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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69화 (1,169/1,559)

제 1169화

덜컹!!

“이봐요. 나오쇼.”

점퍼를 입은 지저분한 수염의 사내가 피곤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유치장 안에 조용히 앉아있던 까마귀 가면의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 멀쩡한 양반이…… 다음부턴 그러지 마쇼. 불법 침입은 말 그대로 불법이야 알아?”

귀찮음이 묻어나는 경찰의 중얼거림에도 까마귀 가면의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추욱 늘어진 모양새로 경찰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선배님. 근데 저 양반 가면은 왜 안 벗기는 겁니까?”

“어? 벗겨야 하나?”

“당연하죠! 인적사항 기입도 안 하시고 대체 뭐하시는…….”

“이봐. 그거 해야 하나?”

선배 형사의 질문에 후배는 잠시 멍하니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겠네요.”

마치 홀린 것처럼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콰앙!

“빌어먹을…….”

경찰서를 빠져나온 까마귀 가면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벽면을 후려치고는 으르렁거렸다.

가면에 가려진 그의 표정이 대놓고 찌푸려졌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내가 힘만 남아있었다면.”

그는 찬드라가 그 인간에게 죽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찬드라는 과거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약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힘을 모조리 쏟아부어 그녀에게 한 번의 여벌 목숨을 만들었고, 그녀가 죽을 때마다 생기는 그 괴리를 이용하여 점점 옭아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찬드라가 죽지 않은 것이다. 이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남은 힘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그녀를 폭주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빌어먹을 변수 놈!”

격분하며 그가 씩씩거렸다.

결국, 힘은 힘대로 잃고 얻은 게 하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젠장 한동안 몸을 사리면서 힘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의 그는 간단한 최면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푸드드드득!!

닥치는 대로 주변을 파괴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그때였다.

철푸덕!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그의 가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 이이이!! 이 빌어먹을!!”

새똥이었다.

* * *

찬드라는 기분이 상당히 저조해져 있었다.

도망칠 생각은 사라져 버렸지만, 가끔씩 이 두 여자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저기 말이에요. 대체 뭐 하는 거예요?”

“뭐긴요. 새로운 레시피 개발이지. 얼른 그거나 마저 빻아주세요.”

찬드라는 손에 쥐어진 도구를 이용해 간이 절구 안에 있는 마늘을 전투적으로 빻기 시작했다.

알싸한 냄새 때문에 눈물이 주륵 주륵 흐르는 느낌이 든다.

척 봐도 정체불명의 재료들을 가득 모아놓고 보통이라면 하지 않을 짓을 하고 있는 둘이지만 그 표정만큼은 근엄하고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오. 이건 제법 괜찮네요.”

만족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새로 만든 소스를 시식해본 유리아가 만족스러워하자 륀느가 그녀를 따라 손가락으로 소스를 쿡 찍었다.

그리고는 한입에 먹어치운 뒤 중얼거렸다.

“당분함유가 상당. 맛은 좋으나 건강에는 좋지 않을 거라 분석.”

“음…… 그럼 여기서 이걸 좀 부어볼까요?”

그녀들이 만드는 소스는 마치 지옥에서나 기어 나올법한 거무튀튀한 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달달한 향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봐요.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찬드라 씨. 이제 그만하고 이리 주세요. 이제 완성만 남았으니.”

마치 좀 전의 일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양 자기 할 일만 하는 그녀들을 보며 찬드라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절구를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플라스틱 절구를 그녀들의 앞에 강하게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났다.

“됐어요. 말이 안 통하는 또라이들인 당신들에게 물은 내 잘못이죠.”

“어머, 그래도 미식연구회 회장이고 이제 당신의 상관인데에……”

“그런 사기 계약 난 몰라요!!”

격하게 외친 그녀는 그녀들을 뒤로한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그녀의 손에는 그녀가 사기당한 계약서가 쓰여 있었다.

계약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그녀가 납득하지 못할 뿐.

“몸은 괜찮아졌나?”

“……이 사기꾼…….”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찬드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정원에 놓인 썬배드와 파라솔 그 위에 누운 채 주스를 홀짝이고 있는 이 얄미운 인간 때문이었다.

“그 계약서 대체 뭐죠?”

“그러게 말이다. 나도 널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고민 많이 했는데. 유리아가 그렇게 해결할 줄 몰랐네.”

역시 가끔씩은 또라이 같은 전략이 먹히는구나 하며 킥킥거리는 데이비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데이비의 옆에는 두 명의 소녀가 똑같이 썬배드에 누워있었다.

한 명은 약간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수인족 소녀였고, 한 명은 밝은 금발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편안한 복장을 입은 채 누워 잠들어있는 두 사람과 다르게 데이비는 손에 든 주스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선 네 몸 안에 폭주하고 있는 건 억눌러놨다. 당장은 터지지 않을 거다.”

얄밉기 그지없지만, 그의 목소리에 장난기는 없었다.

“그리고 예상 못 했는데. 이렇게 계약 관계가 된 이상 당장은 죽지 말라고.”

-계약자 을인 찬드라는 계약자 갑인 데이비 올 라운과 특정 상황까지 복수를 잠시 보류한다. 여기서 특정상황은 상호 조율에 의해 조율 가능하다.

-계약자 갑인 데이비 올 라운은 계약자 을인 찬드라의 명확한 복수에 조력을 제공한다.

인간에 대한 파괴 행각을 원천 봉인 당한 꼴이다.

그 외에도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항목도 있었다. 처음 화를 냈던 것도 이 항목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그녀의 목적을 봉인 당한 꼴이었으니까.

-계약자 을인 찬드라는 계약자 갑인 데이비 올 라운에게 그녀가 가진 기억 일부를 제공한다.

-이에 계약자 갑인 데이비 올 라운은 계약자 을인 찬드라에게 폭주의 제어를 제공한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계약 따위…….”

“공정하게 발의된 거야. 솔직히 의심을 살까 봐 함부로 시도도 못 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사기를 쳐서 계약을 성사시킬 거라곤 나도 몰랐지.”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 스스로도 그 폭주가 마음에 들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계약이 발의된 거야.”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로드 오브 기어스는 공정한 계약 마법이야. 간단히 말해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게 되면 작동을 안 한다는 뜻이고.”

그 말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사실 계약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는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 당신이 대체 뭘 얻을 수 있는 거죠? 내 기억의 일부를 제공한다던데. 웃기지 않나요? 맞아요. 인정하죠. 그날 있었던 폭주는 내 의도와는 별개에요. 내가 수많은 인간들을 찢어 죽인 그날도 이랬으니까.”

막대한 힘을 지녔으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특질능력자.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날 있었던 일 자체를 후회하진 않았다.

그녀에게 인간은 배신과 증오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당신이 찾는 건 그 까마귀 가면이잖아요. 그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거라면 말해줄 수 있어요. 당신이 나를 죽여주기만 한다면야.”

굳이 계약서까지 쓸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귀찮게 기억을 볼 권리를 주고 폭주를 억누를 방법을 제공받는다.

불공정한 이중 계약이지만 반대로 보면 이게 정말 찬드라에게 손해인 계약인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직감인데 말이야. 그 까마귀 가면은 분명 너랑 관련이 있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넌 그놈을 기억을 못 하잖아.”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니 직접 보는 수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거지에 찬드라가 인상을 찌푸리려던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륀느와 유리아가 뛰쳐나왔다.

“까스까스까스!!”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유리아와 륀느가 건물 밖 정원으로 뛰어나와 엎드렸다.

그리고는 언제 준비했냐는 듯 능숙하고 빠르게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황당한 행동거지를 이해하지 못하길 잠시. 곧 집안 내부에서 막대한 양의 연기가 쏟아져나왔고 찬드라는 엇! 하는 사이에 그 연기를 그대로 흡입해버렸다.

“읍?!”

그리고는 눈물을 쏟으며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무너져내렸다.

본래라면 그녀의 힘을 이용해 막았겠지만 폭주 때문인지 힘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그대로 노출되어버린 꼴이었다.

찬드라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렬한 향에 대체 이 또라이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 입을 열었다간 이 미친 연기를 들이마실 거 같았다.

반면 데이비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썬배드에 누워있던 이들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 이 치사한 인간이!”

그제야 찬드라는 데이비가 그녀만 제외하고 방어장벽을 펼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캐하고 쓰고, 매스꺼운 냄새에 그녀가 헛구역질까지 하자 바닥에 엎드려 방독면을 쓰고 있던 륀느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배합의 실패. 륀느가 유리아의 과감한 전략을 낮게 평가.”

“아니에요. 이건 재료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분명해요.”

저 또라이들은 이런 사고를 치고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첫 만남부터 제정신이 아닌 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행동의 범위를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네요. 지구의 식재료와 티오니스의 식재료는 같아 보여도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건가?”

“양파를 너무 삶았다고 분석해. 륀느가 눅눅한 것을 낮게 평가.”

얼마 전 에반젤린이 탕수육에 소스를 가져다 부어버렸던 사실이 떠올랐는지 륀느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자 그럼 다시 해보죠. 찬드라 양 같이 하실래요?”

“……너나 열심히 하세요…….”

미식연구회에 들어가긴 했지만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후회가 되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그때였다.

그녀의 감각에 미묘하면서도 뭔가 거슬리는 것이 감지 되었다.

“이것들이…… 좋은 말할 때 이리 튀어와라.”

데이비는 사고를 친 둘을 응징하려는지 그녀에게서 관심을 거둬들였다.

이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담장을 넘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스르륵 하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까만 까마귀 가면의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은 저런 차림을 두고 역병 의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없이 그를 노려본 찬드라가 물었다.

“이번에 무슨 일이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까마귀 가면은 이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인간에 대한 복수심이 고작 그 정도였나?”

“하. 그건 당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닌데요.”

“왜 내가 준 팔찌를 쓰지 않는 거지?”

“미안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숴버렸어요.”

찬드라의 대답에 그가 흠칫 놀랐다.

“뭐라고? 미친 건가? 그게 있으면 네 불안정한 힘을 더욱 강화시켜줄…….”

“내가 당신의 무엇을 믿고 그런걸 찬다는 거죠?”

그녀의 질문에 까마귀 가면이 파르르 떨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래선 곤란하다고. 자네는 나를 믿어야 해. 나는 자네의 조력자야. 오래전부터 자네를 도와왔다 이 말이네.”

낮게 으르렁거린 그가 다시금 팔찌를 내밀었다.

“여분의 팔찌일세. 자네의 힘이 약해진 건 분명 하지 않는가. 나는 자네의 편이야. 그 인간의 곁에 있지 말게. 자네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야.”

찬드라는 현재 눈앞의 까마귀 가면보다 그녀를 폭주하게 한 원인을 더 찾고 있었다.

정작 데이비는 눈앞의 작자를 찾고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폭주할 힘까지 쥐여주었는데도 그런 꼴이라니. 화가 나는군. 정말로 화가나.”

그러던 중 그의 혼잣말에서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뭐라고 했죠?”

“뭘 말인가.”

“방금 나를 폭주시킬 힘을 줬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물음에 까마귀 가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네. 자네는 이렇게 무너질 존재가 아니니까. 내가 무리하게 힘을 준 것이네.”

그 말에 찬드라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결국, 그녀가 찾는 그녀를 폭주시킨 범인과 카페를 터뜨린 범인 모두가 그였다는 게 확실해진 꼴이었다.

“겁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났네요.”

그녀의 기세가 서늘하게 변하며 주변이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힘이 제약당해도 그녀의 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찬드라의 싸늘한 중얼거림에 그가 양팔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진정하게. 자네는 아직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 나는 자네의 편일세.”

그의 말에 찬드라가 그를 노려보았다.

“언젠가 다 이해할걸세. 나는 자네의 편이지.”

그가 양팔을 펼쳤다.

“벌써 잊었는가. 인간들이 자네의 권속과 가족들을 자네들의 눈앞에서 모조리 찢어 죽인 것을. 또 잊었는가. 자네가 가장 사랑한 인간 남자가 자네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눈앞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숲을 불태운 것을 말이네.”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 모습에 찬드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분명 기억은 있었다.

-레온, 제발 그만둬요! 제발!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대체 왜 이러는 거죠?! 왜 날 아프게 하는 건가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막은 뒤 수많은 그녀의 권속과 가족들을 무참히 학살한 인간들의 모습을 말이다.

그때 그녀는 미쳐버렸고, 자신들을 찾아오는 모든 인간을 찢어 죽여버렸다.

그랬다. 분명 있는 기억이었다.

숲을 사랑한 그녀는 숲에서 권속들과 함께 평화를 누렸다.

어느 날 그녀는 쓰러진 한 인간 남성을 구해냈고, 그를 돌봐주던 과정에서 그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분명히 있는 기억이었다.

그리고, 마치 장면이 전환되듯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인간이 그녀를 배신하고 영혼의 계약을 맺은 그녀를 무력화시켰다.

그를 믿고 사랑했기에 내어준 권한이 그녀를 옥죈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인간들을 불러들여 숲을 불태우고 학살을 자행했다.

권속 중엔 어린 숲의 종족들도 있었다.

그 학살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던 그녀는 그대로 미쳐버렸고, 결국 인간에 대한 극한의 배신감과 증오로 가득 찼다.

머릿속이 검게 묽든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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