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4화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데이비.”
“아뇨. 당신에겐 정말 고맙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알하자드.”
나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와인잔을 천천히 빙그르르 돌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알하자드 또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취미생활은 잘 돼 갑니까?”
“한국에 종합게임 구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래저래 e스포츠는 흥미롭지요. 몸을 격하게 쓰는 건 아니지만 극도로 뇌를 혹사시키는 스포츠. 하지만 한국은 조금 특이합니다.”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 의식이 너무 강하니까.
“그래도 예전보단 덜 합니다. 이제는 없는 가상현실. 즉 알프 온라인 덕분인지 인식이 전보단 나아진 편이지만요.”
그 게임 덕분에 한국이, 아니 세계가 명맥을 유지했으니 그럴 수밖에.
강제적인 인신 개변이었다.
“그 난리가 났어도 사람들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갔지요. 본래라면 e스포츠 같은 것도 그리 오래갈 수 없을 테지만. 이상하리 빠르게 회복했구요.”
그가 허허 웃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웃어야지요. 예술이라는 건 고지식하고 쉰내 나는 자존심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고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e스포츠를 포함한 각종 매체 여러 가지 문화 사업에 돈을 쓰는 이유였다.
“물론, 당신이 도와준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만한 자금을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기분 좋게 웃어 보인 그가 잠시 눈을 크게 뜬다.
“아 이런.”
“왜 그러십니까?”
“에반젤린의 방송이 켜졌군요. 일단은 매니저이니 도와주기로 약속한 건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의미로 보면 대륙 간 회담이나 다름없는 이 잡담을 끊어버린 건 한 명의 방송이었다.
스리슬쩍 일어나 그의 태블릿을 바라보자 그 안에 에반젤린의 미소 어린 얼굴이 보였다.
“저기. 알하자드.”
“안됩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매니저 달라고 하실 거 아닙니까?”
“거 눈치도 빠르시네.”
입맛을 쩍쩍 다시며 물러나자 그가 큭큭 웃어 보였다.
“절대 안 됩니다.”
“균열 열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제 손가락이 더 빠릅니다. 에린이에게 다 이르는 수가 있어요.”
망할.
“아참 데이비.”
“왜요.”
퉁명스레 대답하자 그가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와 상자를 건네주었다.
“뭡니까 이건.”
“선물입니다.”
그가 내민 물건을 받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물었다.
“선물이요?”
“예, 뜯어보세요.”
“주신다니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가 건네준 물건을 열어보자 작은 물건이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동시에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건 선물이 아니네요.”
“예. 정확히는 물어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상자 안에 든 독특한 형태의 해골을 바라보았다.
갯과 동물의 해골처럼 생겼지만, 그 크기는 손보다 훨씬 작아서 가볍게 움켜쥘 수 있을 정도였다.
“미니 임프의 두개골이라……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주구 같은데.”
미니 임프는 몬스터에 가깝다. 하지만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리 흑마법사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어떤 힘을 머금고 있다.
작은 악마.
그것이 그놈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 준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요? 이걸 왜 내게 보여줍니까?”
“실은 이 물건이 티오니스에서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티오니스에서?”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판매자의 말에 따르면 집 앞 농장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더니 저 물건이 튀어나왔다고 하더군요. 다만 제가 아는 세상이라곤 티오니스밖에 없으니 그런 추측을 뿐입니다.”
“그 장소. 어디 있습니까?”
각 차원의 벽이 약해진 탓에 자잘한 사고가 벌어지는 일은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인간이나 생명체가 넘어올 수준은 안 되겠지만 이런 물건이 나온 게 티오니스가 맞다면. 흑마법사가 아직 존재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물론, 흑마법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일루미나티 같은 악질들이 나쁜 것이지.
실제로 최근 윈리의 남편인 율리스는 흑마법에 관한 연구 주제를 알리고 새로운 마법에 대한 학술을 논하고 있다.
“표정이 좋지 않군요.”
“그럴 수밖에요.”
겉보기엔 이건 그냥 아티펙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물건은 특정 생명체의 피를 머금고 흑마법을 안 좋은 쪽으로 강화시켜주는 주구입니다. 보통은 인간 흑마법사가 사용하면 인간의 피를 머금게 해서 힘을 강화시키죠……”
“그럼, 사람의 피를…….”
“글쎄요. 정황만 놓고 보면 일단은 그래 보이네요. 동물의 피를 먹여봐야 어떤 효능도 없을 테니.”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 내용물에 피를 많이 머금은 물건을 노려본다.
“안내하겠습니다. 안토니오. 헬기를 준비해주세요.”
“예, 왕자님.”
“가까운가 보네요.”
“예. 마침 자국 내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걱정 마세요. 지구에는 더 이상 그런 영향이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덕분에 재밌는 것도 알았네요.”
알하자드가 준비한 헬기를 타고 한참을 날았을까. 나는 다수의 농가가 밀집된 지역에 도착하고 나서 확연히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이들은 잠시 휴가를 보내주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요.”
그의 판단은 제법 정확했다. 당장 이런 미니 임프의 두개골만 넘어왔으니 망정이지 자칫 잘못된 게 넘어왔다가 큰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곳입니다.”
안토니오의 안내에 따라 농가로 들어간 나는 바닥에 생긴 작은 크레이터를 향해 다가갔다.
이에 안토니오가 놀라 나를 제지하려다 멈칫했다.
“확실히 차원 이변이 있긴 했네요.”
“위험합니까?”
“아뇨. 없어졌어요.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입장에선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나 또한 이게 정말로 티오니스에서 넘어온 물건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지만.
“하면 차원을 넘어 물건이 온 게 확실하면 어디서 온건지도 알 수 있습니까?”
“잠시만요.”
나는 천천히 크레이터의 중앙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스르르릉!!
동시에 내 전신이 푸른 빛에 휩싸이며 머리카락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체격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작은 키. 얇은 몸. 긴 머리.
누가 봐도 여성이라 느낄 만한 외모가 되어버렸지만, 체격 자체는 여성과는 다른 육신이다.
애초에 성별이 없는 신체니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물론, 이 모습이 된 이유에는 프리아 여신의 취향도 존재하겠지만. 1만 년 전 내가 프리아라는 신녀로써 존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억도 안 나는 전생이야 알바가 아니지만.
“데이비?”
내 모습이 변한 것에 의아함을 품은 그였지만 나는 담담한 얼굴로 바닥을 짚었던 손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허공까지 들어 올린 뒤 양손으로 잡아 벌리듯 펼쳤다.
우웅!!!
투웅!
동시에 대량의 에너지가 유동하며 다수의 푸른 빛을 만들어냈다.
“…….”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며 이리저리 조율하기를 한참. 멍하니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알하자드는 내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천천히 크레이터 내부로 들어왔다.
“데이비. 괜찮습니까?”
“…….”
“데이비?”
“아. 네. 괜찮습니다.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담담하게 답한 나는 미니 림프의 두개골을 내려다보았다.
“티오니스에서 온 게 맞네요.”
“그렇군요…….”
이곳에 남은 차원의 잔향이 티오니스의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겁니까?”
“본래는 그렇게 쉽지 않아요. 세상은 물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미세한 차이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바로 알아보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차원 잔향이 내게 너무 익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영지에서 온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인스 영지라면 제가 착각할 이유도 없겠죠.”
내 중얼거림에 알하자드의 곁에 있던 안토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알하자드의 제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걱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티오니스의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해서 지구에 피해가 오게 하지 않을 테니.”
설마, 일루미나티의 잔당이 남았나. 그런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게 정말로 나쁜 물건이면 어찌 할겁니까?”
“이게 사람의 피가 맞다면요. 답은 하나죠. 잡아 쳐 죽여야지.”
스산한 내 목소리에 그가 혀를 내둘렀다.
* * *
하인스 영지.
인적이 드문 한 창고는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두운 실내. 주변을 밝히는 요소라고 해봐야 눅진눅진하게 눌어붙은 양초 5개가 전부인 어두운 방 안에는 4명의 크고 작은 이들이 새까만 로브를 뒤집어쓴 채 원형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자. 그럼. 경과를 보고하겠습니다.”
마치 목소리를 변조한듯한 말투로 누군가가 운을 뗐다.
“첫 번째 실험은 실패입니다. 임상시험을 여러 번 지속해보았지만 하나같이 끔찍한 결과만 나왔습니다. 이게 그 결과물이죠,”
그렇게 말하며 검은 로브의 인영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전에 어떤 존재의 살점이었을 고깃덩어리를 보관한 상자를 내밀자 다른 이들이 움찔한다.
“그럼 두 번째 실험에 대한 보고를.”
조용히 있던 한 명이 묻자 다시금 대답이 흘러나왔다.
“두번째 실험은 가능성은 보였으나 독성이 너무 강합니다. 지방은 물론, 근육을 이루는 단백질이 모조리 녹아버렸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미니 림프의 두개골을 사용한 게 아니라는 계산이 나오기에 성공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군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작은 체격의 누군가가 턱을 어루만졌다.
모두가 목소리를 변조한듯한 음성을 내고 있어 그 신변을 알아낼 순 없었다.
“예상 시뮬레이션이 전부 실패라…… 나는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협력할 수 없습니다.”
“잠깐만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서로 이권이 맞아서 협조한 거 아니었나요? 얻을 게 없다면 굳이…….”
한 명의 회의적인 발언에 보고를 하던 이가 황급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독특하게 생긴 꽃이었다.
“이번에 새로이 품종을 개량한 꽃입니다.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죠.”
“그건…….”
“예. 조금만 더 연구를 하면 당신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겁니다. 곧 도착할 주구의 힘을 중화시켜줄 테니까요. 이게 있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리치의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오호, 그렇다면…….”
그 말에 로브를 뒤집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몸을 간헐적으로 떨며 키득키득 웃어대기 시작했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대체 누구의 것인지 모를 고깃덩어리와 뼈. 그리고 정체가 불분명한 식물들이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그때였다.
덜컥. 딸칵!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어두 컴컴한 실내에 갑자기 환한 빛이 들어섰다.
“얼씨구, 또 지랄을 하고 있구만 그래. 마석등까지 전부 끄고 뭐하는 게요.”
중후한 음성에 네 사람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어둠의 자식들도 아니고 말이외다, 유리아 양. 허어. 이것 보게. 바닥엔 또 이상한 낙서를 해놓았구만.”
그가 거칠게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발로 짓이기자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 안돼! 엄청 어렵게 그렸는데!”
그 말에 칙칙하고 어두운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또, 보고를 올리고 있던 이가 로브를 휙 벗어던졌다.
푸른 빛이 머금어진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유리아 헬리샤나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니 골다 장로님. 왜 이렇게 무드가 없어요?!”
“의견을 수렴. 골다 장로 매우 고지식. 고리타분.”
그 말과 함께 작은 체격을 지니고 있던 이가 로브를 벗어던졌다.
새하얀 원고리가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얼씨구? 이게 흑마법사 집단인지. 미식 연구회인지 알 수가 없구먼. 그래서 이런 장난질을 할 시간도 많으시오? 영지 재정 결재 서류는 아직 공란이던데?”
그가 혀를 쯧쯧 차며 유리아를 한심하다는 듯 보자 유리아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완성된 식물이 담긴 상자를 쾅! 소리 나게 내밀었다.
그러자 내부의 꽃이 크게 흔들렸다.
“봐요. 우리가 그동안 암암리에 준비해서 만든 거랍니다. 엄청 도움이 된다고요.”
그녀의 거친 행동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남은 둘 중 하나가 후드를 휙 넘겼다.
“잠깐만요! 그렇게 함부로 다루지 말아요! 우리 할아범 몸보신해줄 약초를!”
세 번째 인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티아라. 바로 에디손 기술 고문의 손녀였다.
“우리 할아범 요새 몸이 허해서 좋은 거 먹여야 된다구요. 어렵게 완성한 걸 이렇게 망가뜨리면 책임질 거에요?”
“어머나. 그건 미안해요.”
그녀의 말에 마지막 한 명이 한숨을 내쉬며 로브를 걷어 넘겼다.
그 인물은 바로 아이나 헬리샤나가 변신하고 있는 잭이었다.
“거. 분위기 좀 살리겠다는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분위기는 얼어 죽을. 지금 안 그래도 흑마법사의 주구인지 나발인지가 하인스 영지에서 나와서 은사께서 흑마법사를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계시는데 하필 이런 흉내질이오?.”
그 말에 네 사람 모두 움찔했다.
“엥?”
“헉?!”
골다 장로의 말에 유리아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흑마법 주구라니…… 설마 미니 임프의 두개골인가요?”
“어찌 알았소?”
유리아 헬리샤나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어…… 어떻게 해요?!”
“아니. 미니 림프의 두개골이 좀 스산한 건 사실이지만 아머드 멧돼지의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줄 거라고 이오 씨가 말했잖아요.”
흑마법사가 사용하면 마력 증폭이 가능하지만 흑마법을 모르는 이들이 들고 있으면 그건 피를 머금은 존재와 같은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기괴한 도구일 뿐이다.
“륀느가 아머드 멧돼지의 피를 잔뜩 먹여놓았다고 보고.”
그 미니 림프의 두개골은 머금은 피와 같은 피를 지닌 존재의 육신을 약하게 만든다.
아머드 멧돼지의 고기는 굉장히 질기고 단단해서 쉽게 먹기 힘든 탓에 유리아가 이오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다.
단단한 육질이지만 아머드 멧돼지의 피를 머금은 주구 곁에 고기를 놔두면 며칠 정도면 고기가 상당히 부드러워진다는 것이었다.
마력 증폭에 사용할 주구가 음식 손질용이라니, 보통이라면 하지 못할 발상이기도 했지만. 유리아나 이오는 누가 봐도 또라이 기질이 강한 이들이었다.
겉보기엔 사람의 피를 잔뜩 먹은 것 같은 물건이지만. 실상은 아머드 멧돼지라는 몬스터의 피만 들어간 가짜 주구.
그걸 데이비가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게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티아라 양이 바라던 정력제가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는…….”
“아…… 아니 그걸 왜 여기서 말해요?! 그리고 저, 정력제라니! 난 그냥 할아범이 좀 더 건강해졌으면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럼요. 설마 티아라 양은 그저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한 것뿐이겠죠? 근데 아무리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나이 차이가…….”
“이익! 다, 닥쳐요! 드워프는 오래 사니까!”
당황한 티아라가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쾅쾅 내리쳤다.
난장판이 된 실내를 보다 어깨를 으쓱인 골다 장로가 말없이 앉아있던 잭. 아니 아이나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내가 못 살겠구먼. 그림자수장 이라는 양반이 여기서 애들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다니!”
철썩철썩 때리는 그의 우악스러운 손짓에 아이나가 움찔거렸다.
“마…… 맛은 있습니다. 그리고 소꿉장난이라니요. 나름대로 체계적인…….”
“굳이 이 땀내 나는 로브를 뒤집어쓸 필요는 없을진대?”
“그건, 그냥 흑마법사의 물건이 주요 재료이다 보니 상황극…….”
“이 양반아, 상황극도 봐가면서 해야지 지금처럼 주구가 나온……잠깐. 아까 뭐라 했소? 주구를 당신들이 만들었다고?”
“그게…… 아머드 멧돼지의 고기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륀느 양과 직접 산지를 돌아다니면서 피를 먹인 적이 있습니다.”
“허어, 무슨 차이요?”
“그냥 아머드 멧돼지의 고기를 연하게 만들어주는 정도의…….”
“골 때리는구만.”
아이나의 떨떠름한 중얼거림에 륀느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아이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제 동생이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티아라나 달의 숲의 엘프인 유리아도 이런 장난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울려 주는 것일 터다.
륀느의 경우 이러나저러나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으면 장땡일 뿐이지만.
“아니 흑마법사의 물건이 곧 도착한다고 일부러 분위기까지 냈는데. 그게 왜 이쪽으로 안 오고 은공의 손으로 간 건지…….”
“한데 이상하군. 은사께서 그걸 구분 못 하실 리가 있나?”
“그러게요. 어쩌면 벌써 인간의 피가 아닌 몬스터의 피라는 것을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데이비 님은?”
“오자마자 조사를 위해 그림자 수장을 불러오라 찾길래 내가 직접 온 게요.”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공이시니까요. 그 주구가 흑마법사가 쓰는 주구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채셨을 테니 소란이 일지는 않겠죠.”
그렇게 생각했건만.
창고 밖으로 나온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명백히 무언가를 수색하듯 병사들이 영지를 들쑤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륀느 양. 로브랑 흔적들 전부 태워주세요.”
“아, 아니 일이 커진 거 같은데요?”
유리아 헬리샤나는 자신들의 행동이 이만큼 큰 사고로 번질 거라곤 생각지 못한 표정이었다.
* * *
같은 시각.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데이비는 눈앞에 놓인 총 네 개의 주구를 바라보았다.
왼쪽부터 알하자드에게서 받은 주구를 시작해 3개의 주구를 더 영지 내에서 찾아냈다.
하나같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물건으로 일대 땅을 소유한 주인들도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즉, 누군가가 와서 조용히 숨겨놓고 간 것이었다.
주구들 중 하나에 마나를 불어넣어 내부를 탐색하자 인간의 피에 담긴 마나 패턴의 유전형질이 묻어나온다.
처음 지구에서 주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쓸데없이 피해가 생길 뻔했다.
늦기 전에 찾긴 했지만. 아직 그 범인은 찾지 못한 셈이었다.
인간의 피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지막에 얻은 것부터 제일 처음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일일이 조사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데이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니 임프의 두개골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몰랐다. 상황극이나 펼치고 있던 유리아가 고른 미니임프의 두개골 덕분에 데이비가 진짜 흑마법사의 흔적을 사전에 찾아내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작 그 미식 연구회는 가짜 주구를 사용하려다가 소동이 벌어지자 잔뜩 얼어붙어 버렸지만.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