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4화
생명이 살 수 있게 설계된 게 아닌 거대한 힘을 수용하고 정화하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차원.
오로지 신격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비틀린 이 차원은 본디 생명체가 존재해선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어째서인지 이곳엔 인간을 포함한 다수의 생명체가 생겨났다.
오래전 타나토스는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인간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기간은 티오니스 기준으로 쳐도 1만 년도 더 된 정말로 오래된 세계.
즉. 이놈의 세상에 생명체가 존재해온 게 무려 1만 년이 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타나토스가 폭주하며 여신과 전쟁을 벌인 게 그 정도 되었으니 말이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창조주를 향해 칼끝을 겨누며, 세상을 한때 끝도없이 뒤흔들었던 악신이.
인간에게 끝없는 분노를 품고 있던 흉악한 존재가.
고작 인간을 포함한 다수의 생명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화를 포기하면서까지 독주를 마신 사실이 새삼 믿기지가 않았다.
여신이 나쁜 건지. 이렇게 될 걸 알면서 겁도 없이 자신의 제어능력을 믿은 타나토스가 바보 같은 것인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나를 향해 묻는 타나토스의 잔재의 눈에 어떤 열망이 서렸다.
“지금,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제 편할 대로 해석하는 건 그리 좋은 버릇이 아닐 터다.
“내가 그냥 이곳의 이간들을 포기한다고 하면?”
“나는 너를 막을 힘이 없다.”
애초에 이놈이 가진 힘이라고 해봐야 내 의지를 잠시간 이 도서관으로 불러오는 게 전부였다.
“겁먹지 마. 해결법이 있으니까. 그런데 좀 신기하긴 하네.”
“신기하다고?”
신이 의도한 게 아닌데. 어떻게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 조금 의문이었다.
자비, 자애의 태초신인 프리아 여신이 언젠가 종말이 올 미래가 있는 차원에 인간을 살게 하진 않았을 텐데.
“그 계획 자세히 들을 수 있겠나?”
“…….”
“만약 이들을 살릴 방법이 있다면, 가능한 선에서 보답하지.”
한때 인간을 포함해 생명체의 멸절을 노래한 악신이 하는 말이 너무 다르기 그지없다.
“정화는 반드시 한다. 나는 불안의 어떤 싹도 남길 생각이 없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에 살고 있는 인간이 모두 죽는다.
“차원 전이…… 설마.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옮길 생각인가?”
“그렇다고 하면?”
“어리석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니와.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향후 이동한 생명체들에게 남은 미래가 밝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지성이 있는 존재만을 옮긴다는 건 아니겠지. 동물도, 벌레도, 흔히 볼 수 있는 미생물조차도 모든 것이 세상의 톱니바퀴다.”
그의 말대로 단순히 인간만을 옮기는 게 아니다. 대륙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이주시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아예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닌 이상.
“아예 세상을 바꿔버리는 게 아닌 이…… 설마.”
말을 하던 그가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 네 본체가 부숴버린 차원이 세상에 상당수 있어. 간단한 예시를 들어서 룩스 대륙 같은 곳도 있지만, 아예 모든 생명체가 부서져서 수복조차 불가능해 버려진 차원도 존재해.”
심연의 공주가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체를 말살했는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지옥도가 된 세상도 두엇 존재했다.
“가만히 두면 언제까지고 일어나지 못해.”
“…….”
녀석은 자신의 본체가 세계를 말살했다는 사실에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서진 차원이라면 극도로 코어도 약해져 있겠지. 하지만 이 세계의 심장은 어떻게 약화시킬 생각이지?”
“아까 말해주지 않았나? 이 땅에 있던 악마가 심장을 오랜 시간 오염시켰어.”
“헛소리. 고작 피조물이 오염시킨다고 부서질 심장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고작해야 악마종 하나 따위가 세상을 부수는 건 불가하다. 심연의 공주들조차 생명체를 말살하여 세상을 서서히 말라 죽게 만들었지, 감히 차원을 이루는 심장을 손댈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차원, 너무 오랫동안 제 역할을 못 했어.”
“…….”
“신의 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차원, 그것도 네 본체를 정화하기 위해 활성화된 차원이 여기잖아. 눈은 떴는데, 제 역할을 못 하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약해진 심장은 오랜 시간의 오염에 따라 변질되어 부서져 간다.
“간단해. 부서져 가는 두 차원을 교환하는 거로 두 세계 모두 존재할 수 있어.”
신의 정화가 목적인 차원은 정화를 통해 안정화되고 다음 신이 태어나 시험을 치를 때까지 잠들 것이다.
반대로 모든 생명체가 말살되어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채 말라가던 파괴된 차원의 심장은 다수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며 다시 산소호흡기를 달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시험해봐야지.”
“힘이 약하다 한들, 두 차원의 심장을 옮기는 건 여신님께서 직접 하시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여신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존재가 딱 하나 있어.”
세계의 규칙.
절대 규칙은 프리아 여신의 이면과 같다.
“계기만 찔러넣으면 알아서 교환할 거야.”
즉 내가 크게 손을 쓸 필요도 없이 계기만 내가 주입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세계의 규칙! 네놈! 그게 더 허황된 소리라는 걸 알고 있나?! 세계의 규칙은 그 어떤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
“태초의 포식자. 규칙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아주 적게나마 내게 있어.”
두 개의 심장만 교체하면 해결될 일이다.
이 차원을 포함해 외곽차원은 멀쩡한 대륙의 심장을 얻게 될 것이고, 나는 파괴된 차원에서 정화를 진행함과 동시에 그 차원을 초기화시켜 부서지지 않게 유지시킬 수 있다.
“서로 윈윈이잖아.”
내 제안에 타나토스의 잔재가 눈을 감았다.
“네 말대로 만에 하나의 확률로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만에 하나가 아니지. 이론상으론 100퍼센트 가능해.”
“그게 가능하려면 다수의 여신의 권능 또한…….”
“현재 여신은 잠들었어. 그리고 그 권능중 다수를 나와 다른 이들이 조율 중이고.”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
“후우…… 좋다. 그게 가능하다면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심장을 옮기는 건 네 말대로 이론상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기간이 문제다.”
심장을 교체하는 건 단시간에 뚝딱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일주일. 그 정도 안에는 해결해야지.”
“그 안에 이 차원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죽어 나갈지 모른다. 차원 어느 부분부터 붕괴 현상이 일어날지도 파악할 수 없다.”
“그것도 가능해.”
담담하게 말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신이 내 뺨을 친 이유는 아마 내가 비틀리고 있는 경계를 확신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속내를 온전히 알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이 땅에 성녀 후보를 선점해둔 이유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위해서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여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할지라도. 태초신이 나를 위해 남겨둔 안배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리다.
그것이 그녀에게 성흔을 받은 의무일 테니.
“겉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정화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네가…….”
“난 지는 싸움은 어지간하면 안 해.”
내 대답에 녀석은 결정을 내린 듯 보였다.
“내 남은 힘을 모두 이용해 네 정화 작업을 보류시켜보겠다.”
“그럴 힘이 남아있나?”
“…….”
내 물음에 타나토스의 잔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본체는 후에 올 신격을 돕기 위해 나를 남겨놓았다. 네 말대로 된다면 소멸은 값쌀 뿐이지.”
동시에 도서관 전체가 요동치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네 계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성공해라.”
전신에 금이 가며 부서져 내리는 녀석과 한 마지막 대화는 참 간결했다.
* * *
세계의 심장을 교체한다는 건 간단히 표현하면 모양이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컴퓨터 케이스의 내용물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간단히 나사를 풀고 회로를 새로 조이는 그런 작업이라고 하기엔 손대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현재로서 가장 큰 변수는 한가지.
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차원이 그 정화에너지가 다른 차원으로 향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형의 에너지.
그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는가에 있다.
“끄응…….”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나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레이나?”
“꺅!!”
비명을 내지르며 나를 밀친 레이나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서 물러났다.
“뭘 한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의 몸이 너무 차가워서 온기를 나눠주고 있었을 뿐!”
그렇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이거 좋지 않은데.
나는 애써 모른 척 넘어가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심장이 나와 공명하며 정화하던 작업이 멈추기 시작했고, 내 안에서 빠져나온 부정적인 에너지가 다시 내게 스며든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내가 품고 있어야 한다.
“앗…… 바깥의 존재들이…….”
“다시 받아들였어. 그보다 별문제는?”
“딱히 없었어요. 베헤모스 씨가 부상이 심각한 것만 빼면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쓰러져 있는 거대한 흰수염 고래를 바라본 나는 카드를 꺼내 베헤모스를 수용했다.
안 봐도 비디오라고 결계를 부수기 위해 이 둘이 미련한 짓을 했다는 건 알 것 같았다.
본래라면 레이나를 대신해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잠식하지 못하게 막아줘야 할 심장이다.
비틀리고 부서진 심장은 나를 보호할 힘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파편이 부서져 내린 곳 일부에서는 정체 모를 검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나토스의 잔재가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힘을 이용해 멋대로 진행되던 정화를 잠깐 동결시킨 것이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 대가가 잔재의 소멸이었지만 놈이 바란 것이라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심장은 내가 굳이 정화를 하지 않아도 한계에 부딪혀 있었으리라.
“레이나.”
“네…… 네?! 자, 잘못했어요! 이번 일을 비밀로 해주면……!”
말을 하던 그녀가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황한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 그래서 하려던 일은 잘된 건가요?”
“잠깐 시간을 벌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그럼…….”
“심장을 바꿀 거야. 심연의 공주가 파괴해버린 세계에 말라 죽어가는 심장하고. 오랜 시간 깨어있었던 탓에 악마의 오염조차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는 심장의 위치를 바꾼다.
내 계획을 전해 들은 레이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애초에 당신이 가진 태초의 포식자로 그런 일이 가능하진 않을 텐데요.”
“…….”
“게다가. 오염된 심장이 똑바로 정화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녀가 집어낸 문제점은 애초에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태초의 포식자로 바꾸는 게 아니야. 살짝 바이러스를 처리하듯이 속여볼 생각이야.”
“그럼 심장은…….”
“레이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네 힘이 필요해. 내게 종속된 네 힘이.”
단순 무력만 놓고 보면 그녀보다 강한 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온전히 내게 소속된 존재는 그녀뿐이었다.
내 말에 그녀는 어째서인지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녀의 뺨이 열을 받은 것처럼 불그스름해진 느낌도 들었다.
* * *
심장은 뚝딱 빼서 교환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심장이 온전히 교체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격을 지녔다 할지라도 내가 임의적으로 차원의 심장을 뽑아서 교환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이런 전례는 아마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름에도 나는 이것을 선택했다.
[인간을 위해서니?]
언제 온 것일까.
세계의 법칙에 간섭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여신이 다가왔다.
그녀는 큰 힘이 없으나 전지의 시야만큼은 여전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가시더니.”
[자칫하면 너는 영원히 본래대로 돌아갈 수 없어.]
“그래서요?”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떠하니. 외곽차원의 인간들은 본디 만들어져선 안 되는 존재들. 그들의 목숨과 네 변화를 저울질할 이유가 있을까.]
여신답지 않게 냉혹한 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 애원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울질이 아닙니다. 내 것도 챙기고 얻을 것도 챙기는 거니까요.”
[그래 봐야 남이잖니.]
“애초에 이건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없었을 문제이기도 하지 않나요?”
내가 언젠가 생길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가 수많은 인간을 죽인다.
계산해보면 어느 쪽이 이득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내 자식들한테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아야죠.”
나도 성격 많이 죽었구나.
내 대답에 그녀의 입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내게 다가온 그녀는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동시에 어떤 미성이 들려왔다.
[한때에 걱정했지만 역시 너는 길을 찾아내는구나.]
안도한듯한 그 한마디와 함께 내가 가진 힘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온전한 신이 되면 좋으련만.]
“대학원생 꼬드기는 교수님도 아니고.”
완전한 신이 되면 곧 태어날 막내의 얼굴도 못 보게 될 텐데.
정도와 방식만 다르지 내가 보기에 온전한 신이라는 위치는 착취당하는 대학원생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의 결정, 지금의 생각을 잊지 말렴.]
그녀는 만족한 듯 의사를 내비쳤다. 불안 불안하던 무언가가 안전함을 확인하고 당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내 등에 있던 성흔이 더욱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 데이비]
전엔 프리아라고 불렀고, 그녀가 내게 애정을 줬던 것도 전생의 영혼 때문이었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온전히 지금의 나를 축복했다.
딱히 힘의 변화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만족감과 정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기적은 이 정도가 전부이리라.
이윽고 신체로 내 몸을 변화시킨 뒤 힘을 발현한다.
아직 정화가 되지 않았기에 검은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개입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규칙에 두 개의 차원이 심장이 잘못 적용되었다고 속인다.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세계의 법칙은 내 의도에 따라 속아 넘어간 듯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여신이 잠들었으면서도 어떤 힘을 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힘도 없는 주제에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을 보며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간섭한 힘으로 인해 깜빡 속아 넘어간 세계의 법칙은 곧바로 두 차원의 심장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마치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처럼 두 심장의 위치를 천천히 바꾸기 시작했다.
막대한 에너지가 세계 전체에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다.
외곽차원과 부서진 차원이 서서히 가까워지며 이내 변모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심장이 빠르게 교체되기 시작한다.
온전한 정화를 위한 정화 차원이 다시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상당한 시간을 들였어야 할 변화였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나와 타나토스의 잔재가 예상했던 시기보다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교체되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빠른 변화가 이어짐과 동시에 내게 여신의 의사가 전해져 왔다.
[그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네게 자신을 강조했을 거야. 자신의 고결함. 자신의 이타심. 자신의 숭고함. 자신의 순결함까지.]
그 아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세상의 일부를 변환하는 세계의 규칙이 어긋나지 않게 나는 모든 신경을 그곳에 집중했다.
외곽차원에선 갑작스레 심장이 뽑혀나가며 생긴 문제들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내 힘을 빌려다 쓰는 레이나가 가 있으니 당장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리라.
우웅…… 우웅…….
예상했던 시간은 약 나흘 정도. 벌써 심장이 교체되기 시작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상황에 이르렀다.
며칠이 지났을까.
멍하니 집중하던 나는 문득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신이시여. 가엾은 어린양들을 구원하시옵고…….]
누구 마음대로 신력을 뽑아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는 레이나의 목소리와 달랐다.
누가 내 신력을 간섭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선명해지는 목소리를 듣고 멍한 얼굴을 했다.
[당신의 성흔을 물려받은 성녀 슈네리아 레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비옵건대…….]
슈네리아?
슈네리아는 여신의 성녀 후보가 아니었던가?
의아한 심정을 애써 억누른 채 내 일을 계속해서 속행하던 나는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묵묵히 서 있는 여신을 발견했다.
내가 있는 이곳은 신의 영역이니 그녀가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만 묘하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태블릿을 당당하게 들어 올렸다.
[너도 말 안 듣는 너의 성녀를 보듬고 지켜봐 보려무나.]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엄지를 척 올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목덜미가 뜨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처음 말했던 자신의 숭고함을 강조했다는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나를 모시는 천사에 이어 이번엔 성녀까지.
프리아 여신은 밴댕이 소갈딱지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