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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76화 (1,176/1,559)

제 1176화

바짝 얼어붙은 공기가 차갑게 내리깔린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약 3만여 명이 모여있는데도 이렇게까지 채팅창이 고요했던 적이 있던가.

뜨드드드득…….

기이한 소리와 함께 침대 아래에서 새하얗고 창백한 손이 뻗어져 나왔다.

얼굴을 알아볼 순 없었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 전부를 가리고 있었으니까.

“아…… 아으아…….”

그대로 굳어버린 채 그 몰골을 보고 있던 점순이의 입에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벅…… 저벅…….

천천히 기어 나오듯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점순이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 이거 장난이지?! 장난이라고 말해 어서!”

귀신 따위 무서울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에반젤린의 그 섬뜩한 그림을 본 뒤라 알 수 없는 공포심이 그녀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튀…… 튀어!]

[일단 튀어!]

이윽고 얼어붙은 채팅창이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도, 에반젤린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시청자들과 접촉한 점순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의 출현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완전히 얼어붙은 듯 도망치지도 못했다.

스르르륵…….

이윽고 침대 안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이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기괴하게 몸을 일으켰다.

추욱 늘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완전히 굳어버리게 만드는 눈빛은 그 머리카락 사이 너머로 분명히 보였다.

“아…… 아아아…….”

이윽고 얼빠진 소리를 내던 그녀가 그대로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일개 군단 함대를 순식간에 제압했던 강자치고는 너무 허무한 기절이었다.

그대로 기절한 채 쓰러져 버리는 그 모습을 귀신은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귀신의 시선이 캠으로 향했을 때. 부지런히 올라가던 채팅창이 다시 얼어붙었다.

그들로서도 이런 상황은 도저히 예상 못 한 범위였기 때문이었다.

공포영화에선 이렇게 되고 나면 다음날 그녀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뭐 이런 뉴스가 나돌만한 상황이었다.

저벅…… 저벅…….

이윽고 천천히 다가온 귀신은 기절한 점순이를 말없이 바라보다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손을 천천히 뻗었다.

이에 모두가 숨죽이며 사태를 지켜보던 찰나.

스르륵…….

[어?]

[엥?]

갑자기 귀신이 손을 뻗더니 기절한 점순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방송은 무시한 채 그녀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고는 이불까지 덮어주는 기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황당해하는 이 상황에서 귀신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할 수 없고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그녀는 조용히 어디론가로 향하더니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흔들의자를 침대의 곁에 놓고 편히 앉았다.

그리고는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귀신이 나타났다. 너무 황당한 그 모습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지금 내가 헛것을 보나?]

[이게 뭔 상황…….]

덜컥.

그때 방송실의 문이 열리며 시청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방장! 튀어!]

[방장!]

놀란 시청자들이 두 번째 희생자가 될 에반젤린을 걱정하며 채팅을 빠르게 올렸다.

하지만 모두의 얼이 빠지게 만드는 에반젤린의 한마디가 그녀의 작은 입에서 흘러나왔다.

“에나벨. 장난 치지 말고 원래대로 돌아와.”

그 한마디에 흔들의자를 끼익끼익 흔들던 그녀의 창백한 피부에 순식간에 혈색이 돋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려져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등 언저리까지 오는 길이로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이후 마지막으로 뭉툭하던 그녀의 귀가 엘프처럼 빠르게 길어졌다.

[????]

[??]

[????]

순식간에 갈고리가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말없이 기절한 점순이를 보던 에반젤린이 씨익 웃었다.

“내가 복수를 끝낸 줄 알았죠? 어림도 없어.”

음산하게 웃으며 에반젤린이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에나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러분 소개할게요. 아빠가 만든 생체 골렘인 에나벨이에요. 취미는 저렇게 귀신분장을 하고 장난을 치는 거예요.”

그 한마디에 얼어붙은 채팅창이 황당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방장. 이게 무슨 상황…….]

[난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당황하는 그들을 향해 에반젤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에나벨은 제 호위에요. 몰랐죠? 솔직히 저도 침대맡에 들어가 있을 줄 몰랐지. 얘가 겉보기엔 평범한 엘프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골렘이에요.”

골렘이라는 한마디에 사람들의 반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니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무슨 콘텐츠가 이렇게 살벌하냐…….]

[아니 그 와중에 복수극 실화임?]

“당연하죠! 설마 그때 그걸로 제 분노가 사그라든 줄 아세요?! 어림도 없지.”

단호하게 말한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제일 쉬운 점순이는 시작일뿐이에요. 륀느와 유리아 모두 복수는 끝나지도 않았어.”

[와…….뒤끝…….]

[그걸 아직까지 꽁해져 있었던 거임?]

“아니 뒤끝은 무슨 뒤끝이에요. 이 정도는 기본 아니에요? 난 그래도 아빠처럼 질척질척하게 괴롭히진 않아요!”

에반젤린의 항변에도 시청자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응 부전여전이야.]

[지 아빠 쏙 닮았네 진짜 ㅋㅋㅋㅋ]

아빠를 쏙 닮았다는 말에 잠시 멍하니 있다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던 에반젤린이 흠칫 놀라며 제 입을 찰싹 때렸다.

“흥. 다…… 닮긴 누가 닮았다는 거예요! 맨날 술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 진짜로 미워!”

굳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녀가 데이비와 닮았다는 말 자체가 그녀에게 큰 안도로 다가온 것이다.

그녀는 데이비는 물론, 그 누구와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심 그 일에 대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귀신. 에나벨이 무표정한 얼굴로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애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와. 진짜 솔직히 소름 돋아서 지릴뻔했음. 어? 뭐야 내가 언제 유자차를 쏟았지?]

[아니 근데. 진짜 골렘임? 내가 아는 그 골렘? 와 티오니스 성자 이 양반. 무슨 인체연성의 극한까지 갔나.]

“응? 왜 놀라요?”

[???? 그럼 안 놀아라? 아무리 봐도 그냥 사람, 아니지 엘픈데?]

[그러게 누가 골렘이라 생각하겠음.]

“이상하네. 여러분들은 이미 골렘 봤잖아요.”

그 한마디에 다시 갈고리 즉 물음표가 미친 듯이 올라왔다.

[이미 봤다고?]

[이건 또 뭔솔?]

[방장 술 마셨어?]

“아니…… 륀느도 골렘인데…… 생체 골렘. 에나벨의 원형. 물론 륀느는 자아를 가진 골렘이긴 한데…….”

그녀가 내던진 한마디는 굉장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아 됐고. 이제 남은 둘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할거에요. 물론 지금은 힘들지만.”

[엄마…… 난 방장하고 척 지기 싫어졌어.]

[쟤 뭐야. 무서워…….]

[독하다 독해ㅋㅋㅋ]

기절한 점순이는 창백한 표정 그 자체였다.

에반젤린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바닥에 있는 박스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고생했어, 에나벨. 여기 맛감자야.”

가만히 흔들의자를 끼익끼익 흔들던 에나벨이 귀신같이 일어났다.

륀느처럼 자아를 가진 게 아닌 흉내일 뿐이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쟤 정말 자아가 없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으니 말이다.

* * *

에반젤린이 제 아빠를 닮은 뒤끝을 보여주고 있을 무렵.

하인스 영지에 있는 하인스 아카데미에서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교수님. 이거 샤쿤탈라에서 왔어요.”

검은 머리의 예쁜 소녀가 건내는 서신을 받은 앨리스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고마워요. 요시아 프랑스소.”

“요새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혹시 체력회복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라도 걸어드릴까요?”

“이래 봬도 저 신학 교수예요. 신성력은 아직 현역이구요. 요시아 양의 힘은 제게 상극 아니었나요?”

“아. 그렇네요.”

요시아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런데 무슨 내용이에요?”

“전에 샤쿤탈라에서 그 인간에게 시험문제를 요청한 적이 있어요.”

시험문제!

요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시아 프랑소스의 모교는 샤쿤탈라 마법 아카데미였다.

당시 낙제 반에 있던 천재 요시아에게 있어서 데이비와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 태생, 그 외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갈아엎어 버렸다.

“샤쿤탈라라…… 그립네요.”

지금이야 샤쿤탈라를 벗어나 이곳에서 대학원생 노릇을 하고 있지만 턱 까놓고 본다면 이곳에서의 일은 그녀에게 제법 보람이 넘치는 일이었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이사장이 밀어주니 학교 발전 속도가 가히 남다를 정도다.

웃긴 노릇이었다.

“그래서요? 선생님이 문제를 주신 거예요?”

“뭐…… 일단은요.”

담담하게 중얼거리며 그녀가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인간이 준 문제는 총 세 개예요. 중등부 시험문제인데, 한번 풀어볼래요?”

중등부? 그 정도면 천재 마법사이자 현 뱀파이어 로드인 그녀에겐 닭 모가지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일 것이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데에 한해서 정말 철저한 분이니까요. 쓸데없이 난이도를 도핑 시키…….”

말을 하며 시험문제를 보던 요시아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되었다.

닭 모가지가 그냥 닭 모가지가 아니고 싸움닭의 모가지였다!

“나는 마법에 대해 잘 몰라요. 어깨너머로 들었을 뿐. 그래서 이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잠시만요 교수님.”

혼란스레 쪽지를 보던 요시아는 손을 허공에 뻗더니 한쪽에 있던 깃펜을 빠르게 손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쪽지를 책상 위에 올리고 빈 종이에다가 공식을 빠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비록 낙제 반에 있었다곤 하지만 그녀는 엄연한 천재였다.

향후 5년 안에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아도 될 정도의 유망주.

데이비라는 존재가 워낙에 괴랄해서 문제지 이곳 하인스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은 하나같이 그 내력이 쟁쟁한 이들이 많았다.

그런 요시아인 만큼 그녀가 고작 중등부의 문제를 놓고 시험을 못 푼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데이비가 만든 문제는 총 다섯 개.

요시아는 처음부터 빠르게 하나를 풀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하지만 점점 속도가 느려졌고, 급기야 네 번째 문제에선 눈에 띄게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진짜 재능낭비도 적당히 해야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요시아가 책상을 내리쳤다.

“그래서…… 샤쿤탈라에선 뭐라고 해요?”

문제를 풀기를 멈춘 요시아가 앨리스에게 질문을 던지자 커피를 음미하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긴 뭘 어째. 중등부 문제에 무슨 희대의 난제를 넣어놨냐고 항의가 제대로 들어왔지.”

그들이 문제를 요청한 것은 교류의 일환이다.

절대로 이렇게 못 풀만 한 문제를 주어선 곤란했다.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조금 불안한데요.”

“맞아요, 그러니까 요시아가 직접 가서 그거 풀이해주고, 문제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주고 오세요.”

그 한마디에 요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교수님. 저 대학원생…….”

“응. 대학원생이잖아요.”

그 한마디에는 뭐가 이상하냐? 라는 의문이 담겨있었다.

“그 인간이 그러던데요. 대학원생은 교수가 냉동 아티펙트에 코끼리를 넣으라고 해도 해오는 자들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서부의 왕국 출신 왕녀, 테라리아 왕국의 공주님도 고르네오 남작의 대학원생으로 들어간 이후 매번 만날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는 걸 들은 바 있었다.

“…….”

“해줄 거죠?”

앨리스의 미소에 요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즉.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 미친 문제를 그녀가 풀고 의도를 다 찾아내야 했다.

“안 되겠다. 선생님 피를 좀 빨아야겠어.”

요시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샤쿤탈라와 하인스 아카데미의 악연은 여기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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