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07화 (1,106/1,559)

제1107화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

제국의 대공이며, 일개 개인으로써 군대에 가까운 무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대륙의 최강의 생명체.

수인을 천대하는 린디스 제국에서 유일하게 데오르트 황제와 에이리아를 따르는 인물로 본래는 국경지대를 지키는 역할을 하지만 황성에서도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철컥!!

“오셨습니까! 대공각하.”

“아뢰.”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위압넘치는 모습에 기사들이 깍듯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문 안으로 조용히 언질을 넣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끼익! 열리며 한 노령의 남성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털썩!!

“잡아왔습니다. 폐하.”

“수고했다. 대공.”

카트린느가 손짓을 하자 뒤쪽으로 들어온 근육질의 수인 두어 명이 한 사내를 바닥에 던져놓았다.

“크윽!! 폐하!”

“왔는가. 알카 후작.”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반역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 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래. 납득하긴 어렵겠지.”

싸늘한 대답을 내린 황제는 너무도 위압이 넘쳤다.

나이를 먹어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 주제에. 오래전부터 알카후작은 데오르트 황제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겉으론 충성을 맹세하고 크게 나서서 골을 만드는 편은 아니지만 사상 자체가 이제는 정 반대가 되어버렸다.

과거 데오르트 황제는 대륙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당시 그야말로 공포의 군주라 불릴 정도로 파괴적인 정치를 해왔다.

린디스 제국에 의한. 린디스 제국민을 위한 모든 정치를 해왔으며 설사 상대가 제국일지라도 린디스 제국을 건드리는 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과거 당시에 알카후작은 황실과 상당히 끈끈한 관계였다.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는 황제와 전쟁군상을 하는 귀족가문.

척봐도 가격이 나오는 사이즈였다.

하지만, 지금의 데오르트 황제는 평화에 찌들어있었다.

기적같은 3제국의 합의 끝에 국제연합이 설립되면서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손을 거들면서 이제는 과거의 전쟁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많은 번영들을 이루어냈다.

문제는 전쟁물자를 파는 알카후작가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사이가 틀어졌다.

전대 후작부터 지금까지.

“폐하! 어찌하여 신이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아무리 대공이라곤 하나 이리 신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잡아 올 수는 없는 노릇이옵니다!!”

그의 외침에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데오르트 황제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동시에.

알카후작의 몸이 우뚝 굳어버렸다.

차갑고 낮게 깔린 시선에서 느껴진건 정체모를 위압이었다.

지금껏 그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 비웃었건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대역죄인이 아니다…… 후작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로군.”

“폐…… 폐하…….”

“그래. 잘 모를 수도 있으니 하나하나 그 뇌리에 인지시켜주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천천히 다가온다.

이빨 빠진 호랑이에 평화를 사랑하는 황태자. 린디스 제국의 황실은 이제 하등 쓸모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황제는 이빨이 빠진 게 아니라 숨겨진 것이었고.

“폐…… 폐하…….”

데오르트 황제의 뒤편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태자는…….

데오르트 알 린디스. 제국의 황제가 손을 뻗자 카트린느가 허리춤에 있던 검을 빠르게 뽑아 절도 있는 자세로 검을 건네주었다.

“후작은 반역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그것이…….”

쓸데없는 잔머리는 먹히지 않는다! 여기서 말 한마디 실수했다간 반드시 목이 날아간다!

식은땀이 전신을 지배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후작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떤 말을 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아무리 굴려보지만 황제의 저의를 완전히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것이…….”

“모르겠다면 짐이 알려주지.”

스릉…….

그 한마디에 알카후작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이나라의 황제. 데오르트 알 린디스는 애초에 무슨 대답을 하건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평화가 자리 잡고 빠르게 성장 중인 우리 린디스 제국을 다시 전쟁이라는 멍청한 굴레에 빠뜨려 국력을 소모하게 만들고자 한 것.”

그것이 죄다.

자신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폐…… 폐하! 신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신은 결단코 전쟁을 벌이려 한 적이 없나이다!!”

“그렇군 모른다라…… 이상하군, 알베르타와 바탄 그 두 왕국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대가 우리 린디스 제국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넣으려는 줄 알았는데.”

“……그 ……그것은 억측이며 모함이옵니다! 신은 겨…… 결단코 그러한 일을 사주한 바가 없사오며!!”

어떻게든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했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그것이 자신이 어떻게든 목숨만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눈앞의 노령의 황제는 이미 그가 도망갈 구멍 따위를 남겨놓지 않았다.

“대공. 보고하라.”

“예 폐하.”

짧게 대답한 대공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보고가 나왔을 때.

후작은 핏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알카후작이 꼬리를 자른 자들 중 일부의 증언에 따라 병사들을 보내 알카후작이 바탄왕국과 알베르타 왕국의 귀족들과 회담을 하고 비밀리에 자금을 융통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그것 또한 모함…….”

“이봐 후작.”

황제의 눈에 서늘함이 어린다.

“폐…… 폐하…….”

“짐이 후작의 그 같은 만행을…… 고작 최근에 와서 조사했다고 생각했는가.”

이어지는 카트린느의 보고에는 알카후작이 그동안 준비해 온 과정에 대한 모든 내용과 증거들이 모조리 준비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작 후작가 하나를 작살내기엔 지나치게 공을 들인 탓에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다.

“현 대륙은 과거와 다르다. 전쟁을 하는 쪽 보다 하지 않는 게 이득인 상황이며, 무엇보다…….”

전쟁을 무리하게 벌일 시. 동쪽의 괴물이자 현 황제의 사위.

데이비 올 라운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전쟁은 필요한 최악의 경우에 택하는 것이다. 고작 네놈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사…… 살려 주시옵소서 폐하…….”

“유언 참 간결하군.”

서걱!!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진다.

목이 떨어져 나간 알카후작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데오르트 황제는 곧 검을 카트린느에게 건네주었다.

“사위놈이 했던 말이지만 제법 유용하구나.”

끌끌 웃지만 그 안에는 후작을 향한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래. 대공. 그동안 증거자료들을 수집해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원하는 포상을 말하라.”

“몇 달간 휴가나 좀 다녀오겠습니다.”

“휴가라…….”

“예. 우리 귀여우신 황녀저하를 뵙고 싶거든요. 그리고, 데이비 왕자에게 설욕전도 하고 싶고.”

씨익 웃는 카트린느를 보며 데오르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락하지. 기왕이면 짐의 소소한 복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도록.”

“가능할진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고 오지요.”

* * *

현재 나는 일리나와 연미복을 입은 채 알베르타이 왕실 파티에 와있었다.

“꺄르륵!”

멀지 않은 곳에서는 간식에 신이 난 홍단이와 청단이가 정신없이 간식들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다.

그런 두 아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두 아이는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대답을 하며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리고 한편에는.

“아…… 이토록 차갑고 고고하신 레이디를 뵙는군요. 저는 바나 백작가의 장남…….”

고작 12살정도 된 꼬맹이가 륀느에게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게 보인다.

문제는 륀느의 모든 관심사가 먹을것에 향해있다는 점이었다.

륀느의 식탐은 호기심 많은 청단이 홍단이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보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바 있다.

“륀느는 저 작은 몸에 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은게 들어가는 걸까…….”

“글쎄. 많이 먹는 건 확실하지.”

“저렇게 먹어도 괜찮은 거야?”

짠!

유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나와 잔을 부딪힌 일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음. 저건 솔직히 나도 미스테리라서.”

“뭐? 네가 모르면 어쩌자는 거야.”

“전에 영지에서 대식가를 뽑는 대회를 한번 했거든.”

그런데.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멧돼지 한 마리를 그 자리에서 홀랑 먹어 치워버린 륀느가 그것도 모자라서 대회에 참가.

다른 참가자들이 먹은 분량의 5배에 해당하는 양을 단번에 먹어 치웠다.

“내가 볼 때 저 녀석은 위장에 한계가 의미가 없어.”

“…….”

“그냥 맛있으니까 먹는 거야.”

먹은 것은 엄청난 속도로 에너지 환원을 이뤄버릴 테니까.

그 속도는 륀느의 식탐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진화해 왔다는 걸 모를 순 없었다.

그 외에 평화협정이라는 구실로 방문한 바탄의 몇몇 귀족과 함께 전쟁을 멈춘 공신인 레이나와 그녀의 일행도 보였다.

유쾌한 얼굴로 잔을 들고 레이나에게 무언가 잡담을 건내는 막시모스와 그런 그를 째려보며 타박하고 있는 모르지아나. 그리고 베르단데 덕분에 인간의 형태가 되어 참석하게 된 이오까지.

얼마 전까지 전쟁의 화마가 덮치던 곳이라곤 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멀찍이서 곤란한 웃음을 짓고 있던 레이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숨길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듯하더니 황급히 표정을 지웠다.

“데이비! 나랑 춤추자!”

그때 곡조를 들으며 리듬을 타던 일리나가 내게 손을 뻗어왔다.

“가실까요. 레이디?”

“잘 부탁해요.”

예쁘게 웃으며 그녀가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놓았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리나는 황녀 출신으로써 이런 교육을 수도 없이 받아온 만큼 굉장히 능숙했다.

그리고 나 또한 에이미의 등쌀에 못 이겨 어느 정도 기억을 해두고 있는 편이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며 일리나는 점점 내게 밀착해 들어왔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내 웃음에 그녀가 약간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읏?!”

그녀의 허리를 휘감듯 잡아당긴 내가 템포를 올리자 일리나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어린다.

“어? 내 발 밟게?”

“읏…… 너 두고 봐.”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는 내 템포에 맞추기 시작했다.

당연 템포가 빨라지면서 다른 이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시선을 끌어모은다.

역시 황녀는 황녀 출신인지.

처음에 힘겨워하던 일리나는 점점 내 템포에 익숙해지는 듯하더니 어느덧 환한 미소까지 지어가며 내 발에 맞추기 시작했다.

“오오…….”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군요.”

노래가 끝이 나고 찬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부부관계에선 두 번 이상 춤을 추는 게 정석이지만 일리나는 단 한 번만으로 삐진 표정을 지으며 내게서 물러났다.

“안 해. 이 나쁜 새끼야. 오늘 밤에 진짜 두고 봐.”

처음이야 몰랐지 매번 두고 보자 하면서 울며 애원하게 되는 게 누구인지 잊는 건지.

과거엔 페르세르크에게 휘어잡히는 정도였지만 일리나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그녀가 쉬겠다며 떠나간 뒤 약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다시 댄스 타임이 열렸고 내게 일리나가 다가왔다.

“데…… 데이비.”

“응?”

“나랑, 나랑 춤춰.”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일리나?”

“어…… 응?”

“아니야. 가자.”

“응.”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가 대답했다.

“이상하네. 어딜 간 거야.”

“헛소리 말고 손이나 줘요. 왕자님.”

“왕자님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저 멀리서 막시모스와 모르지아나의 투닥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