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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43화 (1,143/1,559)

제 1143화

멈춘 영상이 다시 돌아가며 스트리밍 사이트 운영자의 한마디와 함께 다시 방송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늘어난 숫자와 반대로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서버가 순간 먹통이 된 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1분 1초가 아깝던 싸움에서 갑작스레 힘이 빠져나가 버리는 건 극한의 상황을 초래한다.

감정에너지를 먹어서 강제로 도핑한 현 상태는 아직 불안정했다. 일정 선을 넘어 홍수 터지듯 그녀의 힘이 온전히 제어하에 놓여야 하건만 아직 그 상황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완전해지기까지 한발.

그 한발이 모자란 결과는 꽤 참혹했다.

[미친.]

[잠깐만 이거…….]

[안돼 ㅅX 서버 잠깐 흔들려서 다시 힘 빠져나간 거임?]

[아니 나머지 두 명 대체 뭐하는데!]

[눈이 삐었나 부상입고 쓰러져 있는 거 안 보이나.]

[미친 미국 최고 히어로가 저렇게 당한 건 처음 보네 진짜.]

당황하는 채팅이 빠르게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를 쿨럭 토하며 암흑신관의 거대한 손에 잡힌 에반젤린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코오나와 크리스 마텐이 피를 뿌린 채 환부를 압박하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세 사람이 모두 크게 당한 것이었다.

곧 있으면 놈의 거대한 입이 에반젤린을 삼키려 한다.

물론, 전보다 늘어난 숫자 때문인지 그런 결과를 놓지는 않았다.

콰아앙!!

그나마 자유로운 손을 이용해 그대로 놈의 손을 부숴버린 에반젤린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려섰다.

그리고는 몸을 구르듯 두사람을 데리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아흑!!”

하지만 이미 입은 부상이 거대한 탓인지 그녀는 오래가지 않아 다시 무릎을 꿇으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누가 봐도 명백히 한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일부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할 말을 잃었고, 일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의 힘에 경악했다.

놈이 휘두르는 팔은 한없이 가볍고 가늘어 보였지만 한번 휘저어질 때마다 지형이 변화되는 경이적인 파괴력을 선보였다.

이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를 본 적이 있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구의 인류는 10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 이런 괴물 십여 마리가 지구에 나타났으니까.

에반젤린이 힘을 먹어치우고 강해지는 속도도 빠르지만, 놈이 점점 강해지는 속도도 더 빨랐다.

마치 족쇄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젠장! 내가 시간을 끌어보주…… 으억?!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겨우 몸을 일으킨 크리스 마텐이 떨어진 용신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주인이 아닌 이가 든 용신검은 그 손길을 거부하듯 어마어마한 무게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건물을 부수고, 맨몸 돌진으로 여객용 비행기와 싸울 정도로 강인한 육신을 지닌 크리스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였다.

“아저씨!!”

그때 눈가를 뒤덮는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코오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청명한 기운이 그에게 스며들었고, 아주 한순간 용신검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이따위로 무거운 검이면 위력도 장난 아니겠지 안 그러냐?!”

유쾌하게 소리 지르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근육질이 단단한 그의 이두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며 핏줄이 터질 것처럼 피부에 드러났다.

“으아아아악!!”

터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괴성을 내지르며 그가 강제로 바닥에 떨어진 트와일라잇을 휘둘렀다.

콰드득!!

이렇다 할 검술 실력도 없다.

하지만 용신검이 자체적으로 막대한 중량을 포함해버리자 그가 휘두른 것이 곧 검신의 중검이 되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과 함께 놈이 비틀비틀 물러났다. 지금까지 크리스의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았던 놈이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에 놀란 크리스가 자신의 검을 보았을 때. 그는 검에 머물러있는 일정한 기류를 볼 수 있었다.

“공주님의 힘이 남아있었구나.”

씨익 웃어 보인 그가 검을 놓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어쩌냐. 저놈 안 죽었는데…….”

크리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코오나 또한 마찬가지. 에반젤린은 아직까지 침묵한 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우우우우!!

이에 격분한 암흑신관이 셋 모두를 죽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검은 파도를 만들어냈다.

그 파도는 순식간에 셋 모두를 감쌀 것처럼 날아들었고, 이내 세 사람 모두를 덮쳐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방송을 보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직감했을 그 무렵.

파직!

아주 작게 스파크가 튀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운영자입니다. 추가 서버지원 및 특수 상황에 따른 해외 서버 호스팅, 각 서버 중계 들어가겠습니다.]

해외 유입까지 모조리 개통되자 사방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말과 함께 갑작스레 시청자 수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띠릭![시청자 78,512명]

띠릭![시청자 112,557명]

띠릭![시청자 254,572명]

띠릭![시청자 587,542명]

띠릭![시청자 2,805,584명]

띠릭![시청자 31,124,721명]

…….

고작 몇 초, 몇 분 사이에 늘어나는 숫자가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에 이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운영자뿐만이 아니었다. 현 상황을 지켜보던 일부 대기업에 속하는 각국 몇몇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잠시 멈추고 모든 이들을 그녀의 방에 호스팅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보는 걸 넘어 에반젤린의 방송은 그녀에게 힘을 전달해주는 하나의 통로였다.

그렇기에 이전과 완전히 다른 힘의 쇄도가 이어졌다.

[뭔데. 숫자 버그 남? 왜 이럼?]

[미친 해외 서버랑 강제 연결됨.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숫자가…….]

[와 사람 붙는 숫자 봐라. 100만이 이렇게 초라해 보일 때가 있네.]

단순조회 수야 억 단위로 갈 수 있다지만 실시간 시청 인원이라는 건 절대 그냥 웃어넘길 수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파지지직!!

동시에 새하얀 스파크가 검은 파도 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했고. 이내 검은 파도가 마치 찢기듯 터져나갔다.

“후우.”

추욱 늘어진 머리카락을 넘길 생각도 못 한 채 에반젤린이 몸을 일으켰다.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자색 눈동자가 스산하게 번뜩였다.

쉬리릭!! 터엉!!!

동시에 저 멀리 허공에서 한 자루의 검이 날아들었고, 그녀는 그 청적색의 검을 나머지 손으로 낚아채 허공에 튕기듯 그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막대한 충격파가 일어났고 그녀가 허공에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대지가 수십 미터 가까이 잘려나갔다.

과거 티오니스 성자에게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압도적인 힘이 그의 딸인 에반젤린을 통해 재현된 꼴이었다.

그 여파로 인해 방송을 송출하던 스마트폰에 걸린 장막이 박살 나며 힘없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곧 검은 파도에서 같이 해방된 크리스가 어렵사리 기어와 화면을 그녀와 암흑신관에게 고정시켰다.

“후…… 큰일 날뻔했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팔을 부여잡은 채 비틀비틀 걸어온 코오나가 선녀의 힘을 사용 다시 스마트폰 주변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한 번밖에 못 막아요. 그 여파 못 견디고 스마트폰이 박살 날 테니까.”

“그거면 충분할 거 같은데? 나 지금 겁나서 오줌까지 지릴 거 같으니까.”

유쾌한 목소리지만 그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말을 쓸 정도로 여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땡큐 쏘 머치. 레이디스 젠틀맨.”

그가 방송 화면을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에반젤린의 주변으로 청적색의 기류와 검붉은 기류가 융화되듯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검은빛의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작다.

하지만 처음과 다르게 이번엔 2쌍의 날개였다.

마치 신을 부르짖는 타락 천사같은 검은 날개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손에는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또 한 손엔 청적색의 마검, 초단이가 쥐어진다.

초단이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선 굳이 생각하거나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가장 믿을 수 있는 검이 손에 쥐어졌다면 사용할 뿐이라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이에 암흑신관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는지 에반젤린을 향해 빠르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그녀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중압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중력 마법에 견뎌내는 것처럼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녀가 내뿜는 폭발적인 중압은 단순히 버텨내는 게 쉽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지 못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던 그녀의 힘이 막대한 힘을 트리거로 완전히 제어하기 시작했다.

에반젤린의 육체는 심연의 공주이자 고대룡의 왕족인 역대 최고의 고대룡 이클립스와 단순히 맨몸으로 회랑 최고의 위치에 있던 헤라클래스의 피를 물려받았다.

둘 모두의 특성을 지닌 에반젤린의 재능은 한순간이지만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좀 전에도 막아내지 못한 묵직한 공세에도 그녀는 한발을 비스듬히 미끄러뜨리듯 내밀었다.

그리고는 짧게 무언가를 말하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목소리는 한마디였다.

“고마워요.”

차원을 넘으면서 언어의 축복이 가해져 있는 에반젤린의 목소리는 그것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들의 언어로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중검]

[마스터피스]

중검의 마스터피스는 중검의 최종검술이며 과거 페르세르크를 베어버린 [노네임드 킹]이라는 일검이 유일했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그런 것을 익히기엔 무리가 있었고, 지금도 그것을 온전히 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흉내를 내는 정도라면 가능하리라.

[천공 추락]

물론, 단 한 번도 그 기수식조차 성공한 바 없지만 막대한 도핑에 이어 자신의 힘을 다루기 시작한 현재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그녀가 쥔 검이 다른 검도 아닌 초단이와 용신검이라는 점이 그 성공 확률을 극도로 올려주었다.

이윽고 그녀가 휘두른 이 검술이 균열의 하늘을 찢어발겼다.

엄청난 빛과 함께 대지와 하늘이 동시에 찢어지는 장관이 순간적으로 연출되어나갔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화면과 함께 무언가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기를 한참.

이윽고 빛이 사그라지며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흔적 너머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피가 잔뜩 묻어있고 피곤한 표정이다.

하지만 방송을 보며 해맑게 웃는 에반젤린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헤헤, 고마워요 나 이기고 왔…….”

헤프게 웃던 그녀가 그대로 쓰러지자 순식간에 달려온 코오나가 자신의 상처도 돌보지 않고 그녀를 받아냈다.

제 아빠와 다르게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빠진 에반젤린의 힘없는 웃음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순수했다.

그 미소는 자신이 살아서 돌아왔으며 지대한 위험을 품고 있던 몬스터를 해치웠다고 말하는 세레모니와 같았다.

그녀가 쓰러진 직후. 방송은 그대로 송출이 끊어졌지만, 그녀의 방송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각 모든 사이트 게시판이 들끓었다.

* * *

처음 사용하는 온전한 힘의 폭주를 제어한 뒤로 의식을 잃어버린 에반젤린과 동시에 암흑신관은 결국 그녀의 공격에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이후 크리스와 코오나는 부상을 당한 그녀를 이끌고 급히 균열 밖으로 향했고, 그 장소에는 막대한 전투의 흔적만이 남게 되었다.

그 누구도 없는 고요한 땅 위로 한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후 그 발걸음이 멈춘 곳은 괴물의 파편이 남아있던 곳이었다.

놀랍게도.

괴물은 아직도 죽지 않고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니, 에반젤린은 끝내 놈을 죽이지 못했다.

이후 놈의 형체가 아주 일부 회복되었을 때. 녀석의 새까만 눈이 자신의 앞에 있는 이를 담았다.

동시에 놈이 겁에 질린 듯 주춤했다.

“다 놀았냐? 덕분에 에반젤린이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건 좋았는데. 참느라 고생 좀 했다.”

[그우우우우!!]

마치 두려운 무언가를 본 것처럼 필사적으로 몸을 회복하려 버둥거리는 놈을 향해 그가 손을 뻗었다.

“적당히 나댔어야지.”

으적!!

그저 손을 움켜쥔 것뿐이다.

하지만. 그 힘은 다시금 부활하던 놈은 물론 사일런스 게이트를 유지하던 세상의 거대한 흐름 전체와 그 핵까지 비틀어 삼켰다.

정신계통의 생명체가 된 암흑신관의 핵은 그렇게 흩어지듯 사라졌다.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유지하는 하나의 거대 시스템이 한순간에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이었다.

“넬타리드. 사일런스 게이트 전부 지워버렸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세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섬뜩했다.

“운 좋은 줄 알고.”

“위험했어. 만약에 이 와중에도 에린이에게 사리 분별 못 하는 놈들이 있었다면…….”

“그래서 띄워놨잖아.”

그 말에 페르세르크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균열 내부라 느껴지진 않지만, 데이비라면 분명 당장이라도 메테오를 쏟아부을 준비를 해놨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야.”

그런 데이비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더라고. 이기적이긴 한데. 하나의 대의명분,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선동되기 시운 ‘의’ 앞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이거든.”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아주 미약하게 퍼져있던 어떤 마나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사라졌다.

“운 좋았지.”

* * *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있던 에반젤린은 누군가가 그녀의 뺨을 살살 핥는 촉감에 눈을 부릅 떴다.

그녀의 시선에 보인 것은 둘이었다.

고요한 방, 그리고 그녀가 누운 침대의 바로 옆에 팔짱을 낀 채 잠들어있는 데이비와 그런 그녀를 잠에서 깨운 엔젤캣 [참 다랑어]의 모습을 말이다.

녀석은 엉뚱한 자세로 에반젤린을 낭창하게 바라보다 혓바닥으로 그녀를 간질이듯 핥았다.

-애오옹~

나지막한 울음소리와 귓가를 간질이는 골골거리는 낮은 소리가 그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아…….”

참다랑어의 턱을 간질여주던 그녀가 문득 떠오른 듯 자신의 뿔이 있던 위치에 손을 뻗었다.

역시 뿔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몸 안에 있던 어떤 힘들이 그녀의 제어에 놀라울 정도로 잘 따라주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바뀐 건가?”

의아함을 내비쳐보지만 사실 고대룡의 태생에 대해선 그녀도 아는 게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곁에 있는 이들이었다.

참다랑어는 분명 티오니스에 있어야 할 녀석이었다.

“참다랑어.”

-애오옹~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 물음에 참다랑어는 동그란 눈동자로 그녀를 올려다보다 그대로 그녀의 다리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는 얇은 복부에 꾹꾹이를 하는 듯하더니 날개를 한차례 펼쳤다가 접고는 그대로 배를 까뒤집었다.

그래. 고양이에게 뭘 바랄까.

흠칫 놀란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그녀가 잠들어있던 곳은 티오니스가 아닌 현아의 집이었다.

“아…….”

멍하니 있던 그녀는 이윽고 자신의 상태와 기절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펼쳤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몸을 조금씩 갉아 먹던 힘들이 이제는 그녀에게 온전히 녹아들어 그녀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힘이 느껴져 왔다.

그렇게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싸움 도중에 채팅을 보진 못했다.

자신의 시청자들은 몰라도 마지막에 가해진 힘은 한두 명의 힘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마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 평소에 그녀의 방에 와서 어그로를 끌던 악질,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위도 한참 넘겼으니 뭐 할 말은 없었다. 좋아했던 방송인데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리광 그만 부리고 이제 아빠를 따라 티오니스로 돌아가야겠지. 그런 생각이 그녀를 감쌌다.

그때 그녀의 곁에 어떤 박스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나한테 온 거네.”

예쁘게 포장되어 어디서 온 물건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는 해외에서 보내져 온 박스를 집어 들었고 묵직한 감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야옹~

엔젤캣 참다랑어의 울음소리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은 에반젤린은 박스를 개봉했고 그대로 뒤집어 그 안에 든 물건을 빼냈다.

참다랑어는 박스가 비자마자 달려들어 그 안에 쏙 들어가 몸을 웅크리듯 자리 잡았다.

평소라면 귀여워 해주었을 에반젤린이지만 그녀의 시선은 참다랑어가 아닌 박스에서 나온 물건에 있었다.

“어…… 이거.”

박스에서 나온 건 스마트폰 케이스와 캠이었다.

그것도 최신으로 나온 것과도 조금 다르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물건이기도 했다.

멍하니 있던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처음 보는 전자장비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찰나.

“마음에 드나 보네.”

담담한 목소리에 그녀가 흠칫 놀라 손에 쥔 스마트폰을 던져버렸다.

“컥!!”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스마트폰은 맹렬하게 목소리의 주인공의 얼굴을 때렸다.

“끄악!”

“아, 아빠?!”

놀란 그녀가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데이비에게 손을 뻗었다.

동시에. 데이비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어?”

“다행이다. 정말 잘했어.”

조용한 목소리에 그를 밀어내려던 에반젤린이 침묵했다.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죄책감이 서린 그 목소리에 에반젤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흐, 흐흑, 아빠아아…….”

결국, 엉엉 울며 그의 품에 안긴 에반젤린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데이비는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얼마나 서러웠는지 엉엉 우는 그녀를 데이비는 담담하게 다독일 뿐이었다.

이번에 겪은 일과 그로 인해 그녀가 내린 결정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정체를 아는 사람도 있으니 캠 정도야 문제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온 건 사실이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정말로 괜찮은 게 맞는지 사실 조금 두려웠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무리하게 수위를 넘어가는 방송을 강제했고. 그 결과 이제는 방송을 할 수 없다는 결과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다 내버려 두고 밉다 밉다 말하던 아빠가 눈앞에 있는 게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짧게 흐느끼며 간헐적으로 몸을 떠는 에반젤린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녀를 달래던 데이비가 천천히 웃었다.

“자랑스럽다. 우리 딸.”

“아빠…….”

코를 훌쩍이며 눈물범벅이 된 채로 그녀가 말했다.

“술 냄새나.”

“…….”

“크흠.”

떨떠름하게 떨어진 데이비가 물러나자 에반젤린이 샐쭉하니 제 아빠인 데이비를 노려보았다.

“나 얼마나 잔 거예요?”

“이틀.”

“아빠는 왜 여기 있어요?”

“그럼 네가 아프다는데 그냥 구경하리?”

데이비의 물음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막살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온건 나를 데려가기 위해서예요?”

그 물음에 데이비가 피식 웃었다.

“아니. 이곳과 하인스 영지에 간이 통로를 만들어놨어.”

그 말에 에반젤린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얼마든지 도와줄게. 방송도.”

그의 말에 에반젤린이 움찔거렸다. 방송은 지금 그녀에게 제법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별자리들이 그렇게 악질 도네를 하는데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건!”

“괜찮아. 그런 거로 널 타박할 생각도 없고. 이번 일로 아빠는 조금 감동했거든.”

정말 잘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2차 성장 이후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정말로 싫다고 말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옛날로 잠깐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

하지만 곧 데이비의 미소에 장난기가 서린 것을 보고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그녀가 뺨을 부풀리며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이제 됐어요. 돌아갈게요. 어차피 방송 아이디는 이제 정지 먹을거고.”

그렇게 말한 그녀가 침대 곁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방송 아이디로 접속하자 한가지 글귀가 떠올랐다.

-해당 스트리머는 고의적 수위 이탈로 인하여 이용이 제한됩니다. 제제 기간 2999년 12월 30일.

사실상 영구정지.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하…….”

슬프게 웃어 보이던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렇게 즐거웠는데. 재밌었는데. 이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부터 흘러나왔다.

“흑…… 흐끅…….”

억지로 웃음을 참는 그녀를 보며 데이비는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렇게. 에린의 그림방송이라는 방송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되어 수천 명의 시청자들을 불러모았던 그녀의 방송이 수명을 다했다.

“아참. 편지 받았어?”

“편지요? 흑…….”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스트리밍 회사 본사에서 네게 보낸 건데. 아, 여기 있네.”

그가 바닥에 놓인 편지를 내밀었다.

“뭐……에요. 이건?”

이에 데이비가 고개를 까딱이자 에반젤린은 멍하니 그것을 펼쳐 읽기 시작했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애오옹!!

깜짝 놀란 엔젤캣 참다랑어가 펄쩍 놀라 후다닥 소리를 내며 구석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홀린 것처럼 편지를 던져버리고 컴퓨터를 켠 뒤 어딘가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양손에 입을 틀어막았다.

[어? 방장 왔다.]

[에하~]

[에하~]

방송 시작과 동시에 몰려드는 수천, 아니 1만 3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

그러거나 말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는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방장 왜 울어.]

[우는 거 맞지? 왜 그래 누가 울렸어. 야, 삼촌부대 어디 감.]

[당장 쳐들어간다. 어디냐 누구야.]

계속해서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그녀는 끝내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떨어뜨린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리 적혀있었다.

[……따라서 귀하의 용기 있는 행동에 사측을 대표하여 감사드리고자, 특수 파트너 아이디를 제공합니다. 이전의 시청자들을 모두 연동시켰으며 각국에서도 구독자와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해외 동시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이건 아빠 선물.”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는 그녀의 뿔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특수 제작된 고양이 귀를 가진 헤드셋을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자. 이쯤 되면 아빠한테 해줄 거 없어?”

[와. 티오니스 성자. 딸바보라는 말은 들었는데.]

[세상에 저저, 저러면서 사심 채우는 거 보소.]

[개 나쁘네 진짴ㅋㅋㅋ]

[아니 방장…… 여기 너무 어두워…… 캠을 켜줘…….]

“조용히 해 이 사람들아. 가족 간에 감동 깨뜨리지 말고.

[와. 이걸 이렇게 폭리를 취한다고? 구독취소 하러 가겠습니다.]

[구독]

[취소]

[나]

[락]

[나]

[락]

[인정한다.]

데이비가 자기 뺨을 톡톡 두드리며 묻자 흐느끼던 에반젤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데이비의 품에 안겼다.

“이봐요들. 거봐 안겨준다니까? 부럽지?”

놀리는 듯한 데이비의 장난스런 말투에 한국어는 물론 외국어까지 정신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부러울 거 같더라.”

퍽!!

“아빠 미워!!”

결국, 매를 벌었다.

이전의 에반젤린의 구독자는 약 20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구독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면 나보다 구독자가 더 많네? 괜히 자존심 상하게.”

[아니 그래서 티오니스 성자는 언제 방송 다시 켬.]

[예전에 잠깐 하더니 그새 도망쳤네.]

[이 기회에 둘 다 같이 방송 ㄱㄱ]

항의 가득한 채팅을 보며 데이비가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여러분 혜성 좋아해요?”

그 물음에 물음표가 올라온다.

“조만간 지구 근처에 올 텐데. 그거 떨어뜨려 줄까?”

[^^7]

[^^7]

[충성충성]

인간은 참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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