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0화
“왔으면, 잊은 걸 해야 하지 않겠는가.”
페르세르크가 작은 모습으로 쪼르르 날아와 내 뺨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입 맞춰달라고?”
“어허. 누가 보면 본녀가 매달리는 줄 알겠구나.”
“아니었어?”
“허어…….”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는 살짝 물러난다.
“그대는 별로 그립지 않았던 모양이니 그냥 물러나야겠구나.”
한번을 지려고 하질 않지.
나는 도망치려는 페르세르크에게 마나 파장을 쏘아 보냈다.
파직!! 동시에 작은 형체로 있던 그녀의 몸이 본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팔과 허리를 휘감아 당기듯 입을 맞췄다.
“읏!”
약간 놀란 듯하지만 그녀는 이 와중에도 살살 놀리듯 나를 비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엄마 속은 안 썩이고 있었냐.”
내가 페르세르크의 부푼 배를 톡톡 두드리며 묻자 기다렸다는 듯 툭! 소리가 배에서 났다.
“벌써 발차기를 하는구나.”
그녀는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앗! 서방님! 오셨네요!”
그때 뒤편에서 륀느와 에이리아가 나타났다.
그나저나 서방님?
“호칭이 변했네?”
“아…… 그게…… 어쩌다 보니…….”
나를 서방님이라 부르는 이는 에이리아의 다른 인격이다. 아마 그녀의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뭐. 이쪽도 나름대로 편하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녀의 옆에선 륀느가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나를 말 없이 올려다보았다.
최근 녀석도 홍단이 청단이의 세례에선 벗어났지만, 그 역할이 다리안으로 넘어갔는지 한 손에는 다리안을 품에 안고 있었다.
“꺄우! 꺄아!”
신이 난 듯 륀느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다리안의 행동에도 녀석은 익숙해 보였다.
홍단이 청단이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이번에 명국에 가서 결정을 할 일이 좀 생겼는데, 할 이야기가 좀 있어.”
이윽고 내가 조용히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 * *
나는 이번에 규칙으로 인해 변해버렸던 이들을 내 손에 거두고 그들을 이용해 마족과의 화해를 향한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세운 계획을 털어놓았다.
“흐음. 우선적으로 그런 계획이 성공하려면 양측의 협조가 있어야 할 테지.”
다리안을 품에 안고 중얼거리는 페르세르크의 말대로였다.
“성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서방님. 성국은 마족을 상당히 미워하니까요.”
아무리 성국보다 삼제국의 위세가 더 크다고 해도 성국의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선 양측의 협조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 마족이든 인간이든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으니까.”
실제로 마족의 원한은 천년 단위였고, 인간 또한 예전에 있었던 마족의 공습으로 전쟁을 펼쳤다.
“그러니까 당장 결론을 거둘 필요는 없지. 그냥 여지만 남겨놓는 거야.”
그 과정에서 이번에 규칙으로 인해 생긴 피해자들도 구원할 수 있다면 하고.
그리고 성국은…….
“상관없지 않나? 성국이 모시는 신이 누구야.”
“으음…… 프리아 여신님…… 아.”
에이리아가 프리아 여신을 언급했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네요. 여신님은 현재 서방님에게 협조적이니까요.”
지금이야 영웅들에게 뒷덜미를 잡혀 신의 영역에 있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대뜸 찾아와 자신의 사심을 내게 가득 풀고는 가버렸다.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데. 어찌할까.
“그러니까 그쪽은 문제가 없을 거야.”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나는 일차적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계략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계략을 들은 두 사람은 잠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나를 믿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간단히 말해서 연극이지. 그런데 일리나는 지구에 간 건가?”
“그래도 걱정이 되니까.”
“나도 가봐야 하나.”
내 말에 두 사람이 크게 움찔거렸다.
“아, 아냐. 걱정 말아.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그저 잘 멀리서 지켜봐 주기만 하면 돼.”
묘하게 뭔가를 숨기는 느낌이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니까 당장은 지켜보자.”
내 대답에 두 사람은 동시에 가깝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에반젤린은 잠시 멍하니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에반젤린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시작한 방송이다. 좋아하는 그림도 마음껏 그리고, 알하자드의 제안에 따라 인간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기 위해서.
물론, 지금 하는 이 방송은 상당히 양날의 검에 가깝다.
자칫하면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일이 제법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하.^^]
[에하^^]
방송을 켜기가 무섭게 채팅이 올라온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생방송이라는 것을 열자마자 모여든 4천 명의 시청자들을 보며 그녀는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날마다 세시간에서 네시간씩은 꼬박꼬박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알하자드의 말에 따르면 처음 시작한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순 없다고 했다.
“반가워요. 그런데 에하가 뭐에요?”
그녀의 물음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린 하이.]
[에린 하이지, 뭐긴 뭐야.]
현재 에반젤린은 자신의 방송 코드를 에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물론, 에반젤린의 이름을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얼굴도 까지 않았는데 그녀를 동시에 같은 인물이라 유추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물론, 과거 에반젤린의 목소리가 BJ 나룻배를 통해 유출된 적이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아주 기를 쓰고 그 영상을 내리게 만드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때문에 이런저런 음모론이 나돌았지만 그걸 에반젤린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아아…… 에린 하이…… 그럼 시하라고 해야 하나요?”
시청자 하이.
엉뚱한 그녀의 발언에 ㅋ 단어가 무수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네 열어줘…….]
[도네에에에에! 제발 많이 안 쓸게!]
이윽고 도네이션을 열어달라는 무수한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건 에반젤린이 도네이션을 금지하는 항목을 활성화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안 돼요. 그거 돈 쓰는 거잖아요. 난 돈 받으려고 이런 거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에반젤린이 단호하게 말하지만, 시청자들의 화력은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 이걸 막네.]
[쉣! 테잌 마이 머니!]
“테…… 테잌 마이 머니? 무슨 뜻이에요 저건 또…….”
[내 돈 가져가라고!!!]
[아니 돈을 준다는데 왜 안 받는 거야.]
“아, 안 받아요! 안 받아.”
칼같이 거부 의사를 표현한 그녀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내가 듣기로는 처음 방송 시작하는 사람은 한 달이고 몇 달이고 한명 두명 정도가 오는 게 대부분이라는 말이 있던데.”
[응 그건 너 해당 아니야.]
[시작부터 미친 듯이 어그로 끌고서 그러기를 바랬음?]
[이게 다 절제 그 무친놈 때문임]
“아. 그 절제라는 분이 호…… 호스팅? 그걸 해주신 거라고 했었죠? 그,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을 옮겨주는…….”
[ㅇㅇ 맞음. 그거]
[그림으로 사기 치는 거 보려고 요새 꼬박꼬박 옴.]
데이비에게 거짓말을 잘해놨으니 마음껏 즐기다 오라던 페르세르크와 에이리아의 말에 따라 그녀는 알하자드의 도움을 받고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았다.
그동안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고, 시청자들의 말에 반응해주기를 한참.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조금 걱정이 되는 그녀였지만 애초에 이걸로 큰 영광을 볼 생각이 없는 그녀였다.
그저 자신의 흥미를 끌어주는 것에 호기심이 동했을 뿐.
“사기 아니에요. 사기라고 하지 말아요. 흥이다.”
살짝 토라진 목소리로 툴툴거리자 채팅창이 화려하게 갱신되기 시작했다.
입을 삐쭉이며 펜을 쥔 그녀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뭘 그려볼까요.”
마냥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가 그림을 봐주는 것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던 그녀는 얼른 분위기를 환기시켜 그림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뭘 그려달라는 말보다…….
[도네 열어 에 사장!!]
[이건 폭압이다!!]
[폭정반대!!]
[절대 해명해.]
뭘 그려달라는 말은 없고 온통 후원시스템을 열어달라는 말밖에 없었다.
“시…… 싫어요! 도, 돈 막 쓸 거잖아!”
당황한 에반젤린이 황급히 소리친다.
띠링!!
[인마궁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막는다고 못할 줄 알았나?
“어?”
당황한 에반젤린의 입에서 멍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후원은 분명 막았는데?! 어째서 들어오는 거지? 당황하던 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건 금액이었다.
“세상에…… 이게 다 얼마야! 이봐요! 당장 전화해! 이거 다시 가져가요!!”
[어우야. 100만 원…… 실화냐.]
[회장님이 벌써?]
[아니 근데 도네 막았는데 어떻게 도네를 함?]
[????]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뭐지 버그임?]
[아니다. 이건 얼마 이상 찌르면 도네가 되게끔 해둔 건가?!]
[무친, 이걸 수금각을 세게 잡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띠링!!
[사자자리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힘내요. 잘 보고 있어요.
“꺄악! 그만! 그만 해요! 잠깐만! 나 잠깐 설정…… 설정 좀 볼게!”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황급히 마이크를 껐다.
“아저씨!!!”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그녀가 당황한 기색으로 알하자드를 부른다.
하지만 알하자드는 바쁘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
방송에는 있는 거 같은데.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대신 알하자드가 아닌 초단이와 알하자드의 수행원인 안토니오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거! 이거! 대체 뭐에요?!”
무수한 물음표 세례를 끌어올리자 상상 이상의 금액이 후원된 것이 보였다.
“어라? 분명 아가씨 요청대로 후원은 막아놨는데요.”
말없이 채팅창을 보던 초단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인마궁? 사자자리?”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 언니는 이런 거 잘 몰라서…….”
“우선,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단순 버그라고 말씀해주세요.”
“버그요? 벌레?”
“아뇨. 예기치 못한 프로그램 오류를 버그라고 합니다.”
그 말에 에반젤린이 손뼉을 쳤다.
“아하 그렇구나!”
그리고는 다시 마이크를 켰다.
“이거 버그? 벌레? 어쨌든 그거래요. 걱정 말아요!”
[벌렠ㅋㅋㅋㅋㅋ]
[무친 진짜 시골 벽지에서 문명의 혜택도 못 보고 살았나.]
[컨셉 진짜 확고하네 ㅋㅋㅋ]
상상 이상으로 지구의 상식에 구멍이 있는 모습이 더욱 그들을 자극한 건지 그들의 반응이 뜨겁기 그지없다.
[그런데 저거 카메라는 있는데 왜 안 켜는 거야?]
그때 상황을 보던 초단이가 의아하게 묻자 에반젤린이 입을 쩍 벌렸다.
[????]
[누구 목소리임? 졸귀 ㅋㅋㅋㅋㅋ]
[혼자가 아녔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그림 그릴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는 사람들은 그…… 그 강퇴라는 거 시킬 거니까 그만 해요!”
황급히 상황을 수습한 그녀가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래서 도네 언제 여냐고!!]
[도네 열어라 에 사장!!]
[엄마…… 여기 추워…… 배고파…….]
“아니 엄마를 왜 여기서 찾아요…… 그러지 말아요. 진짜 나 방송 끌 거야!”
강수를 두는 에반젤린 덕분에 결국 채팅창의 화력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안 열거에요. 막 돈 쓸 거잖아.”
[아니 우리가 우리 돈 쓰겠다는데!!]
“아 몰라요! 추천 없으면 내가 막 그릴 거야!!”
그렇게 외치며 그녀는 빠르게 펜을 들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것은 하나의 동물, 그것도 어떤 고양이를 보며 예쁘게 웃고 있는 페르세르크의 그림이었다.
페르세르크의 얼굴은 지구에서도 제법 유명하다. 그리고 한켠에선 그녀를 여왕님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와…… 진짜 그림 사기 또 친다. 무친, 퀄 보소. 당장 튀어나올 거 같네.]
[미친 이게, 여왕님이랑 엔젤캣이었음?]
엔젤캣. 티오니스에서 간혹 보이는 희귀한 고양이 종으로 새하얀 털에 동그란 눈동자와 천사처럼 새하얀 날개가 작게 돋아나 있는 귀여운 동물이었다.
부자들의 수집품으로 유명한 동물이며, 에반젤린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으며, 페르세르크가 하나 키우고 있는 엔젤캣 ‘참다랑어’의 모습이었다.
“짜잔!”
그림의 마지막을 장식한 후 그녀가 말했다.
“귀엽죠?”
[왜 본인이 뿌듯해하지? 엔젤캣 귀엽고 여왕님 존엄인 거 다 아는 사실인데.]
[솔직히 비주얼이 사기긴 함. 요망한 고양이.]
[진짜 티오니스 성자 전생에 나라 구했나. 여왕님 어우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기에 잽싸게 저장을 마친 그녀가 의욕을 불태웠다.
“자. 그럼 다른 거 또 하나 더 그려볼게요.”
하지만, 시청자들은 몇 번이고 본 그림보다 다른 게 더 중요했다.
[아니 도네!!!]
[도네 열어줘 사장님…… 제발…….]
이제는 익숙하게 그것을 무시한다.
띠링!~!
[인마궁 님께서 5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티오니스 성자 그려주세요.
갑작스레 또다시 도네가 올라오자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 찬다.
“아니…… 아니 이게 대체 뭐야?”
[이쪽 회장님 사기를 치네?]
[도네 막아놨는데 대체 어떻게 쏘는 겨.]
[이것도 버그냐?]
“아니…… 아니 이게 어떻게…….”
후원을 막았는데 계속해서 들어오니 당황할 수밖에.
[아니. 근데 방장. 대체 나이가 몇임? 목소리만 들으면 아직 애 같은데. 학교 안 감?]
누군가의 질문에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학교요? 학교 안 다니는데…….”
그 말에 어째서인지 채팅창이 눈물바다로 변하는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에반젤린으로썬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분명 막아놨는데…….”
당황해하던 그녀의 중얼거림에 거짓은 없었다.
그때였다.
[스트리밍 사이트 관리자입니다. 잘못된 경로로 해킹이 감지되었습니다.]
[이왜진?]
[찐이야? 미친 ㅋㅋㅋㅋ]
[방송 며칠 만에 운영자가 강림한다?]
갑작스런 관리자의 등장으로 채팅창이 불티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띠링!!
[사자자리 님께서 5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하하! 이걸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불법적인 경우, 혹은 잘못된 경우의 후원은 약관에 위배됩니다. 당장 그만두세요.]
최후통첩하는듯한 관리자의 말에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간다.
“사…… 사자자리 님! 그만 하세요! 저 돈 받기 싫어요!!”
에반젤린의 외침과 동시에 또 한차례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금우궁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동시에 어떤 영상이 시작된다.
어둑어둑한 거대한 트레이닝실에 있는 터질듯한 근육을 지닌 새하얀 토끼가 붉은 눈을 반짝였다.
-뀨?
그말과 함께 터질듯한 가슴을 양쪽으로 리듬감 있게 튕기며 머스큘라 자세를 취한다.
그 존재를 모르지 않는 에반젤린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분노와 황당함이 서린 표정에 그녀가 어찌할지 몰라 말을 참았다.
반면 채팅창은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악!! 내 눈!!]
[미친! 근육 터질 거 같네!]
[와 잠깐 꿈에 나올까 무섭다.]
[엄마, 이 방송 너무 매워…….]
악질 회장의 또한번 후원. 눈앞에서 후원을 받은 에반젤린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해 당황하던 찰나.
관리자의 싸늘한 채팅이 올라왔다.
[잘못된 경로를 통한 해킹으로 의심됩니다. 우선 아이디 보호 처분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말과 함께 방송이 꺼져버렸다.
멍하니 있던 에반젤린이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어린 표정에 초단이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흐윽…… 언니…….”
“어머니한테 말해둘게…….”
이날. 스트리밍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에반젤린의 방송인. 에린 그림방송이라는 단출한 방송에 대한 언급이 빠르게 일어났다.
후원을 막은 스트리머 그리고 그 후원을 뚫고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척하는 정체불명의 악질 시청자 두 명.
그 사건으로 인해 관리자가 출동하고, 그 관리자를 놀리듯 후원이 또 들어왔다.
그로 인해 방송 며칠 만에 아이디 보호처분이 들어가 버린 레전드 같은 사건에 게시판과 그림 갤러리라는 곳에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끌린 어그로는 다시 방송 보호 처분이 끝났을 때.
그녀의 시청자를 두 배 이상 늘려 무려 1만에 달하는 사람이 모여들게 만들어버렸다.
“뭐야…… 이거, 무서워…….”
[도네 열어! 에 사장!!]
[여기…… 너무, 추워…….]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일방적인 도네 요청을 쏟아 넣기 시작했고.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알았어 열면 되잖아!”
특출난 콘텐츠 없이 신기하게 그림을 그리는 에반젤린이지만 그런 신입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건이 터진 탓일까.
그녀의 방송은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신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도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이틀 정도가 더 지났을까.
스트리밍 사이트의 한 게시판에는 하나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입 스트리머 에린 그림방송의 방장에 대한 추측.]
그 말과 함께 장황하게 그녀에 대한 누군가의 추측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 말까…….”
그런 반응을 보며 에반젤린은 자신이 뭔가 심해의 끔찍한 무언가에 발을 담근 것은 아닐까. 역시 아빠의 품이 가장 안전한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