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7화
유리아 헬리샤나. 달의 숲 수장이자. 괴짜 미식가인 하이 엘프가 지구로 휴가를 떠난다는 사실은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유리아는 성격이 그 모양이라도 신뢰는 확실한 인물이었다.
쾅!!
먼지가 가득 쌓인 창고 문을 박살 내며 들어간 나는 가볍게 사령 마나를 일으켜 주구의 위치를 공명시켰고, 이내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
어두운 내 표정을 본 몬미더는 내가 뭔가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돌아서서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정말 여기가 맞는가!! 나 몬미더는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하…… 하지만 단장님!”
“변명은 받지 않겠다! 허나, 자네들은 물론 내 탓도 있을 터. 오늘부터 위병대는 나 몬미더와 함께 그에 따른 징계를 같이 받는다!”
그의 외침에 위병들의 표정이 거무죽죽해지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 데나 실망하지 마라. 니가 무슨 중대장이냐.”
“예…… 예?”
“됐어. 제대로 찾아왔네.”
내 말에 몬미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찾아왔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이곳엔 아무것도…….”
“아니, 여기 맞아.”
나는 단단한 창고의 바닥을 한차례 비비듯 발을 눌렀다가 천천히 들었다.
“전원, 귀 막아.”
“예?”
콰아아앙!!!
말을 듣지 않고 어리바리를 까고 있던 것들은 아직 내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는 놈들이리라.
눈앞에서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먹먹해진 귀를 붙잡고 비틀거린 위병들은 곧 벌어진 사태에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평범한 창고 바닥이었으나 금이 가고 무너지며 그 안으로 통하는 작은 지하가 보였다.
“이건…….”
“지하 창고인데. 개조라도 했나 본데?”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쪼르르 날아와 내 정수리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사령 마나의 기척이 짙구나. 갈무리 실력이 형편없는 것을 보니 애송이가 분명해.”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잘 숨긴 건 조금 의외네.”
난다긴다하는 흑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죄다 비틀려버렸다.
그 때문에 한차례 물갈이를 당했고, 지금 있는 흑마법사라고 해봐야 극소수의 잔당, 혹은 새로이 흑마법을 개척하는 이들의 일부다.
흑마법사라고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륙 각지에선 흑마법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자신들끼리도 규칙과 선을 정해놓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꼭 이런 놈들이 나오는 법이다.
매드사이언티스트. 혹은 미친 마법사. 흑마법사 중에서도 그런 놈이 있는 것일 뿐 별다른 것은 없다.
무언가의 아티펙트를 이용해 잘 숨어든 건 좋은데. 한번 이렇게 발견된 이상 숨기는 건 불가능하리라.
“1사단은 여기서 대기 몬미더는 나머지 사단을 이끌고 영지를 잠시 봉쇄해라.”
“예? 하오나 그렇게 봉쇄하게 되면 혼란이…….”
“무얼, 30분이면 충분해.”
나는 어두운 지하 내부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사람의 피 냄새가 짙다. 하인스 영지 내에서 누군가가 죽은 보고는 받지 못했다. 즉.
이 피 냄새의 주인들은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라는 소리였다.
“쯧쯧,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그래도 꼴에 대비라고 해놨네.”
그말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칠갑이 된 피들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블러드 골렘은 그리 좋은 학문이 아닌데.”
뱀파이어를 흉내 내 만들어진 마법이 혈마법이다.
무림에서도 혈교는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초단이도 없고, 그냥 찍어누를까.”
“되었네. 본녀가 할 테니 그대는 구경이나 하면 되는 게야.”
평소답지 않게 그녀가 내러 선다.
“태교에 안 좋다.”
그녀에겐 가급적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지만 그동안 좀이 쑤실 정도였던 터라 마냥 거부할 순 없었다.
“걱정 말아. 그냥 단순한 몸풀이일 뿐이니.”
꼴에 잘 숨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다 보니 나도 몰랐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한 꺼풀을 벗기고 나니 허술함이 도저히 숨겨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 정수리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그녀가 천천히 땅에 내려선다.
동시에 옅은 빛과 함께 본래의 크기로 돌아온 페르세르크의 손으로 빛이 모여들며 오딘이 내게 준 지팡이, 초월의 종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그녀가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경우는 잘 없는 편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과거의 마왕도 아니고, 심연의 종주도 아니며, 마왕의 권능 또한 없으니까.
과거 대륙을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외에도 내가 그녀에게 전투를 하게 두지 않는다는 사실도 존재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녀에겐 제법 오랜만에 몸을 푸는 일이 되었다.
투웅!
천천히 바닥을 스태프로 두드린 그녀의 주변으로 마족 특유의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심상찮은 힘의 흐름에 블러드 골렘들이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며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왔다.
뽀끄륵…….
하지만 페르세르크가 알 수 없는 언어를 한번 읊조림과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물방울이 수면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상황이 일변했다.
마치 주변을 장악하듯 먹어치운 그녀는 담담하게 영창을 내뱉었다.
[디스토피아.]
동시에 주변이 마치 그녀의 영역이 된 것처럼 그녀의 의지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를 향해 다가오던 블러드 골렘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찢겨 나가듯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피 한 방울조차 그녀의 근처에 오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을 가득 메우던 비릿한 혈향이 완전히 사라지며 핏자국 하나 남지 않고 증발해버렸다.
공간제어마법.
그녀의 고유 마법인지 조금 독특한 방식을 담고 있었다.
“제법 많이 회복했네.”
“그대가 기준점이어서야. 본 힘을 찾는다 한들 달라지겠는가.”
익숙하게 초월의 종언을 빙그르르 돌린 그녀가 스태프를 나와 연동된 특수아공간에 밀어 넣은 뒤 다시 몸을 줄였다.
그리고는 내 정수리 위에 올라앉았다.
“너 지금 그 핏자국 가득한 바닥 밟은 발로 내 머리를 밟았냐?”
“어허, 본녀가 그런 것도 신경쓰지 않았을까. 한번 볼 테야?”
새하얀 다리가 드러나게끔 신발을 벗어 보여주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 전 사용한 디스토피아 마법으로 인해 덩달아 깨져버린 결계 너머로 이동했다.
쌔애앵!! 카앙!!
나를 향해 날아든 붉은 단검이 지근거리에 닿기도 전에 아이나가 그것을 쳐내버렸다.
“아이나.”
“명령을.”
“죽이지 말고 제압해. 30초 줄게.”
내 말에 아이나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서늘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말했다.
“그림자. 저들을 제압해라. 10초 준다.”
아니 내가 30초를 준다는데, 왜 네가 10초로 줄여.
동시에 내 뒤편으로 새까만 그림자들이 스르륵 밀려들기 시작했다.
“으…… 으악!! 이게 뭐야!”
“비…… 빌어먹을 놔라!”
비명과도 같은 남녀의 외침이 들려오길 잠시. 정확히 9초 정도 되었을 때 내부가 고요하게 변했다.
이윽고 지하 창고의 내부로 들어가자 그 안에 사지를 결박당한 채 몸 여기저기 비수가 꽂혀 제압당해있는 남녀 3명을 볼 수 있었다.
“도망은 안쳤나 보네.”
“빌어먹을…….”
“사실 못 친 거지?”
여기 있는걸 알자마자 주변에 광범위 방해장을 깔아놓았으니. 전이 마법도 없는 놈들이 무슨 수로 도망칠까.
순식간에 제압당한 놈들의 복장을 바라본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뭐야. 일루미나티 로브와 비슷한데. 조금 다르네.”
그들이 입고 있는 복식은 과거 내게 토벌당한 일루미나티의 것과 흡사했지만 조금 달랐다.
하긴, 그놈들 싸그리 토벌은 했을 테니 남아있는 것도 웃기리라.
“빌어먹을! 이제 거의 다 됐는데!”
분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씩씩거리는 녀석들은 나를 향해 악을 질러댔다.
마치 숙원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극한의 증오를 드러내듯 했다.
“너희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 난리를 치는 거냐.”
“닥쳐라! 스승님의 원수!”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노려보던 중년 사내가 내게 침을 뱉으려 했다.
콰직!!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무형의 힘이 그의 머리를 짓눌러버렸다.
“페르…….”
“본녀의 성질을 너무 건드리는 걸 어찌해.”
내 정수리 위에 올라앉은 페르세르크는 흡사 여왕님처럼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채 허공에 손을 뻗고 있었다.
“으…… 그으으윽…….”
고통스러운 듯 몸을 파르르 떠는 놈을 보며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페르세르크를 제지했다.
“기다려봐. 물어볼 게 있으니까.”
후웅!!
순식간에 압박이 사라지자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스승님의 원수라니. 뭔들 알고 당해야 덜 억울하지?”
“닥쳐라! 네놈 때문에 스승님은 스승님이 계시던 집단과 목숨을 모두 잃으셨다!”
그의 외침에 내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일루미나티에 관련된 개자식인 거 같은데. 그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는 알고 하는 소리지?”
내 물음에 그가 피식 웃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세상은 약육강식. 약한 놈은 먹히는 거다. 우리도 그렇게 잡아먹혀서 흑마법사가 되었고, 이제야 힘을 얻어 포식하는 것뿐이다! 네놈도 똑같지!”
그는 눈에서 빔이 나가면 나를 수십번은 관통할 것처럼 노려보았다.
“네놈도 결국은 힘으로 주변을 찍어눌렀기에 지금 같은 삶을 영위하는 것 아닌가? 이 역겨운 위선자 같은 놈!”
그의 외침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라?”
“나는 위선일지라도 행동했잖아. 너희들은 뭘 했는데.”
“…….”
웃긴 놈들이네. 선이든 위선이든 결과적으로 과정은 같다. 그 속 내용물이 다를 뿐이지만.
“누군가가 구원을 바라는 손길을 원할 때 위선자가 손을 내밀면 그게 구원이 되지 않나? 나는 내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해 위선을 했고, 그게 내가 구한 이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내 말에 그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내가 미소를 지웠다.
“이거. 너희 대체 몇 명이나 죽인 거냐.”
“하…… 하하하하하 궁금한가? 어디 한번 알아보……. 커헉?!”
순식간에 놈의 양 뺨을 틀어쥐고 들어 올린 내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몇 명 죽였냐고 묻잖아.”
갑작스레 엄습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에 그의 정신이 혼미해진 듯 시선이 흔들렸다.
드래곤의 힘도 일정 먹어치운 터라 피어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와들와들 떨던 그가 입을 다물자 나는 그놈의 머리통을 손에 쥔 그대로 으스러뜨려버렸다.
으직 소리와 함께 그가 침묵하자 나는 고개를 돌린다.
“너도 대답 안 할래?”
“꺄악! 사…… 살려주세요! 주…… 주구 하나당 20명 정도 먹였어요!”
그나마 이 여성은 아까 전의 남성보다는 겁이 많은 듯 보였다.
“스무 명이라…… 많이도 죽였네.”
주구가 총 5개. 100명이나 죽었다.
“헤…… 헤헤…… 맞아요. 서대륙과 중부대륙 치안이 나쁜 국가를 위주로 수집해 모았어요. 그, 다 말했으니 살려, 주시는 거죠?”
“누가?”
콰직!!
두 번째도 가차 없었다. 살아도 지옥을 볼 테니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그런 내 행동에 페르세르크는 눈을 감았다.
태교에 좋지 않다 여긴 것이겠지.
이후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젊은 남성을 바라보았다.
“넌 할 말 없나?”
“없다. 죽여라.”
“니들 스승이라는 자가 남긴 건지 모르겠다만 처음엔 제법 잘 숨기긴 했는데. 한번 들킨 이상 사령 마나의 흐름을 내가 모를 수가 없거든.”
애초에 이놈들의 조력자 따윈 없다.
뭔가 하인스 영지에 들어와 계략을 꾸미려 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사전에 차단된 것이다.
“내게 남은 원한은 어째서 그렇게 잘 숨긴 계획이 마지막에 와서 틀어졌냐는 거다.”
“흐음?”
“그래. 네놈이라면 큰 타격도 아니겠지. 하인스 영지에서 언데드가 출몰해 다수의 사람을 다치게 한들. 누가 네놈을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성자의 영지에 언데드가 나와 인명사고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론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네놈에게 티끌만 한 흠집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거늘…… 빌어먹을 세상도 불공평하구나.”
원통한 그의 말에 나는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일루미나티가 대체 어떻게 세뇌를 해놨기에 영향을 받은 놈들까지 이 지경인 거야.”
“본녀도 모르지.”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너희 덕분이다. 이거 보여? 니들이 실수로 이걸 차원 너머로 잃어버린 덕분에 내가 니들을 찾았거든.”
내 웃음에 그가 말없이 머리 위에 엑스자 표시가 된 주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거짓말.”
“뭐?”
“이건 우리 것이 아니다.”
이건 또 뭔 개 풀 뜯는 소리야.
“이게 너희 거가 아니라고?”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빌어먹을! 대체 누가!”
그는 이해한 듯 보였다.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 미니임프의 두개골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온 것 때문에 암암리에 테러를 준비하던 게 모두 들켰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또한 놀랐다.
주구 5개 모두 이놈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니. 이건 또 뭔 웃긴 소리인지.
“으아아아악!! 빌어먹을!!”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 주구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망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절규하듯 머리를 소리를 지르자 아이나가 거침없이 그의 얼굴을 내리찍어 기절시켰다.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영지민을 죽이려 한 놈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던?”
“거…… 성자 이름이 좀 퇴색되신 거 아닙니까?”
“불만이면 네가 성자 가져가.”
“저는 남자가 아닌데요.”
“잭의 모습으로 있으면 되지.”
“후우…… 명 받들겠습니다.”
하인스 영지에 테러를 하려 한 놈들을 살려둬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흑마법사들의 사체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오던 나는 표정을 찡그린 채 머리에 엑스 표시가 된 주구를 바라보았다.
이들 이외에 또 다른 놈이 있다.
신력까지 풀어서 찾았건만, 솔직히 이들 이외에 하인스 영지 내의 흑마법사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없거나. 신격에 이른 내 감지까지 벗어날 정도의 어떤 흑마법사가 존재하거나.
전자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회랑의 영웅들에게 부탁하긴 그렇고, 그렇다고 프리아 여신에게 도움을 청하자니 그녀는 나를 보기가 무섭게 인형놀이를 할 터.
골치가 아파온다.
“데이비. 그런데 그거 다른 주구와 조금 다른 거 아닌가?”
그때 나머지 4개의 주구와 다르게 머리에 엑스자 표시가 된 미니임프의 두개골을 보던 페르세르크가 물었다.
“다르다고?”
“인간의 피가 아닌 거 같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게 인간의 피를 머금은 게 아닌 몬스터의 피를 머금은 주구라는 걸 깨달았다.
이걸 왜 몰랐지?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대 말이야. 주구를 테스트할 때 뒤에 얻은 나머지 네 개중 세 개만 테스트했지.”
아…….
세 개가 그러니 나머지도 그럴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멍청이같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를 줄이야.
“어이가 없네.”
명확하게 말해서 머리에 엑스자 표시가 된 주구는 위험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몬스터 중에 흑마법사가 있으면 몰라 척 봐도 흑마법을 익힐 수 있는 몬스터의 피도 아니었다.
즉. 언어보정장치를 토끼가 사용하는 꼴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가 없어서 당황스러움이 배가 된다.
“어이가 없네. 결국, 이 가짜 주구 때문에 진짜가 잡혔다는 거야?”
“쿡쿡…… 우스꽝스럽구나.”
솥뚜껑보고 자라인 줄 알아 놀라 뒷걸음질 찼더니 진짜 자라를 잡은 셈이었다.
그쯤 되니 이걸 만든 놈이 누군지 어디 얼굴이나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하인스 영지에서 온 게 분명한데.
왠지 그 대상에게 제대로 속아 넘어간 것 같아 속에서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이건 흑마법사 놈들에게 화를 낼 때 이상으로 자존심이 대폭 깎여나가는 기분이다.
“흐…… 흐흐흐…….”
“데이비?”
“누군지 잡히기만 해라 진짜.”
극한의 분노가 차오른다.
누군가의 손바닥위에서 놀아난 이 더러운 기분을 그 대상에게 풀지않으면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본인이 이런 용도로 내손에 이게 닿게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용도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해도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가 남았다.
“데이비? 그래도 그 주구덕에 흑마법사를 잡았…….”
“그래…….신상필벌은 확실히 하지. 근데…….”
상은 상이고, 내 뒤끝이 용서를 안하네.
“후우……애도 아니고…….”
“누군지 몰라도 잡히기만해라.”
손에 쥔 엑스자 표시가 된 주구를 노려보며 나는 음산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