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48화 (1,148/1,559)

제 1148화

유리아 헬리샤나와 륀느에게 있어서 먹을 것에 대한 각자의 철학은 절대 같지 않다.

물론, 륀느나 유리아나 맛있으면 먹는 건 사실이지만, 그 입맛이라는 건 가리지 않는다뿐이지 선호라는 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 둘에게 있어서 가장 선호하는 음식에 다른 누군가의 호작질이 들어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저 먹을 것에 미친 것들.

궁극의 식탐. 극한의 미식추구.

데이비가 륀느와 유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천칭을 녹여낸 창을 들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기세를 피우는 륀느와 그런 그녀를 상대로 정령들을 불러내고 대치한다.

단순 힘의 여파를 생각하면 륀느의 압승에 가까운 전력 차이.

하지만 유리아의 표정은 환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나, 그걸 쓰시게요? 지구에서 그 정도 되는 힘을 사용하면 은공이 바로 눈치챌 텐데 상관없으시겠어요?”

그러겠지. 바로 넬타리드가 데이비에게 헬프콜을 던질 테니까.

비록 륀느가 데이비에 비해 퇴색된 감이 없잖아 있지 세피로스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하면 그녀 또한 심연의 공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막대한 힘을 끌어낼 수 있는게 현실이었다.

지구라는 공간이 제약될 뿐.

문제는 데이비가 이곳에 와서 괜히 엮여서 좋아질 게 없으니 륀느로써도 이 이상의 위협은 의미가 없었다.

스르르륵…….

이윽고 그녀의 손에서 창이 사라진다.

이에 유리아가 싱긋 웃으며 여유롭게 말하려던 찰나.

륀느가 대뜸 달려들어 유리아의 양 뺨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륀느가 유리아의 폭거를 낮게 평가!”

힘을 사용할 수 없다면 육신의 깡 스펙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일.

“으갸갸갸갹!”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던 유리아가 정령들을 시켜 륀느의 머리카락을 뒤에서 잡아당기고 그녀의 뺨을 잡아당겼다.

먹을 것을 두고 푸닥거리를 하는 그 둘의 모습에 에반젤린이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당장 그만 해요! 왜 고작 먹는 거로 싸우는데요?!”

그녀의 외침에도 둘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득바득 싸우기 시작하는 둘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누가 보는 이도 없는데 얼굴이 다 화끈해질 지경이었다.

이에 에반젤린은 스마트폰을 들고 조용히 어딘가로 연락했다.

그렇게 약 5분이 지났을까.

쾅!!

“애도 아니고 에반젤린 앞에서 둘 다 뭐 하는 거야!!”

잔뜩 열이 오른 일리나의 등장에 둘의 싸움은 소강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 * *

싸움이 강제로 멈춰졌다 해도 냉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멀찍이 떨어진 채 서로를 흘끗흘끗 노려보던 둘은 일리나의 눈총에 고개를 획 하니 돌려버렸다.

“애도 아니고, 먹을 거로 싸우고 말이야. 륀느.”

“명령 대기 중.”

“치즈 피자에 핫소스 좀 부었기로서니 그렇게 달려들어? 그리고 유리아 씨.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륀느가 탕수육 좀 집어먹었다고 그렇게 싸워요?”

일리나의 타박에 둘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유일하게 남은 멀쩡한 탕수육이었으니까요!”

“치즈피자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건 륀느에 대한 모독이라 설명해!”

각자 선호하는 음식이 있는 만큼 그것에 대한 고집이 셀 수밖에 없었다.

“하…… 그냥 하나 더 시켜요…… 내가 사줄게…….”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일리나가 스마트폰을 톡톡 눌러 조작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딱히 크게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음식에 소스 하나 부었다고 아주 이 악물고 싸우는 꼴이 가관이다.

황당한 건 유리아와 륀느는 영지 내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점이었다.

취향이 비슷하니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많을 텐데.

한번 싸움만 하면 이 꼴이 아닌가.

“하…… 난 돌아갈 테니까 다시 싸우면 진짜 그땐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알아들어요?”

“네에~”

“명령 인수.”

약간 불만이 섞인 대답을 늘어뜨리는 유리아와 입을 삐쭉이며 명령을 수락하는 륀느가 불안하긴 했지만, 일리나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에린아. 방송은 했고?”

“응! 했어요. 밤에 또 할까 생각 중이긴 해요.”

“그래. 네가 원하면 마음껏 해.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말고.”

“응!”

환하게 웃는 에반젤린이 핫소스가 듬뿍 발린 치즈 피자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저 작은 입이 어떻게 저런 속도를 내는지 의문이지만 애초에 에반젤린의 진짜 육신은 저런 피자 따위 판 단위로 흡입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참. 당분간 하인스 영지에 오지 말고.”

“왜요?”

“데이비가 화났어. 누군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 말에 유리아와 륀느가 흠칫했다.

“가짜 흑마법사의 주구로 데이비를 속였다나 봐.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흑마법사를 잡긴 했는데. 완전히 놀아난 기분이라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어.”

그 말에 륀느의 뺨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라? 륀느. 왜 그래?”

“무…… 문제없음. 자가 진단 결과 자체적인 세척 중.”

“땀으로 세척을 하는 게 말이 되니?”

“새…… 새로운 기능!”

되지도 않을 거짓말을 하지만 일리나는 갸웃하면서도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저…… 은공이 그 범인을 찾으면 어쩐다고 하시던가요?”

“알잖아요. 데이비 뒤끝 센 거. 난 데이비가 가끔 정말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년을 그곳에서 보냈고, 기억이 없어졌다지만 데이비의 영혼은 붉은 공허에서 셀 수 없는 시간을 체류했다.

그럼에도 데이비는 한결같았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이 잘 어울리는 게 바로 이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좋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건 계속 그녀를 사랑해줄 거라는 소리니 말이다.

일리나는 약간 붉어진 얼굴을 했다.

이에 유리아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나. 부끄러운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시끄러워요.”

빨개진 얼굴로 몸에 나는 열을 식힌 일리나가 한숨을 내쉬고 익숙하게 차원에 틈을 냈다.

데이비처럼 완전히 여는 게 아니라 찢는 것이지만 그녀의 차원 균열 컨트롤 실력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아. 맞다.”

마지막 피자도 한 조각 입에 털어 넣은 뒤 에반젤린도 나가버리자 조용히 남은 유리아와 륀느만이 남았다.

넓은 스튜디오 건물 내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길 약 15분. 유리아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하늘 아래에 두 태양이 있을 순 없는 거 같네요.”

화사한 말투로 사근사근하게 말하지만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에 륀느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륀느가 하늘에 서겠다고 명시해.”

당장이라도 다시 싸울 것처럼 구는 둘이었지만. 곧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했다.

-배달왔습니다~

밝은 목소리에 륀느가 벌떡 일어났다.

“륀느가 휴전을 제안.”

“좋아요.”

먹을 것 앞에서 그들의 국경은 무조건 소강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먹는다는 것에 진지한 또라이들이었으니 말이다.

* * *

상대의 음식에 사고를 치는 순간 이 조용한 평화가 박살 난다.

얄밉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건드렸다가 자신의 것도 파멸을 맞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그렇기에 둘 모두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눈치만 살피는 현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조용한 침묵의 전쟁 중에 말을 걸어온 것은 유리아 헬리샤나였다.

“은공께서 범인을 찾으려 드실 텐데…… 왜 그게 하필 은공의 손으로 들어가서…….”

한숨을 내쉬며 유리아는 흑마법사와 차원 이상 현상에 대해 불만을 토해냈다.

차원 이상 현상만 없었다면 아머드 멧돼지의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꼬여버렸고, 데이비에게 선빵을 친 결과만이 남아버렸다.

착잡함이 감싼다.

“증거가 없으니 데이비 님은 절대 알지 못한다고 확신.”

“그럴까요.”

“확신.”

륀느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름대로 조심을 했을 것이다.

즉, 걸리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던 중 유리아의 긴 귀에 어떤 소리가 잡혔다.

-먹방이요? 왜 먹는 걸 보여줘요?

방 너머에서 에반젤린이 방송을 켰는지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부끄럽게 왜 먹는 걸 보여줘요. 그리고, 지금은 배불러요.

먹방?

의아함이 서린 둘은 서로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륀느 양. 아는 게 있나요?”

“륀느의 정보에 따르면 음식을 먹는 것을 방송하는 콘텐츠. 매우 흥미로운 소재.”

그 말에 유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어떤 걸 먹는데요?”

좀 전까지 싸우던 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알려진 간단한 음식. 하지만 가끔 방송을 하는 이들이 직접 만드는 음식도 존재.”

그 말에 유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 말인즉슨,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맛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는 건가요?!”

“긍정.”

륀느는 자신만 맛있으면 그만이기에 신경쓰지 않지만, 유리아는 예전부터 그랬다. 맛나고 좋은 음식을 만들면 그걸 꼭 누군가에게 먹이고 싶어 했다.

재료의 선정이 너무 과감해서 문제일 뿐.

“재밌겠네요.”

“현재로선 불가하다 판단.”

“어째서요?”

“유리아. 에반젤린에게 신용을 상실.”

륀느의 말에 유리아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직접 방송을…….”

“새로이 시작하는 방송을 보는 이는 평균적으로 0명에서 10명 이내. 좋은 결과를 도출하긴 어렵다고 분석해.”

아쉬운 감정을 애써 누르며 유리아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뭔가가 떠오르진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포기한 그녀가 냉장고를 열었다.

“어? 이게 있네요?”

소시지를 꺼낸 유리아가 눈을 반짝인다.

“이건 술안주로 딱인데. 제가 먼저 집었으니 제 꺼랍니다.”

“륀느가 우화등선주와 특제 열반 소스를 확보 중. 제공할 테니 소시지를 제공 요청해.”

“오, 그 귀한 소스를…… 좋아요.”

륀느와 유리아에겐 문제가 없지만, 이것이 에반젤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이들이었다.

* * *

게임 속의 캐릭터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적의 칼에 맞아 쓰러지자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니 왜 술을 먹는데? 그 맛없는 게 무슨 맛이라고!”

에반젤린은 2차 성장 이후 술에 잘 취하지 않게 되었다.

술 자체가 주는 알코올은 어떤 의미로는 독성에 가깝기에 그녀의 몸이 자체적으로 해독을 시켜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에반젤린에게 술이라는 단어는 맛없으면서 아무런 효과도 없는 그런 물일뿐이었다.

[술이 얼마나 맛있는데.]

[나중에 크고 나면 다 알게 된다 이 말이야.]

[어린애는 아직 배우면 안 되지~]

술과 관련되면 자신들을 놀리는 못된 이들로 빙의한다.

씩씩거리며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나 술에 안 취하거든요?! 내 몸은 술을 멋대로 중화시켜버린댔어요.”

[아…….]

[이건 선 넘지.]

[술의 맛을 모른다? 취할 수 없다? 인생 절반 손해 봄.]

[그럼 몇 년 손해 본 거냐.]

솔직히 취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괜히 마셨다간 엄청 혼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는 따로 건드리지 않았다.

“어쨌든. 내게 술은 그리 달갑지 않아요.”

[그래. 그래. 마시지 않는 게 최고야.]

[에린쟝은 아가야. 지켜줘야 해…….]

[응애응애]

놀리는 게 분명하다.

이를 빠득 깨문 그녀는 무리하게 술을 들이켜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맛없는 물을 마시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저는요 술에 취할 수 없는 몸이라 그런 거엔 공감 못 해요. 그림이나 그릴 거에요.”

그리 말하며 펜을 드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 엘프랑 성자 호위단장은 어디 감? 지구에 온 거 아니었음?]

잠깐 나타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임팩트를 만들어냈던 두 사람이었다.

그탓에 방송을 봤던 사람들은 그 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엘프치고는 조금 이상했지.]

[엘프에 대한 인식이 개박살 났음.]

“아녜요. 유리아 언니가 조금 독특한 거지…… 다른 엘프분들은 다들 착하신걸요.”

에반젤린은 문득 자신의 곁에 있는 엘프들을 떠올렸다.

다른 이들에겐 비밀이지만 용안 때문에 알게 된 잭. 아니, 아이나 헬리샤나.

그리고 유리아 헬리샤나.

간혹 신목의 일로 찾아오는 신목의 성녀, 에밀리아까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상할 정도로 당하는 걸 즐기는듯한 아이나에…… 먹는 취향이 정말 경악스러운 유리아.

그 외에도 조금 이상한 에밀리아도 존재한다.

처음엔 정상적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에밀리아도 정체 모를 기행을 자꾸 저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가끔씩 혼자 구석에 앉아 엉엉 운다든지. 무생물인 돌멩이를 두고 푸념을 한다든지.

“이상하네…… 왜 멀쩡한 엘프가 없지…….”

채팅창에 ㅋ이 빠르게 도배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봐도 멀쩡한 엘프가 없었던 거지~]

[그만큼 기이한 종족이다. 이거지~]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티오니스 성자도 엘프들보고 또라이 귀쟁이들이라고 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순식간에 유리아에 대한 평가가 나락으로 처박히지만, 에반젤린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이전에 있었던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일어난다.

지금 와서 저런 소리를 내는 이는 단 하나뿐이다.

륀느와 유리아!

벌떡 일어난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그만 싸워요!”

그리고는 후다닥 달려갔고 채팅창에선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말리러 갔다며 낄낄 웃어댔다.

[아니 그래도 감히 완전무결한 치즈피자에 잡스러운 것을 끼얹었으면 싸울만함. 이건 티오니스 호위 단장 편이다.]

륀느의 편과.

[유일하게 찍먹할 수 있는 탕수육을 한입에 다 처먹은 것도 대역죄임. 감히 우리 유리아 님을 함부로 매도하지 마라.]

유리아의 편이 나뉘어 싸우기 시작한다.

에반젤린이 두 사람이 먹을 거로 싸운 걸 푸념하듯 털어놓았기에 아는 것들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 방장. 부먹충인 거 실화임?]

[듣고 보니 그렇네.]

[이건 못 참지.]

그녀가 잠시 사라지고 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청자들은 곧 에반젤린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소스 병으로 추정되는 병을 쾅 내려놓는 것을 보고 물음표를 띄웠다.

“압수해왔어요. 륀느 언니가 좋은 소스를 가져왔는데 이걸 뜨겁게 데워먹을지 얼음을 넣어서 차갑게 먹을지로 싸우는 거 있죠? 애도 아니고…….”

[개인 취향이지.]

[근데 소스를 데워 먹거나 얼음을 넣어 먹어?]

“이게 대체 무슨 맛이라고…….”

짜증스레 라벨도 붙지 않은 소스 병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자 향긋한 향이 밀려 올라온다.

“와…… 냄새 좋다.”

[모임, 모임]

[무슨 향이길래.]

“복숭아 향이 나는걸요? 근데 일반적인 복숭아가 아니고 굉장히 청명해요.”

신기한 듯 소스 병을 이리저리 흔들어 냄새를 킁킁 맡아보던 그녀가 말했다.

“한번 맛볼까?”

[살짝 혀만 담가보셈. 원래 소스는 맨입에 먹는 거 아님.]

그때 누군가의 음성 도네이션이 울려 퍼졌고 에반젤린은 말없이 병을 바라보았다.

“음,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이 한 모금 짧게 들이켰다.

“와…… 맛있다!”

신기한 듯 그녀가 중얼거렸다.

생전 처음 맛보는 맛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굉장히 맛있고, 달면서,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그리고는 한 모금 더 마셨다.

한 번 더 마시자 입안이 소스의 향과 맛에 톡톡 튀었다.

“와 신기해…….”

[대체 무슨 소스임?]

“글쎄요……. 일단 겉보기엔 과일 소스 같은데. 복숭아 소스랑은 많이 달라요.”

그 물음에 에반젤린이 호리병의 뚜껑을 닫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러던 중 밑창에 붙어있던 라벨을 발견한 에반젤린이 그걸 읽었다.

“음, 열…… 반 소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병을 내려놓았다.

“아 기억났다. 아빠가 좋아하는 술이랑 이름이 비슷하네요! 열반주라고, 저는 가까이도 못 가게 했었는데!”

[??성자가 마시는 술? 근데 술 이름이 왜 그럼.]

[열반줔ㅋㅋㅋㅋ 한 잔 마시면 열반에 든다고 열반주냐 ㅋㅋㅋ]

“우리 아빠가 우화등선주랑 열반주를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근데 나는 절대 가까이도 못 오게 했어요. 전에 영지에서 누가 술을 줬다가 아빠한테 작살이 난 이후로 시녀들도 절대 안 주고…….”

기분이 좋은지 그녀가 헤실거렸다.

“어…… 근데 왜 이렇게 신이 나지.”

그녀의 볼이 발그레해진다.

“푸헤.”

[???]

[?????]

“푸헤헤헤헤.”

그리고는 굉장히 가볍고 헤픈 웃음을 피워올린 뒤 고개를 들었다.

풀린 눈에 발그레해진 볼.

누가 봐도 소스의 맛과 향에 취한 모습이었다.

[아니 소스에 사람이 취하기도 함?]

[콜라만 마셔도 취하는 애들은 있는데. 소주 마시고도 멀쩡할 것 같은 방장이 저러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

“여러부운~ 내가 여러분 좋아하는 거 알죠?”

귀여운 여자아이의 살살 녹아내리는 듯한 애교 섞인 목소리였다.

당연히 평소에 보지 못하는 모습이기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폭주했다.

미식을 위해서 가리지 않는 유리아와 륀느가 열반주와 열반 소스를 공수해왔고, 싸움으로 인해 에반젤린에게 그것을 빼앗겨버렸다.

술은 빼앗기지 않았지만, 중요 부품인 소스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거기까진 좋은데.

이놈의 소스가 아직 성룡이 아닌 에반젤린에겐 굉장히 자극적인 소스라는 게 문제였다.

업보가 깊어지고. 그로 인해 사신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걸 아직 륀느와 유리아는 몰랐다.

“여러부운 기분이 너무 좋아요오~ 내가 춤 보여줄게에~”

그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난 그녀가 귀여운 춤을 아장아장 추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절대 안 한다고 했을 짓이었지만 지금의 에반젤린은 굉장히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아져 있었다.

주사 아닌 주사!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이게 웬 땡큐냐 하는 입장이다.

“어머나. 아가씨. 설마 이걸 드신 건가요?”

“에헤헤. 언니이~”

주욱 늘어지는 목소리로 깜짝 놀란 유리아에게 달려가 안기는 에반젤린을 보며 유리아가 당황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곁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벌떡 일어나 유리아에게 착 달라 붙어버렸다.

“후우…… 아가씨가 열매 향에 휩쓸린 모양이에요.”

[소스인데 취하기도 함?]

“보통은 안 그런데…… 륀느 양의 입맛을 위해서 이것저것 섞다 보니. 조금 향이 강렬해요. 용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열매가 들어가 있거든요. 그나저나, 이거 방송 어떻게 종료하죠?”

[아니 눈나. 설마 이렇게 끈다고?]

[이렇게 날로 먹고 튄다고?]

그들의 성화에 유리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음……지금 끄면 안되나 봐요. 그럼 하긴 해야 하는데 그냥 틀어놓을 수도 없고…….”

고민하던 그녀가 손뼉을 쳤다.

“아 그럼 제가 아가씨가 잠들 때까지만 진행할게요. 지금은 기분이 좋으셔서 이러지만 곧 곤히 주무실 거에요.”

유리아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정령을 시켜 작은 바구니를 가져왔다.

“사실 맛있는 걸 만들었는데. 여러분에게도 알려주고 싶네요. 사실, 이러는 거 은공에게 보이면 안 되는데. 설마 은공이 방송을 보기나 하겠어요?”

지옥문이 열린 것도 모르고 유리아가 떠들기 시작했다.

“짠, 맛있어 보이죠?”

[고기?]

“맛있으면 장땡이랍니다.”

[아니 우리야 상관없음 우리 방장도 한입씩 주셈. 먹고 싶어서 매달리는 거 보소 ㅋㅋㅋㅋ]

그 말에 유리아는 손에 쥔 만두 같은 고기를 집어 그녀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그러자 에반젤린의 미소가 더욱 해맑아진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은 미소가 흘러나올 정도로.

유리아의 괴식이 재료가 그렇긴 하지만, 겉보기엔 사람들의 침샘을 자극할만한 것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어그로는 성공적이었다.

재료가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은 처음 그녀가 꺼낸 것들을 보며 굉장히 반응이 거셌다.

위가 땡긴다느니. 엄청 먹고 싶다느니 하는 말도 가득했다.

그때 그녀에게 어떤 도네가 도착했다.

[그런데 방장 저렇게 둬도 괜찮은 거임? 티오니스 성자가 화낼 거 같은데.]

그 걱정스러운 물음에 유리아가 해맑게 웃었다.

“걱정 말아요. 현재 은공은 흑마법사의 주구를 만든 범인 찾느라 정신없을 거예요.”

[흑마법사의 주구?]

“네~ 나쁜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거든요. 근데 그중 하나가 아머드 멧돼지의 피로 만들어진 가짜여서 그거 만든 사람 찾는다고 정신없을 테니 다행이겠죠.”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그녀가 다시 방송을 진행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띠링.

좀 전에 질문을 던졌던 시청자였다.

[아 그게 아머드 멧돼지였음? 난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네가 그걸 왜 알고 계세요?]

“…….”

유리아가 고장 난 것처럼 굳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