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2화
한참을 덤벼들던 요시아였지만 나는 그녀의 장단에 놀아나 주지 않았다.
결국,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건 그녀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두고 보자며 이를 부득부득 가는 것뿐이었다.
차이드 백작을 기다릴 겸 요시아가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해 흥미가 생긴 나는 그녀의 교육을 잠시 지켜보았고, 바로 결론을 내렸다.
커리큘럼이 없이 즉흥적으로 계획을 짜서 가르치는 게 굉장히 미숙하다.
정확히 체계적인 교육은 어떻게 참작 여지가 존재하지만 모든 커리큘럼을 스스로 짜내는 현재 상황을 놓고 볼 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요시아의 교육 점수는 그야말로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하면 되잖아.
이걸 왜 못해?
그런 말은 여사였다.
그녀는 천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적당한 재능을 지닌 이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해 몰랐다.
단순히 같은 말이라도 이정표가 있다면 거기에 맞춰서 가르치면 될 일이었다.
기본부터가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이꼴이 날 수밖에.
내 교육방식은 요시아를 능숙한 메이지로 만들었지만 정작 그 교육방식의 틀만 익혀버린 그녀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 지옥 같은 교육방법으로 탈바꿈시켜버렸다.
상대를 파악하고 강약 완급조절을 하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강약 완급조절이 박살 나버린 교육을 강행했다.
아마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 것이다.
“후…… 속 터져…….”
제 가슴을 두드리며 내게 다가오는 요시아가 물었다.
“저거, 가능성 있을까요?”
“내가 보기엔 너도 똑같아.”
“진짜 쌈닭 볼래요?!”
“그냥 놀리는 거 같지?”
내 물음에 그녀가 움찔했다.
단순히 그녀를 놀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제가 뭐가 문젠지를 알려줘야 알죠…….”
“이걸 알아내면 이번 휴가 가불은 없었던 거로 해주마.”
즉 추가 유급휴가로써 인정해준다는 소리였다.
그 말에 그녀의 눈이 번뜩인다.
“진짜죠? 약속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만 있는게 아니거든.”
“네?”
“그놈도 문제야.”
사실 요시아보다 그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을까.
요시아는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놈에게로 향했다.
“미드 영식이 더 큰 문제야?”
요시아가 간 이후 일리나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법은 보통 시전자의 의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알고 있지?”
침착함을 잃어버린 마법사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흠…… 확실히 검에 비하면 조금 분야가 다르긴 하지.”
겉보기엔 멀쩡한 것과 다르게 놈의 정신 상태는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과거 테라리아 왕국에서 만난 친구인 막시모스 반테라리아도 망나니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그와 미드 차이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뭐가 옳고 그른지 인지하고 알고 있는 막시모스. 그리고 자신의 패악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진짜배기 망나니인 미드 차이드의 차이는 거기서 나왔다.
“일리나. 자기가 옳고 자기가 잘난 줄 알며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무시하던 개망나니가 갑자기 변하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아야 할까.”
내 질문에 일리나는 선 듯 답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다.
미드 차이드가 개망나니였다고 해도 간단한 일 하나만으로 사람이 바뀔 순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계기가 간단하다 할지라도 그에겐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일이다. 아마 아직 머릿속에는 정리가 채 되지 못했으리라.
여기서 삐끗하는 순간 다시 그 망나니로 돌아가는 것이고, 자리를 잘 잡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사람 쉽게 안 바뀐다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예 안 바뀐다고 말하는 것 또한 진리는 아닌 법이었다.
결국, 나는 미숙한 선생과 불안정한 학생의 수업행태를 지켜보고 팝콘이나 뜯으면 될 일이었다.
그때였다.
미드 차이드에게 돌아가던 요시아가 그에게 말을 걸려던 그 순간이었다.
저벅저벅 소리와 함께 일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일리나.”
동시에 나는 일리나를 품에 당기며 기척을 차단했고, 레이나 또한 눈치챈 듯 기척을 가볍게 억눌렀다.
“어?”
철썩!!!
그야말로 풀스윙을 갈기는 듯한 따귀였다.
억센 손길로 미드 차이드의 뺨을 후려친 사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 아버지…….”
“아카데미에서 사고를 치고 가문과 네 형제들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네 녀석이 그래도 잘못을 알기는 아는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으니.”
“…….”
눈앞에서 미드 차이드가 뺨에 맞아 한 바퀴 구르는 꼴을 지켜본 요시아는 머릿속에 의문으로 가득해진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네놈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반성하라는 이유로 이곳에 두었거늘. 내 눈을 피해 그새 또 계집질이더냐?!”
“아버지! 이 사람은!”
“듣기 싫다!! 네 녀석에게 일말의 기대를 건 것이 실수였다. 시종장! 이놈을 당장 감옥에 가둬버리게!”
“아버지!”
“닥치라 했다!!”
철썩!!
또다시 뺨을 후려치는 그의 엄한 행위에 미드 차이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보아하니 평민계 아가씨는 아닌 듯한데. 이만하고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소. 내 시종들을 붙여주지.”
이후 차이드 백작은 제 아들을 무시한 채 요시아에게 말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본래 예정보다 일찍 나타난 그의 모습에 요시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요시아 프랑소스라고 합니다.”
“차이드 백작이오. 뭐 할말이라도 있으시오?”
나는 너와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말하듯 그가 일갈하자 미드 차이드가 황급히 소리쳤다.
“아버지! 오해…….”
“닥쳐라! 뭐하는가! 당장 저놈을 끌고 가지 않고! 내 한때엔 그래도 아들이라 하여 손대지 않았지만 오늘부로 네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그 한마디에 미드 차이드의 표정이 대놓고 어두워졌다.
저건 안 좋은데…… 멀찍이서 그들의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던 나는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기척을 감추던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조금 진정하시지요. 차이드 백작.”
“당신은?”
갑작스레 나타난 내 모습에 그가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 자세를 취했다.
확실히 갑자기 나타난 외부인이니 침입자라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반갑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고 합니다. 연통도 없이 이리 찾아와서 미안하지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지요.”
내 말에 잠시 이름을 곱씹던 그가 움찔했다.
“데이비…… 데이비 올 라운? 설마 대륙의 성자…….”
“낯간지러운 호칭이니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시지요.”
“대륙의 성자…… 하인스의 대공께서 어찌 타국의 변경까지…….”
“이쪽도 급한 일이라서요. 혹시 잠시 담화 가능하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잠시 제 아들을 노려보았다.
“잠시 기다려주시지요. 저 망나니 놈을 내쫓은 후에…….”
“아닙니다. 그는 그냥 두세요.”
“…….”
내 요구에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대공. 아무리 대공이라 해도 타 가문의 일에 간섭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소.”
줏대가 높은 건지. 뚝심이 좋은 건지.
어느 쪽이든 그는 정보에 적힌 대로 정말 고지식할 정도로 원리 원칙 주의자였다.
“뭐 결정은 백작께서 하는 거지만…….”
나는 빙그레 웃었다.
“후회하실 텐데요.”
“협박하는 것이오? 저 망나니가 대체 당신에게 무엇을 약조했는지는 모르나…….”
“협박할 이유가 있나요? 나는 영식과 초면입니다.”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따귀로 인해 부풀어 오른뺨을 보며 말했다.
“혼란스럽나?”
“네?”
“혼란스럽냐고. 분명 자신은 바뀐 거 같은데 주변은 여전하니 네 생각과 결심이 틀린 건지, 의심부터 드나?”
“그게…….”
“한번 잘 고민해봐. 적어도 내가 보기엔 네 잘못은 아니니까.”
빙그레 웃으며 그의 뺨을 가볍게 치료해준 뒤 몸을 돌렸다.
“백작. 잠시 시간 되겠습니까?”
멍하니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개망나니였던 그는 어떤 이유로 인해 사람이 바뀌었다.
심정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개인의 생각의 변화. 그것도 확신이 있는 변화가 아니었기에 그는 과도기 상태에 들어 있었다.
차라리 소설마냥 자신이 전생을 기억하고 지금의 행동이 과하다는 걸 인지한 것이라면 문제는 없을 테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달칵-
향기로운 차향이 퍼져나간다. 성초가 들어있는 것인지 상당한 신성력이 차에 머금은듯한 느낌도 들었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하면 이 변경까지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연통 없이 이리 불쑥 찾아온 걸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소.”
담담하게 말하지만, 빈말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이에 나는 길게 생각하기보다는 짧게 용건을 밝혔다.
“차이드 백작. 성초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성초라…… 외람되지만 이미 성초의 거래는 불가하다고 답신을 드렸던 것 같소만.”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조금 다급한 입장이라서요.”
“예외는 없소.”
정말 고지식할 정도로 원리원칙주의자였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딱히 큰 연줄도 없는 차이드 백작이 성초 재배지역을 오랜 시간 지켜온 데엔 그런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뭐, 불법적으로 해달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리 양이 많지 않아요.”
“몇 번을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아하니 차이드 백작가에서 상당히 큰 빚을 지고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차이드 백작가가 가지고 있는 빚도 적은 양이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망나니 미드 차이드가 아카데미에서 사고를 친 탓에 엄청난 빚을 졌다.
올곧은 성질머리의 사내이니 아마 더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이 모조리 책임진다 말했을 터다.
“그건 대공과 아무런 연관이 없소.”
“제가 그거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대공.”
“기존의 계약을 취소하라 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현재 영지 내에 연구를 위해 빼둔 성초의 물량 일부만 넘겨주시지요.”
“그건 어느 쪽으로 보나 잘못된 거래일 뿐이오. 수지타산도 맞지 않지. 지금 차이드 백작가가 지고 있는 빚이 얼마인지는 아시오?”
“9만 골드 가까이 되더군요.”
“이쪽에서 넘겨줄 수 있는 성초가 9만 골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건 아니겠지요.”
“그렇기에 거래에 응할 수 없소. 서로 가치 차이도 좁힐 수 없소이다, 또한 대공의 부탁에 따라 거래를 해주게 된다면 이것은 사례가 될 뿐이오.”
어떤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차이드 백작의 결정은 이미 예견한 바였다.
이렇게 한번 사례를 만들면 두 번 또 그러란 법은 없다.
본래 부패하는 과정이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참 대단한 양반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가문이 휘청일 텐데요?”
“그 또한 걱정하는 바는 알겠으나 대공께서 신경쓸 부분은 아니오. 내 망나니 같은 아들놈의 평소 행실로 인해 착각한 점은 사과드리겠소.”
요시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며 계집질이냐 했냐고 소리친 그였다.
문제는 요시아가 하인스 아카데미의 대학원생이자 조교수라는 사실이다.
단순한 오해라는 것은 금방 받아들이는 그였다.
다만 그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사과는 제가 받을게 아닌 거 같은데요.”
“…….”
“영식에게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놈은 대공께서 신경쓸 놈이 아니오.”
“신경쓸 놈이 아니라니요.”
“너무 오냐오냐 키웠소이다. 그래서인지 저놈은 위아래가 없소. 사고를 치고 계집이나 낄 줄 아는 녀석이지.”
나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괜한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합니다. 의사는 확실히 알았으니 슬슬 돌아가 봐야겠네요.”
* * *
단순해 보이는 계약이지만 미드 차이드는 무려 뱀파이어 로드와 계약을 맺었다.
그 계약이 절대 가벼울 리 없다는 건 요시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나름대로 책임감은 느끼는지 그녀는 조금 더 남아 그의 마법을 봐주겠다며 홀로 남았다.
여성 편력으로 말이 많은 놈이긴 했지만, 사람도 조금 변한 거 같고, 설사 놈이 이상한 생각을 품었어도 요시아를 상대로 어찌할 순 없을 테니 나는 그녀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런데. 성초 말곤 정말 방법이 없어?”
“사실 없어도 돼.”
내 말에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던 일리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이야? 꼭 필요해서 이리저리 찔러본 거 아니었어?”
“있으면 좋아. 그런데 없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굳이 성초에 목을 맬 필요가 없잖아. 그런데 9만 골드나 되는 빚을 탕감해준다고 하니까 나는 급한 줄 알았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수지타산이 안 맞지. 그런데 차이드 백작은 절대 승낙을 안 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거든.”
예상대로 그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흐음…… 그랬다가 승낙했으면 어쩌려고.”
“어쩌긴 한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9만 골드를 대신 내겠다고?”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9만 골드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실제로 9만 골드를 쾌척하기엔 엄청난 자금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아공간에 넣어둔 정보가 적힌 서류를 꺼내 훑었다.
“본래 차이드 백작가가 지고 있는 빚은 그리 많이 되지 않아. 그러면 나머지 빚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야 중앙 아카데미에서…….”
“이상하지?”
내 미소에 그녀가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럼…….”
“받아들인다 했으면 조사하는 거야 어렵진 않지. 근데 싫다니까 굳이 해줄 필요가 있나?”
“요시아를 생각하면 조금 도와주는 건…….”
“이번 기회에 요시아도 배울 점이 있을 거야.”
그녀가 스스로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될 때. 그때 조금 거들어주는 정도일 뿐이다.