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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41화 (1,141/1,559)

제 1141화

쩌적!! 콰창!

공간이 찢기며 모습을 드러낸 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드래곤이었다.

금색의 드래곤 아이와 검은 두 개의 올곧은 뿔, 그리고 새카만 비늘까지.

긴 꼬리는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파괴할 것처럼 강렬한 위압을 풍기고 있었으며 일반적인 네 개의 다리는 단순히 단단히 보이는 걸 넘어 날카로워 보일 정도였다.

검붉은 기류가 그녀의 발치를 시작으로 전신을 천천히 회전한다.

마치 거대한 점액 덩어리 같은 육신, 그리고 다리 없는 짧은 발. 육신을 한번 휘감고도 남을 정도로 길고 가는 팔과 그에 걸맞게 긴 손과 손가락.

새하얀 가면 같은 얼굴에 눈동자는 새카만 심연처럼 어떤 형태도 없이 검었고, 놈의 입은 사각형처럼 뒤틀려 각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놈의 크기는 처음보다 훨씬 커져서 이제는 20여 미터에 달하는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대룡의 모습으로 현신한 에반젤린과 흡사한 크기가 되어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암흑신관.

사람을 잡아 그대로 영혼에 어떤 힘을 가해 잡아먹는 괴물.

이미 몇 명이 당했다.

하지만 에반젤린에게 지금은 그런 사실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폭주하는 대로 눈앞의 괴물을 찢어발기겠다는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폭압적이고 고압적인 포식자.

태생부터 얻어내는 절대적인 강자.

그것이 바로 에반젤린 올 라운. 이클립스와 헤라클래스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이이자 이제는 단 하나 남은 고대룡이었다.

-그으으…….

노을이 진 것 같은 황폐해진 땅. 그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던 두 존재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암흑신관이었다.

놈은 다리도 없는 발로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순식간에 에반젤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의 등에 있는 한 쌍의 날개가 펄럭이기가 무섭게 놈의 거체가 크게 흔들렸다.

콰아앙!!!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아니, 폭행이라는 단어도 무색할 정도로 난폭했다.

쾅!! 쾅!!

놈을 짓밟고 거대한 발톱이 달린 앞발로 놈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마치 폭주하여 본성만 남은 것처럼 거대한 턱을 이용해 암흑신관의 육신을 물어뜯었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고 있어…….”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코오나는 경악했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에반젤린의 힘도 그랬지만 모습을 감추거나 공격을 통과시켜버리는 놈이 에반젤린에게만큼은 쪽을 쓰지 못했다.

마치 도망치려는 놈을 에반젤린의 힘이 강제로 잡아 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뿐일까.

에반젤린의 공격은 놈의 부활을 극도로 느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로 본래 상처를 입으면 잘린 단면에서 검은 줄기들이 나와 곧바로 다시 달라붙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줄기들이 나오는 빈도나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그…… 우우우…….

괴물이 저항하듯 발을 버둥거리며 형체를 뭉그러뜨렸다.

그리고는 젤리처럼 퍼진 몸을 퍼뜨려 마치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처럼 에반젤린의 거체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뒤엉킨 두 존재의 싸움에 코오나가 손에 힘을 주었다.

도와야 한다. 이대로 그냥 두면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에반젤린에게도 큰 상처가 남으리라.

이에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비틀비틀 걸어가 주워들었다.

그때였다.

몸을 일으키며 놈에게서 벗어나려던 에반젤린의 자색 안광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동시에 코오나에게 조금 익숙한 놀라울 정도로 짙은 무형의 힘이 에반젤린의 입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코오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드래곤의 전유물이자 태생부터 존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마법이며, 드래곤들조차 비슷하게 구현하는 게 힘든 초강수의 히든카드.

바로 용의 숨결, 즉 브레스였다.

그녀는 자신이 다친 것 때문인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극도로 흥분해있다.

어쩌면 첫 폴리모프 해제의 여파로 흉포한 고대룡의 습성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저 브레스가 그대로 꽂힌다면. 그 여파로 코오나 본인도 휩싸이리라.

주변에 몬스터야 얼마나 휘말리건 상관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쓰러져 있는 이들은…….

파악!!!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신형을 낚아채 물러났다.

“물러나.”

“크리스 아저씨.”

상처를 억누르며 코오나가 고개를 들어 그 범인을 바라보았다.

유쾌한 표정이지만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공주님이 티오니스 성자의 딸인 건 알았는데…… 설마 용족일 줄은 몰랐는데.”

“…….”

“미안하지만 나도 좀 도와주겠나?”

그의 말에 코오나가 눈을 부릅떴다.

[선계장벽]

동시에 그녀의 전신으로 선녀의 힘이 터져 나오며 장막을 펼쳤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에반젤린의 입에서 만들어진 오색빛의 거대한 광선이 그대로 암흑신관의 얼굴에 직격하며 어마어마한 폭발을 사방에 일으켰다.

성년식도 못 한 어린아이라더니. 그 힘이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한순간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터져나가고 대지가 불타올라 증발하듯 사라져나갔다.

증발하지 않은 땅은 마치 용암이 된 것처럼 이글거렸고 주변의 공기가 거대한 마나와 뒤섞여 어지간한 마나를 지닌 이들이 들어가면 그 마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가 역류할 수준이었다.

그나마 크리스 정도 되는 S급 강화 각성자나 코오나처럼 해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돼…… 안돼!”

그 모습을 보던 코오나가 소리쳤다.

“아직 사람들이!”

“무슨 소리야.”

“아직 도망 못 친 사람들이 있어요!”

암흑신관을 짓밟은 채 다시 내려다보던 에반젤린이 다시 브레스를 모은다.

본래라면 곧바로 팔을 뻗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었을 암흑신관이지만 놈은 이미 신체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는지 저항도 하지 못했다.

지이이잉!!!!

“이봐. 코오나 양,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여기 우리가 왔을 때 코오나 양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그 말에 코오나가 멈칫했다.

콰아아앙!!!

이후 에반젤린의 입에서 다시 한번 브레스가 쏘아지며 주변 일대에 어마어마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 * *

기절한 인간들이 한 줄로 늘어져 쓰러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선 검은 복장을 입은 데이비가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얼굴로 싸우고 있는 에반젤린을 바라보았다.

“데이비…….”

작은 형체를 유지한 채 데이비의 어깨에 앉아있던 페르세르크는 파르르 떨리는 그의 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휘잉!! 콰아앙!!!

이윽고 이를 빠득 깨문 데이비가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그의 힘에 의해 짓눌려 유리창 깨지듯 부서져 내렸다.

단순한 물리력을 넘어선 한방은 이젠 차원이 상처를 입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망할…….”

데이비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암흑신관과 충돌하고 있는 에반젤린이었다.

“폴리모프 해제…….”

페르세르크가 짧게 중얼거렸다.

이클립스처럼 현신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에 현신을 일부만 하는 경우와 달랐다. 아무리 고대룡이라도 이클립스와 에반젤린의 사이엔 거대한 세월의 벽이 있는 만큼 에반젤린의 현신은 이클립스보다 약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고대룡의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닌지 현신한 에반젤린이 내뿜는 힘은 이미 로드 급 드래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마법적인 수준을 제외할 경우에 말이다.

에반젤린의 현신은 언젠가 있어야 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걸 가지고 데이비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일에 죽는 이는 없었다.

전부 데이비가 하나하나 몰래 빼돌려 살려냈으니까. 다만 아직 놈에게 영혼을 먹혀 가사상태에 빠진 이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늦기 전에 놈을 죽이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에반젤린이었다.

“데이비.”

“괜찮아. 솔직히 이렇게 안 하고 에린이를 성장시킬 방법이 없는 게 정말 거지 같지만.”

과보호하면 데이비였다. 그런 그가 애끓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인 만큼 그의 심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저걸로 부족해.”

“데이비.”

“미안하다.”

정작 에반젤린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정신 에너지를 전혀 다루지 않는 모습에 페르세르크는 씁쓸함이 일었다.

설마 본능이 먼저 폭주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데이비. 걱정 말고 해.”

“…….”

“에린이 위험해지면 그대가 나서기로 했잖아.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고.”

그러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텐데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그만큼 에린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아이를 믿어보는 게 좋을 거야.”

“그래…….”

그렇게 중얼거리며 데이비는 옅은 힘을 사방에 퍼뜨렸다.

“다치지만 마라.”

만에 하나라도 다치게 되면 이번일 제안한 넬타리드를 어떻게 족쳐버릴지 모르겠으니.

작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역시 데이비는 과보호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페르세르크였다.

그런 그가 사랑스러웠던 탓일까. 그녀는 평소에 잘해주지도 않던 입맞춤을 그의 뺨에 해주었다.

작은 촉감이 뺨 한점에서 느껴지자 고개를 돌린 그가 놀란 얼굴로 그의 어깨에 앉아있는 페르세르크에게 향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 게야. 데이비.”

“하…….”

그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 * *

이게 고대룡의 힘인 것일까.

이제는 부활도 못 한 채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암흑신관을 노려보던 에반젤린은 거체를 헐떡거리며 놈을 노려보다 천천히 비틀거렸다.

그리고 다시 놈을 공격하려던 찰나.

파직!!

그녀의 신형에 어떤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금안에서 빛이 터져 나왔고 이내 인간의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뿔은 그대로 지만 분명 에반젤린이었다.

“하아…… 하아 쓰으, 하아!”

고통스러운 듯 끊어질 듯한 숨을 내쉬며 그녀가 비틀거렸다.

이에 코오나는 크리스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여 그녀를 부축하듯 안아 들었다.

“에린아!”

“아…… 언니…….”

지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쓰게 웃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다행이다. 안 늦었어.”

그녀가 알고는 있을까. 좀 전 그녀가 이성이 날아간 채로 무리하게 폴리모프 해제를 했고, 거기서 사용한 브레스 때문에 생존자들이 휘말려버렸다는 사실을.

물론, 그걸 당장 말할 만큼 코오나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물론 코오나까지 죽임을 당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걸 에반젤린의 탓으로 할 순 없었다.

공격도 안 먹히고, 툭하면 사라졌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이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단순히 힘의 강약이 아니라 상성 상의 문제였다.

“하아…… 피곤해. 언니. 휘말린 다른 사람들은요?”

그 물음에 코오나가 우물쭈물하자 크리스가 코오나를 살짝 밀어내며 대신 대답했다.

“다들 대피했어. 이미 늦은 이들도 있지만.”

그래. 이게 맞지.

에반젤린은 다른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나저나 괴물은…….”

고개를 돌려보자 에반젤린의 브레스 덕분에 이미 몬스터는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버렸고, 정면으로 충돌했던 괴물 또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존재였는데. 어째서 그토록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씁쓸한 심정을 숨긴 채 코오나가 아주 옅게 웃었다.

“고마워. 에반젤린. 네 덕에 살았어.”

“다행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강하던데? 놈이 내뿜는 힘은 단순 S급 들이라고 해도 위험해. 아니. 내 감각이 부르짖는데 저놈은 그 정도로 끝날 놈이 아니었어. 가진 힘은 생각보다 낮았지만…….”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던 크리스마텐이 중얼거렸다.

“놈에게서 느껴지던 위험한 냄새는 그 정도가 아니었단 말이지…….”

“무슨 말이에요?”

“예전에 우리 미국 측에 흉신이 하나 있었어. 기억해?”

“네.”

“난 그놈을 한번 봤거든. 그때 느낀 위압. 공포. 알 수 없는 공포감과 전신을 울리는 본능까지.”

그런 놈이었다.

“그런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에린이가 생각보다 강한 거겠죠. 이미 보셨잖아요.”

“맞아. 자잘한 몬스터를 처리하고 코오나 양 너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였지.”

싸움 자체는 간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이 약한 건 절대 아녔다.

“그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제가…… 언니를 다치게 할뻔했나요?”

폭주 당시의 기억이 모호한 에반젤린이 불안하게 물었다.

“신경 쓰지 마. 각자의 역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놈은 다른걸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얕은 놈도 아니었으니까.”

“그건…….”

결국, 에반젤린이 코오나를 죽일뻔했다는 소리였다.

침울해하는 그녀를 코오나는 말없이 끌어안아 주었다.

그때였다.

파악!!

갑자기 에반젤린이 한 손에 화염을 일으키며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뽑아 든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코오나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섬뜩한 소리에 놀란 코오나와 크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검붉은 검은 정확히…….

코오나의 겨드랑이 사이를 치고 들어가 그 뒤의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에반젤린?!”

“무슨?!”

에반젤린의 갑작스런 행동에 두 사람이 놀라 주춤거렸다.

“비켜요!!”

황급히 소리친 그녀의 말과 함께 허공이 일그러진다.

“아직 안 죽었어.”

코오나를 뒤로 당기듯 밀친 에반젤린이 그녀를 등지며 허공에 꽂은 칼을 비틀어 뽑아냈다.

촤악!!!

동시에 검은 피가 허공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하며 마치 빛을 받아 굴절된 것처럼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무언가는 이내 바닥에 늘어진 괴물과 접촉했고. 이내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했다.

“오…… 지져스…….”

아직 죽지 않았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드래곤은 용체가 본체인 만큼 오히려 폴리모프가 제약에 가깝다.

하지만 에반젤린이나 이클립스는 본체보다 인간형태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고대룡의 용체 자체가 막대한 에너지 변동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크리스 마텐이었다.

그는 영화에 나올법한 슈퍼히어로 같은 모습으로 날아들며 괴물을 향해 정확히 정권을 찔러넣었다.

쩌엉!!!

하지만 파고든 그의 주먹은 놈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고. 역으로 그 데미지를 고스란히 방향을 돌려 크리스에게 돌려 줘버렸다.

“크악!!”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그가 볼썽사납게 튕겨 나와 바닥을 몇 차례 굴렀다.

“망할. 아예 공격이 안 먹히잖아.”

극한의 상성이라고 말하듯 놈에겐 어떤 타격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좀 전까지 느껴지던 불안함. 본능의 경고는 이놈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 에반젤린이 찢어버린 일부는 하나의 빙산의 일각이었다고 말하듯 지금 나타난 놈은 모습을 숨기진 않지만, 명백히 과거 흉신에 버금가는 위압을 느꼈다.

하나하나가 세계 재앙급이었고, 과거 알프 온라인에서는 초대규모 레이드를 감행해도 죽이지 못했던 괴물.

그게 바로 흉신이였다.

그런데 고작 게이트 하나에서 나온 놈이 이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니.

아무리 에반젤린이 티오니스 성자의 딸이라도 이걸 이길 순 있을까.

“빌어먹을, 공주님! 한 번 더 변신 안 돼?!”

그나마 놈에게 직격타가 가능했던 본체현신에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크리스의 물음에 에반젤린은 좀 전 놈을 찔렀던 검을 바라보았다.

“타격은 있어요. 놈은 강하지만 제 힘은 놈에게 상성적으로 유리한 거 같아요.”

단순히 검을 찌르는 게 아니다. 에반젤린은 자신이 가진 고유의 힘을 검에 둘러서 싸우는 게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정신 에너지가 놈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흉신 정도로 강한 놈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까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지금 문제는 그녀의 힘이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현신으로 인해 그녀는 막대한 힘을 소모했고 지금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힘이 약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에반젤린의 결정은 확고했다.

“시간을 끌 순 있어요, 제가 신호하면 물러나요.”

에반젤린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발 나섰다.

“안돼. 도망치자. 이 이상은 안 돼!”

코오나의 외침에 크리스도 가세했다.

처음 공격을 써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이건 티오니스 성자가 와야 한다고.

지금 에반젤린의 힘만 가지고는 놈을 처리할 수 없다.

“안돼요! 지금 당장 도망치면 저놈은 저희를 따라 균열 전체를 뒤흔들 거에요.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잖아…… 게다가 저 녀석…….”

섬뜩하게 웃는 괴물을 보며 에반젤린이 손을 파르르 떨었다.

“저희가 균열 밖으로 도망치면 따라 나올 거에요.”

저놈이 지구에 풀리면?

그땐 대참사밖에 없다.

그렇다고 힘을 대거 소모해버린 에반젤린이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스릉!!

그럼에도 에반젤린은 검을 튕기듯 잡고 놈에게 덤벼들었다.

쩌엉!! 쩡!!

하지만 이전처럼 압도하진 못했다. 아니 오히려 놈의 공격에 방어하기 급급한 형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꺅!!”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온 에반젤린을 크리스가 그대로 끌어안듯 받아냈다.

“이봐. 무리하지 말자고 공주님.”

“아저씨…….”

“나도 가세하지. 타격은 줄 수 없어도 시간을 끌 수 있을 테니.”

그의 말에 에반젤린이 표정을 굳혔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시는데요…….”

그는 미국의 각성자이며, 신성 그룹의 소속이라곤 하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목숨을 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가.

그 질문에 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이봐. 나 히어로야. 우리 조국. 미 아메리카의 탑 히어로. 어떤 영화에서 히어로가 겁을 먹고 도망치나!”

그의 외침에 에반젤린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의 웃음에 에반젤린은 이를 악물었다. 시시각각 힘이 빠져나가며 언제까지 버티고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지금 상황에서 놈을 이기는 건 어렵다.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았다.

“아저씨!! 여기 지금 외부와 연결된 회선이 있다고 했죠?!”

“어…… 어? 그랬…… 조심해!!”

크리스의 외침에 에반젤린은 반사적으로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튕기듯 휘둘렀다.

카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암흑신관의 몸이 튕겨 나갔다. 형태는 이전과 같으나 품은 힘이 달랐다.

힘이 더 필요했다. 아니 더 강해져야 했다.

“하나…… 방법이 있을 거 같아요.”

그녀도 아직 확신하진 못한다. 하지만 뿔이 자랐을 때 전해 들은 게 있었다.

그녀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이윽고 놈의 연공을 쳐내며 거리를 벌린 에반젤린은 품에 지니고 있던 스마트폰을 크리스에게 던졌다.

“방송할 거에요.”

그녀가 가진 방송 아이디는 단 하나. 에린의 그림방송.

그리고 지금은 에린이 아닌 에반젤린 올 라운으로써 활동하고 있다. 즉. 지금 방송을 한다는 건 하나의 결과만을 부른다.

“자, 잠깐만 에린아! 여기서 방송을 켜면 너…….”

그래 자체 캠 방송이 되어버리겠지. 이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날 테니까. 그동안 억지를 부리듯 숨겨온 게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건 물론이오, 그동안 그녀가 걱정해온 것들이 한번에 터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아빠는 티오니스에서 바쁘다고 했어요. 엄마들도 전부. 아저씨는 저거 못 이긴다면서요. 난 할 수 있어. 내 힘은 저 녀석에게 치명적이니까.”

저놈이 밖으로 나가면 다시 모습을 숨길 것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흉신 이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비록 이번 일로 인해 정체가 드러날지라도.

“여기서 저놈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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