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4화
에이리아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착각이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여보면서도 그녀는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데이비에겐 끝내 말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그런 느낌일 뿐이었고, 일리나에게서 이상한 조심을 느낀 바는 없었으니까.
말없이 멀리 정원에 앉아 륀느와 레이나와 함께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일리나를 보던 찰나였다.
“아얏!”
“앗! 미안해 에린아.”
“히잉…….”
울상을 지으며 울먹거리는 에반젤린은 머리가 한껏 엉킨 채 불만을 토로했다.
“미안해. 다시 해줄게.”
익숙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애정을 담아 에반젤린의 머리카락을 손질해 예쁘게 땋았다.
“아빠가 칭찬해주실까요.”
“그럼, 우리 에린이 예쁘다고 칭찬해줄 거야.”
예쁘게 웃는 에이리아의 귀가 즐거움으로 쫑긋거렸다.
그런 에이리아의 부드러운 손길이 좋은지 에반젤린은 마치 아기 고양이처럼 낮게 우는듯한 소리를 냈다.
우아아앙!!
그때였다.
갑작스레 곤히 잠들어있던 다리안이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자 머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던 에반젤린이 화들짝 놀라 다리안에게 후다닥 뛰어갔다.
이에 에이리아도 몸을 돌린 그 순간.
“흣?!”
섬뜩한 투기가 그녀의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비틀거리며 그녀가 움찔거린다.
온몸의 피부가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느낌에 멈칫한 에이리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짓누른 투기는 사라져 있었다.
동시에 에이리아는 저 멀리서 일리나와 눈을 마주쳤다.
예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일리나를 시야에 담은 에이리아의 동공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때 본 것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일까.
단순히 검을 들고 있었다고 의심하기엔 조금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
그때도 그녀는 투기를 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것처럼.
“어…… 엄마?”
당황한 에반젤린이 다리안을 품에 안고 고개를 돌렸다.
“에…… 에린아……. 잠깐만 여기 있어 주겠니?”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녀는 아직도 모골에 송연하게 맺히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데이비에게 말하지 않았던 건 괜한 의심으로 복잡한 일을 하는 데이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페르나 일리나처럼 투기 같은 것에 익숙한 편이 아니기에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저 잘못 본 것이라고. 잠결에 착각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데이비에게 들은 어떤 사실은 그녀를 복잡하게 괴롭혔다.
“앗!”
그때 그녀의 발치에 무언가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바닥과 충돌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할 일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누군가가 나서서 그녀를 받쳐준 것이다.
“괜찮아 아가씨?”
능글맞으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
놀란 에이리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상당히 능글맞아 보이는 얼굴의 한 엘프가 있었다.
“아…….”
“오랜만이지? 아폴론이라고 해.”
“아…… 네. 에…… 에이리아 올 라운이라고 해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에이리아를 일으켜 세워준 아폴론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걱정 마. 그놈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공사 구분은 하니까. 그리고.”
짧게 침묵한 그가 에이리아의 머리를 푹푹 쓰다듬었다.
굉장히 불쾌한 행동에 에이리아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어도 데이비의 사람은 건드리지 않아.”
그런 인간이 로 아이아스라는 분을…….
그렇게 생각한 에이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그걸 물을 입장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하. 잘 못 믿는 눈친데?”
그가 킥킥 웃으며 품 안에서 작은 브로치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둬. 언젠가 널 도와줄 거야.”
그렇게 말한 그가 창가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다프네는 참 고생이 많았거든.”
“…….”
“솔직히 데이비 녀석 얄밉긴 하지. 그런데.”
그의 표정에 처음으로 가식이 아닌 진짜 미소가 걸린 기분이 들었다.
“페르세포나와 다프네의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아…….”
“난 못했거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뭔가 급해 보이던데?”
“아…… 맞아요.”
그녀가 시선을 이리저리 살폈다.
“사실 이걸 말하는 건 잘못된 것 같긴 해도…….”
평소라면 말하지 않았겠지만. 데이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아폴론에게라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아폴론은 자진해서 이곳을 지켜주기 위해 힘을 소모하고 강림한 상황이다.
그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실은…… 일리나 언니가…….”
“그 금발 아가씨?”
“네…….”
에이리아는 혹여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이 느낀 점을 그에게 털어놓으려 했다.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는구나.”
그때 저 멀리서 페르세르크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본녀도 같이 들을 수 있을까?”
* * *
“일리나 양이 그런 상황이라…….”
아폴론은 제법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본래보다 많이 이상한가?”
“그건 아니지만…….”
“확실히. 일리나의 행실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페르세르크도 이야기를 듣고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일리나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이건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어요.”
“네가 느낀 투기가 우연이 아니면 두 번이나 그럴 순 없어.”
“자자. 아가씨들 잠시 진정하자고.”
아폴론이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우선 사과부터 하자면 나는 그것을 분류할 만큼 변화에 민감하지 않아. 확인하려면 오딘이나 로 아이아스 정도 되면 모르겠다만…….”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벨가라는 그 소년이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실은 그것 때문에 제가 착각했나 생각을 했지만요.”
벨가는 현재 변해버린 이들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애초에 데이비도 모르는 걸 데이비보다 그런 부분에서 둔한 아폴론이 알 수가 없었다.
“우선은 염두는 해두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일리나 양이 정말로 변한 거라면.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함부로 말도 못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느낀 투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단 알려놔야 한다는 입장이 된 것이다.
“후우…….”
페르세르크가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창밖에 다리안을 안고 있는 에반젤린과 같이 있는 일리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일단 대비는 해두도록 하지. 하지만 벨가라는 그 꼬맹이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면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네.”
그 말에 에이리아는 불안한 기색을 애써 억누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짙고 명확했던 투기였다.
그 여파로 아직도 팔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드는 그녀였다.
* * *
어두운 동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로 아이아스가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녀는 바깥에서 무슨 변수가 벌어지지 않게 막아준다는 입장이었다.
애석한 일이지만 그녀에게 의존할 생각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여긴가?”
내부는 미로처럼 엉켜있었지만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걸어 들어갈수록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를 불러들이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쿠웅!!!
이윽고 거대한 계단에 도달했을 때. 나는 어두운 저 아래부터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디언 같은 건가?”
놈들의 몸에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명력과 태초의 포식자화 한 베헤모스가 품고 있던 힘과 흡사한 것이 느껴졌다.
대체 태초의 포식자가 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것들은 시험대상이다.
나는 전신에 포식의 권능을 발현했다.
포식의 권능은 강한 힘이긴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나를 순식간에 공복의 광기로 밀어 넣는다.
포식의 권능은 비 물리 계통의 힘의 경우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버리는 게 가능하다.
금기의 힘과는 다른 방향으로 놀라울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그렇게 뱉어내는 건 면역이 생기는 것처럼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다.
즉. 해결하려면 먹고 뱉는 게 아니라 먹어치우고 내 힘으로 바꿔버려야 계속해서 먹어치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일리나의 시공격검을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치워 버리는 게 가능한 것도 그런 케이스였다.
[먹어라.]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나를 감쌌던 검은 파도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그 어떤 힘과도 공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먹어치운 이 태초의 포식자들의 힘은 마치 본래부터 안전한 힘이었다라고 말하듯 내게 온전히 스며들었다.
신기하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멀끔하게 사라져버린 주변을 둘러본 나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좀 이상한데.”
마치 끝없는 위장 속에 밀어 넣은 것처럼 힘을 먹어치운 건 좋은데…….
전혀 활용할 수가 없다.
마치 본래 일부가 되어 흡수된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먹어치운 힘은 광기에 휩싸이거나, 아니면 내가 모두 다룰 수 있게 변했다.
내가 쓰지 못했던 로 아이아스의 최상위 마법이나 검신 하레스의 숨겨진 비기인 시공격검 같은 케이스들.
혹은 심연의 공주가 가지고 있던 힘까지도.
쓰지 못해 광기가 차거나, 아니면 사용할 수 있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하는데.
이건 마치 경험치가 쌓이고 사라진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르르르르르륵!!
그때 계단의 아래쪽에서 전보다 더 많은 검은 파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가 됐건 내 포식의 권능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면 알겠지.”
나는 양손을 펼친 뒤 포식의 권능을 담았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가며 양손을 강하게 손뼉 치듯 깍지 끼웠다.
[먹어라.]
포효와 같은 의지가 터져나가며 무형무색 무취의 거대한 입이 검은 파도들을 일거에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계속 먹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 * *
계속해서 몰려오는 파도를 먹어치우며 계속해서 내려갔을까.
끝이 보이지 않던 계단의 끝에 놓인 거대한 문과 그 앞의 바닥에 쓰여진 글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글귀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에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쓰인 문자 비스무리한 문양들에 손을 올린다.
분명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나는 말 없이 그 문양들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포식의 권능과 이 바닥의 문양들을 접촉시켰다.
쩌어엉!!!
동시에 내 몸에 큰 충격파가 터져 나왔고 몸이 몇 미터나 밀려 나갔다.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는 터라 꽤 지지력이 좋았을 텐데 그대로 밀린다고? 황당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생각을 비웠다. 밀려난 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근원의 옥좌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자는 오로지 근원의 힘을 지닌 존재뿐일지니. 침입자의 침입에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리라.]
[왕의 자격을 지닌 자는 그에 따른 자격을 선보이리라.]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해석되듯 밀고 들어온 문구에 나는 고개를 들어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왕이라.
태초의 포식자의 힘에도 왕 같은 개념이 존재하는 것일까.
뭐가 되었건.
“적어도 인간이 쓴 건 아니네.”
그리고 그 대상은 어쩌면 일개 생명체를 향한 말도 아닐지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나는 문 앞에 선 채 생각했다.
자격을 입증하라.
대체 무슨 자격을 입증할까. 포식의 권능이라도 사용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석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문에 석판을 가져다 대었을 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기이한 힘을 내뿜으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극!!
이윽고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프리아 여신이 준 석판은 자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이 안에 내가 바라는 사실과 앞으로 내가 어떻게 지금 사태를 처리할 수 있을지 나올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공터가 드러난다.
이에 천천히 한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쿠웅!!!
갑작스런 압박감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변질된 왕의 힘을 지닌 자.]
[근원의 옥좌에 오를 자격이 없다.]
[돌아가라.]
어디선가 목소리가 아닌 의지가 들려왔다.
요지는 변질된 힘을 지닌 나는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내 뒤에 있던 석문이 닫히기 시작했고.
이내 주변이 맹렬하게 진동하며 벽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크기의 갑옷을 입은 검은 기사들이 척! 척!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침입자는 배제한다 이거지.”
하나하나 제법 위험해 보인다만.
“니들 입맛에 맞춰주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야.”
뒤틀리던 무엇이건 이 힘은 내 것이다.
“니들에게 하나하나 검사받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물러날 이유도 없고”
척!! 척!!
나를 포위하듯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다만, 이곳에 있는 힘은 내게 필요하거든. 그러니 내가 왕이 되겠다.”
알아서 고개를 조아려라.
내 의지와 함께 순식간에 태초의 포식자와 흡사한 힘을 내뿜는 기사들이 나를 향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며 나는 힘을 온전히 개방했다.
아무리 먹어치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겉보기엔 생명체 같지만, 이것들은 비 물리 법칙 계통으로 이루어진 어떤 형체.
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먹어치워]
콰득!!!
내 의지가 발현됨과 동시에 몰려들던 기사들이 일제히 비틀어지며 원소 입자 단위로 흩어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라지는 만큼 다시 나타나 나를 향해 접근하지만, 이쪽도 그런 걸 보고 질리거나 하지 않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들려온 의지를 종합해보면 한가지는 알 것 같았다.
일단 내가 가진 힘은 태초의 포식자의 근원. 즉 왕의 옥좌에 있는 힘과 흡사하거나 그 계통이다. 아니면, 그 왕의 힘인지 뭔지가 어쩌다가 내 힘과 뒤섞이며 포식의 권능으로 변했거나.
그 가설이 맞다면 나는 태초의 포식자의 왕이 될 자격을 일단은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래저래 불완전한 그 힘을 온전히 하기 위해선 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취해야 한다.
태초의 포식자라는 힘은 세계의 규칙에서 파생된 것들을 먹어치우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건 벨가를 먹어치우고, 균열을 먹어 치우며 확인한 사항이다.
다만, 이 근원의 옥좌라는 장소는 포식의 권능으로 변질된 왕의 힘. 즉 태초의 포식자의 왕의 힘을 불순물이라 판단했다.
왕의 자격을 갖췄으나. 오염된 왕의 자격이라 판단한 것이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순식간에 분해되어가는 기사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며 내가 흉포하게 웃음 지었다.
“왕의 자격은 너희들이 정하는 게 아니야.”
지금부터 왕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내게 있는 거지.
그동안 정말 말 안 듣던 포식의 권능이지만.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만큼은 오로지 내게 협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조아려라.”
폭주하듯 쏟아져 나간 포식의 권능이 닥치는 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광기도 오지 않고 마치 흡수하듯 모든 힘이 내 안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포식의 권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며 어떤 지식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이상한데…….”
일리나는 말없이 소설책을 들여다보다 눈을 찌푸리며 책을 덮었다.
“…….”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가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뜬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브로치화 된 칼디라스를 손에 꼭 쥐었다.
[으음…… 일리나 무슨…….]
그녀는 갓 잠에서 깨어난 듯한 칼디라스의 말을 무시한 채 굳은 얼굴로 자신의 방을 나섰다.
“마님?”
그때 그런 그녀를 발견한 한 수인족 시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은 채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말씀 주시면 가져다…….”
툭!
“조금만 잠들어있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녀가 그대로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일리나는 굳은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현재 영주성은 굉장히 바쁜 시기인 터라 따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에반젤린의 공부를 봐주고 있을 에이리아의 방이었다.
그리고, 에반젤린의 방에 도착한 그녀가 천천히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천천히 문을 열어젖히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만.”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든 일리나가 대상을 위협하기 위해 검을 뻗은 그 순간.
무거운 창 한 자루가 그녀의 칼디라스를 막아냈다.
“큭…… 이 아가씨 힘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단단한 체격과 수염을 지닌 사내와 능글맞은 얼굴을 한 엘프였다.
“아가씨. 여긴 무슨 볼일이야?”
그 물음에 일리나가 물었다.
“에이리아…… 어디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엘프. 아폴론이 미소를 지웠다.
“아무래도 에이리아 그 아가씨의 말이 사실이었나 본데?”
“어디 있냐고요!!”
일리나의 격한 외침에 아폴론이 활을 꺼내 들었다.
“미안한데 아가씨. 그걸 말해줄 이유가 없지 않아? 적어도 지금은.”
그 말에 일리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칼디라스를 재차 휘둘렀다.
“빨리 말해!!!”
격한 감정을 토해내며 일리나가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