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6화
뮤린 프라시아스 나차.
나차 제국의 황녀이자 현재 나차 제국의 전권을 위임받은 전권대리자.
그녀는 제법 총명하고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많은 공부를 해온 그녀는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자신의 총명함을 드러낸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직 나차 제국의 황제가 전쟁에 미친 괴물이 되지 않았을 때.
그때만 해도 수호신, 즉 블랙 슬라임은 제국에 존재했다.
그래서일까. 한때 뮤린 황녀가 태어났을 때 블랙 슬라임이 축복을 내렸다는 말이 많았다.
그만큼 그녀는 영특했다.
아버지의 사상에 따라 사람을 사랑하고 현재를 감사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언젠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데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인물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국정을 돌보는 것을 배우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다른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상식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국정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대단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부해온 그녀의 진가가 담긴 꽃은 아직 만개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그녀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어 버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왜…… 왜! 죽이지 않는 것이냐! 이 아비는 좋아서 손에 피를 묻히는 줄 아느냐?!]
검고 축축한 감옥에서 묶여있는 한 남성과 여성을 두고 나차 황제가 했던 말이었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강제로 피가 묻은 검을 쥐여 주며 황제는 그녀에게 두 남녀의 목을 치라 종용했다.
그녀에겐 역정을 내는 황제는 너무 두려운 존재였고, 이질적이며 낯설었다.
자상하고 착하던 아빠가. 왜 갑자기 이렇게 무서워졌는지 그때 당시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엉엉 울며 못한다고 절규할 뿐이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 차라리 마음의 슬픔이 덜했을까.
잡혀있던 두 남녀가 잡혀 온 죄목은 간단했다.
황제를 모욕했다.
없는 곳에선 나랏님도 욕한다고, 현시대에 대해 투덜거리던 것을 야행 중에 들어버린 황제가 둘을 잡아들이라 명령을 내렸고 그 꼴이 났다.
제발 용서해달라며 엉엉 우는 젊은 남녀는 사랑을 약속한 사이였고, 그 결실을 맺으려 했는데 황제의 전쟁 선포로 잠시 결혼식이 미뤄진 것에 대한 불만을 토해낸 것이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뮤린은 그 사실을 알기에 절대 안 된다며 제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끝내 황제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미쳐버린 것처럼 역정을 내며 급기야 뮤린을 베어버릴 것처럼 굴었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받기 싫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뮤린은 오열하며 두 남녀를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평생을 두고 제 생에 오점이 될 겁니다. 그리고…… 내 평생의 업보가 될 테고요.’
제국법상 황족을 모욕하는 건 즉살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것은 모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불만이었다.
그 경계는 달랐다.
본래 황제는 이런 것으로 국민을 참살한 적이 없었다.
사랑했고 존경했던 아빠가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절망한 그녀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 후 인형처럼 황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온 것이다.
그런 황제도 이제는 없다. 끝내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던 샤드란이 끝내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했다.
현 황제는 아무래도 그녀가 알고 있는 황제가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을.
시종이 내오는 차를 건네며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말입니다.”
그때 데이비의 부름에 상념에 빠져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예…… 예?”
“아무리 봐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시선인데.”
데이비의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왜…… 왜 그러시죠?”
“처음부터 계속 노려보시네.”
데이비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마음에 안 들다니. 솔직히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사람이 붕 뜬다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사실 그녀에게 그런 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류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왜 저럴까 한심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잘생겼다 하는 이들을 놓고 봐도 다 똑같았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부류라 생각했건만.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왜 이렇게 뛰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드…… 드세요. 황실에서 가장 고급품이랍니다.”
그녀가 내민 차를 데이비가 음미한다.
뮤린은 그의 손목과 목선 그리고 전체적인 체형을 말없이 눈에 담았다.
“저하.”
“흐으…….”
“저하?”
그때 상념을 깨는 샤드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가 흠칫 놀라며 입가를 닦았다.
“읏…… 크흠! 무…… 무슨 일인가요. 샤드란.”
“슬슬 온 것 같습니다.”
샤드란의 말과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황녀 저하. 신 알보 기사단장. 마법사 단장과 함께 알현을 요청하나이다.”
“드…… 들어오세요.”
황급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뮤린 황녀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내 두 명의 남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 집행관 알보.”
“마법사단 집행관 이니스, 황녀 저하를 알현하옵니다.”
“고개를 드세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사람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데이비를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저…… 저자는?!”
* * *
“절대 안 됩니다! 저하! 나차 제국을 무너뜨리고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 한…….”
“그만!!”
마법사단의 집행관 이니스, 내게 마법을 모조리 디스펠 당하고 마나가 역류 당해 제압당했던 그녀였다.
수준은 6서클 중후반부 정도로 제법 훌륭하지만 딱 그정도 수준인 여성이었다.
물론 6서클 중후반이면 마법사 상의 0.1퍼센트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수준인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당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 했던 적이었다.
그런데 비밀회의를 하는 데에 그런 적이 와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라면 당연했다.
하지만 반대로 알보라 불린 기사단장은 달랐다.
나와 벌서 두 번은 충돌했던 사내.
겉보기엔 굉장히 우직하고, 앞만 보는 황소 같은 남성이지만 눈치가 제법 있어 보였다.
“그 이상 말하지 마라. 이니스.”
“하지만!!”
“일을 그르칠 셈이냐?!”
알보의 외침에 이니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눈치가 빠른 건가?
“일을 그르친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 물음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꼬박 하루 전만 해도 제국과 충돌한 당신이오. 그런 당신이 이런 비밀회의에 참석해있지.”
“그래서?”
“샤드란의 연락을 종합해보면 당신은 샤드란과 무언가 거래를 했소. 내 말이 틀렸소?”
기사단장이라는 게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겠지.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한데.”
“다만, 일반적인 거래와 달리 우리 쪽에서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터. 괜한 시비를 일으켜서 기회를 날리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의 말에 이니스가 분한 듯 입을 다물었다.
알보 단장이 생각한 걸 그녀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70점. 나쁘진 않네.”
“그나마 다행이로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얼굴에 적의는 없었다.
“밉지 않나? 나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황제를 두 번이나 암살했는데.”
“현 나차 제국의 전권을 위임받은 뮤린 황녀 저하께서 당신과 손을 잡고자 한다면 나는 따를 뿐이다.”
황제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샤드란과 다르게 그는 나차 제국 자체에 충성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다들 앉아요.”
이윽고 뮤린 황녀가 운을 뗐다.
“샤드란, 브리핑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황녀 저하.”
샤드란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어떤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동안 제 독자적으로 조사해온 것들입니다. 왕실의 뒷조사입니다만…… 무례를 용서하시길.”
“용서합니다. 계속하세요.”
“현 황제의 상태가 이전과 다르다는 건 확실히 알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동안 폐하의 명이기에 따라왔습니다. 모두가 충성을 맹세했으니까요. 기사는…….”
“기사는 명령에 의문을 지니지 않는다.”
“예. 바로 그겁니다. 알보 단장.”
고지식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습니다. 의문투성이였어요. 폐하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상하고, 행보에도 말이 안되는 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주시겠어요?”
“예. 황녀 저하. 현재 제 가설에 따르면 현 황제는 신수님의 힘을 받아 어떤 힘을 유지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여기 이 남자가 말해줄 겁니다.”
샤드란이 나를 가리켰다.
“블랙 슬라임은 사람을 불사로 만드는 힘 같은 건 없어.”
이곳으로 오기 전 샤드란은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싶다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도 알지 못할 텐데. 인간의 직감은 참 무서울 때가 있다.
아무리 블랙 슬라임이 의문투성이라도 신격을 지니고 생명력의 주인이며, 세계의 법칙까지 관조가 가능한 나인만큼 가능, 불가능의 영역은 어느 정도 선이 그어진 상태였다.
블랙 슬라임 자체가 제법 신기하긴 하지만 놈을 보았을 때 불가능한 건 명백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신수님이 찾아갔었죠.”
“예. 어쩌다 그리됐는진 모르겠지만 제 딸아이의 레어에 자리를 잡았더군요.”
쾅!!!
“따…… 딸아이?!”
깜짝 놀란 뮤린 황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황녀.”
“아…… 아니에요!”
새빨개진 얼굴, 반대로 풀이 죽은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아버렸다.
“신수님이 그런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예, 제가 보기에 현재의 황제는 저희가 알던 폐하를 납치한 뒤 자신이 황제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누군가에 대한 조사는 아직 불명이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황제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저는 단순한 소문이라 여기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수단이 있나요?”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부터 의심이 되는 장소를 뒤질 겁니다. 그 과정에서 힘이 필요합니다. 집행관 서열 1위, 스토벨 바르샤가 현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품 안에서 썩은 육편조각을 꺼냈다.
“제가 스토벨 바르샤에게 죽임을 당할뻔했을 때. 나타난 푸른 소년이 그를 제압하면서 떨어진 것입니다. 과거 황제가 암살당했을 때 떨어뜨린 것과 흡사합니다. 아무래도 적은 한둘이 아닌 것 같더군요.”
“으음…… 폐하에 이어 스토벨 뱌르샤까지…….”
그때 레이나가 손을 들었다.
“저기. 그 스토벨 바르샤라는 자가 그렇게 강한가요?”
“강합니다. 저희 집행관 전원이 덤벼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그는 임관 당시부터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요.”
알보의 설명에 레이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마 그는 죽지 않았겠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납치당해있을 폐하의 위치를 찾는 것. 그리고 폐하의 행세를 하고 있는 자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가짜 황제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저희와 손을 잡은 것이구요.”
그 말에 레이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는 내가 할게요.”
“괜찮아?”
“지금…… 스스로 제어 안 되시잖아요.”
레이나가 내게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베헤모스 씨와 함께하면 별문제 없어요. 인어 분은 조금…….”
“그 냉장고는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다녀와 그럼.”
내가 참전하지 않는다 선언하자 이니스가 벌떡 일어났다.
“자…… 잠깐!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스토벨 바르샤가 강한 건 사실이나 내게는 못 미치기에 가능한 작전이다.
하지만 내가 참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이니스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레이나가 제지했다.
“충분해요. 그리고…….”
“나는 여기 있는 게 맞지.”
직감도 직감이지만 가짜 황제가 그동안 황제 행세를 하면서 이상하리만치 뮤린 황녀에게 집착한 점을 생각하면…….
“그는 아마 여기 뮤린 황녀를 노리고 있을 거다.”
“화…… 황녀 저하를?!”
“그래. 이유는 뭐 나중에 알려줄게.”
이들에겐 조금 잔인한 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가짜 황제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살기 위해서 블랙 슬라임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터.
그게 안 된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뮤린 황녀의 몸을 장악한다.
“레이나. 스트레스 원 없이 풀고 와. 갔다 오면 내가 울트라 바이올런스 맛 꼬치를 사줄게.”
“그 매운 건 다시는 먹기 싫어요.”
혀를 쏙 내밀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시작하죠.”
“하지만 사라진 집행관은 스토벨뿐만이 아니야. 스토벨에 이어 집행관 서열 2위까지 나타난다면 저 사람이 아니면…….”
레이나에 대해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상관이야. 베헤모스도 가겠다. 레이나 혼자서도 너희 전원을 상대로 못 이 길 거 같아?”
“그건…….”
“이봐. 그 목적지가 한곳이 아니지?”
“일단은 세 곳 정도…….”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이번엔 레이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전 조사라면 2시간이면 충분해요. 그동안 여기서 스스로 제어하고 계세요.”
그래. 그거면 됐다.
천족을 우습게 보면 쓰나.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니스와 알보, 그리고 샤드란과 레이나가 빠져나간다.
그들은 뮤린 황녀를 지킬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집행관 중 운신이 가능한 이는 없었다.
이니스와 샤드란은 반드시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고, 알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에 나는 적당히 계약을 맺어 그녀의 목숨은 반드시 지켜주겠다 약속한 뒤 그들을 보냈다.
“나와 협력하고 있는 걸 보면 제국 내에서 시끄러울 텐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 나는 문득 뮤린 황녀의 상태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얼굴이 새빨갛다.
“황녀?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 단둘이…… 이 좁은 방에 단둘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황녀?”
내가 그녀에게 다가간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인다.
혹시, 황제가 그녀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자…… 잘생겼다고 잘난척하지 마세요!!”
이건 뭔 헛소리야.
내가 인상을 찡그린 채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화…… 황족의 몸에 소…… 손을 대, 대다니!”
혀까지 꼬여가면서 소리치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열이 생각보다 심한데? 심박수도 너무 높고. 고혈압은 아닌 거 같은데…… 황녀. 진찰받아봅시다. 부정맥 가능성이 있어요. 일단 내가 의술도 좀 아니까…….”
“그…… 그만두세요!!”
눈물까지 보이며 그녀가 소리쳤다.
* * *
제국의 전권대리자인 황녀가 머무는 궁.
그곳을 통해 빠르게 진입하는 다수의 인영이 있었다.
“폐하의 명대로 황녀 저하의 신변을 빠르게 확보한다.”
“지키는 이는 없는 게 확실한가?”
“예. 조금 전 알보단 장과 이니스 단장. 샤드란 단장이 외부인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만, 다시 나가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외에 기사들은 전부 포섭해두었습니다.”
그들이 숨죽여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녀의 개인 집무실 문 앞에 접근했을 때.
그들의 시선을 한눈에 잡는 누군가가 보였다.
“라라라라…….”
아름다운 음색을 내비치며 노래하는 인어.
창틀에 앉아 창밖을 보던 인어는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자신들이 환각을 보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창틀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인어의 목소리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매료된 듯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즈음.
그들은 자신들의 은신이 풀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탓에 노래를 부르던 인어가 그들을 발견해버렸다.
“…….”
노래가 끊어지고 잠시간의 침묵이 일었다.
그러기를 잠시.
인어의 눈이 크게 뜨여지더니 이내 바닥으로 철푸덕 내려와 쓰러지고는 소리쳤다.
“꺄악! 여기 물이 없어요! 나 말라 죽어!!!!”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불렀잖아…….”
사내들은 인어의 괴이한 행동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그녀의 비명과 함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지옥의 악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호. 그동안 심심할뻔했는데, 샘플이 왔구나.”
문을 열고 나온 존재는 악마의 종자인 그들이 보기엔 진짜 악마로 보일 만큼 무시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