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4화
자비 없는 흉포한 짐승.
인간화했다고 해도 베헤모스는 삼 환수 왕 중 가장 거대하며, 가장 저돌적이고 흉포한 존재였다.
본래라면 계약자의 말도 잘 안 따르고 충동에 따라 움직일 만큼 흉포한 녀석이지만 그나마 곁에 있는 불사의 인어, 소야 덕분에 상당히 절제력을 가진 참이었다.
다만 절제력을 가지는 것과 천성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을 공격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다고 말하듯 미친 듯이 스토벨을 내리쳤다.
쾅!! 쾅쾅!!
보통 인간이라면 이미 피떡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맹공을 샤드란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쾅!! 쾅!!
이윽고 스토벨에게서 저항이 사라진 탓일까.
인상을 찡그린 채 스토벨을 저 멀리 던져버린 베헤모스는 제 팔을 본래대로 되돌린 뒤 꼬리를 퍼덕거리는 소야를 향해 소리쳤다.
“됐다! 재미없으니 돌아가지!”
“벌써요오?”
조금 전까지 물이 없다며 펄떡거리던 소야가 아무렇지도 않게 상체를 일으키자 샤드란은 저들을 이해하기를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공기도 안 좋다. 어이 인간. 우리를 불러온 매개체를 꺼내라.”
그 말에 샤드란은 군기가 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품 안에서 작은 수호석을 꺼냈다.
“저…… 그런데 저희 어떻게 돌아가요?”
“으엉? 당연히 왔을 때처럼…….”
“그땐 보팔 님이 계셨잖아요. 돌아갈 땐 저희끼리 해야 하는데. 전 마법 쓸 줄 몰라요.”
그 말에 소년, 베헤모스의 입가에 비뚜름한 비웃음이 서렸다.
“흥, 머저리 같은 녀석.”
“오…… 그럼 수호자님은 돌아갈 방법을…….”
“나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돌아가요?”
샤드란은 다시금 생각했다.
이 또라이들은 대체 뭘까, 아가씨. 대체 나한테 뭘 준거야.
* * *
황제는 어딘가에 자신의 본체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오로지 분신체만을 이용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번 실제로 보니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크으…….”
알싸한 통증이 머리를 감싼다.
마치 약을 한 사발 들이켜고 난 후 억지로 각성한 듯한 불쾌감이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혼란스러움 속에서 나는 인상을 더욱 찡그렸다.
차라리 극단적으로 바뀌었으면 그 현상을 경계하면 되건만 지금 이건 나도 모르게 스리슬쩍 내 심층 의식부터 개변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당시 느낀 감정을 놓고 보면…….
나를 인간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생기는 끔찍한 선민의식.
내가 가장 싫어하면서 경계하는 행위를 내가 한 꼴이었다.
“홍단이 청단이…….”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두 아이를 부르자 잠시 눈치를 살피는 두 아이였다.
그 눈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던 내 모습이 깊게 각인된 듯 보였다.
“홍단아…….”
“아…… 아빠 무셔어…….”
“미안해…… 아빠가 심했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자 서로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후다닥 달려와 품에 안겼다.
“미안해. 미안하다.”
“우아앙!!”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두 아이를 다독여주면서도 표정이 풀어질 수가 없었다.
황제가 죽고 모두가 제압당한 상황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지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금 전 메가로드리아 덕분에 느낀 이질감 때문에 상당한 무기력에 휩싸여있었다.
그때였다.
츠츠츳…….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은 무언가가 톡! 하고 떨어졌다.
동시에 그것을 아는 이들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시…… 신수님!!”
신수 블랙 슬라임.
레인보우 슬라임을 태어나게 만드는 존재이며, 나차 제국에선 신수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동안 내게서 도망치던 녀석은 어째서인지 황금빛 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통통 튕기듯 내게 다가왔고 그대로 입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쩌억 벌렸다.
스스스스슥…….
동시에 내 몸 안에서 검은 것들이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묵묵히 내 검은 기류를 먹어 치우던 녀석을 보며 나는 이 상한점을 느꼈다.
녀석은 내게서 어떤 이유로 도망을 치고 다녔다.
“모…… 몰랑이…….”
하지만 이런 상황에 갑자기 나타나 내게 쌓인 검은 것들을 빨아먹는다?
애초에 녀석의 생리를 내가 파악하기엔 조금 이질적인 구석이 많았다.
머리를 찌르르 울리던 두통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악몽과 비슷하지만 몽환 세계를 주로 다루는 악몽과 다르게 녀석은 중간계의 생명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윽고 머릿속을 안개처럼 뿌옇게 만들던 것들이 사라지자 마치 세상을 득도한 것처럼 깔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이지만. 적어도 당장은 휩쓸리진 않으리라.
“네가 먹어준 거냐?”
내 물음에 블랙 슬라임은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꿀럭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알 같은 것을 하나 툭 뱉어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롱한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이었다.
“…….”
말없이 그것을 보고 있자니 녀석은 나를 올려다보다 알을 툭 밀어 내게 건넸고 내가 그것을 줍자마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마치 네가 부화시켜라 라고 말하는듯한 모양새였다.
신기하고 엉뚱한 녀석이다.
“크흐흐흐…….”
그때였다.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내 검에 날아간 황제의 머리가 끌끌 웃어대고 있었다.
“신수…… 역시 그곳에 있었구나. 넌 절대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그는 반쯤 먼지처럼 흩어지면서도 집착 어린 웃음을 자아냈다.
“사태 판단이 안 되나?”
“글쎄. 어떨까. 결국 마지막에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거늘.”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나를 조롱하듯 말했다.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어렵진 않지. 당장 여기 인간들 다 죽여도 뭐.”
“크흐흐흐흐! 아직 어리구나. 짐의 결정에 희생은 따르는 법이다.”
“오호, 그래서 다 죽이시겠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짐의 앞길에 방해되는 자는 죽어도 싼 법이니.”
정보를 최대한 숨긴다고 해봐야 그놈의 불사 메커니즘이 어디 한둘인가.
놈은 모르겠지만. 저 가짜 육신이 사라지는 즉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청단이의 효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모르는 듯하니 말이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몰라도 일단 그에게 여러 가지 저주를 심어 보냈다.
아주 얕게 이어진 끈을 통해 이어진다면. 반드시 효과는 있을 터.
황제의 머리가 스르륵 하며 사라져 버리자 현장을 지키던 병사들과 집행대. 그리고 집행관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폐…… 폐하…….”
대부분의 집행대나 집행관은 기절했지만, 메가로드리아를 소환했던 집행관이나 마법사는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이 기회에 이들을 멸망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블랙 슬라임이 한차례 빨아먹고 간 탓인지 누군가에게 더 손대는 게 영 내키지가 않았다.
게다가 황제는 현재 자기 제국을 포기하면서까지 나와 대적하는 걸 고른 듯 보이니 이들은 이제 버림 패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자기 황제에게 버려진 이들을 해쳐본들 남는 건 찝찝함 뿐이리라.
물론, 이들이 전쟁을 벌이면서 한 짓들은 저들끼리 해결할 문제이기도 하다.
[계약자.]
그렇다곤 해도 인질이라도 데려가야 하나, 적당히 위치도 높으면서 방해 요소가 적은 존재…….
[계약자.]
“흐음…….”
그러던 찰나 나는 멀리서 나를 노려보는 한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복식만 봐도 보통 아가씨는 아닌 게 분명하다.
밝은 갈색빛 머리카락에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뭐가 불만인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위치를 보아하니 황족 같은데.
척 봐도 얽히며 귀찮게 굴어서 화를 자초할 타입이었다.
[계약자!!]
아씨 깜짝이야.
“뭐야.”
[이 꼴을 보고 느끼는 게 없나?]
바닥에 처박힌 메가로드리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았다.
놈의 전신에는 상당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전부 내가 만든 것들이다.
“아…… 음…… 많이 아프겠다. 괜찮아. 침 바르면 나을 거야.”
애써 시선을 피했다.
“됐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한숨을 내쉰 나는 한 손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황제가 했건 결국 제국이 나와 반목을 택한 건 사실이었다.
“그럼 마무리나 지어보자고.”
“잠깐!!”
그때 내가 봤던 소녀가 소리쳤다.
“그만두세요! 더 이상 이곳에 당신과 싸울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다고 분쟁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
시비는 그쪽에서 걸었잖아. 내 무표정에 그녀가 움찔했다.
그리고는 손을 파르르 떨더니 대답했다.
“저는 나차 제국의 황녀, 뮤린 프라시아스 나차입니다.”
“그래서?”
꽤 고급스러운 복장이더니 황제의 딸이었던 모양이다.
“황족의 권한으로 항복……항복하겠어요. 폐하께서는 저희를 버리셨어요. 따라서 저는 남은 제국민이라도 살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깔 있어 보이는 외모와 깡이 있어 보이는 어조가 제법 어울린다.
“황제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황제의 명령에 거부할 힘이 네게 있나?”
“…….”
버렸다곤 해도 황제는 황제. 이곳은 그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인 만큼 뻔한 이야기였다.
“폐하께서 국민들을 버리셨다면 더 이상 아바마마는 황제의 자격이 없습니다. 따라서 후계 서열 1위인 제가 현 시간부터 나차 제국의 대리 황제 권한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녀가 나를 살짝 노려보고는 말했다.
“피 값이 필요하시다면 제 목을 치세요. 기꺼이 목숨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사나운 시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분쟁으로 인해 싸운 사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개인적으로 원한을 풀풀 풍길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
현실적인 항복이었다.
제 국민의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 황제와. 그렇게 버려진 국민의 목숨을 지키려 드는 황녀라.
“그런데.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너무 적의를 내비치는 거 아닌가? 적당히 노려보는 게 어때?”
“…….”
그 말에 뮤린 황녀가 시선을 살짝 놀렸다.
하지만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됐다.”
그렇게 말한 나는 카드를 한 장 꺼내 메가로드리아를 카드 속에 봉인 시켰다.
“넌 내 말 안 듣고 여기서 농땡이 친 벌이다.”
[빌어먹을! 악질이로군.]
불평하는 메가로드리아를 회수한 뒤 나는 몸을 돌렸다.
주체였던 황제를 추적하는 데에 있어서 이곳의 인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 * *
데이비가 사라진 직후 혼란스러운 광장 속에서 병사들이 부산스레 움직인다.
모두를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그가 사라지자 무거운 공기가 비틀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세계의 종말이 다가온 듯 보이던 잿빛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황녀 저하…….”
마나 탈진으로 들것에 실려 가던 마법사 집행관 이니스가 조심스레 현장을 지휘하는 소녀를 불렀다.
“이니스…….”
“죄송합니다. 황녀 저하와 폐하를 보필하지 못한 죄…….”
“아뇨. 당신은 충분히 잘해줬어요. 당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으니까요.”
굉장히 사나워 보이는 외모에 성깔 있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폐하는 저희를 버렸어요.”
그녀의 단호한 말에 이니스가 쓴 표정을 지었다.
“따라서 현 제국법에 따라 황제의 직위는 제가 임시로 물려받았습니다. 저는 제국민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황제는…….”
“황녀 저하…… 그래도 아바마마…….”
“아바마마는 변했어요.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막지 못한 책임도 커요.”
“죄송합니다.”
힘없이 웃어 보이는 이니스가 다시 들것에 실려 간다.
그러던 찰나였다.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현 상황에…….”
“괜찮아요. 사실 아예 무섭지 않다고 했으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저는 잘생겼다고 긴장하는 그런 바보는 아니에요.”
“예? 누가요? 잘생겨요?”
“네? 아…… 아니 아까 그 남자요. 나는요 힘 있고 잘생겼다고 해서 겁을 먹지 않아요.”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갸우뚱하는 걸 보며 이니스는 잠시 머리가 띵해졌다.
지금까지 이니스가 봐온 황녀는 단 한 번도 남성을 향해 잘생겼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제국 내에서도 참 인기가 많았다.
아름다움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제국의 꽃.
지금까지 나차 제국이 침공한 수많은 국가들 속에서도 그녀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성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진 바가 없었다.
제국 최고의 미남이라 불리는 이들을 보면서도 느끼하니 실속 없니 하며 관심도 주지 않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왜 그러시죠?”
“아…… 아뇨. 아무것도……. 그보다 사망자는…….”
“이상하네요. 사망자가 너무 적어요.”
정작 데이비가 죽인건 황제. 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던 소수였다.
정작 치명상을 입은 집행관들조차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생존했다.
그의 힘을 생각하면 당장 모조리 제압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정말로 다 죽일 생각이 있었던 걸까요?”
“모르죠.”
* * *
레이나와 합류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뚱한 표정으로 개울가에 앉아있는 레이나를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또 폭주하신 거예요.”
“나도 몰라. 모르니까 답답하지.”
“하…… 억누르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용케 버텼네.”
발로 물장구를 치는 그녀를 뒤에서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보단 약했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이후 나는 그녀에게서 수용소에서의 일을 전해 들었다.
레이나가 폭주했고 그것을 이용해 그녀는 슈네리아를 먼저 보낸 뒤 수용소 전역에 난동을 부렸다.
제어가 쉽지 않으면 차라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포지션을 맡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들어가서 동생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그 아가씨가?”
슈네리아는 딱히 무력이 없어 보였는데.
내 의문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은 있었죠. 그녀를 도와준 이가 있어서 문제없이 끝났지.”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보팔 레빗의 수호석을 건네주었었다.
그게 발동된 것인가 싶었다.
“실은. 이번 일로 당신을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에 그녀가 고갯짓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이에 고개를 돌리자 상당히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구면인가?”
“그러네. 살아서 도망치라고 놔줬더니 왜 왔나.”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왔어.”
그가 말했다.
“제안?”
“그래. 수도의 이야기는 이미 정보망을 통해 들었어. 한바탕 들쑤셔 놓았다지?”
그가 말한다.
“그랬지.”
“황제 폐하는 죽이지 못했을 거야. 틀려?”
“그렇지. 너희 버림받았다.”
내 비웃음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상관없어.”
“뭐?”
“내가 제안하려 하는 건 황제의 목숨을 거둬달라는 거야.”
“음?”
“그가 있는 곳을 내가 알아. 다만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한데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내가 뭘 믿고?”
“날 믿었으니 살려준 거 아닌가?”
“웃기고 있네, 그냥 놔준 거야. 내가 지금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운 좋은 줄 알고 튀었어야지.”
내 비웃음에 그가 긴장을 억누르며 쓰게 웃었다.
“그래서. 제안 받아들일 거야?”
그 물음에 나는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집행관은 황제를 향한 충성심으로 가득 찬 곳 아니었나? 아무리 그래도 고작 버림받았다고, 아니지, 그전부터 배신했구나 넌.”
“배신? 하.”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폐하를 배신한 적이 없어. 폐하를 향한 충절은 절대 변치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기에 지금의 황제를 반드시 죽여야 해.”
그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서렸다.
첨벙!!
그때 물장구가 크게 일며 누군가가 내게 물을 뿌렸다.
갑작스런 물벼락에 인상을 팍 찡그린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예상치 못한 이가 물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소야?”
인어 소야. 그녀가 양손에 예쁜 조약돌을 부딪치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대체 수용소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온 거야.”
내 물음에 레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