하인스 영지에서 현 상황을 전달해주는 에이리아의 미소가 보였다.
-무리하지 마셔요. 데이비 오라버니.
“그래. 늦게 돌아가서 미안해. 금방 정리되는 대로 돌아갈게.”
-아……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일리나 언니와 좀…….
“일리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이리아가 손사래를 치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청록빛 귀가 쫑긋하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아 참. 카트린느 대공이 최근에 경지를 한 단계 돌파했다고 해요.
“대공이? 대단한데? 축하 서한이라도 보내야 하나.”
-안 그래도 한번 다시금 붙어보고 싶다고…….
“하하,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 따윈 안 듣는다고 전해줘.”
-아, 얼마 전에 용사 레이나 씨가 린디스 제국에 방문하셨데요.
레이나는 처음 린디스 제국과 손을 잡고 있었었다.
비록 그녀의 모국은 저 너머 세계에서 멸망한 팔란이지만 지금 그녀는 대륙을 유랑하며 빛의 용사라는 국제연합의 직책에 맞게 활동하고 있었다.
라는 게 표면적인 활동이고 사실은 3 제국의 의뢰를 받아 국제 분쟁에 관련된 일을 수사하는 국제 경찰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여신의 보증을 받은 존재였으니까.
사실 이쯤 되면 그녀가 나와 굳이 거리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지만, 그녀는 대륙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평화로운 이 세계를 보는 게 마음에 든다는 모양이었다.
“레이나가?”
-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알베르타와 바탄은 중앙대륙의 화약고라고 일리나 언니가 말했어요. 그곳에서 전쟁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휘말릴지 모른다고…….
대륙의 평안을 도모하는 용사라는 조금 오글거리는 칭호를 지닌 그녀가 세계 대전의 발발 직전에 오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조금 걸리네.”
튜나가 부활했으니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겠지만 원래 미친 계획을 꿈꾸는 놈들은 뒤가 없는 법이다.
-전쟁이…… 벌어질까요?
불안한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마족과의 전쟁. 그리고, 언데드 불사군단의 습격 등등. 여러 요소로 인해 사실 대륙은 공공의 적을 두고 있는 만큼 서로 간에 불화가 상당히 줄어 들어있었다.
여기서 전쟁이 크게 터진다면. 지금까지 대륙이 화합하며 쌓아온 것들이 단번에 무너질 가능성도 높았다.
즉, 이들의 전쟁은 내게도 방해가 된다는 소리였다.
에이리아와 통화하며 나는 저 멀리 창문 너머 말없이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는 튜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자신의 몫을 해냈다.
정확히는 그 기억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더 결연한 것이리라.
“그래도 전쟁이 벌어지면 이쪽도 손해가 크지.”
당장 하인스 영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내가 처음 영지를 일으킬 카드로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소재 재배였다.
달의 풀.
지구의 석유마냥 있으면 돈이 된다고 할 정도로 귀하고, 많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특수한 소재. 그 소재를 이용해 단번에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먹지도 못할 물건을 재배하는 건 당연 리스크를 동반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워진다는 사실.
지금이야 식량이 부족하면 지구나 천중원에서 끌어와서 채우면 된다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달의 풀 재배의 면적을 더 늘리지 않고 기본적인 식량 재배에 상당한 영토를 투자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나는 슬슬 자급자족을 준비하는 마계와 유르기안 대륙 등등 여기저기서 식량이 필요한 곳에 식량을 건네주고 필요 물품을 받아오고 있는 범 차원 규모의 무역을 하고 있는 터라 마냥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알베르타와의 거래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더 안정적인 것이고.
다만, 하인스 영지를 제외한 곳이라면?
이 전쟁은 어느 쪽으로나 손해밖에 없다는 결론만 내려지게 된다.
현 상황은 두 가지였다. 트릭 백작에 의해 알베르타 왕국의 재상 튜나가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실질적으로 재상을 잃은 알베르타의 분노는 당연히 바탄에게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탄은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 국경의 요새들을 습격당했다고 했다. 그게 거짓이건 아니건 바탄은 트릭 백작과의 유착 관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피해만 호소할 터.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 그때부턴 전쟁만 남는 것이다.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세계 대전으로 번질 기미가 보인다면…….
그땐.
“이실디와 베르단데에게 조금 움직여달라고 해야겠네.”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선택을 내리는 수밖에.
이게 마왕과 다를 게 무엇인가.
아, 물론 대적자이며 마왕이 맞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심연의 공주, 슬리지아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강자인 이실디나 심연의 공주의 틀을 넘어 진리를 엿본 존재인 베르단데.
그 둘은 내 소속이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상 숨겨진 전력이었다.
그리고,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전쟁의 흐름을 강제로 틀어막아 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두 심연의 공주가 품고 있는 외모는 조금 불안한 요소가 되긴 하겠지만.
실제로 심연의 공주들 치고 외관이 나쁜 케이스는 잘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데이비 왕자님?”
“이젠 교관님이나 당신이라 안 부르나?”
“제가 어떤 기억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요?”
“흐음…….”
“당신의 도움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세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는 배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오해를 불러일으킬 짓을 본인이 한 것까진 기억을 못 하는 듯싶었다.
“안 되겠어요. 역시 지금이라도 왕성에 가서…….”
“혼란이 커지겠지만 주인공은 늦게 나타나는 법이야. 지금 얼굴을 들이미는 건 비추천하마.”
나는 처음 그녀가 깨어났을 때 왕성으로 가라고 했던 말을 바꾸었다.
그녀가 바로 움직이면 혼란도 잠재우기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을 처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으니까.
첫 만남이었다면 헛소리 말라며 떠났을 그녀는 신중하게 내 의도를 분석하려 했다.
“하다못해 생환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야 하지 않나요? 현재 왕성은 제가 죽었다는 이유로 전쟁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너도 알고 있겠지만 네 목숨 따윈 사실 구실에 불과해. 당장 네가 간다고 상황이 변할 거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
내 신랄한 독설에 그녀가 표정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네가 죽은 상황이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놈들이 대가리를 들이밀 거다.”
“놈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바탄을 눌러버리려는 미친놈과.
친 바탄 세력으로써 바탄과의 전쟁을 유도하려는 자.
군수 물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상도덕도 팔아먹은 장사치까지.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지금 제 죽음을 기회 삼아 불순한 작자들을 솎아내겠다는 건가요?! 당신이 이 나라에 그렇게까지 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알다시피 알베르타는 대륙의 역린 중 하나야. 여기가 터지면 아주 재밌는 꼴이 벌어질 테지. 세계 대전 같은.”
“……알고, 있어요.”
“그런 놈들이 전쟁을 주도하면 내 쪽에 손해가 너무 크거든. 그놈들 전부 추려서 네가 전부 솎아내게 할 거다.”
넌 나라의 간신들을 처단할 수 있고.
나는 전쟁을 벌여서 하인스 영지에 피해를 끼치려는 개놈들을 손 안 대고 가볍게 처리할 수 있고.
고작 영지 하나만 다루는데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제약 많고 국가 하나를 책임져야 하는 국왕의 자리?
안 하길 잘했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석이조 그 자체였다.
나에 대한 감정이 사라진 탓인지 그녀는 분홍빛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이 사태로 인해 늦어져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거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곁에 있던 와인잔을 빼앗아 들이켰다.
그러자 그녀가 당황한 듯 손을 뻗었다가 멈춘다.
“그거…… 내가 먹던 건데…….”
당황한 기색을 무시한 채 와인을 전부 들이킨 나는 그것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
“전쟁이 터져서 이 대륙이 개판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
“넌 내가 왜 이 대륙에 크게 간섭하지 않고, 다른 대륙 국가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지.”
그리고, 이런 위치에 있는 내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전쟁 연극을 보고 어떻게 나올지.
한번 고민해봐라.
* * *
알베르타의 전쟁을 막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다.
현 알베르타 국왕은 바탄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고 있으니까.
빌미가 없어서 손을 못 댈 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멈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탄 왕국이었다.
알베르타가 전시체제에 들어서는 이유는 바탄의 군사이동과 알베르타 내부에서 호작질을 하는 놈들 때문이었다.
즉.
바탄이 군사를 물리고, 잘못을 시인하는 것.
그리고, 알베르타 내부에 전쟁을 종용하는 작자들만 처리된다면 사실상 알베르타의 일은 쉽게 풀릴 것이다.
튜나는 현재 그 망할 전쟁옹호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곧바로 자신의 생환을 알리지 않은 것이고.
남은 것은 그녀가 손을 댈 수 없는 바탄 왕국이었다.
바탄은 트릭 백작을 이용했던 수작을 모조리 부정했다. 알베르타가 전쟁을 어차피 벌이지 못할 거라는 판단하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제3의 세력이 바탄을 공격했으니.
그 범인이 누구이건 바탄에겐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허어…… 통탄할 일이로구나.”
“폐하 염려 마시옵소서. 간악한 알베르타의 무리들은 저희 바탄의 정예와 특수부대에 의해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 이 일이 잘못되면 세계 대전으로 번질 수 있네. 그렇게 되면 현재 알베르타에 체류 중이라고 알려진 데이비 왕자가 나설 수도 있을 텐데.”
바탄의 국왕은 우려를 표현하는 말을 내뱉지만, 딱히 다급하거나 걱정되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대의는 린디스 제국의 후작인 알카 후작이 지원하고 있으니까요.”
린디스 제국이 버티고 있으면 콘타스 제국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
결과만 놓고 보면 세계 대전으로 퍼질 것도 없다.
“한데. 요새를 공격했다는 그 괴형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가.”
“예. 조사단이 갔을 땐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고 하더군요. 뭐…… 중요한 건 그놈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증거도 없으니 저희에겐 사실 더 좋은 일이지요. 마치, 프리아 여신께서 도우신 것 같지 않으십니까?”
“허허허허. 린디스 제국과 프리아 여신께서 함께하신다면야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아니 그러한가?”
괴물의 습격으로 요새에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현재 국왕을 포함한 이들에게 있어서 요새의 희생자는 사실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죽어주었기에 자신들의 야욕을 펼치기 안성맞춤인 상태가 된 것이다.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국왕의 얼굴엔 알베르타를 침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광기가 서려 보였다.
“그래. 문제는 없지.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한 자들이 전쟁을 계속해서 방해해줄 터. 알베르타만 빠른 시간 내에 장악한다면 타국이 간섭할 틈이 사라진다라…… 하하하하하!”
만족스러운 듯 허허 웃는 그 모습에 모여있던 몇몇 귀족들이 허허허 웃어 보였다.
그때였다.
“폐하!!!”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몇몇 기사가 황급히 들어왔다.
“어전회의 중이다! 감히 이리 무례하게 들어오다니!!”
“죄…… 죄송합니다! 하, 하오나!”
“자자 그만하게. 무슨 일인가.”
국왕이 너그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그 뒤로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용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국왕 폐하.”
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인물을 발견한 국왕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기에 이리 무례하게…….”
“연통도 없이 찾아온 점 송구합니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국왕 알현권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 말한 여인이 천천히 로브를 넘겼다.
동시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저자는?!”
* * *
바탄 왕국에서 습격을 받았다 전해지는 요새. 그곳은 이미 살아있는 기척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동물이나 벌레까지.
그야말로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스르르르르륵…….
고요한 숲속을 전진하는 벨가의 몸에는 이미 기이한 보랏빛 핏줄 같은 것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현재 그는 정신체이지만 제대로 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튜나의…… 적…….”
오로지 그에게 남은 집념은 단 하나뿐이었다.
튜나의 적. 바탄. 그 바탄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
자신이 왜 튜나를 돕는지. 어째서 바탄을 공격하며 토트리아스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지.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오로지. 본능 속에 각인된 것처럼 움직일 따름이었다.
소년 벨가가 직접 공격하진 않았다지만 현재 토트리아스들을 유도하고 있는 건 벨가가 맞았다.
그동안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인 적 없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그는 어딘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과거의 적이었으나 단 하나의 행동 때문에 그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은 보고도 쉬이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쏴라!!”
갑작스러운 소리와 함께 상당한 수의 화살이 그와 그의 곁에 있던 토트리아스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토트리아스들은 마치 회오리처럼 움직이며 벨가를 보호하듯 감싸고 공격들을 대신 맞았다.
동시에 토트리아스들의 육신에 스며든 화살들이 마치 소화되는 것처럼 녹아 사라져 버린다.
“저…… 저게 무슨…….”
경악하는 인간들을 향해 벨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튜나…… 의, 적.”
그 한마디와 함께 대지가 뒤틀린다. 그의 몸에 토트리아스들이 달라붙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형태가 기괴하게 뒤틀리며 거대한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요새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왔던 바탄의 조사단원들은 벨가의 변화에 멍한 얼굴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퍼엉!!!
순식간에 뻗어진 거인이 된 괴물 벨가의 투명한 팔이 몇몇 조사대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아…… 아니?!”
거대한 슬라임 같은 육신에 갇힌 이들이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한다.
그중 일부는 슬라임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유도해 자신들을 뱉어내게 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토트리아스가 얼마나 큰 재앙이고 이들의 존재가 슬라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파스슥…….
버둥거리며 저항하던 몇몇 병사들이 일순간에 핏물로 녹아내려 버리자 살아남은 조사대원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함께 동고동락해온 이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것에 뇌가 이해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털썩…….
“이…… 이건…….”
공포에 질린 한 인간이 중얼거리며 주저앉아버렸다.
바탄에도 특수부대 같은 게 있다곤 들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을 달리하는 괴물이었다.
정말 알베르타가 보낸 게 맞다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좀 전까지만 해도 소년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괴물은 어느새 보랏빛 반투명한 지렁이들과 융합한 듯 거대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제…… 제압해!!”
당황한 외침. 쏟아지는 무기와 마법들에도 괴물은 점차 자신의 몸집을 불려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몸집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괴물은 조사대원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제…… 젠장!! 와, 왕실! 여긴 조사대!! 긴급상황! 긴급상황! 사태가 심각하다! 지원…….”
콰앙!
맹렬한 굉음과 함께 조사대원들은 자신들이 왜 죽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바스러져 버렸다.
그리고 거대해진 벨가의 주먹이 닿았던 땅은 마치 깔끔하게 먹어치워 진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벨가는 거대하게 뒤틀린 육신을 비틀어 무언가를 토해냈다.
그러자 그 토사물 같은 덩어리에서 또다시 토트리아스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먹어치우는 족족 종족으로 분화한다.
바퀴벌레 이상으로 끈질긴 생명력에 번식력은 공포스러운 수준이었다.
본래 토트리아스는 이 정도의 번식력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개체 수가 적은 편에 속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 하였던가.
토트리아스는 유전자 정보까지 먹어치워 자신의 힘으로 바꾼다.
스르르륵…… 파스스스스…….
이윽고 지렁이 형태를 가지고 있던 토트리아스들이 일제히 어떤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모습은 여전하지만, 그 형태는…….
맨들맨들한 등에 긴 더듬이. 6개의 다리 납작하고 갈색빛의 몸체를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