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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10화 (1,210/1,559)

제 1210화

나차 제국에게 조국이 점령당한 뒤 부모님이 처형당했다.

당시 세상을 밝게 보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를 꿈꿔왔던 귀족가의 영애는 눈앞에서 부모님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침략국에 점령당한 패전국의 말로는 뻔한 일이다.

영리한 그녀는 부모님에 죽음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가문에 있던 수많은 자금을 이용해 그녀는 뇌물을 찔러넣었고, 끝내 제 동생들의 목숨은 살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둘밖에 없는 가족. 그 둘을 위해서 그녀는 목숨도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했던 부모님을 죽인 나차 제국의 황제에게 향하는 증오를 지울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직 남은 저항 세력들에게 손을 빌려주었다.

처음 그녀를 매국노라 욕하던 이들은 그녀의 진심을 눈치챘고 이내 그녀와 손을 잡고 암암리에 제국을 붕괴시킬 준비를 해나갔다.

아무리 미약한 힘이라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댐이 부서질 터.

특히 급성장한 거대 제국이라면 더더욱 그 균열은 클 수밖에.

거대한 댐이 부서지는 데에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작은 금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꼬리가 너무 길었네.”

나는 피투성이 지옥이 펼쳐진 지하 건물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하…… 안돼…….”

그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가 황급히 시신들을 뒤졌다.

아마 제 동생들을 찾는 것일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시신들 사이에 그녀의 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은신처에요.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건지…….”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렇게 들킨 이상 쫓기게 될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자산을 넘긴 뒤 제국에서 훔쳐낸 차원통로를 이용,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시행되기도 전 은신처가 발각. 모조리 살해당한 것이다.

“대체…… 어째서…….”

“배신자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시체 중 하나를 가리켰다.

“리더!”

그제야 어느 정도 냉정함을 찾은 그녀가 쓰러진 시신에 다가갔다.

“여기 상처 보여?”

“이 상처는…….”

“곡도 특유의 상처에요. 보아하니 저항군들은 하나같이 곡도를 쓰는 모양인데. 뒤에서 정확하게 찔렀죠. 배신자가 있다는 거예요.”

리더가 무너지면서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허탈함에 그녀가 주저앉아버렸다.

핏방울로 옷이 더러워지는 것조차 신경쓰지 못했다.

“이 사람 살아있어요.”

그때 레이나가 시신들 사이에 깔려 있는 죽어가는 사내 하나를 발견했다.

이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그의 상흔을 살폈고, 마나를 끌어 올리려다 멈칫했다.

아주 잠깐의 기시감이 들었지만 이내 그를 치료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끄윽…… 끅…….”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였지만 큰 부상은 해결이 되었고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아가……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게 다!”

“배신……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보통 이런 저항군에서 가장 위험한 건 적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배신자다.

한족 세력이 일방적으로 작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동생들은…… 슈나이츠와 슈니아는요!”

“죄…… 죄송합니다……. 그들은 아가씨를 찾기 위해 제국 헌병대로 끌려 갔습…… 니다. 쿨럭…….”

완전히 치유가 된 건 아닌지 고통스러워하는 그였다.

“대체…… 대체 누가 배신을 했다는 거죠?!”

“행동대 1대장…… 쿨럭!”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의식을 잃어버리는 그를 보며 슈네리아가 황급히 나를 바라보았다.

“각성 시켜줄 순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저 인간은 평생 불구야. 그래도 괜찮나?”

본래라면 죽었어야 할 인간을 억지로 되살려냈으니 이 이상 해줄 의리는 없었다.

내 물음에 그녀가 움찔했다.

죽는 것보단 낫다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은 절대 함부로 판단할 잣대가 되지 못했다.

“그나저나 헌병대라…… 다른 사람들은 다 죽였으면서 왜 그 두 사람만 데려갔을까요.”

“뻔하지.”

데이비는 한쪽에 놓인 작은 오르골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작은 가게였던 이곳은 더 이상 아늑한 분위기 따위 풍기지 않았다.

“널 유인하는 거야. 저들에게 네 동생은 사실 가치 없는 목숨일 테니.”

나는 슈네리아를 바라보며 잔인하게 내뱉었다.

그녀가 어리석은 존재였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았을 테니 말이다.

“고마워요. 이제부터는 저 혼자서…….”

“레이나. 가서 도와줘.”

“네?”

슈네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요! 제 동생들이 끌려간 곳은 헌병대예요! 그곳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슈미르 수용소로 끌려간다구요!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거 좀 더 빌릴게요.”

롱기누스 창을 슬쩍 들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아공간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 주머니 안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해머가 들어있었다.

과거 흉신의 소재를 이용해 만들어낸 무기로 성능만 따지면 롱기누스나 홍단이 청단이에 비해 상당히 밀리지만 제법 쓸만한 녀석이기도 했다.

“코로나 디스트로이어. 쓰는 법은 알지?”

어떤 방어를 지녔건 셋방이면 방어파괴. 그 효능만큼은 가히 놀라울 수준이다.

“음…… 제가 쓰기엔 너무 투박한데요. 일단 잘 쓸게요.”

“잠깐만요! 제 말 듣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차원 너머로…….”

“어딜 가시게요?”

슈네리아의 말을 무시한 채 레이나가 질문을 던져왔다.

“제국의 황성은 여기서 멀지 않지?”

“네? 그, 여기서 보이는 거대한 첨탑…… 잠깐만요. 설마…….”

“황제를 좀 보고 오마. 그동안 구해내.”

내가 돌아서자 그녀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건데요?”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멈칫한 채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직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글쎄. 왜일 거 같아?”

복잡한 이유야 여럿 있지만, 끝내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 * *

폐허가 된 건물 밖으로 나온 나는 이내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거대한 첨탑을 시야에 담았다.

수도에서 멀지 않은 장소였다.

레이나가 슈네리아를 구한 장소는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죽은 줄 알았던 황제가 다시 살아났다.

리치마냥 라이프 포스 베슬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결국 별 차이는 없는 법이다.

나차 제국은 마법이 독특하게 발전한 세상이었다.

엄밀하게 꼽자면 티오니스보다 마법 발전은 조금 떨어지지만 독특한 소재를 통해 기묘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 주요 소재가 블랙 슬라임과 특수 광물이 합쳐져서 만든 마석, 혹은 광물이리라.

이제는 제작이 불가능한 만큼 내 시선에서 보기엔 이 세상의 발전은 향후 굉장한 퇴보를 겪게 될거라는 게 내 입장이었다.

내 알바는 아닌 일이다.

세상 밖에선 전쟁이 이어지는데 이곳에서의 삶은 딱히 전란을 겪는 국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사치스러웠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옷은 일반적인 느낌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으리으리하며 독특한 나차 제국 고유의 건축양식.

신기한 점은 중앙의 황성을 기준으로 마치 겹겹이 쌓이듯 주거구역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가장 중앙에는 거대한 황성과 으리으리한 귀족가의 건물이.

그 바깥엔 조금은 약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주거구역이 두 구역으로 나뉘어있었다.

그리고…….

“성의 양 끝에 위치한 빈민가.”

언 듯 보면 그저 부유함과 빈곤함으로 나눈듯한 일반적인 황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거대한 첨탑과 마주한 시계탑 끝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 시선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각 인종이 다르구나.”

황제와 같은 인종. 아마 나차 제국의 본래 국민이었겠지. 그들 중 귀족이나 부유한 자는 가장 황성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내려갈수록 인종이 달라진다.

아마 제국에게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이들을 대접해주는 게 아닐까.

어찌 되었건 참 묘한 광경이었다.

밖에선 피를 흘리고 있는데. 안에선 사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티오니스의 과거에도 그런 국가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런 국가의 말로는.

붕괴.

내가 나서서 부쉈건 그러지 않았건, 역사가 길었던 적은 없었다.

슈네리아가 말한 수용소는 이 수도에서 적당히 떨어진 지역에 존재한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지만, 수도의 동쪽에는 그곳 수용소 지역으로 바로 통하는 마나 게이트가 존재했다.

이곳에도 마나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건 제법 놀랍지만, 이곳 또한 티오니스처럼 과거의 문물을 이용한 느낌이 강했다.

물론 수용소가 으레 그러하듯 경비가 제법 삼엄할 테지만 그곳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마나 게이트를 넘을 때부터 굉장히 소란스러울 것이다.

레이나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저 일은 가능하면 은밀할수록 좋을 수밖에.

그렇다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어야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맞은편에 보이는 거대한 첨탑을 바라보며 한쪽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역회전.

혈도의 서클과 임의로 만든 심장의 서클이 역으로 맞물리며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생긴 막대한 마나의 소모와 그로 인해 생긴 막대한 에너지가 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파괴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죽이는 게 트리거가 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죽여서 얻는 이득이 없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죽이지 않고 일방적인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는 것.

마침 효율도 정말로 좋지 않지만, 단순히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면 시각적인 장악마법 정도는 익히고 있다.

[9서클 흑마법]

[먹어치우는 자들의 왕.]

거대한 사령 마나가 하늘로부터 비틀어지며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햇빛이 가려지고 잿빛으로 변해버린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던 태양은 이내 일식이 된 것처럼 검게 변하지만, 그 테두리만큼은 새빨갛게 일렁이며 핏물이 떨어지듯 방울져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그 무시무시한 형태는 사실 별것 없었다.

일정 영역 내에 완벽한 결계를 두르는 효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결계가 생김으로써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없을 뿐 시너지는 달랐다.

결계 마법의 효능은 흑마법 효율의 극한적인 상승.

같은 흑마법조차 완전히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고유 영역이었다.

내가 서 있는 거대한 시계탑 아래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대해진다.

인간이 가진 부의 기운이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생명력으로 치환 흘러넘치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하늘에 뜬 달 타나토스에 흘려보냈다.

부족한 생명력이 있으면 그곳에 채우라지.

본래 마법의 외형은 내 상태에 따라 변하는 편이지만 지금 꼴을 보아하니 아직 나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은 듯 보였다.

이래서야 타나토스와 다르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을지.

과연 인간들은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혼란 속에서 레이나의 기가 일순간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을 해야 할 터.

나는 철옹성 같은 황궁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저 황제도 가짜구나.

중간 지역의 광장.

그곳에 수많은 군중이 모인 게 보인다. 그 수는 무려 5천 명은 넘어 보였고, 그런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양손에 수갑을 찬 채 멍하니 형장으로 올라가다 멈춘 채 하늘을 보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사형수건 사형집행인이건 선동된 군중들이건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혼란과 두려움.

그 과정에서 이내 나는 천천히 붉은 기류를 흩뿌리며 천천히 내려선다.

페르세르크는 마왕이면서 너무 유했다.

마왕 정도의 위압을 내뿜으려면 비주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다니.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 채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틈 사이에서 홀로 고고하게 옥좌에 앉아있는 젊은 사내가 보인다.

이전에 본 늙은 모습과 달리 자신의 모습을 숨긴 모양새였다.

“네놈은…….”

“내 경고가 너무 쉽게 보였나 보지?”

내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군중들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

이곳은 저들의 본거지. 저들의 총 전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단신으로 쳐들어온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죽이지 않는 게 우선 과제라는 게 있어도 무슨 상관이랴.

내 한 발이 내딛어지기가 무섭게 황제는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한 수를 숨겨놓은 듯한 행동거지였다.

그래. 그래 봐야 인간인 네가 숨겨봐야 얼마나 숨겨놨는지. 어디 한번 지켜봐 주마.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질감도 느끼지 못한 채 걸어 나갔다.

균열이…… 다시 벌어진다.

* * *

“데이비!”

파랗게 질린 채 페르세르크가 손에 쥔 컵을 떨어뜨렸다.

아릿아릿한 통증이 전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혼란스럽게 바라보았다.

요시아의 힘을 이용해 서로의 목숨을 연동시켜주는 하나의 아티펙트.

그 반지의 보석이 검붉게 변하고 있었다.

“이건…… 이건 어찌 된 겝니까.”

페르세르크가 걱정스레 그 앞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언니. 무슨…….”

“데이비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어.”

그 말에 일리나와 에이리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무슨…….”

“알고 계시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그 물음에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끝내 그녀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저 믿는다는 듯 침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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