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7화
퍼엉!! 삐이이이…….
양손으로 눈을 감싸고 데굴데굴 구르며 숨을 헐떡이는 악몽과 그런 악몽을 쫓아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데이비를 보고 있으면 누가 악몽인지 의심스러웠다.
“위치가 바뀐 거 같군.”
장난을 쳐야 하는 건 악몽 쪽이고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건 분명 데이비 쪽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은 듯 보였다.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가 건네준 도구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데이비를 보며 레이나와 페르세르크는 애석함의 한숨을 내쉬었다.
쉬지 않고 펑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주 날 잡고 저 악동을 괴롭히고 있는 것일 터다.
“이…… 이이익!”
한 손으로 눈을 감싸 쥔 녀석이 남은 한 손을 허공에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그러자 지상에서 학살당하고 있던 벌레들이 일제히 녀석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리라.
하지만 데이비가 소환해낸 존재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전투능력은 거의 없는 벌레들이다. 크기만 커졌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으…… 으으으…… 으으으!!”
데이비는 악랄했다.
5분의 시간을 주고 4분 50초쯤에 녀석을 잡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잡힌 후에 그가 하는 행동은 한결같았다.
“자. 이걸 보라고.”
“으…… 으으!!”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작은 소녀를 향해 데이비가 구슬을 들이밀었다.
저 섬광 구슬은 프리아 여신이 만들어내 데이비에게 넘긴 것. 다른 이들에겐 몰라도 악몽에겐 극도로 타격이 큰 모양이었다.
“으아아아앙!!”
결국, 악동은 구슬이 폭발하기 직전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데이비에게 엉겨 붙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웃는 것 말고는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지만, 녀석의 손짓 발짓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만해달라고? 다신 안 그런다고?”
데이비의 질문에 작은 소녀가 눈을 감은 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회복되는 시야를 천천히 떴을 때. 데이비의 웃음이 그녀의 시야에 담겼다.
“거절한다.”
그 말에 녀석이 급히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이미 데이비에게 잡힌 녀석이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황급히 거품을 뿜어 시야를 가려보려 하지만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할 리가 없는 그였기에 대뜸 거품들을 무시하고 파고들어 구슬을 들이밀었다.
“터진다~”
퍼엉!! 삐이이이이이…….
응징은 가차 없었다.
* * *
의욕을 잃어버린 채 녀석이 추욱 늘어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녀석이 만들어낸 벌레들은 일제히 사라져버렸고, 녀석이 내뿜던 힘도 사라졌다.
단순히 장난을 치고 싶었는데 이렇게 크게 데였으니 뭘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으리라.
“악몽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짓을 떠올려 보면 절대 협조 안 할 거 같은데…….”
“저건 장난을 못 치게 해야 돼. 안 그러면 협조받는 내내 장난질을 치려 들걸?”
“거짓말하시네요. 방금 엄청 즐겼잖아요.”
레이나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뻔하지. 프리아 여신이 툭하면 데이비를 가지고 장난을 치니 이 기회에 똑같이 생긴 프리아 여신의 잔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게야.”
페르세르크의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합당했다.
그녀의 설명에 레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불쌍하다는 듯 악몽을 바라보았다.
악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치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자신의 장난에만 관심이 있다.
아직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겁에 질려있고, 반쯤 체념한 듯 데이비를 노려보던 악몽은 자신에게 다가와 다독여주는 페르세르크가 마음에 드는지 그녀의 품에 포옥 안겼다.
그리고는 혀를 쏙 내밀었다.
“그래. 끝장을 보자 이거지?”
아공간을 열고 몽둥이를 꺼내 들자 녀석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는 허공에 마구잡이로 손짓을 하더니 허공을 찢고 사라져버렸다.
“앗. 도망쳤어요.”
“내버려 둬.”
“예?”
방금까지 쫓아가고 잡으려고 했던 주제에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레이나가 의아함을 표출했다.
“악몽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건 맞는데. 당장은 안돼. 악몽이 그래도 제법 중요한 부품이 되어줄 거니까.”
본래라면 프리아 여신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잠든 그녀는 몽환 세계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니 남은 건 그녀에게서 파생된 악몽이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이독제독.
나쁜 표현은 아니리라.
“괜히 저걸 괴롭힌 게 아니야. 최대한 나에 대한 경계심을 바짝 세워놔야 하니까, 한 10분 있다가 쫓아가자.”
그때쯤이면 녀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을 테니.
* * *
끝이 없는 이면세계의 저편에서 공간을 찢어발기고 튀어나온 악몽은 균형을 잃고 데굴데굴 구르며 빌딩의 옥상에 처박혔다.
그리고는 숨을 할딱거리며 주변을 거칠게 돌아봤다.
작은 소녀의 체격으로 마치 괴한에게 쫓기는 것처럼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이후 그녀는 데이비 올 라운…… 즉 갑자기 자신의 영역에 찾아와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인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에 뜬 물방울들이 그녀의 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포화 직전 상태인 뭉환 세계들이었다.
이후 그녀는 물방울들을 한자리에 모아 작고 흰 손으로 그것들을 뭉치기 시작했고 이내 커다란 찰흙 같은 형태로 만들어냈다.
찰싹! 찰싹!
그녀가 거칠게. 그리고 다급히 무언가를 빚어냈다.
마치 흙장난을 치듯 몽환 세계들을 무더기로 끌어들여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던 악몽이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악몽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방울은 곧 찰흙에 스며들어 어떤 형태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점점 검게. 점점 깊게 변해가는 그것은 이내 어떤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악몽은 황급히 손을 허공에 뻗었고 더 많은 몽환 세계를 빨아들여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가득 차 있던 몽환 세계가 한순간에 대량으로 사라지자 하늘이 말끔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무더기로 만들어낸 찰흙 덩어리가 더욱 커지고 두터워져도 악몽의 얼굴에선 다급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익…… 이이익!”
뭔가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 여겼는지 녀석은 더욱 거칠게 찰흙을 찰싹찰싹 때리며 빚어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흠칫 놀라며 일어났다.
“음~ 음음.”
어디선가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 마냥 귀가 괴로운 음색은 아니지만 지금 악몽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노랫소리였다.
그 음률이 그녀를 점차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하자 악몽은 황급히 만들던 찰흙을 방치하고는 다시 허공에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도망쳤다.
이후 그녀가 있던 곳에 찰흙 덩어리만 남았고 그곳에 데이비가 나타났다.
“이런, 또 도망쳤네요.”
악몽의 흔적을 발견했는지 허공에서 어색하게 비틀거린 레이나가 둥둥 떠올랐다.
“일부러 천천히 쫓는 이유라도 있나요? 바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잘 봐. 하늘 보여?”
데이비가 하늘을 가리키자 레이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여긴 물방울들이…….”
“그래. 가득 차서 넘어가기 직전이던 몽환 세계를 저 녀석이 먹어치운 거야. 나를 막을 장애물을 만들려고.”
프리아 여신이 요구한 건 악몽의 문제와 가득 차서 포화상태가 된 몽환 세계의 소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권능을 이어받아도 데이비로서는 그 몽환 세계를 별 탈 없이 없애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악몽을 이용하는 거야. 녀석은 몽환 세계를 이용해 악몽의 형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
본래라면 악의가 없는 악몽이다.
하지만 녀석은 겁에 질려서 무리하게 데이비를 막으려 할 게 틀림없었다.
“그럼 그렇게 합쳐진 악몽이 혹시라도 문제를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
“완성이 안 되면 그대로 흩어지게 돼.”
데이비가 악몽이 만들다 만 찰흙을 가리켰다.
악몽의 손이 떠난 미완성 악몽의 잔재는 쩌적쩌적 갈라지더니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몽환 세계가 필요한 만큼 없어질 때까지 숨바꼭질만 하면 되는 거야.”
술래잡기 다음엔 숨바꼭질.
“그럼 저는 여길 왜 따라온 거죠?”
레이나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소풍.”
그 대답은 참 간결했다.
* * *
벌써 몇 번째 실패인지 모른다.
악몽은 이제는 반쯤 흐느끼면서 황급히 물방울들을 모아 악몽의 잔재로 만들었다.
이 녀석만 완성되면 데이비를 막아줄 것이다.
잠깐만 시간을 끌어주면 자신은 이 이면세계의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 수 있다.
하지만 완성될 때쯤에 들키고 있었다.
더욱 철저하게 숨어야 한다. 더욱 확실하게 숨어야 한다!
악몽은 그 순진무구한 방식으로 자신의 운을 탓했다.
이전보다 더더욱 많은 몽환 세계, 물방울들을 끌어모아 찰흙을 만들어내 도자기를 빚듯 찰싹찰싹 두드렸다.
“우흑…… 흐윽…… 흑…….”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녀석은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이대로는 또 완성하지 못한다.
이에 다급해진 녀석은 더욱더 많은 물방울들을 끌어모았다.
그 때문에 찰흙이 무리하게 검게 변했지만, 녀석은 그걸 판단할 상황이 아니었다.
“우아아앙!”
결국, 통곡하듯 울음을 터뜨리며 더욱 급하게 찰흙을 두드린 그녀가 찰흙을 허공에 던졌다.
또다시 완성되지 못한 찰흙이다.
이제는 몽환 세계가 담긴 물방울도 거의 남지 않았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그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떨구며 허공을 노려보다 이내 찰흙 덩어리를 품에 안았다.
악몽의 힘이 스며든다.
평소 장난치기 위해 모아두었던 힘까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명백히 데이비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지만 악몽에게 그런 걸 구분할 능력은 없었다.
이윽고 새까맣게 변해버린 찰흙을 허공에 던져 활성화하려던 악몽이 눈을 크게 떴다.
“악!”
갑자기 찰흙이 악몽의 손을 깨문 것처럼 감쌌다가 홀로 떨어진 것이다.
이에 억울함이 북받쳐 오른 악몽은 결국 통곡하며 다시 허공을 찢었다.
그리고, 그녀를 깨물어 피가 나게 만든 찰흙은 이전의 다른 찰흙과 다르게 균열을 찢어 열고 사라졌다.
이면세계가 아닌 중간계로 향하는 찰흙이었다.
악몽도, 데이비도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어디로 갔나~”
장난기가 잔뜩 돋은 데이비가 끝내 악몽을 찾아내 궁지로 몰아넣자 녀석이 엉엉 울며 역으로 달려들어 데이비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만해달라고, 이제 안 그런다고. 섬광 구슬은 제발 터뜨리지 말라고 엉엉 우는 녀석을 보며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청소 잘하네.”
물론 데이비는 몰랐다.
이면세계를 빠져나가 지구에 떨어진 찰흙 덩어리가 고요한 섬에 추락했고. 이내 스스로 형상을 갖추듯 어떤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