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9화
프리아 여신은 곤히 잠든 레이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가련하고, 불쌍한 것.]
그녀가 입을 열어 한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의지가 전해지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기분이었다.
악몽을 품에 안은 채 잠든 레이나의 표정은 이전과 달리 너무 편안해 보였다.
하인스 영지에 정착하며 스스로의 안식을 되찾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만 편해졌다는 죄책감이 곧 그녀를 옭아맸다.
사흘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는 과거의 기억으로 악몽을 꾸는 그녀는 기억을 데이비가 한차례 묶어보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편안하게 잠든 것이다.
천족이라는 종족 특성상 노화가 없는 만큼 피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 그녀였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극심한 불면증으로 인해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았으리라.
프리아 여신은 자신의 얼굴에 낙서를 하고 도망쳐버린 악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악몽을 끌어안은 채 더욱 깊게 잠드는 그녀를 보며 시선을 돌렸다.
* * *
사장 정주석은 오늘따라 유별나게 표정이 밝아 보이는 레이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본적으로 무표정으로 있어도 굉장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렇게 웃는 걸 보니 가게의 매상이 벌써부터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 때 본 그 벌레는 대체 뭐지? 주변에서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사장님~ 물건 정리 끝났어요.”
유니폼을 입은 채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치는 초단이를 보면서 표정을 찌푸렸다.
“아니 참…… 거 물자는 내가 정리한다니까.”
“그래도 도울 거리가 남아있잖아요.”
“쓰읍. 이런 건 됐어. 쉴 때는 쉬고, 일할 때만 열심히 해주면 돼. 아참. 쿠키 먹을래?”
그의 말에 초단이가 움찔한다.
“쿠…… 쿠키요?”
“그래. 얼마 전에 새로 계약을 한 회사에서 샘플로 보내준 건데. 맛이 좋더라고.”
“아…… 아아아…….”
어쩔 줄 몰라하며 움찔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팍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후다닥 나가버렸고 주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초단이의 뒷모습을 보다 자재 박스를 들어 올렸다.
“뭐. 조금 있다가 주지 뭐.”
어지간해선 잘 먹는 초단이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조금 의아한 그였다.
그리고, 그런 초단이의 이상행동에 대해서 주석인 눈치채는 건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레이나 양. 오늘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평소보다 밝은 얼굴로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초단이의 권유로 같이 시작해본 알바였다.
그녀라는 존재 자체를 생각해보면 단순 아르바이트보다 더 높은 고급인력이 될 수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좋게 생각했다.
용사는 이제 과거일 뿐이고 이제는 하나하나 새로 배워나가야 하는 평범한 천족 여성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마침 데이비와 관련이 있는 지구 자체에도 상당히 관심이 있던 그녀였기에 지구의 문물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입장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레이나.”
“네 사장님.”
“초단이가 혹시 쿠키를 싫어하나?”
그 물음에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초단이는 생명체라고 하기보단 자아를 가진 검이다.
그래서 사실 식사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질적인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쿠키는 달랐다.
‘홍단이와 청단이가 아주 환장을 하지…….’
당연히 초단이는 두 아이가 합쳐지며 성장한 케이스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초단이에게 쿠키란 하나의 거대한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절제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싫어하진 않아요. 오히려 좋아하지.”
“그런데 왜 안 먹지? 이 맛있는걸.”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쿠키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먹고 싶으면 말해. 양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내어줄게.”
“고마워요. 사장님.”
“고맙기는 덕분에 나도 돈 많이 버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조금 있다가 브레이크 타임이니까 적당히 쉬자고.”
“네.”
오랜만에 죄책감과 꿈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그녀는 누가 봐도 화사해 보일 정도로 밝았다.
카페의 인기는 여전했다.
비록 얼마 전에 대로변으로 벌레가 튀어나오는 기이한 사건이 있었지만 어떤 피해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 새로울 것도 없었다.
몬스터라는 존재는 이제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익숙한 것들일 뿐이었으니까.
여전히 소문이 자자한 초단이와 레이나를 보기 위해 모여든 이들도 있지만 그중 일부는 가게의 분위기나 커피 맛에 반해 단골이 된 이들도 꽤 있었다.
“혀…… 현금영수증이요? 자…… 잠시만요!”
아직 포스기를 두드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초단이가 허둥지둥하며 독수리 타법으로 기기를 두드렸다.
“예 현금영수증 등록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아……”
악몽 덕분에 꿈을 꾸지 않은 레이나와 다르게 초단이는 현재 굉장히 곤혹스러운 심정이었다.
최근 쿠키를 거의 먹지 못했다.
때문에 가게 내부에 퍼진 쿠키의 향이 그녀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었다.
자아가 깨어나고 가장 먼저 먹은 것이 쿠키였던가.
그런 탓에 초단이에게 쿠키는 애착 인형과도 같은 감정이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쿠키를 계속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에 쿠키 냄새가 가득하고, 손님들은 알게 모르게 자꾸 놀리면서 괴롭히고 있으니 그녀의 내면 안에 있는 쿠키를 향한 갈망이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쌓이기 시작한 욕망이 어느 정도 다다랐을 즈음.
“초단아. 쿠키 좋아하잖아. 하나 먹어.”
“아…… 안 돼요!”
갑작스레 소리친 그녀가 황급히 물러나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초단이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시선에 그대로 관통당하듯 내몰린 그녀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 초단아?”
그리고. 곧 초단이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초단아!”
놀란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변화에 사장인 주석도, 레이나도 놀랐다.
퍼엉!!
순식간에 무언가 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짧게 연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사람들은 곧 볼 수 있었다.
레이나가 입고 있던 베이지색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의 작은 옷을 입은 두 명의 꼬마 소녀를 말이다.
초단이의 합일이 쿠키로 인해 흐트러지면서 분리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끙끙 앓던 두 아이는 곧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거렸고,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우와아아! 쿠우키이!”
새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너무도 앙증맞은 꼬마 소녀와 그런 소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다가오는 파란 머리 쌍둥이를 말이다.
“쿠…… 쿠키 마, 맛있서여?”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보는 두 아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홍단이의 질문을 받은 손님은 당황한 듯 두 아이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맛있어. 먹을래?”
“우와아! 머…… 머글래!”
신이 난 듯 후다닥 다가와 쿠키를 주는 대로 받아먹는 두 아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 레이나…… 저게 어떻게 된…….”
“초단이는 홍단이 청단이가 합쳐진 존재니까요. 죄송해요. 사장님. 초단이가 최근에 식단관리를 하는지 쿠키를 안 먹다 보니 쿠키 냄새에 취했나 봐요…….”
“허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사장은 초단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이런 존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병아리처럼 입을 짝짝 벌리며 쿠키를 받아먹는 두 아이가 너무 귀여웠는지 손님은 자기가 먹을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쿠키를 반으로 쪼개 두 아이에게 하나씩 먹여주었다.
“더 먹을래?”
“으…… 으응…… 아빠가 막 얻어 머그면 안 댄다고 그랬는데…….”
애초에 쉬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지만 두 아이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앙증맞음은 그런 사태를 훨훨 날려버렸다.
“저기 꼬마야. 이것도 먹을래?”
“우와아!”
딸기 음료를 건네주는 여성의 제안에 홍단이가 쪼르르 달려간다.
“여기 이것도 좀 먹어봐.”
움찔움찔하던 청단이도 빼앗길세라 조심스레 다가갔고 여성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빨대를 쪽쪽 빨았다.
“꺅 너무 귀여워!”
아역배우는 우스울 정도의 매력을 지닌 두 아이의 모습에 순식간에 가게 안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저…… 사장님. 죄송합니다. 초단이는 아무래도 오늘 일을 하기 힘들 거 같아요.”
“음? 아아 괜찮아. 상황은 잘 모르겠는데 무리해서 저렇게 된 거라면서? 그럼 쉬어야지. 우선 휴게실에 데려다 놓을래? 간식거리 준비해서 가져다줄 테니까 좀 쉬었다가 퇴근해.”
“괜찮으시겠어요?”
레이나의 물음에 그가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마. 이미 매출 빵빵하게 올랐으니까. 그리고, 너희들 마구잡이로 부려먹었다가 티오니스 성자님이 꼭지 도는 건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킥킥 웃는 사장을 보며 레이나가 쓰게 웃었다.
그때 딸기 음료를 먹던 홍단이가 눈을 반짝였다.
“맞아! 홍다니 일하고 있었서!”
“맞아!”
이에 청단이도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내려왔고 이내 사장인 정주석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호…… 홍다니가 일 도울래요!”
“청다니도 할 수 있어요.”
두 아이가 나란히 서서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며 주석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다 레이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레이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래도 똑 부러지는 아이들이니까. 서빙이라도 시켜보는 게 어때요?”
“아니 그래도 아직 애들인데…….”
“홍단이 청단이는 일반적인 아이와는 다르니까요.”
그 말에 주석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쟁반에 커피와 쿠키를 얹어준 뒤 말했다.
“자. 호…… 홍단이?”
“네! 홍다니에요!”
“홍단이는 저쪽 테이블에 이거 가져다주겠니? 절대 중간에 집어먹으면 안 된다? 대신 잘 하고 돌아오면 아저씨가 조금 있다가 쿠키 잔뜩 주마.”
기본적으로 테이크아웃이지만 아이들에게 기계를 만지게 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이에 주석은 차라리 오늘만이라도 조금 다르게 운영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는 사업적으로는 머리가 비상한 사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결정은 곧 결실을 맺었다.
“네에!”
신이 난 듯 쟁반을 양손 높이 들고 쪼르르 달려가는 홍단이를 보며 가게 내부의 손님들은 한껏 풀어진 미소를 지으며 두 아이가 빨빨 뛰어다니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어유 고생하네. 이것 좀 먹어봐.”
당연히 서빙을 하면서 쿠키를 받아먹는 건 덤이었다.
그 탓일까.
두 아이 때문에 사람들은 본래 시키던 것 이상으로 쿠키를 주문했고, 당연히 매출이 상승한다.
의도하지 않은 사태였지만 주석의 입꼬리가 귓가에 걸릴 것처럼 벌어졌다.
“흐흐흐…… 난 이제 부자야.”
딸랑…….
그때였다.
방울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잡아끄는 누군가가 가게 내부로 들어왔다.
하늘빛 단발에 조금 독특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무릇 남성들의 마음을 끌어모으듯 시선을 잡아당겼다.
“우와…… 예쁜 언니.”
빈 쟁반을 들고 카운터로 가던 홍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성을 내뱉자 여인은 예쁘게 웃으며 홍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그리고는 카운터로 걸어간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음…… 인간들은 어떤 걸 좋아하죠?”
그녀의 질문에 레이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카라멜 마끼아또는 어떠신가요?”
“음…… 그럼 그걸로 주세요.”
“계산 도와드릴게요.”
“이거면 되나요?”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싱긋 웃으며 품 안에서 지폐를 꺼내 들었다.
“네 받았습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레이나의 미소에 여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빈 테이블에 앉았다.
“서…… 서비스에요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홍단이가 쪼르르 다가와 쟁반 위에 놓인 쿠키를 내밀었다.
“아…….”
그런 홍단이를 말없이 보던 여인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물었다.
“꼬마야. 언니랑 같이 살지 않으련?”
“네에?”
“……아…… 아무것도 아니야.”
당황한 여인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인간은 정말 무섭구나…….”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