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9화
스릉!! 텅!! 터엉!
순식간에 접근한 명국의 근위대가 창을 내 목에 겨누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찌르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천녀의 바로 곁에서 무기를 빼 들었으니 경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장궁의 졸개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가장 믿었던 이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 받을 충격은 아마 마냥 쉽게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내 돌발행동은 엄연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거지의 선을 넘어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목숨을 걸고 천녀를 지켜낸 장궁을 의심하다니요!”
모여있던 대신들의 외침과 적대적인 시선이 닿았다.
불쾌함에 혀를 차는 이도 있었고,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가장 당황한 것은 천녀인 듯 보였다.
그녀는 지켜보라며, 자신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 말했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천녀님, 이해가 쉽도록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검을 그에게 더욱 들이밀며 말했다.
“천녀님의 몸에 있던 독. 일반적으로 해독이 불가능한 맹독입니다.”
내 말에 독에 대한 사실을 몰랐던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흘끗 본 곳에는 태상의 표정이 찡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그건 내 불쾌한 행동으로 인해 생긴 찡그림이 아니었다.
동시에 내 미소도 짙어진다.
“그…… 그랬다! 분명 데이비 네가 짐의 몸에 독이 있다고 말했다!”
“예. 그래서 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확실히 죽이려고 한다면, 더 독한 맹독이 있을 텐데. 굳이 며칠 정도 유예가 있는 독을 사용했다고 말입니다.”
당장 그녀를 죽이려는 놈들이 검에 그런 독을 발랐다? 말이 되지 않았다.
당장 죽이려고 달려든 이들에게 있어서 그녀의 몸에 주입할 독이라면 즉효성이 있으면 더욱 확실해질 테니까.
“즉. 당신을 시해하려 한 이들은 그 독을 사용한 게 아닙니다. 처음엔 검에 독을 발랐을 가능성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이건 아니더군요.”
구강섭취.
즉, 독을 직접 먹었다는 소리였다.
“어째서 그런 독을…….”
“생각해보면 해답은 하나밖에 없겠죠. 이용한 겁니다.”
이유불명으로 갑자기 천녀를 죽이려 드는 호위무사들의 동태를 파악한 누군가가. 가장 먼저 그것을 파악하고. 이 사태를 유도했다.
“천녀님의 몸에 있던 발견하는 것도 까다로운 종입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겠죠. 그러니 독을 먹인 뒤 이 사태가 될 때까지 방관했다가 위험한 순간에서 구해내 천녀님을 도망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호위무사들로부터 그녀를 구해낸 누군가는 그녀를 데리고 하필 다른 마나 게이트도 아니고 목적지가 링크되지 않은 불완전한 마나 게이트를 사용했다.
정확히 대륙에서 많이 사용하는 아류식으로 구조만 베낀 게 아닌 고대부터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마나 게이트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녀가 명국의 밖으로 도망치게 하려면 왕궁 전체가 장악당한듯한 연출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게 태상의 작품일 테고.
즉 이 모든 사태를 뒤에서 관망하고 조종해온 이가 하나 더 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호위무사들을 통솔하며, 그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
내 말에 장궁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당신을 데리고 마나 게이트로 가서 어설프게 하인스 영지의 좌표를 찍어 마나 게이트 가동을 준비해둔 자.”
마나 게이트는 준비 없이 사용하면 위험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문제 없이 하인스 영지까지 날아왔다.
“명국에서 하인스 영지까지 날아가려면 하루 이틀 마나 게이트를 충전해서 될 게 아닙니다. 보통 왕래가 잦은 마나 게이트가 1년 동안 사용할 마나를 한번에 사용해야 겨우 한두 명 정도 이동하겠죠.”
이것 또한 준비가 되어 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특수한 경우를 사용하면 대상 측 마나 게이트가 없어도 이동은 가능합니다. 물론, 굉장히 위험부담이 크겠지만요.”
마나 게이트의 부작용으로 죽어도 좋고, 설사 살아남아도 살기위해 하인스 영지로 들어간 천녀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게 그가 바란 시나리오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겁니다. 마나 게이트가 가동하기 전 그 모든 것을 직접 조율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가능한 건 역시 당신과 함께 움직인 단 한 명뿐입니다.”
내가 장궁을 배신자라 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헛소리!! 그건 증거가 없는 가설일 뿐이오! 천녀시여! 이자의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장궁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 그렇다. 데이비. 짐이 너를 믿는다곤 하지만 증거가 없으면…….”
상황 정황이나 가설은 딱 들어맞는다. 장궁이 아니고서야 이 모든 사태를 직접 유도할 순 없으니까. 태상이 배신자라는 건 확실하지만 그는 천녀의 곁에 없었다.
“그럼 마나 게이트를 까보면 되겠네. 믿기 힘들면 마탑에서 협조라도 받을까요?”
내 말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나 게이트를 까서 만약 제가 말한 대로 목적지 좌표가 하인스 영지 근처로 정해져 있고, 그를 위해 1년 가까이 준비를 해두었다면…….”
고대 마나 게이트는 과거의 유물인 만큼 현재 사람들은 일부 기능만을 사용할 줄 안다.
하지만 나는 마나 게이트의 기본적인 구조 자체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조사하면 다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궁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합니다. 천녀님께서 넘어가신 이후 마나 게이트는 반란분자에 의해 박살 났으니까요.”
“그거야 복원하면 되는 일이고.”
“헛소리를…….”
“이봐.”
말을 끊은 내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눈앞에서 복원해준다고. 설마 고대 마나 게이트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나 보지?”
“당신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고요.”
“다른 방법도 있는데.”
내 말에 그가 움찔했다.
“왜, 설마 빠져나가려고?”
“당신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거늘. 왜 그런 짓을 한다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사실대로 털어놨다.
“내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천녀님은 하인스에서 사망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죽빵을 때려놓고 이제와서 왜 화를 내느냐고 묻는 건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내 말에 장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하실래요. 천녀님.”
내 말에 천녀는 혼란스러울 얼굴로 장궁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정말 장궁…… 네가 짐을 배신한 것이냐?”
“천녀님.”
“말해다오! 짐은 너를 믿었다! 네가 목숨을 걸고 짐을 살려주었으니 짐은 그런 너를 버리고 홀로 도망친 것에 죄책감마저 느꼈단 말이다!”
그녀의 외침에 장궁은 말없이 그녀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천녀는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의 침묵은 긍정을 의미했으니까.
“대신들은 들어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궁을 노려보던 천녀는 이를 악물고 힘겹게 말했다.
“예 하명하옵소서.”
“알고 있는 자도, 모르는 자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며 정국의 눈치를 살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거부한 자는 없겠지. 그런 이들 대부분이 숙청당했을 테니까.
“처, 천녀시여…….”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슬퍼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자리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위엄을 드러냈다.
콘타스 대제와 협상을 하던 당시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전날 천녀의 숙소에 20명의 충직하던 신하들이 짐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
본인에게서 듣는 진실에 그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짐의 부름에 응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왕실 내부에 한 반란분자의 끄나풀이 자리를 잡고 사태를 방관했으니까.”
그들은 어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듣지 못한 것처럼 굴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먹을 꼬옥 쥐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밟고 올라가 옥좌를 노려보았다.
“그날의 사건을 빌미로 권력을 손에 쥐려는 이가 있었다.”
그녀가 돌아섰다.
그리고는 옥좌에 천천히 앉았고. 나는 검을 거둔 채 한발 두발 물러났다.
오만하게 앉은 그녀가 말없이 모두를 내려다본다.
“태상은 들어라.”
“…….”
“그대는 짐이 죽어서 사라지면 이 일이 해결될 거라 믿었나?”
그녀의 물음에 태상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이를 악물었다.
천녀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순간 모든 게 꼬이는 반란이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서 내란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방법이겠지. 저들은 태상의 손과 발일 테니.”
어전을 지키는 병사들과 장군들을 보며 말한 천녀는 오만하게 턱을 괴었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눈물이나 흘리고 있어야 할 상황이 아닌 것을 그녀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리라.
“하나 짐은 짐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이곳에 있다.”
“처…… 천녀시여…….”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는가?”
그 물음에 태상은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천녀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에 건만큼 그녀가 살아있는 이상 태상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오죽하면 그녀의 복귀를 못 하게 마나 게이트를 틀어막으려 했겠는가.
“사, 살려주시옵소서.”
단순히 나라는 전력 하나가 날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만큼 태상은 머리를 빠르게 굴려 자비를 구걸했다.
딱히 그녀의 힘이 되어 위세를 떨칠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이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요망한 천녀님은 그런 나를 야무지게 이용해먹었다.
“근위대는 들어라.”
천녀가 말한다.
“태상의 죄목은 매우 질이 나쁘다. 따라서 그의 죄인 반란죄를 이유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사형. 반란을 저지른 이상 아무리 외척이고 태상이라도 최소 잔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좌제로 사형은 면하게 해주겠다. 그들을 모두 평민으로 격하시키고 수도에서 추방하라.”
그 말에 태상이 눈을 부릅떴다.
“……감사합니다. 천녀시여.”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천녀가 무슨 생각인지 나는 물을 생각이 없었다.
겉보기엔 굉장히 오만하고 싸늘해 보이지만 아마 저 아이는 속으로 구슬프게 울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장궁, 죄인 장궁은 들어라.”
장궁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없이 그를 보고 있던 천녀가 물었다.
“죄를 인정하는가.”
“……하.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군요.”
“이유를 말해…….”
그녀가 몸을 살짝 일으켰다.
쾅!!
그리고는 작은 손으로 옥좌의 손 받침대를 내리치며 절규했다.
“왜 그대가 짐을 배신한 거야!!”
그 외침에 장궁은 공허한 얼굴로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당신과 이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말에 천녀가 흠칫 놀랐다.
“명국이 깨끗한 줄 아셨습니까? 천만에요. 과거 명국과 현국이 전쟁을 했을 때. 나는 동생과 생이별을 하고 이 명국으로 끌려와 검투장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장궁. 그는 검투장의 노예였다가 그 실력을 인정받아 태상의 도움으로 호위부대장까지 올라온 사내였다.
“저자의 말이 전부 맞습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을 구하는 척 하인스 영지로 날려 보냈고, 그 과정에서 당신에게 독을 먹였습니다. 당신이 함부로 데이비 왕자와 접촉하지 못하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고요.”
하인스 영지에서 그녀가 죽어버리면 당연히 곤란한 문제가 대거 발생한다. 명국은 라운 왕국과 돌이킬 수 없는 거리를 벌리게 될 테고. 사신이 죽은 콘타스는 당장이라도 명국을 날려버릴 것처럼 굴 테니까.
그 과정에서 생길 변수 또한 그의 손에 의해 틀어막힌 후였다.
“설마 우연히라도 데이비 왕자가 당신을 발견할 줄은…….”
일의 시작은 그녀가 늦기 전에 우연히 내 눈에 띄어버린 것.
“그게 아니면, 하인스 영지에 가기도 전에 죽었다면…….”
그가 씁쓸하게 조소했다.
“장궁을…… 포박해…… 그는 콘타스 제국으로 넘긴다.”
그녀의 말에 주변에서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데이비. 괜찮으냐?”
“이번엔 양보하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당신을 시해하려 했던 20명. 그놈들 신병을 제게 양도해주세요.”
* * *
천녀를 배신한 이들은 현재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몰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상당량 날아가 버렸다지만 그들이 천녀를 모셔온 충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들이 자신들의 주군을 해하려 했다고 한다? 맨정신일 수가 없다.
몇몇은 자결을 시도했고, 몇몇은 죽지 못해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토사구팽이라고. 사냥이 끝난 개를 삶아 먹는다는 말이 있듯 태상은 그들을 미끼로 사용하여 죄를 덮어씌울 희생패로 사용하려 했다.
이들의 존재는. 사실 고의였든 아니든 절대 명국에서 환영받을 수 없었다.
천녀에게 체스를 가르쳐 주던 나는 근위병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천녀님. 말 가지고 장난질하면 큰일 납니다.”
“이크. 너무하는구나. 네 녀석은 눈치가 너무 빠르다!”
천녀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하지만 말 한두 개 바꾼다고 그녀의 전황이 유리해지진 않을 것이다.
“거 좀 봐주면 어디 덧나느냐?”
“예 덧나요.”
“네 녀석은 일국의 왕에 대한 예우가 너무 없다!”
“그렇습니까?”
심드렁하게 말하며 나는 그녀에게 받은 옥가락지를 보았다.
그리 희소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좋아하는 문양의 옥가락지라면 챙겨두는 것도 좋으리라.
무려 일국의 왕이 사용하던 것이니 가치가 낮진 않을 터다.
“천녀시여!”
호위무사 스무 명 중 살아있는 이는 열 명 남짓. 나머지 열 명은 자결했다. 그중 일부는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직 천녀가 죽은 사실이 정말인지 몰라 살아있는 것뿐 만약 그녀를 해한 게 자신들이 맞다면 혀 깨물고 죽을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의 등장에 천녀는 잠시 움찔거리며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천녀에게 있어서 그들은 트라우마를 일으킬 존재들이었으니까.
물론, 그녀의 그런 행동은 호위무사들로 하여금 세간에 알려진 사실이 진실임을 알려주는 꼴이었다.
“죽여주시옵소서 천녀시여! 천녀를 보좌해야 할 저희들이 감히 천녀께 검을 겨눈 점. 이는 백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그들은 통한의 심정을 드러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어렵게 외쳤다.
식음을 전폐하다 보니 말하는 것도 어려우리라.
“그대들은…… 왜 짐을 죽이려 했느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천녀는 조심스레 그들에게 물었다.
물론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을 테니까.
“기억 못할 겁니다.”
“응?”
“저들은 당신에게 극한의 충성을 바쳤습니다.”
내 말에 그녀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짐을…….”
“너무 충정을 바쳤으니까요. 역으로 반전되면 그 충정이 역심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겁도 없이 당신을 죽이려고 했고요.”
앞뒤 안 가리고 자신의 주군을 죽이려 했다는 건 그만큼 앞뒤 안 가리고 충정을 바치려 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입을 모아 머리를 땅에 박으며 외치는 그들을 보며 천녀가 견디기 힘들다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데이비. 네 부탁을 받았고, 그들을 이곳으로 불렀지만……. 짐은 아직 저들이 두렵다…….”
“예. 진실은 씁쓸합니다. 저들은 병에 걸린 거니까요.”
병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지금 명국에선 나의 존재가 그녀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이 체류가 길어질수록 타국에서도 귀찮은 시선을 보낼 터.
나는 나의 입장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 얼마 전 이 티오니스 대륙 곳곳에 무작위하게 사람들이 돌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연적인 질병에 가깝지요.”
진실을 알려줄 수 없으니 포장하는 수밖에.
그 말에 천녀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증상은 감정의 반전입니다. 가장 사랑한 사람을 가장 미워하게 되거나. 가장 중요시 여긴 신념이 역전되는 겁니다.”
저들은 천녀에게 목숨을 바친 충신. 그렇기에 그게 역전되면서 다시없을 역적이 되었다.
“그게 무슨…….”
호위무사들도 내 설명을 듣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행히 그 질병은 제가 처리했습니다. 정확히는 대륙에 퍼져있는 대륙을 수호하는 이들의 손을 좀 빌려서요.”
일차적으로 세상에는 지금 내가 드래곤 같은 존재들과 손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있다.
대충 알아먹겠지.
내 설명에 그들은 입술이 찢어질 듯 꽉 깨물었다.
“본인들도 의도한 건 아닐 겁니다. 아니 의도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시해하려 한 저들은 절대 이제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게 모든 왕국의 법도니까.
국왕을 죽이려 한자들을 국왕의 곁에 둘 순 없다.
“그렇다고 처벌을 원하십니까?”
내 물음에 천녀는 혼란스러운 듯 그들을 보았다.
“박우.”
“예! 천녀님!”
“정말…… 이게 사실이더냐?”
한 호위무사가 머리를 처박았다.
“죽여주시옵소서. 신은 기억이 온전치 못하나이다. 소신들과 같은 불충장들이 천녀의 곁을 지키면 언제 다시 발작을 할지 알 수 없사오니. 명을 내려주옵소서.”
목을 쳐달라고.
“짐은 그러고 싶지 않다.”
변하지 않았으면서 이일을 이용하려 한 태상이나. 오로지 명국과 천녀의 파멸만을 바란 장궁과는 다르게 이들은 순전히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
“하지만 법도가 있으니 그대들을 용서한다 한들 가시밭길이 사라지진 않겠지.”
“그렇습니다. 천녀시여.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수많은 이들이 천녀의 결단을 의심하게 될 겁니다. 결단코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허니 저희들의 목을……!”
“목은 됐고, 신변은 이쪽으로.”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기회 정도는 줍시다.”
“어찌 그렇게까지 하는지 물어도 되겠느냐?”
“별거 없어요. 여기저기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노동력도 좀 필요하고. 결백한 자들이 항거 불능한 사태에 휩쓸려서 피해를 보는걸 보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고.”
이유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은 천녀의 곁에 이제 있을 수 없다.”
내 말에 그들이 각오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천녀께선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하시지.”
“그것은…….”
“그렇다고 해도 명국에 남는 건 포기해라.”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최소 추방은 확정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버려지기엔 너희들도 억울하잖아. 안 그래?”
내 물음에 그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고.”
내 말이 끝난 후. 명국의 왕궁에서는 머리를 천으로 감싼 십수 명의 사내들이 끌려 나와 차례차례로 참수형에 처했다.
이로 인해 천녀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도 안 되는 자비를 베푸는 바보 같은 짓을 한다며 말하는 이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비릿한 피 냄새와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육신들 모두가.
가짜라는 것을.
“자. 노예들아. 너희들이 할 일이 있다.”
명국의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숲. 그곳에서 나는 2열로 도열한 이들에게 말했다.
“대륙에 너희와 같은 불행한 일을 겪은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내 말에 그들의 시선이 정확히 내게 꽂혔다.
“내가 주는 정보를 기준으로 그들을 찾아, 그게 천녀가 너희들에게 내린 마지막 명령이다.”
“찾으면 어떻게 구하란 말씀이십니까.”
“악적이 되라고. 그들만 찾아서 죽여.”
내 말에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어찌하여 그런 결단을 내리시오! 비록 죄인이나 죄 없는 자들이라 하면 절대 죽일 수 없소이다!”
“정확히는 너희처럼. 살아있되 죽은 자로 만들라는 소리지. 그들 중 대부분은 더 이상 구원할 수 없어.”
국가는 그들을 벌할 뿐 지켜줄 수 없다.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실을 알릴 순 없다.
카트린느 대공처럼 운 좋게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면 몰라도, 과반수는 이미 손에 피를 묻혔다.
그러니. 가짜시체를 그들에게 두고 그들이 죽었다고 알게끔 해라.
그리고, 그렇게 구해낸 이들을.
전부 내 앞에 데려와.
“죽은 자가 된 너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없어. 하지만 내가 만들어주마.”
너희가. 마족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거다.
나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