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66화 (1,166/1,559)

제 1166화

“이건 월권행위입니다!”

아틀라스 호의 함장 비스타는 현재 미 국방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화를 이어놓고 격분하고 있었다.

그가 딱히 데이비 왕자라는 인물에게 악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미국의 영해였고, 그 영해에 생겨난 거대한 섬에 대한 모든 간섭권은 미국에게 있다.

그렇기에 그는 아틀라스 호를 출발시켜 이 근처에 배치했고 섬을 조사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과 동맹이라곤 하나 외부인이 대뜸 찾아와서 한차례 섬을 뒤집어 엎어버리고는 그 섬에 존재하는 존재를 납치해왔다.

-데이비 왕자가 잡아 온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인간이 아닙니다. 함장. 또한, 그녀의 위험성은 이미 위성을 통해 확인한 바 만약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그보다 위험한 사태는 없었을 겁니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변명에 비스타 함장이 이를 빠득 깨물었다.

현실적으론 그게 맞다.

하지만, 타지의 외부인이 멋대로 작전에 난입한 것도 황당한데 그가 한 일 때문에 결국 아틀라스 함대가 한 것이라곤 멀리서 멀뚱멀뚱 구경한 게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자신들은 그저 그의 행동을 위해 보조를 하는 인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미국 현 최강함대인 아틀라스 함대였다.

그런데. 외부인 한 명을 위해 고작 발 닦개나 하고 있는 입장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이 임무는 우리 것이란 말이오!”

-대통령 지시입니다. 함장. 이미 티오니스 성자는 그녀를 제외한 섬의 권한을 모두 우리 미합중국에 양도하기로 했습니다.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

“빌어먹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병사들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할 겁니다.

“우린 군인이오! 명령에 따라 죽고, 사는 존재란 말이오! 또한, 이 같은 치욕스러운 임무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소이다! 감히 이 아틀라스 호의 함장인 나를 빼놓고 진행하는 비밀작전을 내가 용납할성싶소?!”

-그런 명령입니다. 대기하세요. 데이비 왕자가 물러나는 그 순간 다시 섬을 조사할 겁니다.“

“명령받았소.”

수화기가 부서질 듯 강하게 틀어쥔 그는 연락이 끊어지기가 무섭게 집어 던져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대롱대롱 흔들리는 수화기를 보며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스미스. 시가 하나 주게.”

“여기 있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가능하면…….”

“그냥 주게.”

짧게 인상을 찡그린 뒤 시가를 물고 불을 붙인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한숨을 내뱉었다.

“목표물은 어찌하고 있나.”

“현재 독대 중입니다만…….”

“필요한 건?”

“딱히 없다고 하더군요. 다만, 혹시 모르니 충격에 대비하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스미스의 보고에 함장 비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게 있다 하면 내어주게.”

“저…… 함장님? 외람되지만 화를 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비스타는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이봐, 스미스.”

“죄송합니다!”

“아니야. 질문 정도야 할 수 있지. 내가 화가 난 게 티오니스 성자인 것 같나?”

“아…… 니였습니까?”

“빌어먹을 국방부 놈들이지 그놈이 아니야. 애초에 그자는 우리를 구해주었네.”

순식간에 함대를 제압했던 그 환상 속에서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어쩌면 정말로 아군끼리 사격을 하여 첫 출정 순간부터 최악의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이 기회에 기를 잡아놔야겠지. 그래야 다시는 이런 거지 같은 임무를 내리지 않을 테니.”

좀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화가 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였지만 지금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함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껄걸. 자네는 가능성이 있어.”

삐리릭. 함장님! 티오니스 성자가 물건을 요청했습니다!“

“물건? 어떤 물건인가.”

일단 상대측 대장으로 추정되는 여성이다. 그녀가 무슨 일을 터뜨릴지 모르는 만큼 긴장감의 끈은 놓을 수 없었다.

“그게…… 미국식 치즈버거를 가져다 달라고…….”

“……정말인가?”

“예.”

“후우…… 이봐. 식당에 가서 남는 버거가 있는지 물어보게.”

“이번에 한국 측에서 가져왔던 보급용 싸구려 햄버거 말입니까? 절대 좋은 소리 못들을 텐데요?”

“이 사람아 나도 먹어봤지만 다, 사람 먹으라고 만들어놓은 거 아니겠나.”

“…….”

참 소박하기 짝이 없는 요구사항이었다.

콰아앙!!!

다만 결과는 그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 * *

의식이 어둠 저편으로 떨어졌던 나비 여제, 찬드라의 의식이 깨어난다.

눈앞에 있는 인간은 붉은 검을 자신의 목에 겨누고 무어라 말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좀전의 싸움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단호하면서도 묘하게 망설임이 느껴지고, 차가우면서도 미묘한 시선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동정심을 베풀기라도 하는 것일까.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좀 전까지 승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악을 쓰던 상황과는 달리 그녀는 조용히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마비를 유발하는 가루를 뿌리거나, 수면 가루, 독 가루 등등 수많은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가루를 사용하곤 한다.

아무리 저항력이 높아도 농도가 짙게 쌓인 가루는 대기에 녹아들어 적을 제압하는 데에 최적화된 힘으로 그 효능은 가히 대규모의 적을 상대로 최적화된 힘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먹히지 않는 상대도 분명 존재했다.

과거 그녀를 죽인 존재가 그러했고, 지금 이 인간 또한.

그렇기에 그녀는 기본적으로 그녀가 지닌 육체능력을 제하고도 가장 익숙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파괴광선을 주로 사용했다.

태양의 힘을 이용한 솔라 광선.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막대한 에너지의 집약체는 그야말로 파괴광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날이 어두워진 밤엔 위력이 약해지지만 그렇다고 약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이가 없게도 그것들 모두가 단순히 휘둘러진 검에 박살 났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는 속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파괴광선, 즉 솔라 에너지가 물리적으로 부서지거나 깨질 수 있는 부류의 힘이 아니라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봐, 내 말 들려?”

차갑게 물어오는 그 목소리가 드디어 귓가에 닿았다.

수면 밖으로 끌어내진 것처럼 그녀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고, 그녀는 멍하니 눈앞의 존재.

인간들이 아틀란티스라 부르는 나비의 섬에서 그녀를 끌어낸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처음엔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한 인간, 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강한 인간은 맞지만.

조금 당혹스러운 정도의 강자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인간보다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겼다.

“질문을 네가 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처음 반말을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나를 죽이세요. 어차피 나를 죽이려고 온 거 아닌가요?”

“당장 안 죽여.”

그의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뭐라고요? 내게서 뭔가 알아내려는…….”

“그런 게 아니고.”

그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네가 바라는 대로 죽여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이거든.”

그의 미소에 찬드라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을 미워하니 뭐니 다 던져놓고 내가 보기에 너 지금 당장이라도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괴롭나?”

“…….”

“맞나보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다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괴물 같은 인간이 나타난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흥. 죽고 싶어 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녀는 애써 아닌 척 허풍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옅게 떨리고 있었다.

“그보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인간이 정말 맞는 건가요?”

“그 대답은 나중에 해주고, 우선 하나만 확인하자고. 서로서로 복잡하게 갈 것도 없고, 나도 반 시체나 다름없는 것들 고문하는 취미도 없고.”

“…….”

“원하는 대로 다 말해주면 목숨을 끊어주지.”

그 한마디에 찬드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애초에 그녀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도 없었다.

분명 창에 심장을 꿰뚫려 죽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왜 다시 살아났는지. 이곳은 어디인지는 사실 알 것도 없었다.

“이전에 인간들이 있는 도시에서 카페 하나가 폭발했지?”

“…….”

“거기에서 나비의 흔적이 나왔거든. 네 힘 말이야.”

그 말에 찬드라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녀에게 접촉한 정체 모를 사내. 까마귀 가면을 쓴 장신의 사내가 저지른 짓이었다.

‘나와 같은 존재라고 했지. 나를 돕겠다고 했고.’

그의 말대로 그녀는 인간이 미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삶에 어떤 의지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사랑했었던 증오스러운 한 인간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약속합시다. 절대 내 허락 없이 스스로 죽으려 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와의 약속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그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년 후. 끔찍한 미래를 겪었다.

인간은 자신을 속여 그녀가 돌보던 수많은 이들을 처참하게 죽였고, 끝내 그녀의 신념 전체를 부서뜨려놓았다.

자살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친절을 베풀면 원한으로 갚는 비열한 종족에게 어떤 미련도 없었다.

곪아갈 대로 곪아가던 그녀의 악순환을 끝맺어준 존재가 나타난 건 하나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제야 쉬게 되었는데.

다시 눈을 뜨고, 눈앞에 보이는 게 인간들이라니 역겹기 그지없었다.

‘말하지 않겠어.’

그 까마귀 가면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도 극도로 미운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 됐나요?”

“거짓말하네.”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구분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실만 말했어요.”

그녀의 대답에 데이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서, 에반젤린을 납치하고, 초단이와 레이나가 있는 곳엔 폭탄 테러를 감행하셨다 이거지.”

“예 당연…….”

“거짓말.”

그때였다.

갑자기 데이비가 들고 있던 검이 빛을 내뿜으며 스스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주관을 이렇게 드러낸 적이 없었던 초단이었기에 데이비도 제법 놀란 표정이었다.

이윽고 청적색의 장검으로 변한 초단이가 빛을 내뿜으며 현신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찬드라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너…… 넌?!”

“다시 뵙네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네. 저도 놀랐어요.”

“어디서 만났는데?”

그 질문에 초단이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페…… 단골이세요.”

그 대답에 데이비의 표정이 한심한 무언가를 보듯 찬드라를 바라보았다.

“뭐…… 뭐! 왜 뭐!”

당황한 그녀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인간이 밉다더니 커피는 못 끊겠디?”

그 질문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고향인 팔라디아에서도 커피는 존재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 향에 이끌려 인간에게 환각을 보여주고 손에 넣은 돈을 주고 마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났길래?”

“글쎄요. 계산은 확실히 했는데요…….”

초단이가 당혹스러워하자 찬드라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인간에게 받았을 뿐이야!!”

“강탈이 아니고?”

“내…… 내가 가진 걸 줬다!”

그녀의 대답에 데이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한산할 때 자주 찾아오시던 분이셨는데. 설마…….”

“…….”

이상한 곳으로 휘어가던 화제가 다시 돌아오자 찬드라는 혀를 짧게 찼다.

“뭔가 착각하는 듯한데. 나는 그저 사고를 칠 곳을 염탐…….”

“풉…….”

초단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풉 웃자 찬드라의 얼굴이 더욱 찡그려졌다.

차가운 냉소를 풍기던 미녀가 저렇게 화를 내는 꼴을 보니 제대로 도발이 먹혀든 듯 보였다.

“뭐가 웃기지?”

“그게요. 제가 홍단이 청단이로 있을 때마다 눈치를 보시던 분이 그런 사고를 치려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요.”

“그건!!”

“됐어. 됐어. 그만해. 애초에 저게 범인이 아닌 건 알고 있으니.”

그 말에 찬드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뭔 헛소리야. 인간. 거짓말이 아닌…….”

“그래? 너 그럼 이게 뭔지 알아?”

데이비가 아공간을 열고 플라스틱 폭탄 하나를 꺼냈다.

“그게 뭐죠?”

“뭐긴 뭐야. 카페에서 터진 거지.”

“…….”

저 장난감처럼 보이는 게 그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고? 애초에 그녀는 까마귀 가면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다. 그저 찾아와서 힘을 찾게 해준답시고 이상한 팔찌를 주고 가게를 폭파시킨 걸 본 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썼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 그래요. 뭐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네. 맞아요. 저걸로 터뜨린…….”

퍼엉!

동시에 마치 환각이라고 말하듯 플라스틱 폭탄이 사라져버렸다.

“거봐. 거짓말이라니까.”

놀아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이중으로.

표정을 찡그린 그녀가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버지. 범인이 아닌 걸 알았다면 죽이는 건…….”

“본인은 죽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그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맞아요. 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봐. 살아 숨 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때가 있어. 나는 인간이 밉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미워서 미쳐버릴 거 같으니.”

당연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

“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어요. 금제가 있으니.”

그녀의 말에 데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단아.”

그리고는 초단이를 불렀고 초단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이내 검으로 변한 뒤 그의 손에 안착했다.

“남의 딸을 납치한 건 제법 괘씸하지만, 너같이 살아도 산 게 아닌 반 시체는 보는 입장도 껄끄럽기 그지없거든.”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찬드라가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똑똑-

“말씀하신 치즈버거 가져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치즈버거가 왔다는 말에 데이비가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장교로 보이는 한 군인이 내부의 풍경을 보고 조금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범인을 취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맙습니다. 배고팠는데 잘 됐…… 그런데 이거 미국 본토식 치즈버거 맞아요?”

“아…… 음…… 네 맞을 겁니다.”

그의 대답에 데이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고맙습니다. 슬슬 섬에 진입해도 될 겁니다.”

“예. 함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 후 데이비는 그녀의 앞에 놓인 테이블에 치즈버거 하나를 내려놓았다.

서걱!!

그리고는 그녀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헤쳤다.

“뭐 하는 거죠?”

“죽는 거 바라는 거 아닌가? 적어도 죽기 전에 맛있는 거나 먹고 가라고.”

담담한 한마디에 그녀는 조용히 치즈버거를 노려보았다.

묘한 형태의 음식이다.

“…….”

이후 그녀는 눈을 꼭 감은 뒤 억지로 그것을 입에 삼켰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좀 더 먹어보면 안 되나요?”

어이없는 부탁에 데이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거 마지막이야. 죽여달라면서.”

“그…… 조금만 더 먹고요.”

“…….”

* * *

“껄껄걸. 그래. 내 생각대로 되는구나.”

까마귀 가면을 뒤집어쓴 장신의 남성은 야경이 환하게 비치는 도시의 빌딩 옥상에 홀로 선 채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자신이 죽었던 당시의 기억과 인간에 대한 증오, 그리고 그녀를 배신한 이에 대한 원망만으로 죽음을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큰 쾌락을 안겨주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유열인가.”

껄껄거리며 웃어 보인 그가 허공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저 허공일 뿐이지만 그의 가면 너머의 시선은 어딘가를 명확하게 시야에 담고 있었다.

“그래. 그래. 이대로 가는 게다. 조금 계획보다 빨리 앞당겨지긴 했지만 걱정 말게. 죽어도 괜찮으니.”

그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찬드라는 그와 다르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팔라디아 시절부터 모든 것을 기억했고, 이 다른 세상에서 자신이 어째서 깨어난 건지도 알아냈다.

“인간은 정말이고 화려하군.”

화려한 도시의 야경은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도시는 참 이면성이 강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곪아있으니까.

이처럼 그의 마음을 자극하는 쾌락은 더 없으리라.

“자. 어서 죽으시게. 조금 빠른들 어떠한가. 한 번 정도는 죽어도 괜찮지 않겠나.”

그는 애초에 찬드라를 죽일 작정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의 죽음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녀가 죽게 둘 생각도 없었다.

약해진 그녀는 까마귀 가면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약해빠졌다.

놀랍게도 변수를 일으켜 그녀를 제압한 인간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찬드라가 죽음을 겪고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는 이내 자신의 힘을 모조리 쥐어짜 내어 찬드라에게 심어 넣었다.

그녀가 살해당했을 때 그녀가 그 힘을 이용해 부활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힘을 제공해주는 건 그였지만 힘의 원천은 다른 곳에서 끌어오기에 까마귀 가면이 아쉬울 건 하나도 없었다.

물론, 힘을 건네주고 나서는 잠시 힘을 사용할 수 없는 몰골이 되겠지만 그가 그녀의 목을 벨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죽음을 겪으면서 그녀는 더욱 강해지고 기억도 서서히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끝내 자신에게 완전히 놀아났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때의 표정이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그녀의 목을 베는 순간 모든 계획의 첫 단추가…….

“으잉?”

그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이거 좀 더 먹어 보고 싶은데요.

좀 전까지만 해도 죽음만을 바라던 그녀가 갑자기 죽음을 잠시 미루는 행동을 보인다.

“야!!”

격하게 당황한 까마귀 가면이 황급히 소리쳤다.

그녀는 여기서 한번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에게 잠시 머무르게 한 힘들이 허망하게 흩어져 버릴 터.

계획에 이런 차질은 절대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어이없이 잡힌 건 계획에 어긋나지만 그래도 상정 범위 내였다.

아니 오히려 그는 거기서 추가적인 계획을 세웠다. 나비 여제 찬드라가 머물던 섬에 있는 무언가를 그가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그것을 손에 넣으면 더욱더 유동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했다. 인간들의 군대가 몰려온 건 조금 예상외였지만 그걸 일개 군인들이 발견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인간의 음식 하나에 생에 대한 갈막의 씨앗이 심어지는 건 그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빌어먹을 인간 놈이!!

격분한 그가 바닥을 쾅쾅 구르며 분노를 표해냈다.

“이럴 순 없다…… 빌어먹을 변수 놈! 이럴 순 없단 말이다! 그녀는 내 것이다! 오로지 내 손에 의해서 모든 판단을 내려야 한단 말이렷다!!”

격하게 외치는 그의 분노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녀가 곧 죽을 것이라 판단해 그녀의 목숨을 부활시킬 힘을 부여해버린 그는 일반인 간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 현재의 그는 오히려 인간 이하로 약해져 있었다.

덜컹!!

“거기 누구요!”

그때 옥상 문이 열리며 경비원 하나가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며 나타났다.

‘흡?!’

흠칫 놀란 까마귀 가면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이곳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인간이 찾아온단 말인가.

당황한 까마귀 가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 기, 길을 잃었네.”

“뭐요? 별 이상한 소리 다 하네. 지금 이 건물 문 닫은 지가 언젠데 옥상에 올라와 있는 겁니까! 여기서 노숙하면 안 됩니다! 자 나가세요!”

경비원이 다가와 까마귀 가면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이! 감히 찬드라도 아닌 일개 벌레 같은 인간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댄단 말인가.

격분한 까마귀 가면이 경비원을 죽이기 위해 살기를 내뿜었다.

“어어? 이 양반 보게? 얼른 나가요. 나가!”

하지만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경비원은 대뜸 그를 잡아 끌어내 버렸다.

“쿠억!!”

바닥을 구르며 그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감히 하찮은 평민 따위가 자신을 이리 내치다니.

빌어먹을 변수.

이게 다 그 변수 덩어리인 인간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