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2화
“방송 시작할게요.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왜 우리 버려?]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몰카라더니 진짜임?]
깜짝파티 이후 방송을 한 번도 켠 적이 없는 에반젤린이었다.
처음엔 입술을 댓 발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놀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너무 즐겁게 놀아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세히 이야기를 안 했네요.”
잠시 고심하는 듯하던 에반젤린은 헤헤 웃어 보였다.
“깜짝파티였데요. 저도 완전히 속아 넘어갔지 뭐예요.”
[무슨 몰카 스케일이…….]
[어이가 없네 ㅋㅋㅋㅋ]
[아니 그 난리를 친 게 꼴랑 파티 때문이라고? 미친 거 아님?]
[XXXXX]
“어? 패드립은 안 돼요.”
띠링!
어이가없네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처음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곳이었는데요. 점점 정도 들었고, 아빠가 저를 위해서 만든 섬이라고 별장까지 있어요.”
[뭔 스케일이 저래. 딸내미 선물로 별장하고 섬을 태워?]
[미친 진짜 ㅋㅋㅋㅋㅋ 세계 대부호도 그렇게 까지는 못하겠다 ㅋㅋㅋ]
[미쳤습니까 휴먼?]
완전히 사는 세상이 다른 그녀의 행동거지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빠가 직접 섬을 만든 건데요 뭐.”
[그게 더 어이없네…….]
[나도 섬 하나 줘 나도 섬 하나 줘 나도 섬 하나 줘 나도 섬 하나 줘.]
“도배 밴 할 거예요.”
그녀의 귀여운 위협에 도배를 하던 사람들이 쏙 들어갔다.
“어쨌든. 재밌었잖아요.”
[우리야 꿀잼이긴 했지.]
[ㄹㅇ ㅋㅋ]
[ㄹㅇ ㅋㅋ]
[근데 솔직히 중반부엔 좀 철렁하기도 했음. 대체 몇 명이 속아 넘어간 거임.]
[ㅋㅋ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말이야.]
[네, 다음 허언증.]
일부는 몰래카메라의 정도가 지나쳤다고 말하고, 일부는 그래도 재미있었으니 되었다는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보다 여러분들에게 소개해줄 아이가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바닥에 놓인 상자를 꺼내 올렸다.
그러자 물음표가 빠르게 올라온다.
“짜잔.”
투웅!
이윽고 상자를 개봉하기가 무섭게 그 안에서 어떤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 올라왔다.
[????]
[뭐야 저게]
[슬라임?]
[ㅁㅊ 몬스터임?]
“몬스터라뇨! 레인보우 슬라임은 이로운 생명체에요. 슬라임류이기는 하지만 보통 슬라임과 다르게 유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요.”
오색으로 반짝거리는 슬라임을 쭉쭉 늘어뜨리며 그녀가 설명했다.
“아빠한테 든 건데요. 레인보우 슬라임을 보면 1년 동안 정말 운이 좋다고 해요. 티오니스 동화책에선 유명한 존재라고요.”
흔히 설화에 나오는 보면 좋은 징조라 불리는 길조 같은 의미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인 듯 보였다.
[ㅋㅋㅋ 구라 ㄴㄴ]
[전설은 전설일 뿐 믿으면 안 되지.]
[운이 좋아지는 게 어딨어 ㅋㅋㅋ 마나는 킹정이지만 운 스탯은 에바지.]
[에바지.]
[에바.]
[삼진 에바로 기각되었습니다.]
“아니 왜 못 믿어요?! 진짜라니까?”
그녀가 실실 웃어 보였다.
“아 물론 보기만 했다고 1년 동안 운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좋은 징조라는 건 분명해요.”
[그래서 효과는 있음?]
[솔직히 이놈의 방송은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음.]
“우선 여러분들에게 이 레인보우 슬라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보여줄게요.”
그녀가 화면을 조작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켰다.
[???]
[????그림 안 그리고 갑자기 게임?]
“오늘이야말로, 강화의 날이에요.”
그녀의 눈이 불타올랐다.
“반드시 10퍼센트 안으로 강화 성공시킬 거야.”
의욕을 불태우며 그녀는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의 캐릭터를 빠르게 접속했다.
얼마 전부터 절제와 함께 시작한 게임이었다.
다만 강화 운이 워낙에 안 좋았던 그녀였던 터라 흔히 말하는 폭사를 많이 당하는 게임이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 이제는 미신을 믿네 ㅋㅋ]
[진짜로 운이 좋으면 복권을 사라고 아 ㅋㅋㅋ]
[아니 애초에 다이아 수저한테 뭔 복권임 섬 하나가 쟤 건데.]
[너무 사는 세상이 다르니까 질투도 안나네 아 ㅋㅋㅋ]
[진짜 무슨 티오니스 성자는 신이라도 되나.]
“헤헤 우리 아빠 능력 좋죠?”
[저래놓고 맨날 아빠 보면 아빠 미워 연발하지. 어휴 요망한 년.]
띠링!
사수자리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밴을 하다 보니 또 별자리였다.
“어휴. 저놈의 별자리…….”
[ㅋㅋㅋㅋㅋ 대접 못 받는 회장님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저 인간은 매번 밴 당하면서 어떻게 나타나는 거임, 대체?]
[저거 회사에서도 포기함.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다고 함. 내가 들음]
[응 찌라시~]
“됐고! 자 강화 시작할 거예요. 일주일 동안 모아온 재화 싹 다 쓰면 10강은 더 할 수 있을 거예요.”
[???? 양심 어디?]
[방장, 강화확률이 3퍼센트야. 근데 뭔 10번을 강화한다는 겨. 한번 성공해도 개이득이겠구만.]
사람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사실 레인보우 슬라임이 운을 좋게 해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직 겪어본 바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적은 레인보우 슬라임을 자랑할 겸 게임이나 즐길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자! 시작할게요!”
강화 시도 가능 횟수는 총 20번.
과연 얼마나 성공할지 기대감에 가득 찬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이 게임을 즐기면서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비웃음을 던질 뿐이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나?]
[중대장님, 행복 회로가 타고 있습니다!]
“아 조용히 해요! 잘 봐요. 오늘의 저는 예전과 달라요. 레인보우 슬라임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당당하게 말한 그녀가 강화 버튼을 눌렀다.
투웅!! 묵직한 사운드와 함께 긴장되는 순간이 이어졌다.
성공확률은 3퍼센트. 사실상 절대 한 번에 붙을 리 없는 확률이었다.
따라따라딴!
하지만.
“어?”
[????]
[???]
[???????]
의외의 결과가 모두를 잠식했다.
정작 강화 버튼을 누른 에반젤린조차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번에 성공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조차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그 순간이었다.
“어? 성공했네요?”
[아니 미친 사기 치지 마.]
[사기치지마 사기치지마 사기치지마 사기치지마 사기치지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지지만 그럴수록 에반젤린의 콧대만 높아졌다.
“흥. 봤어요? 이게 레인보우 슬라임의 힘이라고요. 잘 봐요 한 번 더 성공한다니까요?”
똑같은 3퍼센트 확률 또다시 강화 버튼을 누른다.
투웅!! 따라딴따라딴!!
그리고.
“어어?”
이번엔 에반젤린이 덜컥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
[?????]
[???]
[진짜라고? 미친 뭐 이런 게 다 있어.]
[눈나 그거 나 빌려조 눈나 그거 나 빌려조.]
[아니ㅡㅡ 버그 신고합니다.]
현 상황을 보는 시청자들도 믿을 수가 없다며 부들부들 떨었다.
운이 좋아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세히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그녀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아니던가.
그녀는 홀린 듯 또다시 강화 버튼을 눌렀다.
확률은 1.5퍼센트.
콰직!!
역시 실패였다.
“아…….”
묘한 아쉬움에 그녀가 탄성을 흘리자 시청자들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이것까지 성공했으면 진짜 신고했다.]
[ㄹㅇ ㅋㅋ]
[아 ㄹㅇ ㅋㅋ만 치라고 ㅋㅋ]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그녀는 대뜸 강화 버튼을 다시 눌렀다.
투웅!! 딴따라라딴딴!!
경악스러운 결과가 벌어졌다.
에반젤린이 감격한 듯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니 미친 진짜 사기 치지 마ㅡㅡ]
[신고한다 진짜.]
* * *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
나는 말없이 연못 속에 담긴 알을 바라보았다.
운이라는 요소는 참 기묘하기 그지없다.
운명의 틀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비틀 정도의 힘을 지닌 생명체?
말도 안 되는 소리.
각성자들도 자신들의 상태 창을 통해 여러 스탯을 보지만 운 스탯 같은 말도 안 되는 건 보지 못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친다면 이 슬라임이 모종의 힘을 이용해 한 개체의 운명을 조정한다는 소리였다.
“흐음…….”
헛소리.
그딴 게 가능했으면 과거에 그런 개고생을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반대로 이 미친놈의 슬라임이 여신의 축복을 그득그득 끌어안고 있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했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운이 좋아진다는 것도 단순 미신일 뿐이다.
물론, 그 미신만으로도 충분히 돈이 될 가능성은 크지만 말이다.
우우우웅…….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해변에서 한참 즐기고 돌아간 알하자드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데이비. 내 친구, 부탁이 있습니다.
그의 전화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알하자드.”
-그 레인보우 슬라임인지 뭔지 하는 알 하나만 분양해주면 안 됩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본능적인 직감이 번뜩였다.
“에반젤린이 뭐 사고 쳤습니까?”
-사고는 아닌데 음…… 직접 보는 게 좋겠군요.
그의 말에 나는 스마트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꾼 뒤 영상을 틀었다.
실시간으로 방송 중인 에반젤린이 방안을 뛰어다니며 뛸 듯이 기뻐하고 있고 그런 그녀의 어깨에 앉아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있는 레인보우 슬라임이 보였다.
겉보기엔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보이지만 미묘하게 녀석의 표면이 반짝거린다는 게 느껴졌다.
“…….”
시청자 채팅창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아니 이딴 게 어딨어. 진짜 신고해야 돼.]
[문제가 없긴 뭐가 없어. 3퍼센트 이하 성공률을 5번을 내리 꽂는 게 말이야 막걸리야.]
[누군 저거 한번 강화할라고 30만 원 40만 원 박고 있는데…….]
[아니 나는 강화보다 액세서리 증폭이 더 황당하네…… 아니 스킬 증폭이 2레벨 2레벨 둘 다 꽉꽉 채워서 성공하는 게 진짜 말이 돼?]
[방장 해명해애애애애!!]
[유 착 관 계]
[해]
[명]
[해]
[명]
“에헴! 이게 진짜라구요. 자 그럼 확인했으니 우린 이제 그걸 해봐야죠?”
[그거 또 뭐 사기 치지 마.]
“헤헤. 뽑기의 타임!”
게임에 대한 건 잘 모르겠지만 에반젤린이 확률에 관해서 씩씩거렸다는 말을 륀느에게 들은 바 있다.
85퍼센트 확률도 다 실패하는 극악의 콘텐츠라며 넋이 나가버렸던 표정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분명 있었다.
혼돈 그 자체가 되어버린 채팅창을 보던 나는 영상을 살짝 앞부분으로 당겼다.
그리고, 에반젤린이 레인보우 슬라임과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달았다.
-데이비?
“이거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가설이었다.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고요?
“예, 알하자드. 혹시 운명 같은 걸 믿습니까?”
-흐음…… 저는 믿지 않는 편입니다.
“반은 맞아요. 운명이라는 게 개개인의 흐름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이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운이 좋고 나쁘다는 건 그 흐름에 간섭한다는 뜻인데…….”
간단히 설명해서 레인보우 슬라임으로 인해 운이 좋아지면 본래 균형이 맞아야 하는 불운이 뒤로 밀려서 언젠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그게 모서리에 발가락을 찧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굉장히 불행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마냥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티오니스에서는 이로운 존재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제가 확신을 못 하는 이유가 그거 때문입니다.”
흐름이라는 게 무조건 대상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순 없다.
불운과 행운이 공존하고 균형을 이룬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외적인 요인으로 행운만이 남는다?
그럼, 그 불행들은 다 어디로 가는데?
“아야!”
그때 에반젤린의 방송에서 그녀가 책상 모서리에 발을 찧고는 울상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무언가 시커먼 슬라임 같은 것이 도망치듯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뭐야 저건?”
순식간에 놈이 있던 위치까지 움직인 나는 좀 전까지 분명 있었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방금 본건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