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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09화 (1,209/1,559)

제 1209화

언제부터였을까. 주변의 인적이 드물어진 것은 말이다.

싸늘한 공기가 오가는 틈 사이에서 가면을 쓴 사내는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본다.

“호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수확인데…….”

그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당장이라도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레이나는 묵묵히 자신의 손에 든 간식을 우물거렸다.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나와 그런 나를 무시한 채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로 품 안에서 꺼낸 서류를 훑는 그의 사이에는 딱히 위험천만한 힘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놀랍군. 제국에서 현재 수배 중인 지명수배자 셋을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제국군 수백을 죽인 평원의 마녀에. 제국의 자산을 반란군에게 빼돌린 슈네리아 영애. 거기에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 한 테러리스트…… 흐음…….”

그가 고민한다. 동시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음을 깨달은 슈네리아가 황급히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찰칵!!

그것은 휴대용 마도구로, 관통능력이 높은 피어스 마법이 인챈트 된 제법 쓸만해 보이는 장비였다.

파악!!

순식간에 그의 심장을 겨누고 마도구를 사용하려 한 그녀였지만 그래 봐야 일반 영애에 불과한 슈네리아의 속도를 그가 따라잡지 못 할 리가 없었다.

독특한 금속 장식이 된 안대 같은 가면으로 얼굴을 그리고 있던 그는 능숙할 정도로 빠르고 신속하게 슈네리아의 팔을 잡아 그녀를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 행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호…… 제법이네.”

가면 너머로 그가 환하게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조금만 늦었어도 나를 공격할 생각이었군?”

내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자 그가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걸 어쩐다…… 사실 수색 중이라곤 했지만 나는 땡땡이를 치는 입장이었는데.”

“그럼 가던 길 가는 게 어때. 나는 분명 경고를 했던 거 같은데.”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고?”

“그래. 황제가 죽는 거로는 만족이 안 됐나?”

내 물음에 슈네리아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러났다.

“흐음…… 그래. 네 죄목은 황제 폐하 암살시도였지. 한데 이상하군. 폐하께선 건재하신 데. 넌 대체 누굴 죽였다는 거지?”

“말장난을 치면 경고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나?”

“아직 사태파악을 못 하는 건 네 녀석 같은데.”

쩌어엉!!!

그가 발을 살짝 구르기가 무섭게 주변에 엄청난 압박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나마 보이던 인간들이 하나둘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폐하의 곁에 호위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네게 두 번의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렇단 말이지.”

사실 나차 제국이 지구와 전쟁을 벌인다면 그건 그들의 몫이다.

내가 나설 명분 따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들을 찾아와 경고한 건 두 가지 때문이었다.

“그럼 귓구멍 파고 잘 들어. 네가 모시는 황제에게 가서 잘 전하라고. 첫째. 내가 목숨을 끊으러 찾아간 건 어디까지나 내 은인의 목숨을 노렸기 때문이야. 둘째. 내가 만든 차원통로. 함부로 쓰지 마라. 그건 인간들 넘어 다니라고 만들어놓은 통로가 아니야.”

내 경고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건 직접 전하는 게 좋지 않겠나? 저항하지 않으면 다치지 않게 데려갈…….”

말을 하던 그가 피식 웃었다.

“까 하는데. 어때 저항이라도 해보겠나?”

이윽고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주변을 묵직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나를 사용하는 걸 넘어 굉장히 참신한 방법의 압박이었다.

레이나와 나의 경우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슈네리아에겐 견디기 힘든 듯 보였다.

그녀는 현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보려는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점점 강해지는 압박 속에서도 퇴로를 찾아 헤맨 것이다.

그보다 조금 화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경고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영 시원찮았나.

그때였다 갑작스레 레이나가 내 옷깃을 잡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두려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검게 변하고 있어요…… 안 돼요.”

두려움을 드러내는 그녀의 말에 나는 대치하던 것도 잊고 내 몸 안의 힘을 살폈다.

아주 미약하지만, 밸런스에 균열이 생긴 게 보였다.

뭔가 방금 행동에 트리거가 있었던가.

“조심해요!!”

놀란 슈네리아의 외침과 함께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지근거리까지 파고든 가면을 쓴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진짜 귀찮게 하네.”

콰앙!!!

내 빈틈을 노리고 접근하는 그를 향해 손을 뻗는다.

우선권은 그에게 있었지만 내 손은 이미 그의 얼굴을 낚아챈 후였다.

“어?”

콰앙!!!

그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닥이 박살 날 정도로 강하게 처박힌 그는 강렬한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는지 추욱 늘어졌고 나는 그런 그의 얼굴에 쓰인 가면을 가볍게 노획했다.

“야. 이거 튼튼하고 좋다 이쁘기도 하네. 쓸래?”

“흐음…… 제 취향은 아니에요.”

아쉽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나는 멍하니 있는 슈네리아에게 가면을 내밀었다.

“가지고 다녀. 혹시 알아? 쓸데가 있을지.”

“당신 대체…….”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집행대라구요! 그 강한 힘의 상징인 집행대를 이렇게 단번에…….”

그 말에 레이나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아하핫!”

레이나까지 이렇게 웃을 정도면 말 다 한…… 게 아니구나.

“레이나. 성격 변했다.”

“아 이런, 저도 신경 써야겠네요.”

그녀가 손으로 제 입을 찰싹 때리며 표정을 굳혔다.

내 변화에 따라 그녀도 변하는 것인가. 이 변화의 종착지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타나토스나 넬타리드의 반쪽처럼 극한의 증오만이 남게 되겠지.

사실 좀 궁금하긴 했었다.

대체 그 둘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완전히 잠식당한 타나토스와. 프리아라는 이름의 기억도 나지 않는 내 전생의 존재만을 보고 끝까지 버텨낸 넬타리드.

둘 다 초창기엔 그렇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우…… 웃지만 말고 말을 해봐요!”

슈네리아의 물음에 내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급한 거 아니었나?”

“아…… 그건…….”

“됐고, 어딜 가려는지 모르겠다만 한참 걸리지?”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만난 그곳으로 가야 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허공을 가리켰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시끄러워질 것도 없다.

“이거 보여?”

“뭐가요?”

스걱!!

내가 허공에 손을 긋자 균열이 일어난다. 그것을 슈네리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 차원통로?! 어떻게 장비도 없이 사람이…….”

“그건 애초에 사람 지나가라고 만든 통로가 아니야…….”

한번 갔던 장소 좌표 특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 기행에 놀란 듯 그녀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대체…….”

“어서 가봐. 아니지 같이 가자. 여기 볼 일은 더 없으니까.”

“괘……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딱히 그래 보이진 않는데.”

내 물음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제 동생들에게서 긴급 구조신호가 왔어요…….”

그녀가 말한다.

“아무래도…… 제국군에게 잡힌 것 같아요.”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레이나가 내 팔을 잡았다.

“도와주러 가요.”

제국과 그녀를 저울질하면 어느 쪽이 기울어져 있는지는 명백했다.

“그럼 가볼까?”

“하지만 위험할 거에요.”

“너 혼자 보내면 다르고?”

“그건…….”

“마침 황실에도 볼일이 있었으니 가자고.”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부담을 줄까 봐 홀로 떠나려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하면 그녀 혼자서 제국군에게 붙잡힌 거로 추정되는 동생들을 구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것이다.

“부탁해요. 내 동생들은 이제 세상에 남은 유일한 소중한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으면 얼른 들어가.”

이에 나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균열 너머로 발을 내딛는 그녀 다음으로 레이나가 사라진다.

이후 나는 바닥에 쓰러진 사내를 흘끗 보고는 피식 웃음을 던졌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

한차례 충동에 휩쓸려 생긴 균열은 본래의 형태로 안정되고 있었다.

* * *

삼환수왕중 하나이자 창공의 폭풍 용왕이라 불리는 존재. 흑룡 메가로드리아는 현재 공물이랍시고 바친 거대한 방사능 지대에 찾아온 인간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데이비가 한바탕 엎어놓았으니 겁이 없는 인간이 아니고서야 굳이 그와 척을 지진 않겠지.

데이비와 반목하지만 않으면 사실 메가로드리아로썬 그들이 누구와 싸우건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 마당에 최근 잘 먹기 힘든 고농축 방사능 지역을 안내해주는 인간들에겐 제법 고마움을 느끼던 참이었다.

이 맛있는 걸 인간들은 견디지 못하니까.

당연히 깊고 진한 맛에 만족감이 차오른 메가로드리아는 기분상 그들에게 마치 선언하듯 말했다.

그래 도움이 필요하면 한 번 정도는 들어주마.

당연히 인간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지금 찾아온 것을 보니 그 부탁을 하러 온 것이리라.

“아아…… 수호신의 가디언이시여.”

그 수호신인지 나발인지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별로 좋은 호칭은 아니지만, 방사능을 원 없이 먹어치운 탓에 기분이 좋아져 있는 메가로드리아는 별말 하지 않았다.

[말하라 단명종아.]

“외람되오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은 건재한지요.”

[그렇다. 허무맹랑한 것만 아니라면 까짓거 들어주지.]

기분이 좋으니까!

이 정도는 해주마!

자신의 계약자인 데이비는 한동안 방사능은 입에도 못 대게 했으니 불만이 쌓여있던 참이었다.

까짓거 인간 몇몇 혼내주고 이런 맛있는 간식을 챙길 수 있다면 이게 용생이지.

만족한 듯 그가 말하자 제국의 귀족이 조용히 언급했다.

“하면 저희 제국을 위협하는 적이 나타났을 때. 그때 나서주실 수 있으십니까.”

별로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다. 인간은 그래 봐야 인간. 데이비 같은 괴물이 아니고서야 상관은 없으리라.

물론 제국은 데이비와 한번 반목했지만, 미친놈들도 아니고 그 일을 겪고 또다시 덤벼들 리는 없을 터였다.

실제로 경고랍시고 인간의 지도자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으니까.

그는 약조를 해주며 만족스레 응축시킨 방사능을 모조리 흡수했다.

그야말로 대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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