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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60화 (1,160/1,559)

제 1160화

“서…… 서비스에요!”

작디작은 아이가 쟁반을 내밀며 말한다.

하늘빛 단발의 여인은 당황한 듯 붉은 머리를 가진 아이를 보다 멍하니 물었다.

“꼬마야. 언니랑 같이 살래?”

“네? 으웅…… 홍단이는 아빠랑 같이 사는데에…….”

그 말에 여인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내가 실수했네. 방금 말은 못들은 걸로 해주렴.”

“네에.”

식은땀이 흐른다.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정신 차리자. 나는 인간을 염탐하기 위해 온 것이다!’

손을 꽉 쥐었다가 놓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급히 카페를 벗어나 어디론가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너무 다급하게 움직인 탓일까.

그녀의 움직임이 기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빨라졌지만, 사람들은 그저 육체계통의 각성자가 지나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여성은 단순히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넘어 어느 순간 스르륵 사라져버리듯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골목길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골목길 안에서 낄낄거리는 소리와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휘청거리며 그 내부로 들어가자 다수의 남녀 인간들이 한 명을 쓰러뜨리고 밟고 있는게 보였다.

“x발 가져오라면 가져올 것이지 말이 많아.”

여인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군. 인간의 본성은 어디 가는 게 아니구나.”

“엉? 뭐야.”

당황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진 그녀는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곧 죽겠구나. 하긴, 인간들이 언제 피해자의 상태를 고려했겠느냐마는.”

“뭐야 이년은. 어이, 아줌마. 갈 길 가시지?”

담배를 물고 있던 한 명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냥 있다가는 한 대 맞을 기세가 풀풀 풍기자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짜악!

차갑게 냉소 짓는 그녀의 손뼉이 한번 부딪혔을 때.

그곳에 있던 이들 모두가 볼 수 있었다.

푸른 머리칼의 여인의 등 뒤로 나타난 커다란 나비의 날개를 말이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나비 날개가 한차례 펄럭이자 오색의 가루 같은 것들이 허공으로 뿌려졌고.

그것을 들이마신 이들이 이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쓰러져 버렸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집단 린치를 당하던 인물뿐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쓰러져 버린 이들 사이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이는 경악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와들와들 떨었지만, 하늘빛 머리칼의 여인은 그를 해하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겁에 질린 듯 중얼거리는 이를 여인은 무심하게 바라보다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 * *

“으우…… 으으으!!”

불만이 가득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악몽이다.

레이나와 함께 있던 녀석은 다시금 뒷덜미를 잡힌 채 프리아 여신에게 끌려갔고, 녀석이 프리아 여신에게 한 낙서보다 정확히 2획이 많은 낙서를 고스란히 돌려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아하하하하…….”

녀석의 얼굴을 보며 내가 폭소를 터뜨렸다.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내 비웃음에 악몽은 울먹거리며 나를 투닥투닥 두들겼지만 그래 봐야 어린아이의 투정에 불과했다.

“기다렸습니다.”

카트린느 대공의 부군은 내가 대공저에 방문하자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일단은 같은 대공이라지만 제국의 대공이 함부로 머리를 숙이면 됩니까.”

“아뇨. 이건 대공으로서가 아니라. 제 안사람을 치료해주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뿐입니다.”

유약한 성정을 지닌 그였지만 제법 강단은 있어 보였다.

“안사람은 또 괴로워하다 잠들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잠든 순간만큼 작업이 쉬울 리도 없을 테니.

“우선 확실히 하겠습니다.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근본적인 치료법은 안됩니다.”

“압니다. 안사람이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것도요.”

진통제는 고통을 약하게 해주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 따윈 없었다.

“으우우우!”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내 다리를 툭툭 걷어차던 녀석에게 사탕 하나를 건네자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날름 입안에 넣었다.

“말 잘 들으면 레이나의 곁으로 보내줄게.”

내 말에 녀석이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았지만 무시로 일관했다.

이후 카트린느 대공이 잠든 침실로 들어서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파랗게 질린 채 잠들어있는 카트린느 카라벨라의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악몽은 신기한 듯 다가가 잠든 카트린느 대공의 뺨을 쿡쿡 찔러보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영혼에 구멍이 생기면서 그 괴리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어. 네가 할 일은 네 꿈을 이용해서 그 구멍이 메워진 것처럼 위장시켜주면 돼.”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였다.

하지만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기엔 그 효능이 대단한 것도 사실이다.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녀석은 이내 고민하는 듯했다.

“장난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여기서 장난치는 순간, 알지?”

내가 새빨간 구슬을 들이밀자 녀석이 움찔 떨었다.

“부탁하마.”

이후 고민하던 녀석은 한숨을 내쉬며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든 카트린느를 노려보고는 자신의 몸 앞에 손을 모아 작은 찰흙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찰싹! 찰싹!!

그리고는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찰싹찰싹 찰흙을 두드리더니 이내 작은 결정 같은 형태로 만들어냈다.

“참고로 최대한 편안한 꿈으로 부탁할게.”

악몽은 장난기가 있기에 악몽이라 불린다.

즉. 다른 말로 하면 평범한 꿈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악몽을 극한까지 몰아넣어 공포를 새겨넣은 것 또한 그런 이유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녀석을 통제해야 하니까.

이윽고 결정화된 빛은 카트린느 대공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긴장되는 몇 초가 흘렀다.

“읏…….”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편안한 표정, 부끄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너, 대체 무슨 꿈을 꾸게 한 거야.”

내 물음에 녀석은 혀를 쏙 내밀더니 후다닥 나가버렸다.

“괘…… 괜찮아진 겁니까?”

“일단은요.”

“그런데 저 아이는 대체…….”

“아이처럼 보여도 인간은 아닙니다. 꿈의 정령 같은 존재라 보시면 되겠네요.”

내 설명에 대공의 부군은 놀란 듯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말아 주세요. 본인에게도.”

“알겠습니다. 이걸로 부인이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큰 충격을 받으면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는 그를 향해 쓴웃음을 지은 나는 몸을 돌렸다.

카트린느 대공을 시작으로 비슷한 증세를 겪는 이들 전부를 치료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윽고 악몽 녀석을 따라 나갔을 때 나는 녀석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이래.”

이에 내가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자 녀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

녀석에게 다가가 안아 들자 당황한 듯 주춤거리던 녀석은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악몽이 고작 몇 명의 꿈을 덮은 거로 리바운드가 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본래 계획을 내버려 두고 곧바로 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말끔한 무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프리아 여신을 향해 내가 대뜸 물었다.

“얘 왜 이렇습니까?”

힘이 빠진 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석을 보며 프리아 여신은 단호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힘을 너무 무리하게 쓴 결과.]

“한 명인데요? 애초에 세상의 모든 악몽을 다룰 수 있는 녀석이 고작 한 명의 꿈을 제어했다고 과부하가 온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누수라고 아니?]

“새어나가는…… 잠깐만요. 그럼 지금 얘 힘이 어디서 크게 누수가 되고 있다 이겁니까?”

[맞아, 다만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악몽을 품에 안아 든 프리아 여신이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동시에 악몽이 눈을 번뜩이며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펜을 뽑아 들었고, 프리아 여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흰 손으로 녀석의 손을 잡아 펜의 끝을 악몽의 얼굴로 향하게 했다.

“으으…… 으으으으으!!!”

힘으로 저항해보려 하지만 고작해야 악몽 정도가 태초신의 아바타에게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흑…… 흐윽…….”

결국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낙서를 하게 되어버린 녀석이 울먹거리지만 악몽의 손을 꼭 잡은 채 낙서를 하던 프리아 여신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결국, 얼굴에 검은 낙서가 가득해지고 뺨에 멍청이라는 글자까지 쓰이고 나서야 해방된 악몽은 내 뒤로 숨으려다 움찔한 뒤 나와 프리아 여신을 서로 번갈아 보았다.

녀석의 입장에선 둘 다 똑같을 테니.

결국, 녀석이 허공에 손짓을 해 문을 열고 도망치려 하자 나는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레이나에게 가자.”

그 말에 녀석의 저항이 우뚝 멈췄다.

“나머지는 며칠 뒤에 할 테니까.”

내 말에 녀석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내가 여신의 곁을 떠나려던 순간. 프리아 여신이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넌 가능성이라는 것을 믿니.]

“가능성?”

[어떻게 하냐에 따라 지워져야 할 악인이 될 수도, 선인이 될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선 이가 있으면.]

“그거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겠죠. 악인 선인이라는 건 종이 한 장 차이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결국 같은 의미 아닙니까.”

내 설명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한번 악인이 되었던 이가 다시금 선인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을 믿니.]

재차 질문이 흘러나왔다. 다만 이전과는 달랐다.

“……나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완벽한 이론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쉽게 안 변한다는 소리였다.

[나비를 잘 지켜보렴. 그 후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에 나는 이해가 안 되면서도 고개를 일단 끄덕였다.

“뭐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나비가 뭐라고. 세상에 나비가 얼마나 많은데.

그때였다.

“어휴 나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프리아 여신을 만나러 온 한 영웅이 입을 연다.

“괜히 옛날 생각나네.”

“옛날 생각이요?”

“별거 아니야. 그냥 나비랑 좋은 인연이 없어서.”

정복왕 아스트레아. 팔라이다의 돌격대 대장이라 불리는 사내가 몸서리를 치며 답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꺼내 프리아 여신에게 건넸다.

“오딘이 전해주라 합디다.”

아스트레아가 건넨 주머니 속에서 작은 인형을 꺼낸 프리아 여신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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