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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30화 (1,230/1,559)

제 1230화

아무리 소왕국이라도, 아무리 변경의 귀족가라도, 예우는 차려야 하는 법.

급한 일도 아니고 갑이 이쪽도 아니었다.

그림자, 즉 하인스 영지에 있는 다크 엘프들을 이용해 차이드 백작가를 조사한 나는 이 골 때리는 귀족가문에 대해서 헛웃음을 흘렸다.

“차이드 백작…… 부인은 사별했고, 어디 보자…….”

사실 가족관계보다는 사업 쪽 정보가 더 중요한 게 사실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내어주고 성초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성초는 개인적인 거래가 금지되어있고 사용처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점이 있지만, 마족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날 아이의 마기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을 대놓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대처하신 거 아닙니까?”

아이나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처음부터 이리 될 걸 예상하셨을 거 아닙니까.”

“나도 조사가 필요하니까. 내가 뭐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도.”

“그리고 최선책이지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거든.”

성초를 이용한 방법이 가장 상책인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불가능하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그래도 한번 시도하는 정도야 문제 될 게 있을까.

“보자 가족관계는 장남과 차남 삼남에 장녀가 하나.”

나이순으로 치면 장남과 장녀 차남과 삼남이다.

웃긴 점은 장녀와 차남은 장남, 삼남과는 배다른 형제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가족관계. 딱히 불화가 있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삼남이 생각 이상으로 망나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악의적인 정보 수집이었다.

“이거 개인 입장이 들어간 거냐?”

“95퍼센트 객관입니다.”

“그래. 주관을 아예 배제하라곤 안 하겠다만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보자. 아무리 그래도 내 제자가 사고 쳐서 거기 묶여있다잖아.”

듣기로는 요시아는 자신의 존재를 아직 계약자 이외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들키면 곤란한 건 그녀였을 테니 말이다.

저래 봬도 4서클 이상의 마법사이기도 하고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힘도 지니고 있다.

그녀가 작정하면 그곳의 모든 인간들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하는 정도는 가능하리라.

똑똑

“은공!”

내가 떠나려 할 때 즈음이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뭔가 굉장히 격양된 유리아 헬리샤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이에 코트를 입으며 들어오라 지시하자 유리아가 재빨리 들어와서는 내게 어떤 서류를 내밀었다.

“음? 네 관리담당서류는 이미 다 올라온 거 아니었나?”

“아뇨. 이건 연구회 자원신청서에요.”

“연구…… 아 그 사이비 연구회.”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뜬다.

“미식연구회는 사이비 연구회가 아니랍니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네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뭘 원…….”

말을 하던 내 눈이 자연스레 가늘어지며 그녀가 내민 서류의 한 항목에서 멈췄다.

“유리아 헬리샤나.”

“네! 은공!”

“대체 연구는 좋은데…… 내 피는 왜.”

내 말에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요시아 양이 은공의 피만 보면 환장하잖아요?”

이년이 못하는 말이 없네. 그래도 어디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인데.

내가 인상을 꿈틀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였다.

그녀가 일 재주만 없었어도 당장 해고하고 숲으로 돌려보내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요시아 양은 다른 이의 피는 절대 안 마시거든요.”

오히려 역한 표정을 짓지.

“그래서?”

“은공의 피는 뭔가 다르니까요. 저는 미식연구회랍니다. 그 대상은 저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음식을 섭취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해요. 요시아 양이 은공의 피를 유별나게 맛있어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으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시아가 내 피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건 선호의 차이지 피의 맛과는 조금 달랐다.

미묘한 기분에 내가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미식연구인 만큼 요시아의 기준에서 맛있는 음식이 왜 맛이 있는지도 연구한다.

제법 신박한 연구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피 조금 뽑아주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너, 다른 속내가 있구나.”

미소지으며 내가 말하자 유리아는 해맑은 미소 그대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는데요?”

“분명히 있어.”

내 대답에 그녀의 미소가 짙어졌다.

“일단 갔다 와서 저녁에 이야기하자.”

“어디 가시나요?”

“중부대륙 남단에 있는 보스타 왕국.”

“보스타 왕국?”

처음 듣는 이름인지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세요. 요시아 양도 아마 이 연구가 완성되면 기뻐할 거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아는 유리아 헬리샤나가 고작 선행을 위해 이런 연구를 하진 않을 텐데.

미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속내를 안 까내는데.

* * *

요시아 프랑소스, 뱀파이어 로드이자 샤쿤탈라 아카데미에서 낙제된 천재라 불리던 마법사.

그녀가 저지른 이번 일은 사실 용서할 생각이었다.

뭐가 되었건 그녀가 이렇게 된 건 내가 깜빡하고 그녀에게 피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도 다른 이의 피는 절대 빨지 않는 것을 보면 요시아의 흡혈 절제력에 칭찬이라도 해주는 게 맞으리라.

나는 지금, 매우 관대하다.

“당신이 잘못해서요?”

“조용히 해. 혼나기 싫으면.”

나는 애써 레이나의 시선을 피했다. 아니 기억은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 신경 쓰다 보니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절제는?”

“승현이요? 지금은 팔팔하게 방송 잘하고 있데요. 늘 그렇듯 에린이와도 잘 투닥거리고.”

“그래.”

요시아가 머무르고 있는 차이드 백작가는 시골 소왕국이라 불리는 보스타 왕국의 변경 백작이다.

티오니스에는 많은 국가가 존재하고 그중에서는 국가 연합에 이름만 올렸을 뿐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왕국들 또한 존재한다.

보스타 왕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시골 왕국이라는 건 변함 없지만, 차이드 백작가처럼 목적이 이런 경우 왕국 내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는 탓에 변경치고는 발전도가 상당했다.

그렇게 차이드 백작가를 찾은 나는 일리나와 합류할 수 있었다.

“데이비.”

나를 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후다닥 달려오는 그녀는 꽤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후다닥 달려와 내 품에 매달리듯 안겼다.

매미가 고목나무에 매달리면 이런 느낌일까.

일리나의 키가 작은 편이기에 딱히 모양이 이상하게 나오진 않았다.

다리로 허리를 휘감고 양팔로 내 목을 끌어안는 그녀의 허벅지를 받쳐 든 내가 씨익 웃자 그녀가 거침없이 내 입에 자신의 입술을 맞춰왔다.

“정말 보고 싶었어! 왜 그동안 돌아오지 않은 거야?”

그녀의 물음에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긴 뭐 어때.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됐지.”

“그래서 여기서 뭐 하고 있었는데?”

“응? 나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 부탁을 받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지.”

그냥 요시아를 데리고 바로 돌아가지 않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녀를 끌어안은 채 올려다보자 내게 매달려있던 일리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자세한 건 직접 가서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몸을 가볍게 튕겨 내게서 내려온 뒤 내 팔을 매달리듯 잡고 잡아끌었다.

“그럼 어서 갈까?”

황녀 출신인 그녀가 수행 인원 하나 없이 돌아다니는 꼴이 영 적응이 안 되지만 애초에 그녀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윽고 그녀를 따라 요시아가 머무르고 있는 차이드 백작가의 별장에 도착한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본관에 시선을 돌렸다.

“여긴 본관이 아니네?”

“요시아를 불러낸 녀석은 차이드 백작가에서 미움받는 망나니거든.”

망나니라는 단어에 내 눈이 게슴츠레 뜨여졌다.

“망나니?”

“응. 그런데 조금 독특한 망나니인 것 같더라.”

그렇게 말하며 저택으로 나를 안내하는 그녀였다.

놀랍게도 이곳 별장은 본관과 다르게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시종이나 시녀들은?”

“주기적으로 온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고 해.”

“귀족가의 자제인데?”

“웃기지? 뭐,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아마 그 녀석 너도 재밌다고 생각할걸?”

아무리 망나니라도 이 정도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차라리 그렇게 되면 요시아의 존재를 숨길 수 있으니 다행이리라.

그렇게 들어서자 내 눈에 어떤 장면이 비쳤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요시아와. 그런 요시아를 덮치는 듯한 자세로 있는 소년을 말이다.

소년의 나이는 대충 15살 정도 되어 보였다.

“…….”

잠시 침묵한 내가 중얼거렸다.

“홍단.”

그 말과 함께 허공이 깨지며 그 사이에서 홍단이의 붉은 검신이 빠져나왔다.

“어…….”

재밌긴 재밌네.

내 미소에 이어 일리나의 눈이 가늘어진다.

“호오…….”

그리고 일리나의 표정에도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소년이 움직이려던 찰나.

요시아 프랑소스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그대로 소년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컥!!”

비명과 함께 나뒹구는 그를 뒤로한 채 요시아의 눈이 광기에 차 번들거렸다.

그리고는 나를 시야에 담고 소리쳤다.

“피!!! 선생님!!”

그리고는 순식간에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그대로 내 뒤에 나타났고, 등 뒤에서 내게 매달리듯 양다리로 허리를 휘감고 양팔로 목을 휘감은 뒤 내 목덜미에 제 작고 앙증맞은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으읍! 읍!!”

피를 빨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요시아를 보며 일리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관대하니까 용서하마.”

그래. 요시아 프랑소스에게 한참 동안 피를 주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 이번만큼은 용서한다.

그렇게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요시아를 등 뒤에 매단 채 걸어 나간 내가 말했다.

“그래. 미드 차이드 영식?”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건 됐고. 우선 설명해보지 않겠나?”

“예?”

“요시아는 일단 내 제자인데. 무슨 이유인지 대낮에 정원에서 내 제자를 바닥에 깔아뭉개고 분위기고 잡고 있었는지.”

내가 검집에서 홍단이를 꺼내 든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대…… 대답하지 않으면요?”

“영식. 그 말을 알고 있나?”

“네?”

“보는 사람이 없으면 암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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