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15화 (1,114/1,559)

제1115화

휘리리릭!!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벽면이 박살 나고, 아폴론의 신형이 튕겨 나간다.

“휘유. 화끈한 아가씨로구만. 이것 참…… 이 상태로 힘 조절을 해야 하니 쉽지가 않네. 흐읍!!”

쩌어어엉!!!

튕겨 나간 아폴론을 대신해 일리나의 움직임을 저지한 거구의 사내가 씨익 웃었다.

“망할!”

인상을 찡그린 일리나는 그들을 지나쳐 에이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지만, 그 두 영웅은 철저하게 절제된 움직임으로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고 흘려버리는 것을 반복하며 이동하지 못하게 막았다.

“애석한 일이지만 여기서 멈춰주겠나? 자네가 날뛰면 우리도 피곤해지는데.”

“그럼 빨리 말해요! 두 사람 어디 있냐고!”

다급한 일리나의 외침에 아폴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말해줄 수야 있나. 지금 둘의 위치를 알려주면 어떻게 할 건데?”

“그야 당연히 찾아가야죠.”

“그래서 안된다는 거야.”

씨익 웃은 아폴론이 끝이 뭉툭한 화살을 활시위에 매겼다.

“우리는 아가씨가 두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게 둘 수 없는 입장이잖나.”

“위해를 가하긴 누가 위해를 가한다는 거야!!”

카아아앙!!!

순식간에 날아든 화살을 쳐낸 일리나가 휘청거렸다.

“실력, 재능 모두 출중한데 실전경험이 너무 부족하네.”

순식간에 뒤를 잡힌 일리나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걱정 마. 아가씨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예 불가능하다 못을 박은 건 아니니까.”

일단은 낙관적인 입장일 뿐이지만 가능성은 사실 모호했다. 아폴론이나 아스트레아나 이런 분야에 관해선 그리 많이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윽!!”

비명을 지르며 일리나가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그녀의 힘은 강하지만 영웅, 그것도 두 명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부러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힘 조절이라니…… 조금 독특하네.”

“당신들을 죽일 듯이 공격할 순 없잖아…… 데이비의 은인인데…….”

“…….”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이내 서로를 바라보다 물었다.

“이봐. 아가씨.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멀쩡한 건가?”

“난 멀쩡하다고 이 인간들아!!”

“그럼 왜 검을 들고…….”

“혹시나 해서 챙긴 것일 뿐이라고요!”

그녀의 외침에 아폴론이 식은땀을 흘렸다.

“아하…… 그렇다는 거지?”

“말해요! 에이리아 지금 어딨어요?!”

“어디 있긴. 에반젤린 그 꼬마 아가씨와 단둘이 피신시키…….”

“안돼!!”

일리나가 격하게 소리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 에이리아를 에반젤린과 단둘이 두면 안 된다고!!”

격렬한 외침과 함께.

영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푸른색의 불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법과는 조금 다른 정령의 힘이 섞인 어떤 특유의 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지만, 저 푸른 화염을 쓸 수 있는 건 이 영지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나인테일. 에이리아의 여우불.

저 위치에 있을 이는 단둘 뿐이다. 에이리아와 에반젤린. 그 외에 다리안이나 페르세르크는 에이리아의 의심에 따라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탓에 다른 쪽에 있었다.

“설마…… 변이된 게 이 아가씨가 아니라고?”

“얼씨구 야단났네. 빨리 움직여 귀쟁이!”

“씁. 이래서 오딘을 내려보내려고 했는데…… 일단 먼저 가지!”

아폴론이 마치 바람처럼 흩어지듯 사라졌다.

* * *

콰드드득!!!

거대한 공동에 쌓인 막대한 힘을 먹어치운다.

어디 한번 저항해봐라. 저항해봐야 결국은 내 손바닥이다.

나는 미련 없이 공동안에 있는 흑기사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힘. 본래 태초의 포식자라는 존재. 그 왕의 힘만이었다면 이건 압도적으로 힘든 파도였을 것이다.

애초에 근원의 옥좌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포식의 권능은 놈들도 말했듯 온전한 태초의 포식자의 힘이 아니었다.

다르게 진화. 혹은 변질된. 혹은 근본부터가 다른 힘. 비슷하지만 다른 힘이며, 다르지만 같은 계통이었다.

마치 이 시험에서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는 듯 놈들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접근해왔다.

하지만 놈들의 시험이 불합리한 걸 떠나서 내 포식의 권능은 이 시험의 기준점을 아득히 넘어선 위치에 있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지 않는 치트키를 친 것 같은 정도의 사기성.

power over wel…….

음…….

뭐가 되었건 이놈들이 끝까지 나를 거부하는 이상 이쪽에서도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본다. 검은 기사들이 천천히 내게 접근할 때부터 미묘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왜 한 놈은 가만히 있는 건가.

나는 저 멀리 보통의 검은 기사들보다 두 배는 거대해 보이는 기사가 석재로 된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향해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갑옷부터 투구 무기까지 하나하나가 격이 다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저놈이구나.

내가 놈에게 가까이 갈수록 검은 기사들의 진입은 더욱 빨라졌다.

급기야 몇몇은 일정 범위 안까지 들어와 내게 무기를 휘두르려 했다. 단순히 냉병기가 아닐 터. 맞아서 이득 볼 게 없다.

[먹어치워라]

내 의지가 강하게 발현되며 포식의 권능이 게걸스레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워 나갔다.

쿠웅!!!!

점차 가까워질수록 좀 더 다른 존재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키만 3미터가 넘어가는 흑기사들이 나타나 나를 향해 접근한 것이다. 놈들은 마치 자폭세례를 감행하는 테러리스트처럼 나를 막아섰다.

몸을 구성하는 대두분의 입자들이 포식의 권능에 삼켜지면서도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 이것들. 그냥 겉보기엔 기사일 뿐이지 결국 입자의 덩어리였구나.

내가 이것들을 적이라 인식한 탓에 입자들이 기사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 이것들은 계단에서 보았던 검은 파도와 흡사했다. 아니 더 짙었다.

그렇게 점점 밀도 높은 저항이 가해지지만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웃기고 있네.”

콰득!!!

제법 선방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고삐 풀린 포식의 권능이 가져오는 힘은 회랑의 영웅도 죽였던 선례가 있으며, 신조차 찍어눌러 버린 힘이다. 반면 이 태초의 포식자라는 힘은 내 힘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세계의 규칙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상성을 자랑하면서 정작 다른 힘에는 약하다니,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콰작!!

나를 향해 접근하던 마지막 기사가 입자화되어 형체를 잃고 흩어진다.

옥좌에 앉아 나를 말 없이 바라보는 검은 기사의 코앞까지 다가온 나는 천천히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놈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놈의 투구에 손이 닿았을 때. 섬광처럼 놈의 손이 내 팔을 낚아챈다.

쿠웅!!!

동시에 막대한 정보들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쿨럭!”

동시에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고, 아주 한순간 완전 기억능력과 시너지를 발현하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어놓았다.

[근원의 옥좌에 앉을 자격을 갖추었으나 변이된 자여.]

[근원의 옥좌가 가진 업과 그 목적을 기억하라.]

“언제는 침입자는 배제한다더니.”

내 중얼거림에도 정보는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태초에 여신께서 자신을 둘로 나누었음이니. 반쪽은 철저한 규율을, 반쪽은 자애를 담당하였노라.]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고서를 읽어주는 할아버지처럼 점잖았다.

[규율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구조와 법칙을 수호하고.]

[자애는 창조된 피조물에게 자비와 자애. 그리고 희망을 건네줌이니. 그를 기적이라 행한다.]

세계의 규칙은 프리아 여신의 이면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프리아 여신은 융통성이 제법 있는 운영자에 가깝고, 세계의 법칙은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만큼 철저하게 규칙대로 세상을 조율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태초의 여신께서 나누어지며 세상의 양분이 되었노라.]

“대충 아는걸 지껄이지 말고 그거 내놔.”

내가 기사의 투구를 빼앗아 들었다.

투구가 빠져나가자 그 안에 있어야 할 검은 안개 같은 것들이 스르르르!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근원의 옥좌에 오를 힘을 갖춘 자여. 변질되었으나 순수한 목적의 힘을 지닌 자여.]

“말해.”

투구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장난스레 머리에 써보는 나를 향해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옥좌에 앉은 놈의 형태가 스스스슥! 거리며 내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변질된 힘의 근원을 알 수 없으나 왕의 자격을 지닌 자여. 세계의 법칙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었을 때 태초의 임무에 따라 조율하는 막중한 책무를 다하겠는가.]

마치 맹세를 종용하듯 물어오는 그 목소리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당연한 걸 묻네.

“딴 데 가서 알아봐. 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빼앗긴다고 의무까지 요구하네.”

어디 약을 팔아.

파앙!!!

내 대답과 동시에 주변의 막대한 에너지가 내게 자연스럽게 빨려들기 시작한다.

마치 블랙홀에 흡수당하는 행성이 스파게티 면처럼 늘어지듯 밀려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힘의 일부가 거부하듯 저항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흡수되었다.

동시에. 내 포식의 권능 내부에서 일정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먹어치워 온 힘이 하나하나 퍼즐이 되고 마지막으로 먹어치운 옥좌가 파편이 되어 하나의 완성된 퍼즐이 된 것처럼 변한다.

동시에 이 힘이 어떻게 사용되는 힘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근원의 옥좌. 태초의 포식자.

이 힘들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의 규칙에 간섭하는 힘이라…… 그래서 베헤모스가 균열을 먹어치웠구나.”

정신체 벨가의 내면에 있던 수많은 정신체들도 한 번에 먹어치워 버렸고.

하나같이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세계의 규칙이 파생한 것들이니까.

세계의 규칙은 놀라울 정도로 융통성이 없이 세상을 조율한다. 당연히 그런 옹고집이 존재하기에 세상이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리라. 오죽하면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마저 불순물이라 판단하고 죽이려 들었겠는가.

그게 태초의 여신인 프리아 여신이 만든 세계의 법칙이자 규칙이었다.

F=ma 같은 단순한 과학 수식을 이루는 근본. 게임으로 치면 하나의 거대한 서버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프리아 여신은 세계의 법칙을 만들면서 제동 시스템도 만들었다.

융통성 없이 완벽하지만, 그만큼 이 세계의 법칙이 뒤틀리거나 지금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제어할 수단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 과정이 완전한 제어가 아닌 잘못된 부분을 먹어치워 사라지게 만든 뒤 세계의 규칙이 자연적으로 회복하게 만드는 불완전한 시스템이지만 말이다.

흔히 말하면 암세포를 잘라내고 환부를 자연회복 시키는 시스템과 흡사했다.

손아귀에 모여드는 태초의 포식자. 그 왕의 힘이 옅게 회전하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힘은 포식의 권능을 모두 삼키지 못했다.

정확히는 포식의 권능이 자신의 일부였던 태초의 포식자의 왕이라는 힘을 완성시켜 강화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세계의 시스템에 일방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힘. 이건 일개 생명체가 품을 힘이 아니었다.

“그래도 개인이 품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권능인데.”

일개 피조물이 품을 수 있는 성질의 힘이 아닌 걸 알았는데. 그런 힘을 고작 인간일 적부터 들고 있게 만들어준 포식의 권능은 참 경악스러운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문득 그런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이 비어있는 옥좌는 대체 누가 앉는 것일까.

후보는 여럿 있지만, 자세하게는 알 길이 없었다.

근원의 옥좌. 즉, 태초의 포식자의 왕이라는 이 힘을 이제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단순히 먹어치워서 자연회복을 시키는 것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지금 세계의 법칙은 탈피과정에서 폭주하여 상당한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이 문제는 당연 자연 회복되는 동안 계속해서 벌어지거나 혹은 다른 문제를 만들 터.

할 수 있는 방법은 온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바꿔서 적용시키는 게 전부이리라.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 들어왔는지 로 아이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이곳의 힘을 당신이 모두 먹어치웠으니까요.”

“아. 그러네.”

이곳은 이제 빈 공간이다. 로 아이아스가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작은 소년과 쾌활한 인상의 소녀가 걸어들어오는 게 보였다.

하나는 인간화한 베헤모스이고, 또 하나는…….

“소야?”

“데이비 님! 저 다리가 생겼어요! 끝내주죠!?”

인어 소야였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웃겼다. 베헤모스는 가장 멍청한 환수인데. 가장 먼저 인간화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소야는 왜 인간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범인은 로 아이아스가 잠시 그녀를 변형시켰으리라 봐도 무방해 보였다.

둘 다 커다란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으니 마치 남매를 보는 기분이었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로 아이아스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그 힘을 다루는 법부터 연습해요.”

“음…….”

“세계의 법칙을 온전히 먹어치우고 바꿔서 다시 내놓을 수 있게.”

“먹어서 수정하고 내놓는다고요?”

“네. 당신의 포식의 권능은 이제 과거의 그 불완전한 힘이 아니에요.”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엄청난 밀도를 지닌 검은 구체를 만들어냈다.

“우선은 이것부터 시작해요.”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나머지는 회랑 쪽에서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한번 믿어봐요.”

문제는 아폴론 그 인간이 하인스 영지에 있어서 더 불안하다는 거지.

나는 입맛이 써지는 기분이 들었다.

* * *

“아…… 아아아…….”

쓰러진 에이리아 위에 올라앉은 에반젤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에이리아의 목에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겨누었다.

콰직!!!

한차례 그녀의 검이 내리쳐지지만, 에이리아의 손에 쥐어진 어떤 브로치 같은 것이 그녀의 공격을 막아낸다.

“에…… 린아…….”

힘없이 중얼거리는 에이리아의 말에 에반젤린은 무표정하게 검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한번 공격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번 공격할 때마다 브로치의 장막에 서서히 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정확히 에이리아의 숨통을 끊기 위해 검을 내리쳤다.

저 아이는 지금 온전한 상태일까. 아닐 것이다.

애초에 변해버린 건 일리나가 아니었다.

바로 에반젤린. 이 작은 아이였다.

대체 그녀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그동안 왜 조용히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지만 일리나도 자신과 같이 뭔가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기에 그런 투기를 발산하고, 밤에 검을 들고 돌아다닌 게 아니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정확히 누가 변질된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도 못 알아보는데 그걸 감각만으로 느꼈다는 건 대단한 일이긴 했다.

그렇게 되자 에이리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바보같이 자신이 망쳐버렸다.

“미안해…… 네게 이런 슬픈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해…….”

에이리아는 힘겹게 팔을 뻗어 검을 역수로 틀어쥐고 있는 에반젤린의 뺨을 쓸어내렸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팔에 생긴 찰과상으로 인해 흘러내린 피가 그녀의 뺨에 옅게 묻는다.

“미안해. 엄마가 바보같이 에린이를 눈치채지 못했어…….”

데이비는 반드시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다. 그는 아니라 했지만, 방법이 없다고 못이 박힌 게 아닐 터. 반드시 방법이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에반젤린은 이번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슬슬 브로치의 방어에도 한계가 찾아온다.

“제발 여신님이시여…… 이 아이가 괴로워하지 않게…….”

겉보기엔 친구로 보일 정도로 비슷한 키를 지녔지만, 에반젤린은 고작해야 3~4살 정도의 아이일 뿐이었다.

“괜찮아…….”

이윽고 브로치에 힘이 다했음을 직감한 에이리아는 애써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칼이 목에 들이밀어 진 상황에서도 그녀는 끝내 에반젤린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윽고 트와일라잇을 높이 든 에반젤린이 고개를 든다.

무표정한 그 얼굴은 너무도 차가워 보였지만 에이리아는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심해. 이건 사고일 뿐이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야.”

에이리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하여 에반젤린을 다독였다.

후에, 혹시라도 데이비가 에반젤린을 원래대로 되돌렸을 때. 에반젤린이 제발 이번 일로 슬퍼하지 않기를. 충격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에반젤린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왼쪽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처럼 붉디붉은 눈물이었다.

“에린?!”

경악한 에이리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끝내 에이리아를 찌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마지막에 휘둘러진 검은 에이리아를 향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에이리아 대신 에반젤린. 자신의 복부를 향한 것이었다.

찔리면 쇼크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급소 부분. 경이로운 정신력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자살을 택했고 검이 살점을 파고들었음에도 에반젤린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정확히 그녀의 검이 누군가의 손에 막힌 탓이었다.

“멍청한 것.”

손으로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잡아챈 금발 외안의 작은 소녀는 짜증스레 검을 막아선 채로 에반젤린의 앞에 손가락을 뻗었다.

찌잉!

동시에 짧은 공명음이 퍼졌고, 에반젤린이 비틀거렸다.

“그러니까 저 멍청한 두 놈에게 맡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오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