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4화
에반젤린으로선 경악할 노릇이었다.
얼굴은 분명 숨겼는데?!
어떻게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당황한 그녀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거리며 입술만 씹었다.
자신이 그냥 방송인인 에린이 아니라 에반젤린 올 라운이라는 사실을 들켰다.
자신을 보며 두려워하던 인간들을 떠올린 그녀는 그나마 재미를 붙인 이 방송도…….
띠링!
박하사탕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공주님. 캠 언제 켜?]
“네?”
당황한 그녀가 되물었다.
[아니, 근데 공주는 아니지 않음?]
[아빠가 왕자니까.]
[ㄴㄴ 아빠가 왕이면 공주지 멍청아.]
[성자의 딸이니까 성녀인가?]
[에라이 빡대가리들아. 성자고 뭐고 왕실 계승권 내려놓아서 대공이라며, 그럼 공녀지.]
예상했던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
자신이 에반젤린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어느 쪽이든 좋지는 않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것을 모두가 이야기했다.
영특한 에반젤린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채팅창에선 그녀에게 언제 캠을 켜냐는 말만 꾀꼬리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 사람들은 아직 확신이 없어, 그래서 확인 차원에서 요구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절대 켜선 안 된다.
“캐…… 캐, 캐…….”
고민하던 그녀가 급히 외쳤다.
“캠은 나중에요! 지금은 생각 없어요! 그리고, 왜 저를 자꾸 에반젤린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님?]
[거짓말하는 솜씨가 흡사 사고 친 강아지만도 못하시네요. 선생님.]
비웃음이 담긴 채팅을 보며 에반젤린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상하네요. 저는 방송인 에린이에요. 이름 비슷하다고 자꾸 그러시는데. 그러지 말아요.”
[응, 응.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마음속에선.]
“그리고. 이상하잖아요! 내가 에반젤린 올 라운이면 왜 방송 보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는 건데요?!”
그녀의 외침에 물음표가 뜬다.
[????]
[이 집 갈고리 뜬금없이 수집 잘하네.]
“에반젤린 올 라운, 안 무서워요. 여러분들은?”
[왜 무서움?]
“사…… 살인자니까……?”
[와.]
[살인 저질렀음?]
“그건 아, 아니지! 저야 모르죠!”
[아니면 무슨 상관임.]
[ㅋㅋㅋㅋ 방장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다가 황급히 노선 변경하는 거 보소. 그래, 언제까지 탈선 안 하는지 한번 보자.]
놀릴 생각으로 가득한 이들은 이미 확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잡아떼도 괜찮으리라!
에반젤린은 짧게 목을 더듬고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살짝 깔았다.
“왜 그 사람하고 저를 착각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아니거든요?”
[ㅋㅋㅋㅋ 목소리 까는 거 보소.]
띠링!
순식간에 영상 도네이션 클립이 도착한다. 그리고 그 영상엔 에반젤린이 균열에서 사람을 구할 때 외치는 장면도 보였다.
얼마 전 에반젤린이 그림을 그리면서 흥얼거린 콧노래가 담긴 클립이었다.
[이래도 아니야?]
[이래도 아니야?]
[어라? 이상하네. 생각해 보니까 목소리가 완전히 같은데, 왜 몰랐을까?]
“이…… 이익!”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그녀가 끊어 뱉듯 소리쳤다.
“아 니 거 든 요. 나 아니라고!!”
악악 소리 지른 그녀는 펜을 휙 던져 버렸다.
콰직!!
그러자 하나밖에 없던 펜이 망가져 버렸다.
“꺅! 펜이 부러졌잖아!”
비명을 지르며 부서져 버린 펜을 보던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이…… 이게 다 여러분 때문이에요. 자꾸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니까.”
[정말로 모른다고 생각함? 이상하네. 방장은 흡사 우리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매우 쳐라!]
[돈으로 좀 맞아 봐야 돼.]
띠링! 띠링! 띠링!!
삽시간에 구독 신청과 도네이션이 밀고 들어온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무시다.
에반젤린은 속으로 결정을 내린 뒤 그림 파일을 켰다.
그리고는 부서진 펜을 톡톡 두드려 작동이 되는지 확인했다.
“치…… 잘 안 되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여분으로 좀 사 놓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네요. 원하는 캠 켜 줄게요.”
그리고 그녀가 결정을 내리자 채팅창에 물음표가 마구잡이로 올라왔다.
[리얼?]
[증말루?]
“뻥이야.”
담담하게 장난치듯 말한 그녀는 미리 구비되어 있던 캠을 길게 빼서 어딘가에 설치했다.
띠링!!
사실 오래전부터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이!! 남자의 순정을 짓밟다니 각오해라!!]
격분하는 그들을 무시한 채 에반젤린은 천천히 캠의 설치를 마친 뒤 미리 배워 둔 대로 캠을 조작하여 켰다.
동시에 컴퓨터 화면이었던 방송 화면이 다른 장면으로 일변한다.
[어?]
[뭐임? 컴퓨터 아녔음?]
[실내? 미친 진짜 캠 켠 거임?]
[근데 저 허연 거 뭐임?]
[캔버스 같은데?]
그들의 혼란에 에반젤린이 말했다.
“전에 게시판에서 본 적 있어요. 저 그림 실력이 대리이니 가짜니 컴퓨터 보정이니 하는 말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새하얀 캔버스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었는데. 보통 그렇게 대리 의심받으면 손캠을 켜래요.”
담담하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자신의 얼굴이나 몸이 나오지 않고 캔버스와 손만 나오게 만들었다.
그 후 에린의 그림 방송이라는 피켓을 살짝 들어 보여 준 뒤 새하얗고 작은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화면에 나오게 만들었다.
[앜ㅋㅋㅋ]
[미친 행동 졸귀넼ㅋ]
“우선 많은 분들이 있으시니까 시간 더 안 끌게요. 절제…… 으드득. 님이 가르쳐 주셨는데요.”
애매할 땐 투표를 하라고 하시더라.
“투표 결과나 한번 볼까요. 나오는 대로 그려 볼게요.”
스마트폰으로 조작을 마치자 투표창이 열린다.
“음? 이게 뭐야?”
투표 방식은 간단했다.
누군가가 목록에 올리면 그걸 추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걸 또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
에반젤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예요?”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
그것은.
[에반젤린 올 라운.]
그녀였다.
“지금 나 놀리는 거죠?”
[응 자화상~]
[삼촌의 순정을 짓밟은 대가다.]
[응, 자화상이야~]
“자, 자화상 아니라니까! 초상화라구요!”
아니라고 소리쳐 보지만 시청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하아…… 일단 투표니까 그려 볼게요.”
[응~ 기다릴게, 에반젤린 공녀님~]
“아씨! 하지 말아요!”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붓에 거칠게 물감을 찍었다.
[? 밑그림도 없이 바로 시작함???? 아니, 하다못해 얼굴을 보면서 그려야…….]
[아니 본인인데 보겠냐고! ㅋㅋㅋ]
[그러네.]
“아니에요. 그냥 기억하는 것뿐이지. 나 기억력 좋아요.”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는 캠에 보이지 않게 영상 저장석을 켰다.
그리고, 그곳에 담긴 자신의 모습 하나를 가져와 활성화시켰다.
쯧. 왜 하필 이건지.
그녀가 그린 것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든 채 데이비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의 치기로구나 할 정도지만 어째서일까.
마냥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윽고 그녀의 그림은 거침없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사실 스트리머 게시판이나 그녀의 채널에서 몇몇 악질들이 분탕을 친 것도 이유였다.
그녀의 그림 실력은 가짜다. 혹은 대리다 등등.
누가 대리해 주었다는 이들은 그림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너무 잘 그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면서 사기를 치는 게 인간이 가능한 일이냐 하며 묻는 것이 일부였다.
그런 의혹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는 게 사실 굉장히 싫었던 만큼 언제 한 번은 이렇게 실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다.
평소에 하듯 그리는 그림이다.
그런 만큼 기복은 조금 있을지라도 큰 틀은 변하지 않으리라.
[와……. 실제로도 사기 치네.]
[아니, 난 그래도 컴퓨터 보정 조금 들어간 줄 알았는데. 보정 들어가도 그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니었음?]
[미친. 미대생들 운다 진짜.]
[한국대 미대 뭐 하냐. 이런 애들 안 모셔 가고!]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는 그림은 에반젤린이 지금껏 그려 온 그 어떤 것들 이상으로 잘 그려지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아빠가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보통 시청자가 2만 명 가까이 모이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송은 한 시간 넘게 2만 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 뭐임?]
[유입 어서 오고~]
[어린애니까 발언에만 주의하셈들~ 잘못되면 책임 안 짐.]
[본격 티오니스 공녀 그림 방송~]
[의혹은 있던데 진짜였음? 본인이 시인한 거?]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는데. 거짓말 다 뽀록나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댓글들이 올라온다.
당연히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순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유입은 더 늘어난다.
점점 많은 채팅이 올라온다.
에반젤린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그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시청자 중 일부가 유도 신문을 한 것에 몇 번이고 넘어갈 뻔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채팅창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방장님. 아무리 자기 얼굴이라지만 너무 힘주고 그린 거 아님?]
환하게 웃는 데이비와 그런 데이비에게 트와일라잇과 새하얀 드레스를 받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와. 이런 애한테 나는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거임. 반성한다 진짜.]
[개과천선 방송 조지네 ㅋㅋㅋㅋ]
“힘주고 그리다니요. 그냥 있는 대로 그린 건데.”
그렇게 말한 그녀는 붓을 탁탁 털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쯤 되면 충분히 증명됐죠? 나 가짜 아니야.”
[응, 우리 에린이 그림 잘 그려.]
[응, 우리 에린이 에반젤린 맞아. 가짜 아니야.]
“아 쫌!!”
그래 봐야 시청자들의 능글맞은 놀림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오늘은 사실 해명 방송 겸 정지 풀린 김에 살짝 혀만 담근 것뿐이니까 오래 못 해요.”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가 말한다.
“그럼 에바.”
[에반데…….]
[진짜 에반데…….]
“사실 여러분들이 저를 의심 안 하면 방송 계속 할 수 있는데.”
에반젤린의 말에 채팅창이 통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아니야. 에린이는 에반젤린 아니야.]
[맞음. 맞음.]
[이제 방송 해 줄 거야?]
“응, 안 해요~”
[????]
[???????]
대량의 물음표를 뒤로한 채 방송이 꺼져 버렸다.
* * *
에반젤린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현아와 코오나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에린아. 혹시 사일런스 게이트를 발견했다는 게 사실이니?”
“사일런스 게이트요?”
“에린이 네가 처리했던 그 보이지 않는 게이트.”
그 말에 에반젤린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거~ 네, 보여서 부수긴 했는데.”
“정말 대단한데?!”
그녀가 에반젤린을 얼싸안았다.
“어떻게 본 거야? 마나 파장도 없고 육안으로도 안 보이는 그걸…….”
“그냥 보였는데요오…….”
괜스레 겁을 먹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현아와 코오나는 잠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아. 내일 방송 없지?”
“네. 하더라도 저녁에나…….”
“그럼 낮에 나랑 어디 좀 같이 갈까?”
그 말에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코오나의 예지에 맡기는 부정확한 방법만 채택해 왔지만 전조나 게이트 자체를 볼 수 있는 에반젤린의 힘을 잘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당연히 그녀에게 공이 갈 테니 여론은 더 좋아질 터. 현아는 머릿속에 빠르게 청사진을 그려 나갔다.
“저…… 그럼 다시 가도 돼요?”
“응? 그래. 가서 놀아도 돼. 아 참. 초단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서 같이 놀다 와.”
“언니가요? 네에.”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후다닥 뛰어가는 그녀를 보던 현아가 씨익 웃었다.
“좋아. 좋아. 이렇게 일이 잘 풀리다니 너무 좋은걸?”
에반젤린이 게이트를 볼 수 있는 건 그녀가 고대룡이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서지만 그건 직접 보면 알 일이었다.
중요한 건 볼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언니.”
그때 코오나가 잠시 물었다.
“그때. 에린이에게 픽xx 추천한 그 인간이요.”
에반젤린을 방송에서 울리고 정지까지 먹게 만든 악질.
그 악질에 대해 언급하는 그녀를 보며 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놈은 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했냐니?”
“아뇨. 잠깐 찾는다고 수색하더니 갑자기 조용해져서요.”
“아직 찾고 있는데?”
“네??”
그럼 정말로 땅으로 꺼져 버린 것일까.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악질에 대해 코오나가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게. 누군지는 특정했는데.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 말이야.”
그 말에 코오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데이비가 후견인이 되면서 코오나는 한국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
특히 그녀에게 있어서 여동생 같은 에반젤린은 지켜주고 싶은 귀여운 아이였다.
그래서 평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도 그녀를 좋아하는 기색만큼은 숨기지 않았던 그녀였다.
당연히 그 악질을 향해 분노한 것도 사실.
하지만 그가 사라져 버렸다.
“이상하네요.”
“그렇지? 계속해서 찾고는 있는데. 쉽진 않더라.”
“누가 벌써 손을 쓴 걸까요? 그 중동의 왕자님이라든지…….”
“아니. 그도 나와 같은 입장이야.”
사라져 버린 사람을 무슨 수로 찾을까.
그게 됐으면 실종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실종자가 하루에도 다수 나타나고 있으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 * *
에반젤린이 구해주었던 중견 길드의 길드장의 딸, 연수아는 고민에 빠졌다.
D급 균열에서 사고가 난 이후 안 그래도 길드의 입장이 안 좋았는데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D급에서 길드원이 죽을 뻔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인재 부족. 장비 부족. 여러 면에서 부족한 그들이었기에 연수아는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날마다 길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균열에서 문제만 없었어도 이번 분기 정산이 이렇게 처참하진 않았을 텐데…….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긴 했지만 도움을 준 아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그녀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저……. 수아 씨.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이요? 누군데요?”
“글쎄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 잡상인이면 쳐내야지.
그녀가 손사래를 치려던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본래 이런 건 알아서 아래쪽에서 쳐낼 텐데?
왜 자기한테까지 온 거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연수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다, 다, 당신은?!”
“반갑습니다. 연수아 씨.”
어찌 모를까.
지구에서 사실상 가장 유명한 인물인데.
“일전에 뉴스 봤습니다.”
그 말에 연수아가 그대로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다.
“그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 않았을까.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청년이 말했다.
“앉아도 될까요?”
“예…… 예! 앉아 주세요! 커…… 커피라도 드릴까요?”
“괜찮아요. 대접을 받으려고 온 건 아니거든요.”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자리에 앉았다.
“그럼 어쩐 일로…….”
“제안 하나 할까 해서요.”
제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연수아를 향해 청년이 말했다.
“길드에 티오니스제 아티팩트나 장비를 일정 지원해 드릴까 합니다. 직접 힘을 담아 놓은 거라 제법 효과는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청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장갑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연수아의 눈이 부릅뜨였다.
“뭐, 종신적인 계약까진 아니지만……. 내가 이 길드를 대형 길드로 끌어올려 줄게요.”
허무맹랑한 소리. 중견. 그것도 이제는 다시 소규모 길드로 격하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영난을 겪고 있는 발해 길드다.
그런 발해 길드를 최상위 대형 길드로 올려 준다고?
헛소리.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럴 수밖에. 눈앞의 이 청년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었으니까.
“세…… 세상에 이게 무슨…….”
“대신 조건이 있어요.”
담담하게 그가 말한다.
“제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 절대 어디 가서 하지 말아 주세요. 와이프들이 알면 저를 쥐 잡듯이 잡으려 들 테니.”
싱긋 웃는 그의 말에 연수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은 끝까지 잘 숨긴다고 생각한 모양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